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주휴는 줬어야지

실화 기반 이야기

by 라미

1.

하얀 종이 위를 빼곡하게 채운 숫자와 점점 날려 쓰게 되는 서명들.

언제 이렇게 많아졌지. 연수는 한 손에 볼펜을 쥔 채 멍하니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흑과 백만 새겨져 있던 그 위로 별안간 적이 추가된다. 축축해진 인중을 손등으로 문지르자, 갈색의 손목 보호대가 붉게 물들었다. 까칠한 보호대의 표면 때문에 콧구멍이 살짝 쓰라렸다. 연수는 연신 코를 먹으면서 근무 시간을 기록했다.

마감 타임에 혼자 일한 지 어느덧 육 개월째다. 시험기간이라서, 방학이라 전부 본가에 내려가서, 개강 시즌이라 주말 알바만 인기가 많아서…. 여러 가지 이유로 같이 붙여줄 알바를 구하지 못했다는 게 잔뜩 미안한 표정을 짓던 사장의 결론이다. 그걸 되새기는 동안 급하게 냅킨을 두 장 뽑아 코를 틀어막았다. 연수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피로에 무거워진 눈꺼풀을 느리게 끔뻑거렸다. 새하얀 조명이 아플 정도로 동공을 찔렀지만,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다.

“저기요, 이거 상품권 쓰려고 하는데요.”

연수가 코피를 흘리고 있건 말건, 바코드가 띄워진 휴대전화를 든 손님 한 명이 카운터로 다가왔다. 키오스크 앞에서 혼자 헤매는 것 같더니 결국 답을 찾지 못한 모양이다. 그는 ‘상품권 주문은 키오스크로 하실 수 있어요.’라는 말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걸 꾹 참아내고 들었던 고개를 도로 내렸다. 어떤 거 주문하시겠어요? 잠깐 냅킨을 떼어낸 그 사이, 멎을 줄 모르는 코피가 또 한 줄기 주룩, 흘렀다. 그걸 유심히 지켜보던 손님은 짧은 순간, 불쾌한 듯 미간을 좁혔다가 풀었다.

‘알바생이 코피 흘리던데… 그거 코피 닦던 손으로 계속 음료 만드는 게 보기 좀 거북했어요. 사장님 알바생들 위생 교육 신경 써주세요.’

그런 리뷰가 추가되는 데엔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다음 날 출근한 연수가 사장에게 적어도 손님이 보고 있을 땐 손이라도 제대로 닦고 일하라며 혼이 나는 데에는 하루 정도가 걸렸고. 연수는 코피 묻은 손목 보호대도 벗고 손을 씻은 뒤 만들어 드렸다는 자기방어 대신 고개를 숙이는 걸 택했다. 들어줄 것 같지 않은 이를 향해 말을 쏟아내는 건 소모적인 과정이다. 이런 데에 허비할 기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복잡한 디저트가 추가된 겨울 시즌 메뉴 제조 매뉴얼과 주휴수당이 또 빠져버린 이번 달 급여가 연수의 눈앞에 번갈아 나타났다. 고장 난 텔레비전을 앞에 둔 것처럼 시야가 빠르게 점멸하다가 이내 완전히 어두워졌다. 손님이 전부 빠져나간 매장 한가운데에 서서 지그시 눈을 감은 탓이다. 연수의 오른손에는 대걸레가 쥐어져 있고, 왼손에는 테이블 위에 버려져 있던 영수증과 빨대 비닐 쓰레기가 들려 있다. 마감 시간까진 5분가량 남았고, 산처럼 가득 쌓인 설거지는 아무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 그야 혼자 있으니까. 그가 하지 않으면 누구도 해주지 않는다. 사장은 대타나 새 아르바이트생을 구할 생각이 없었고, 굳이 부탁받지 않은 대타를 동정심 하나로 나와줄 사람도 없는 게 당연했다.

대걸레와 쓰레기를 놓아버린 연수가 머리 위로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앞 타임은 누구도 청소를 하지 않고 쓰레기도 버리지 않지만, 마감 때 컵홀더 하나라도 채우지 않으면 바로 단체 메시지방 알림을 울리고, 사장은 1호점에서 다 떨어진 재료나 얼음을 가져올 때만 얼굴을 비추는 곳에서 보내는 수신호. 그래, 이건 빌지가 두 줄 넘게 쌓였는데 바닥 좀 닦으라며 굳이 한 마디를 얹고 가지만 주휴수당은 매출이 잘 나오지 않아 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주지 않는 곳에 보내는 적신호다. 천천히 들어 올려진 두 손이 빠른 속도로 하강한다. 올라가고, 떨어지고, 다시 올라가고, 떨어지고. 아래에 있는 무언가를 노리는 듯 목적의식이 매우 뚜렷한 행동이다. 연수의 표정은 마스크와 모자 때문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어깨너비보다 좁은 폭의 물건을 든 것처럼 애매하게 사이가 벌어진 두 손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가게의 조명은 열두 시가 다 되어서야 꺼졌다. 어둑해진 매장 안을 멍하니 지켜보던 연수가 지친 걸음을 느리게 돌렸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문을 닫기 전까지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다. 무언가를 놓치진 않았나, 깜빡하고 빼먹은 업무가 있진 않았나, 여기 청소 한 번 더 하고 가는 게 나을까.

지금의 연수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이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다.

‘내가 실수로 잊어버린 일’이라는 건 굉장히 추상적이다. 체크리스트를 전부 채웠음에도 이걸 걱정한다는 건 결국 나의 부족함이 무엇인지에 대해 잔뜩 고민하는 것이다. 부족하다는 건 무엇인가? 어떤 기준에서 그렇게 판단할 수 있는 걸까? 내게 주어진 역할에 맞춰서 해야 할 일을 전부 처리했는데도 왜 부족하게 느껴지는 걸까? 왜 그렇게 느끼는 걸까? 일머리가 좋고 나쁘다는 걸 논하기 전에 일머리의 구체적인 개념은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이런 실체 없는 질문들은 버리고 직관적인 생각 하나만 간직하고 있었더니, 편두통을 달고 살던 머리가 비교적 깔끔해졌다. 집으로 가는 길, 오랜만에 시원한 밤공기를 한껏 들이켰다. 목금 미들 새로 구했어. 내일 오면 교육 좀 부탁해. 연수 네가 일을 제일 잘 하니까. 매번 고생시켜서 미안해, 내가 다음 달엔 더 잘 챙겨 줄게. 실행조차 기대되지 않는 공약의 향연. 선거 유세 기간에 돌입한 정치인도 이것보단 진실성 있는 약속을 해줄 것 같았다. 몇 달 넘게 똑같은 소리만 듣고 있으니 질리는 걸 넘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연수의 지금 상태는 뭐라고 축약할 수 있을까, 체념? 경멸?

아니다. 더 확실하고 노골적인 단어가 있다는 걸 연수는 너무 잘 알았다. 그걸 굳이 구체화해서 입 밖으로 꺼낼 필요는 없다.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올릴 필요도 없다. 어차피 마음속으로 알고 있으니까. 그거면 되었다. 때때로 어떤 진심은 표현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게 더욱 짙은 의미를 남긴다.

횡단보도 앞에 우두커니 선 연수가 멍하니 신호등을 응시했다. 어느 동네의 신호등은 빨간 불도 몇 초 남았는지 시간이 뜬다고 하던데, 여긴 언제 생기려나. 4차선 교차로는 절대 작은 크기의 도로라고 할 수 없는데. 지하철역 앞이라 유동 인구도 많고. 생기면 좋겠다. 하염없이 내 차례를 기다리는 건 사소한 일이라도 인간을 지치게 했다. 언제 초록불로 바뀔지 모르는 신호등을 기다리는 것부터 언제 올 지 모르는 내 인생의 봄날을 기다리는 것까지, 모두. 누군가는 끈기와 인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연수는 그 의견에 부정하지도, 반박하거나 긍정하지도 않았다. 그야 우리는 원래 두세 시간 웨이팅은 기다릴 수 있지만 기회나 희망 같은 가치를 망연자실하게 기다리는 미학은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니까. 명확한 끝이 보이는 것보다 언제 올 지 모르는 무형의 보상이 더 의미 있는 건가? 그것들이 안겨줄 대가는 얼마나 긍정적이길래. 즉각적인 보상 체계에 길든 세대가 배우지 못한 가치에 대해 깨닫는 건 어려운 일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신호등이 초록불을 띄웠다. 느릿한 걸음을 옮기면서 연수는 아직 남은 한 가지를 속으로 마저 기다렸다. 주휴수당은 언제 나올까.

2.

학기 중에 시작했던 아르바이트라 초반엔 일주일에 네 번만 나갔다. 하지만 근로계약서에 작성된 근무일만 4일이었고, 다양한 이유로 발생한 결근을 채워주기 위한 대타 근무까지 더하면 이미 주 5일 또는 6일이었다. 왜 그들은 출근할 수 없었던 걸까. 친구가 안 하겠다고 하기에 나도 하기 싫어서, 오늘 갑자기 몸이 안 좋아서, 사정이 생겨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어야 해서 등등. 어떨 때는 아무 말 없이 증발해 버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사장은 대타를 나와준 연수를 옆에 두고 온갖 뒷담화를 시작했다. 그날 나오지 못한 직원의 욕에서 시작된 얘기는 흥분으로 인해 급격히 차오른 격노를 타고 요즘 애들에 대한 부정적인 일반화로 흘러갔다. 연수는 그가 했던 분노에 찬 모든 말들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똑똑하게 흘려들은 건 아니고, 사장의 말보다는 그걸 들으면서 가졌던 의문이 더욱 진하게 남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싫어하는 어린 애들에 나 역시 포함될 텐데 왜 내 옆에서 저런 얘기를 할까. 나에게 원하는 반응은 어떤 걸까? 종강 이후 경력이 조금 쌓이고 나서야 저건 그냥 떠오르는 말을 눈치 보지 않고 내뱉을 수 있는 일종의 권위라는 걸 알아차렸다. 거기서 연수가 보여줘야 할 반응 같은 건 딱히 없다. 굳이 있다면 그냥 조용히 있는 것 정도일까. 사장이 연수에게 기대하는 건 실수 없이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지만 동시에 주휴수당 없이 최저 시급으로 계산한 월급만을 받아 가는 것, 그게 전부였다. 예전에는 일손이 없을 때 사장이라도 출근해 주길 원했는데 진심을 확실히 알고 난 이후로는 바빠 죽을 거 같아도 차라리 혼자 하고 싶었다. 몸은 당장이라도 쓰러질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마음 하나는 아주 조금, 더 편할 테니까.

나중에 주말 미들 대타를 나갔을 때 우연히 들었다. 사장님이 연수 님은 혼자 하는 거 좋아해서 새 알바 안 구한다고 하셨어요. 오픈과 미들, 그리고 주말까지 전부 두 명이 일하는데 평일 마감만 몇 개월째 혼자 하고 있는 이유를 그때 알았다. 너무 구해주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붙여줄 수 없다고 말하던 사장의 얼굴과 목소리가 순간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연수는 허망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 사람을 붙잡고 이 감정을 토로한다고 해서 나아지는 건 없으니 그냥 멋쩍은 미소만 지었다. 어차피 더 얘기를 나눌 수 있을 만큼 매장 상황이 여유롭지도 않았고.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퇴근할 때가 되어서야 아까 느꼈던 기분이 배신감이라는 걸 깨달았다.

피곤할 정도로 남을 욕하던 사장의 말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에게 배신감을 느낀 순간들은 오랫동안 연수의 기억 속에서 넓게 자리를 잡고 남아 있다. 첫 번째 배신, 면접 때와 사뭇 다르던 사장의 태도. 돈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고, 그것만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거라고 종종 말하고 다녔던 연수지만, 어쩔 수 없이 사람에게 감정적으로 상처받는 일이 가장 서럽게 느껴졌다. 어떻게 로봇도 아니고 매사에 논리와 이득만 따지며 감정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매장 오픈 준비로 인해 연수는 카페 아르바이트가 아예 처음이었음에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수습 기간에 대한 별도 안내는 없었기에 연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교육 두 번 만에 근무에 투입되었다. 마감은 해야 할 일이 생각보다 많았고, 연수가 돌리고 갔던 시뮬레이션보다 훨씬 더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인생 첫 카페 마감에 뒤따라온 건 당연히 오픈 알바생의 불만과 분노, 그리고 사장의 호통이었다.

초반에는 연수도 다른 사람과 함께 일했다. 그분은 한 달을 채우자마자 빠르게 여기서 탈출했다. 다시 생각해 보면 그게 참 똑똑한 선택인 거 같았다. 가볍게 용돈 벌려고 온 건데, 굳이 다 참아가면서 일할 필요 없죠. 그분과의 마지막 대화가 자꾸만 연수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가볍게 용돈 정도나 벌려고 온 건 아닌데. 공감은 되지 않았지만, 이해는 갔고, 열등감이 든 건 아니지만 부럽긴 했다. 아닌가? 부러움의 기저에는 결국 일정 수준의 열등감이 섞여 있는 걸까?

명확한 정답을 내릴 수 없는 궁금증만 남겨두고 떠나버린 전前 동료와의 첫 마감은 사장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렸다.하필이면 다음 날 출근한 사람은 연수 혼자였고, 그분은 다음 출근일까지 시간이 조금 있었다. 그러니 절정에 치달은 사장의 분노를 온전히 받아들여야 했던 쪽은 연수였다. 매장 안에서, 혹은 밖에서 자신이 주문한 음료를 기다리던 손님들이 전부 본인의 휴대전화에서 시선을 떼고 카운터 안을 쳐다볼 만큼 사장은 큰 소리로 연수를 나무랐다. 얼마나 혼났더라, 적어도 한 시간은 귀가 아팠던 거 같은데. 엉망이었다는 어제의 마감을 시작으로 사소한 잡일까지 꼬투리가 잡혔다. 영수증 종이를 갈아 끼우는 법을 알지 못한 것, 총 세 대 있는 키오스크별 포스 번호를 외우지 못한 것에 사장은 변명의 여지도 주지 않겠다는 듯 배우려고 해야 하지 않느냐며 고함을 질렀다. 손님 하나가 인상을 찌푸리다가 이내 두 사람을, 정확히는 연수를 외면했다.

아무리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옆에 감시자가 붙어 있을 땐 얘기가 달라진다. 주변의 시선 하나 상관하지 않고 꿋꿋하게 본인 일을 완벽히 수행할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연수는 정체 모를 그가 무척 부러울 것이다. 사장이 지켜보는 사이 음료 실수가 간간이 벌어졌고, 이는 모두 연수의 급여에서 차감되었다. 차감된 돈만 모아도 일주일 치 주휴수당이 나올 것 같았다. 실수로 인해 발생한 손해를 알바생의 급여에서 차감하는 게 명백한 불법이라는 건 연수도 알았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조치는 아무것도 없었다. 사장을 노동청에 고발해야 하나? 할 수는 있겠지, 그러면 연수는 일자리를 잃어버린다. 동네에는 사장 고발한 알바생이라고 싹 다 소문이 나 어느 곳에서도 그를 뽑아주지 않을 게 분명했다. 있을 게 분명한 자영업자 간 커뮤니티를 상상하며 입술만 꽈악 깨물었다. 연신 죄송합니다, 잘하겠습니다, 말을 반복하면서.

그리고 두 번째 배신, 사장 쪽에서 먼저 주겠다고 제안했던 주휴수당이 근무를 시작하니 갑자기 나올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그는 생각보다 2호점 매출 상황이 좋지 않아 6월까지는 주휴수당을 챙겨주기 어렵다며 7월부터 일한 수당은 꼭 챙겨주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연수는 그 말에 신뢰가 가지 않았다. 그때 가면 또 새로운 변명이 피어날 것 같았다. 그러나 여기서 못 믿겠다고 대꾸하면 뭐가 나아질까? 그래서 그냥 알겠다고 했다. 기분 상하게 안 하면 7월부터는 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바쁜 여름을 지나 어느덧 가을의 끝자락과 겨울 시즌 메뉴가 올 때까지도 주휴수당은 연수에게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 얘기를 들어 보면 주휴수당이라는 건 굉장히 희귀한 존재라서 꼬박꼬박 받아본 애를 찾는 게 더 어려웠다. 일부러 14시간, 14시간 30분씩 맞추는 것도 포괄적으로 보았을 땐 주휴수당을 안 주는 것과 같으니, 그런 사례까지 합치면 정말 주휴수당을 받으며 일하는 알바생이라는 게 있을까? 싶었다. ‘만약 주휴수당을 주겠다고 먼저 말하는 사장이 있다면, 그 매장은 존나 바쁜 거야.’ 조언 비스름했던 친구의 한마디. 연수는 처음엔 의아했고, 지금은 크게 공감한다. 바쁜 매장에서 굴리는 주제에 주휴수당까지 안 주는 걸 보니 두 배로 괘씸하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일하고 있는 가게의 매출이 잘 나오지 않아 내 수당을 챙겨주기 어렵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알바생이 가져야 할 올바른 마인드라 함은 무엇인가. 내 가게처럼 생각하고 주인 의식을 가지며 일하는 게 예의 바른 것이니 사장과 함께 가슴 아파하며 기꺼이 수당을 포기하겠노라 선언해야 할까? 아니면 난 어차피 정식으로 채용된 직원도 아닌 만큼 사정과는 별개로 받을 건 제대로 받고 싶다고 주장해야 할까? 연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느 쪽이 정답인지 아직도 모르기 때문이다.

요구하지 않는 자에게 권리는 찾아오지 않는다. 이 말 자체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권리는 당연하게 주어져 있는 것 아닌가, 근데 왜 요구하지 않으면 다들 있는 줄 몰랐다고 할까? 오히려 제대로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피해 가려고 머리를 굴리는 거면서.

마지막으로 세 번째 배신, 여기서는 사장뿐만이 아니라 매장 내 구성원 대부분에게 느꼈던 감정에 관해 얘기해야 한다. 이제 막 3개월, 그러니까 혼자서 마감 근무를 한 지 2개월이 되었을 무렵, 사실 연수는 그때 한 번 잘릴 뻔했다. 원인을 설명하자면 말이 길어지니, 연수 본인과 주변인들은 이를 설명할 때 간편하게 ‘텃세’라는 한 단어로 요약했다. 연수 네가 몰라서 그렇지 오픈이랑 미들끼리 되게 친해. 미들 걔네는 20분 전부터 출근해서 오픈 애들 비위 맞춘다? 걔네끼리 담합해서 너 내보내라고 그러는 거야, 지금. 사장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그의 말을 전화로 들어주느라 창고에 20분 동안 틀어박혀 있었던 것도, 그러느라 주문이 잔뜩 밀려서 손님들의 불만과 반품 러쉬를 쳐내야 했던 것도 여러모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중에 사장과 얼굴을 맞대고 전해 들었던 얘기는 더 직설적이었다. 이 일을 쉽게 생각하는 거 같아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들이 생각했을 때 충분히 불량한 태도로 일을 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연수만 모르는 일화가 하나 더 있던 건지 모르겠다. 모종의 이유로 연수가 사장에게 피해를 주고 있으니 잘라야 한다고 얘기를 했다며 사장은 피로감을 토로했다. 그는 연수의 앞에선 절대 널 자를 생각이 없으며 네가 좋고, 그만두지 않은 채 마감 메인이 되었으면 하니까 그냥 마감만 잘 해두고 가라며 최대한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신경 쓰듯이 말했다. 연수는 한 번 더 사장을 믿기로 했다. 알고 보니 사장은 다른 타임 알바생에게 연수가 언니들 기분에 거슬리게 말했다며 사회생활을 못 한다고, 언니들이 걔 자르라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어봤다고 했다. 대타 근무 때문에 몇 번 연수를 만나 친분을 쌓은 적 있던 그 알바생은 다행히도 연수를 두둔해 주긴 했지만, 그런 걸로 모든 상황이 나아지진 않는다.

우연히 들었던 진실을 차라리 평생 몰랐다면 좋았을까. 연수는 아직도 진실에 관해 물어본 순간을 후회한다. 어림짐작하던 게 맞다고 인정받는 건 마냥 속 시원하고 기쁜 일이 아니었다.

몇 번 마주쳤을 땐 화목하게 인사하던 사람들이 뒤에서는 제 욕을 신랄하게 하고 있었다는 건 연수에게 무척 큰 상처로 다가왔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타격이라고는 조금도 받지 않은 척했다. 여기서 그만두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니 절대 그만두지 않겠다며, 그 사람들보다 오래 일할 것이라는 포부도 당당하게 펼쳤다. 교대할 때마다 얼굴을 보는데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연수에게 인사하고, 밝은 목소리로 말을 걸고 그럴 때마다 연수도 괜히 센 척했다. 걔네 내 눈도 못 마주치던데? 뭐가 무서운 언니들이라는 건지 모르겠어. 하나도 신경 안 쓰여. 정말로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은 관심 없는 주제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는 건 그도 알고 있다. 사실 엄청나게 신경이 쓰이기 때문에 자신을 세뇌하는 것처럼 괜찮다고 조금도 거슬리지 않는다는 말만 반복했다. 행여나 마감 때 작은 실수라도 발생하면 바로 먹잇감이 되어 물어뜯길까 봐 연수는 수당 하나 나오지 않는 연장 근무를 30분씩, 어떨 때는 그 이상으로 해야 했다. 매출이 적다는 이유로 라스트 오더 시간 따위는 정해지지 않았기에 마감 30초 전에 손님이 주문하면 모든 걸 중단하고 그 음료를 만들어야 했다. 사장은 연수가 늦게 퇴근하는 일 따위에 관심도, 걱정도 없었으니 라스트 오더를 정할까 말까 따위의 고민조차 하지 않았고, 연수는 그에게 아무 건의도 하지 못했다.

카운터를 제외한 매장 내 모든 조명이 꺼졌다. 포스기를 마감했으니 흘러나오던 흥겨운 노래들도 전부 사라져 정적과 물소리만이 남은 곳에서 끝도 없는 설거지를 할 때, 연수는 왈칵 눈물이 나올 뻔한 걸 간신히 참았다. 사장은 아닌 척CCTV로 알바생을 자주 감시했다. 여담인데, 오픈 사람들이 과연 연수가 마감 일을 제대로 하고 가는 건지 모르겠으니까, CCTV를 확인해달라고 했을 때 사장은 자긴 그런 거 보는 성격이 아니라고 했단다. 연수는 하마터면 그의 앞에서 코웃음을 칠 뻔했다. 아무튼 그렇게 뻔뻔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하고 있는 거였다, 연수는. 이걸 평범하게 ‘근무 중이다’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 연수는 본인의 처지를 정정했다. 그는 버티고 있는 거였다. 나갈 수 없으니, 당장 관두면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는 건 결국 연수밖에 없을 테니 눈물과 함께 서러운 분노를 꾹꾹 눌러 참는 거였다. 이건 카페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괴롭힘을 당해주는 행위에 가까웠다.

그 사람들이 심심하면 툭툭 건드릴 수 있는 샌드백이 된 거 같아.

다른 사람의 질문에는 밝고 유하게 대답하다가도 질문자가 연수가 되는 순간 다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조용해지는 단체 메시지방, 아무리 급하고 중요한 내용이어도 반응 하나 돌아오지 않으며 대타 근무는 당연히 구할 수 없으니, 연수는 제 모든 일상을 이 카페에 빼앗겨야 했다. 관두게 되는 순간 모든 걸 폭로하고 다닐 테다. 아예 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올릴까 봐. 사람들은 누군가를 욕하는 행위에 쉽게 중독되니까 아마 꽤 인기를 끌 수 있겠지.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미래의 어느 순간들만 상상하면서 연수는 6개월 차가 될 때까지 기본 30분 이상의 연장 근무를 마치고 나서야 퇴근할 수 있었다. 억울하다는 감상조차 흐려질 만큼 괴롭힘에 익숙해진 본인을 자각할 때마다 이유 모를 자괴감이 밀려왔다. 바보처럼 당하고만 사는 한심한 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누구도 이 상황에서 연수의 잘못이라고 탓하진 않겠지만, 정말 모두가 그럴까? 단 일 퍼센티지의 가능성이 연수를 서글프게 했다. 왜 저렇게 미련하지, 그러게 왜 미리 좋은 직장을 구하지 못했지, 그러게 왜 다른 알바생한테 찍혔을까, 멍청하게. 그냥 조용히 묻어가면 평화롭게 일할 수 있을 텐데. 매장 밖을 벗어난 이후에도 ‘너의 잘못도 있다’라는 식의 평가를 듣게 될까 봐 두려웠다.

오픈과 미들 타임 사람들은 대부분 서른 살이 넘었고, 사장과 5년 넘게 일한 알바생을 포함해 전원이 카페 쪽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연수 너는 처음이라 잘 모르겠지만 원래 이쪽 업계가 좀 그래. 그러니까 네가 조심하고 신경 써. 마감만 열심히 해놓고 가. 사장은 연수를 달래서 그가 관두지 않게 하고 싶었고, 연수는 그 말 때문에 더욱 도망가고 싶었다. 내가 뭘 더 해야 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르겠는데.

언니들 기분에 거슬리게 말하는 건 어떤 걸까? 누구 하나 제대로 연수에게 지적한 사람이 없었다. 시간이 3개월은 더 지난 현재까지도 연수는 본인의 어떤 언행이 문제가 되었던 건지 알지 못했다. 다 터져서 손 쓸 수도 없는 원두 찌꺼기 봉지를 시간 될 때 한 번만 비워달라고 한 게 싫었을까, 두세 번이고 닦았던 홀을 마감 때 청소하고 퇴근하라는 말에 참았던 화가 터져 안 한 적 없다고 대꾸했던 게 싫었을까. 아마 여러 가지, 연수가 기억하는 상황을 넘어 그러지 못하는 상황까지 전부 합쳐져 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사이에서 형성되었을 것이다. 우울한 사람으로 비치는 게 싫어 다른 사람들 앞에선 밝은 아이인 척 굴었던 게 오히려 독이었을까?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은 해맑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내가 오히려 이 집단을 경직되게 만들어버린 걸까? 그동안은 한 번도 이런 문제가 일어난 적이 없었는데 왜 하필 지금 생겼을까. 혹시 내가 지나쳐 온 모든 사람도 날 싫어했는데 그저 내 태도를 지적하지 않고 외면했던 걸까?

알바생이 많은 매장일수록 텃세가 심하다는 이야기는 은근히 유명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문제를 겪으며 최저 시급을 받았다. 다들 어떻게 견디고 회복하며 살아갈 수 있는 건지. 누군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당장 여기서 나가라는 악의 담긴 평가를 듣고 어떻게 멀쩡할 수 있는 걸까. 연수는 본인이 너무 나약한 건 아닌지 의심스러워졌다.

하지만 타인의 미움을 이토록 선명하게,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데, 어쩌면 좋지? 매장을 떠도는 공기에도 감시자들의 눈이 달린 것 같은데. 발을 들이는 순간 나는 여기서 누구에게도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라는 비관과 트집 잡힐 꼬투리를 조금도 만들어선 안 된다는 압박이 날 짓누르는데.

영업 마감 시간으로부터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가게 문을 닫은 연수는 합리적인 모든 이유를 다 끌어와 머릿속으로 정리를 마쳤다. 내일 내가 저지를 모든 일은 도의적으로 옳은 건 아니지만 ‘그럴 만했다’라는 가벼운 동정이라도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며 혼자만의 위로도 끝냈다.

3.

쌓인 얘기를 한순간에 전부 쏟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논리 정연하게 말할 정신도 없었고, 성격 급한 사장이 그걸 친절하게 들어주고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타고나길 소심해서 불만 사항을 곧이곧대로 얘기하지 못하는 성격의 연수가 직접적인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리도 없고. 글로 쓴다면 몇 페이지는 족히 나올 법한 이야기들을 꾹 삼키고 나서야 간신히 한 마디를 내뱉을 수 있었다. 그것마저도 안쓰러울 만큼 떨리는 목소리를 타고 흘러나왔다.

“그러게, 주휴라도 챙겨주지….”

어차피 그의 말은 사장에게 닿지 못했다.

오십 리터짜리 종량제 봉투 위에 쓰러진 사장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매장 상황과는 대비되게 혼자 여유롭게 앉아 있던 평소 모습과 별다를 건 없다고, 연수는 생각했다.

4.

토요일 마감에 또 구멍이 생겼다. 요즘 애들은 툭하면 관둬버리고, 도망가고…. 이래서 어린 애들 데리고 일하는 건 피곤해. 미간을 좁힌 채 짜증스러운 생각을 하며 도어락을 잠갔다. 두어 번 흔들어 문이 제대로 잠긴 걸 확인한 사장은 그대로 뒤돌아 귀가하려던 참이었다. 둔탁한 물건이 뒤통수를 세게 후려쳤다. 놀란 사장이 손을 들어 제 머리를 감싸기도 전에 한 대를 더 얻어맞았다. 당황한 그는 넘어진 몸을 추스를 새도 없이 옷깃을 붙잡힌 채 질질 끌려갔다. 잡아 당겨진 옷 때문에 목이 눌려 저절로 숨이 막혔다. 모양 빠지게 발버둥을 치던 사장은 얼마 안 가 푹신하고 커다란 봉투 위에 엎어졌다. 하얀색 종량제 봉투가 사장에게 짓눌려 아무렇게나 구겨졌다. 마치 6개월 동안 마구잡이로 흐트러진 연수의 정신처럼.

쓰레기장으로 사장을 끌고 온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연수에게 알려준 건 쓰레기장의 위치, 그거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두 사람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교육의 기억을 마지막으로 되새기기 위해서였다. 사장은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비명부터 내질렀다. 연수의 손에 들린 건, 아마도 그의 뒤통수를 후려치던 것과 같은 물건으로 추정되는 그건, 매장에서 쓰던 블렌더였다.

연수는 아무런 표정 하나 없이 반복적인 행위만 이어 갔다.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건 빨리 일을 처리하고 집에 가고 싶다는 바람과 피로뿐이었다.

연수는 사장을 이루고 있는 모든 요소 중에서 눈이 가장 끔찍했다. CCTV처럼 옆에서 날 지켜보던 눈이다. 긴장감에 스무디를 컵에 담는 내내 떨리는 손을 보다가 몰래 비웃던 눈, 실물이 남아 있지 않은 영수증을 확인하기 위해 한참 포스기를 만지던 날 한심하게 쳐다보던 눈, 내 편인 척 억울한 감정에 푹 빠져 있던 나를 응시하던 눈, 100시간이 넘게 찍힌 월 근무표와 주휴수당 없이 계산된 월급을 훑어보던 무심한 눈, 다른 알바생에게 내 뒷담화를 하며 찡그렸을 눈, 오픈과 미들 타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귀찮다는 듯 감아버렸을 눈, 내가 뒤돌아 나간 순간 두르고 있던 연기는 싹 걷어내고 딱딱하게 굳어 버렸을 눈.

빛 하나 들어오지 않을 것처럼 새까맣게 물들어 있는 그 눈동자. 거기에 비친 내 모습은 너무나도 초라하고, 인정하기 싫을 만큼 비굴해서,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모든 부조리를 참으며 입 밖으로 한 마디도 꺼내지 못하는 스스로가 미워졌다. 분노의 화살이 엉뚱한 곳으로 향하는 걸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블렌더의 무게는 가벼운 편이지만, 모서리 부분으로 계속해서 한 부위만 내려찍으면 당연히 손상을 입히게 된다. 하얀 종량제 봉투 위에 붉은 얼룩이 졌다. 사장의 감시하에 벌벌 떨면서 움직이다 흘려버린 딸기 소스처럼 새빨간 색이었다. 한참을 움직이던 연수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동작을 멈추었다. 그의 가슴팍이 빠른 박자로 들썩거렸다. 몇 번 반항하던 사장은 이제 얌전히 있다. 평소에도 이렇게 조용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기 사람들의 문제는 다들 말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사장은 더 이상 연수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다. 이대로 두고 가면 어떻게 될까? 목숨에는 지장이 없어서 무사히 응급실로 실려 간 다음, 날 고소할까? 아니면 질질 흐르던 딸기소스처럼 왈칵 쏟아져 나오는 피가 결국 과다 출혈로 인한 사망을 불러올까? 어느 쪽이든 연수는 크게 상관없었다. 그나마 두려운 건 딱 한 가지, 다시 사장의 얼굴을 마주 보게 된다면, 왜 이런 짓을 벌인 건지 아주 열심히 설명해야 한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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