드립 커피와 또 다른 커피들에 대한 단상
페이스북이란 공간이 갖는 매력이 있다.
가끔 잊어버리고 있던 것을 생각나게 한다.
친절하게도 오늘,
2년전 썼던 글이라며 잊혀진 글을 생각나게 했다.
커피 한잔이 무척이나 고프다.
분주한 아침이 지나고 고요가 찾아왔습니다. 남편과 아이가 바쁘게 ‘출근’하고 난 뒤 나만의 시간입니다. 맛있는 커피 한잔이 간절합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여유있는 아침이니, 핸드 드립(Hand Drip)으로 한잔 마시렵니다. 핸드 드립은 커피를 만드는 방법 중 한 가지로 미국에서는 푸어 오버(Pour Over)라고도 부릅니다. 말 그대로 커피 가루 위에 물을 부어 아래로 내려온 커피를 마시는 것입니다. 원리는 커피 메이커와 같습니다.
물을 전기 주전자에 넣고 끓이기 시작했습니다. 커피 메이커가 있다면 기계가 알아서 해주겠지만 핸드 드립은 뜨거운 물을 커피에 붓는 모든 과정을 직접 손으로 해야 합니다. 그만큼 시간과 정성을 들인 커피라 맛이 좋습니다.
물이 끓는 동안엔 커피 빈(Bean·콩)을 갈아서 준비합니다. 원두는 로스팅(Roasting·볶는 것) 정도에 따라 다크, 미디움, 라이트로 나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미디움 로스팅 정도를 좋아합니다.
커피 콩을 잘게 분쇄해주는 그라인더(Grinder)에 원두를 넣고 굵은 소금 정도의 굵기로 갈았습니다. 원두를 가는 정도는 커피 추출 방법에 따라 달라집니다. 핸드 드립이나 커피 메이커를 이용하는 여과방식(Brewing·브루잉)에는 굵은 소금 정도가 적당합니다.
유리용기에 물과 커피가루를 같이 넣고 커피를 우려내는 방식인 프렌치 프레스(French Press)를 사용할 때는 원두를 더 굵게 갈아야 합니다. 반대로 고온고압으로 단시간에 커피 원액을 뽑아 내는 가압추출법(Pressed Extraction)에는 밀가루처럼 곱게 갈아진 커피 가루를 씁니다.
이때 나오는 소량의 진한 커피 원액이 바로 에스프레소(Espresso) 입니다. 맛과 향이 진해서 그대로 마시는 사람들보다는 물이나 우유를 섞어 마시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에스프레소에 물을 섞으면 아메리카노(Americano), 우유를 섞으면 라떼(Latte)가 됩니다. 라떼 보다 우유를 적게 넣고 풍성한 우유 거품을 올리면 카푸치노(Cappuccino), 라떼에 코코아 가루를 섞으면 카페 모카(Mocha)를 만들 수 있습니다.
뜨거운 물과 원두가 준비됐으니 이제 커피를 내릴 차례입니다. 드리퍼(Dripper)에 여과지를 깔고, 소금 굵기로 간 원두를 넣습니다. 뜨거운 물은 붓기 전 온도를 재야 합니다. 물이 너무 뜨거우면 원두의 쓴 맛이, 차가우면 신맛이 과도하게 추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적당한 물온도는 원두의 로스팅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87~93도 입니다. 수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저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커피 맛이 미디움 로스팅된 원두를 90도 정도에서 내렸을 때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적당한 온도의 물은 주전자를 사용해서 가운데서 바같쪽으로 원을 그리는 방식으로 부어줍니다. 이때 같은 양의 물이라도 너무 빨리 부으면 신맛이, 너무 천천히 부으면 쓴맛이 많이 날 수 있으니 마지막까지 주의해야 합니다.
800ml정도의 물을 3분 30초 동안 부어 천천히 커피를 내립니다. 기분 좋은 커피 향이 온 집안에 가득 퍼집니다. 예쁜 잔에 옮겨 담은 커피를 한모금 마셔봅니다. 충분히 맛있습니다.
하지만 기억 속에 남아있는 정말 맛있는 커피는 누군가와 함께 마셨던 커피입니다. 엄마가 산후조리를 위해 미국에 오셨을 때, 떠나시기 전날 우리는 쇼핑몰 한 구석 오랫동안 수다를 떨었습니다. 엄마는 "나 아메리카노 시켜줘. 좋아해"라고 말했는데, 엄마가 아메리카노를 좋아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두툼한 외투를 껴입고 나온 날이었는데 그날의 아메리카노는 참으로 따뜻했습니다.
아버지가 미국에 오셨을 때는 둘이서 뉴욕을 헤메고 다니다 뉴욕대 앞에서 우연히 Think Coffee를 발견했습니다. 일부러라도 찾아갔을 그 곳을 우연히 들어선 골목에서 만났습니다. "한국 TV에 나온 커피집"이라며 60 넘은 노인네와 미국 대학교 앞 커피숍에 들어섰습니다. 그곳에서 마신 커피 한잔과 맛있는 베이글은 다른 어떤 기억보다 선명합니다.
핸드 드립을 처음 시작했을 땐 남편이 냉정한 심사평과 함께 ‘실패한 커피’를 많이도 마셨습니다. 쓴맛과 신맛은 물론 각종 잡맛까지 어우러져 도저히 마실 수 없는 지경일 때도 있었습니다. 이젠 그날의 커피보다 훨씬 맛있는 커피를 만들 수 있지만 그때만큼 인상적이진 않습니다.
원두를 어떻게 갈아 몇도에서 내렸는지가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정말 맛있는 커피는 그 사람과 그 순간에 함께였기에 느낄 수 있는 맛이었는 걸요. 참 맛있었던 커피, 또 한번 마셔보고 싶습니다.
이글을 페이스북에 올렸었는데 여동생이 댓글을 달았다.
"언니, 나와의 LA공항 근처 스타벅스는? 기억도 안나지?"
사실이었다. 기억에 없었다. 왜일까.
대신 동생과는 그애가 저만치에서 걸어오던 기억,
그애를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들던 기억.
그리고 그애가 저만치 걸어가던 기억,
행여 눈물이 흐를까 열심히 눈을 깜박이며 손을 흔들던 기억이...
남아있다.
동생의 댓글 뒤에 아버지가 댓글을 달았다.
언니 좀 봐주라면서..
그리고 아버지는 Think Coffee를 이야기하셨고,
동생과 마시셨던 그 어느 커피를 이야기하셨다.
이 한마디와 함께.
"딸들, 그날의 커피들은
그 공간보다는 시간이 매력적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그리고 이렇게,
커피와 함께 하는 사람과 시간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