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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MOM Apr 19. 2016

엄마를 생각하다

엄마가 되고서야 알게 된 '엄마 마음'

그냥 돌아 나오던 차였다. 몇 걸음 가지 못했다. 결국 뒤를 돌아 다시 식당으로 들어갔다.

"저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되요? 엄마 생각이 나서요."


그렇게 말하고 핸드폰을 꺼내 몇 장 찍었다. 사람들이 나를 좀 신기하게 쳐다본다 보는 것 같았지만 상관 없었다. 다른 아주머니가 물었다.

"사진 왜 찍는 거야?"

콩나물을 다듬던, 내가 사진을 찍고 있던 그 아주머니가 대답했다.

"엄마 생각이 난대."

그랬다. 그냥 스쳐 지나던 그 장면 속에 엄마가 있었다.

엄마도 그 아주머니처럼 그렇게, 콩나물을 수북히 쌓아놓고 콩나물을 다듬곤 했다. 대부분 TV 앞에 신문지를 깔고 드라마를 보시면서 였는데, 가끔은 "좀 도와줘"라고도 하셨던 것 같다. 도와드린 기억이 많진 않다.

때론 못들은 척 그냥 소파에 누워 있었고, 때론 곁에 가 앉아 도와주는 척 했지만 TV에 빠져있었다.


집을 떠나 혼자 살게 되면서, 콩나물을 다듬을 일이 생겼다. 처음으로 콩나물을 사와서 손수 혼자 콩나물을 다듬던 때, 엄마를 생각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난 정말이지 콩나물 다듬는 일이 많이 싫었다. 귀찮았다. 수북히 쌓인 콩나물에서 한 웅큼 꺼낸 뒤 머리쪽을 줄 마추고 꼬리쪽을 잘라냈다. 해도 해도 끝이 나지 않았다. 이쯤이면 되겠지, 요리해보면 요만큼으로 줄어들었다.   


이렇게 귀찮은 줄 미리 알았더라면,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줄 그때도 알았더라면, 신문지 깔아놓고 TV 보며 콩나물을 다듬던 그 엄마를 조금 더 열심히 도와줬어야 했다. 나는.


아이들은 엄마를 음식으로 기억해요
                                                                                                       

“아이들이 크면 엄마를 ‘맛’으로 기억해요. 예쁜 사람, 멋있는 사람 본다고 엄마를 떠올리진 않거든요. 근데 김치찌개 먹으면서, 된장찌개 만들면서 엄마를 생각해요. ‘엄마 맛이 아니야. 엄꺼 먹고 싶어’하면서 전화와요.”


주책맞게 눈물이 그렁 맺혔다. 딸아이가 다니는 유치원 원장 선생님과 면담 중이었다. 아이들 식단을 이야기하다 음식 이야기가 나왔고, 원장 선생님의 대학간 자녀들 이야기를 했다. ‘엄마 맛’을 기억해서 전화한다는 말을 듣는데 내가 괜히 울컥 했다. 난 김치찌개를 먹으며 엄마를 생각하지 않는 말이다. 대신 난, 육개장을 먹으며 엄마를 떠올린다.


나의 삶 곳곳이 이렇게 엄마와 잇닿아 있다. 전혀 상관 없는 순간, 뜬금 없이 엄마가 떠오른다. 엄마가 되고 보니 그렇게 엄마가 떠오르는 순간이 더 많아졌다.


어린이학교 선생님과 상담을 할 때처럼 마켓에서 복숭아를 사다가, 아이의 색연필을 찾다가, 대답 없는 아이를 바라보다가, 그렇게 문득 엄마를 생각한다.


마켓에서 복숭아를 사다가


마켓 입구에 놓여진 노란 복숭아가 유난히 맛있어 보였다. 이리저리 흠없는 녀석으로 골라 봉투에 담았다. 저만치 들어가니 또 다른 복숭아가 있었다. ‘White Peach’라고 쓰인 글자를 보자 딸 아이가 아침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엄마, 나는 하얀 복숭아가 맛있어요.”


손에 들린 복숭아 봉지를 보며 잠시 주저했다. 내가 이미 담은 건 노란 복숭아였고, 눈 앞엔 아이가 말했던 하얀 복숭아가 있었다.


‘노란 건 내가 먹지 뭐. 하얀 복숭아가 좋다잖아.’

그리고선 하얀 복숭아를 몇 개를 더 골랐다. 아까보다 훨씬 더 꼼꼼하게, 흠없는 녀석으로. 하얀 복숭아를 봉투에 담으며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그럴 때가 있었다. 나는 기억도 안나는 데 엄마가 가끔 “이거 지난 번에 너가 맛있다고 했잖아”라며 과일이나 음식을 내놓곤 했다. 그때마다 “몰라, 내가 그랬나?”라며 성의없게 대답했다. 내가 흘린 말을 엄마가 귀담아 들었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았다. 하얀 복숭아를 고르면서.


아이의 색연필을 찾다가


딸 아이가 뭔가를 찾아내라며 짜증을 부릴 때가 있다. 오늘 아침에도 빨간색 색연필이 없다며 어디있냐고 물었다. 바쁜 아침시간이라 나도 화가 좀 났다. 네 물건인데 엄마가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아냐고 짜증스럽게 답했다.


아이를 어린이학교에 데려다 주고 돌아오니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방으로 들어갔다. 색연필은 의자와 의자 사이에 떨어져 있었다. 주워서 책상에 다시 올려 놓으며 엄마를 생각했다.


그럴 때가 있었다. 나 역시 엄마에게 없어진 물건을 찾아내라고 생트집을 잡았다. 엄마가 만지지 않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막무가내로 ‘찾아내라’고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 찾아지지 않던 물건이 책상 위에 있곤했다. 엄마가 “아침에 찾던 거 책상 위에 있어”라고 하면 “봤어”라며 시큰둥하게 답하고 말았다. 내가 나가고 없던 시간 엄마는 그것을 찾기 위해 적잖이 애를 썼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았다. 아이의 색연필을 찾으면서.

 

대답 없는 아이를 바라보다가


“사과 먹을래? 딸기 먹을래?”

 “물 마실래? 우유 마실래?”

“어젯밤에 더웠어? 추웠어?”


아이에게 묻는다. 대답을 속시원히 안하니 여러번 묻는다. 필요한 것은 없는지 항상 궁금하다. 불편한 것은 없는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대답 대신 딴짓 하느라 바쁜 아이를 보며 엄마를 생각한다.


그럴 때가 있었다. 엄마는 항상 여러가지를 물었다. 뭘 그렇게 궁금해 하는지, 뭘 그렇게 알고 싶어 하는지. 자꾸 물으면 꾀가 나서 입을 다물어 버리기도 했다. 못된 딸이었다.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구나. 그저 궁금하고 걱정이 됐던 거였구나. 이제는 알 것도 같다.

묻는 말에 대답 없이 자기 할일만 하는 네살 된 딸을 보면서 말이다.


그렇게 문득 엄마를 생각한다


며칠전 한국에서 카카오톡이 왔다. 처음 미국에 올때만 해도 전화카드로 국제전화를 걸곤 했는데, 이젠 카톡이라는 신세계가 열렸다. 그 신세계를 통해 엄마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손가락을 좀 다쳤다는 데 '좀'이 아닌 것 같다.


멀리 있는 딸 걱정시킨다며 별 이야기 안하는 거 같은데, 치를 보아하니 별 일이 생긴 것 같다.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서 난 오늘 엄마를 생각했다.


언제인가 한번 쓰고 싶었던 콩나물 이야기, 언제인가 엄마에게 꼭 전하고 싶었던 그 콩나물 이야기를 오늘 썼다. 더 많이 도와줬어야 했다고, 가까이 있을 때, 한 집에 살 때 그랬어야 했다고. 이제야 마음을 전한다.


그렇게 오늘도 난, 엄마를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엄마는 꽤 많은 순간 내 글의 주인공이 되어 주었다.

내가 쓴 엄마 이야기 중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
긴 시간에 걸쳐 이어진 이야기.
 "우리 엄마 닭잡은 이야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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