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는 여자들의 평생 숙제? 왜?
날이 갈수록 미디어가 우리네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있다. 2022년은 그야말로 ‘걸그룹 전성시대’, 어리고 예쁘고 마른 여자 아이들을 휴대폰 잠금 한 번만 풀면 아침에 눈 뜬 순간부터 잠들기 전까지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카메라 렌즈는 사람을 실제보다 두 배는 더 뚱뚱하게 만든다고 하던데, 정작 비춰지는 그들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가느다란 팔다리로 춤을 추고, 상의 아래로 보이는 배에는 복근까지 선명하다. 여자 아이돌이 몇 년째 젊은 여성들에게 선망의 대상으로 자리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예쁜 얼굴, 마른 몸매, 귀엽고 착한 성격. 그들은 사회가 여성들에게 요구하는 ‘최고의 여자가 되는 법’과 아주 부합하는 매력들로 둘러싸여 있다.
'여자에게 외모는 전부가 아니다', '아름답지 않아도 된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가지고 있을 외모 강박을 버려도 괜찮다는 의견은 굉장히 많다. 외면의 아름다움에 매몰되면 내면을 볼 수 없게 된다는 등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한 논의도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여성들은 여전히 아름다워지고 싶어 한다. 저 영상에 나오는 여자 연예인처럼 165cm에 47kg라는 일종의 ‘스펙’을 갖고 싶어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가 번져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대한민국에는 ‘다이어트 열풍’이 불었다. 외모 관리를 방해하는 밥 약속, 술 약속 등이 사라지니 이 기회에 살을 많이 빼서 규제가 풀린 날, 완전히 변한 나를 보여주겠다는 로망에 휩싸였다.
요즘 사회가 주목하는 건 무엇일까. 이걸 알기 위해서는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쉽게 배우고, 요약할 수 있다. 그만큼 유튜브의 영상 세계는 광활하다.
그중에서도 ‘다이어트 꿀팁’, ‘단기간에 몇 킬로 감량’과 같이 내 몸을 바꾸는 일에 초점을 둔 영상들은 특히 여성을 대상으로 높은 수요를 가지고 있다. 누구나 우러러볼 외모와 감성 있는 일상, 2주 만에 10kg라는 어마무시한 감량 효과와 함께 마른 몸을 자랑하는 또래의 여성들. 그리고 그들을 동경하며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심리에 휘둘리는 또 다른 여성들.
‘지금 내 몸은 저 비포 사진과 똑같지만 영상에 나온 대로 아침에는 사과 한 개와 삶은 계란 두 개, 점심은 닭가슴살 샐러드, 저녁은 간헐적 단식 시간을 지켜야 하니 먹지 않고 출근 전 공복 유산소 30분, 퇴근 후 근력 운동 1시간만 한다면 나도 마른 몸매를 가질 수 있을 거야.’ 주 5일 출근 또는 등교에 9 to 6 근무와 8 to10 학교가 일상인 한국인에게 저 식단과 운동 스케줄로 과연 며칠 동안 생존이 가능할까.
이를 악 물고 한 달 이상 해내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그들은 피팅 모델, 아이돌 연습생 또는 지망생, 인스타그램 패션 인플루언서 등 적어도 자신의 몸을 가꾼 덕분에 어느 수준 이상 수익을 버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패션업계와는 전혀 상관이 없고, 모델이나 연예인을 할 생각도 없는, 그저 출근길 2호선에 바삐 몸을 실어야만 하는 현대인에게 극단적으로 열량을 낮춘 식단과 러닝머신 위에서 근육통과 함께 쓰러질 것 같은 운동 루틴은 무슨 이득을 물어다 주는 걸까?
왜 이들은 다이어트에 집착하고 마른 몸매를 간절히 원할까? 명지대학교 김경보 교수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신비로움을 강조하는 연예인들뿐만 아니라 SNS 상에서 친근하게 다가오는 인플루언서가 또 다른 동경의 대상으로 자리하며 이어진 결과라고 바라본다. 나와는 다른 세계에서 태어나 사는 것 같은 연예인의 존재는 비현실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새는 여자 아이돌의 마른 몸매가 중심이 되는 유튜브 영상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들은 연예인이고, 마른 몸을 유지하는 게 돈이 되며, 직업이다. 이걸 보는 우리는 연예인도 아니고 저들처럼 마를 필요도 없으니 특히 어린 친구들은 이 영상을 보며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마라.’ 같은 댓글을 달기도 한다. 연예인을 동경하며 발생하는 어린 여성들의 식이장애, 외모 강박의 심각성이 꾸준히 언급된 결과이며 아주 긍정적인 변화다.
실제로 나도 작년 겨울, 영화 박화영을 보고 좋아했던 배우 이유미가 나랑 162cm로 키는 똑같은데 몸무게는 42kg라는 걸 주워듣고 다이어트 자극을 받았던 적이 있다. 그는 스크린에 나오는 사람이고, 배역을 위해 몸무게를 확 줄였거나 타고나게 마른 체질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미 63kg에서 55kg까지 감량한 상태에서 또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비현실적인 걸 동경하기 시작하면 남는 건 고통뿐이라는 걸 처절하게 배웠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사회의 인식이 점차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목격했을 때 굉장히 기뻤다.
하지만 ‘연예인’이 아닌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은 어떨까. 그들도 비현실적인가? SNS 인플루언서들의 직업은 우리와 다를 바가 없다. 회사원, 공무원, 프리랜서, 학생, 자영업자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다른 점이라면 연예인 못지않게 뛰어난 얼굴과 길고 마르고 탄탄한 몸매. 인플루언서들이 유튜브 및 SNS 상에서 연예인과 비슷한 수준의 인기를 누리는 현상이 지속되면서 선망의 대상을 찾는 눈길이 하나둘씩 다가가기 시작했다.
‘나도 저 사람도 같은 회사원인데 어떻게 아침 운동을 할 수 있지?’, ‘어떻게 매번 클린식으로 도시락을 싸서 다니지?’, ‘나도 저렇게 하면 저 사람처럼 될 수 있을까?’ 호기심의 끝은 데자뷔처럼 닮고 싶다는 욕망이다. 내가 지금껏 살아왔던 일상을 게으르고 무기력하고 살 찌우는 루틴이라고 부정하며 나와는 다른 몸, 다른 식성,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누군가의 단편적인 일상 한 페이지를 닮아야겠다 판단 내리는 건 계속해서 경계해야 한다, 나 스스로가.
그 외에도 꾸준히 언급되어 온 ‘사회적 미의 기준’에 맞추고 싶기 때문이다. 첫눈에 상대방의 호감을 살 수 있는 겉모습은 단순히 여성들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연애 시장뿐만 아니라 면접을 볼 때에도 슬프지만 못생긴 사람보다는 예쁘고 잘생긴 사람이 호감 점수를 따내기 쉬운 현실이니까.
그러나 강박적으로 외모 관리에 집착하는 사례를 여성들 속에서 더 자주 볼 수 있는 건 당연하게도 여성 인권과 연결되어 있다. 여성은 그저 보기 좋은 예쁜 생물체로 살다가 그 외모를 보고 자신을 선택하는 남자와 결혼해 그는 경제를, 여성은 가사를 책임지며 살아가는 풍토가 한국에선 사라진 지 얼마 안 되었다. 스튜어디스 같은 여초 서비스 직업군은 여전히 얼굴만 예쁜 여자들이 시집을 잘 가기 위해 대충 시작하는 직업이라는 비하적인 편견도 남아 있을 지경이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은 시기질투도 겪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호감이 담긴 관심을 받을 확률이 높다. 인간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 하고, 무리에서 잘 어울리며 화제의 중심이 되고 싶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외모에 대한 욕망도 클 수밖에 없다. 외모 가꾸기도 사회생활의 일종이라는 세상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건 바로, ‘왜 여성들은 식이장애까지 겪을 만큼 외모에 집중해야 할까?’이다.
다이어트는 최고의 성형이라는 말이 있다. 살찐 사람은 긁지 않은 복권이라며 다이어트를 하면 정말 예뻐질 것이라고 종용한다. 살쪄도 이쁜 이목구비라며 미묘하게 그 사람이 살쪘다는 걸 강조한다. 살, 살, 살. 건강을 해칠 만큼 비만이라면 다이어트가 필요하겠지만 정상 체중을 지닌 여성들도 다이어트에 시달린다. 극단적인 체중 감량 시도가 오히려 건강을 망칠 텐데도. 다이어트는 여자들의 평생 숙제라며 우스갯소리로 말하지만, 정말 누군가는 앞으로 평생 정상적인 식사는 하지 못할 것 같다며 눈물을 흘린다.
세상에 출시된 맛있는 음식의 종류는 많고 날이 갈수록 퀄리티도 높아지는 중이지만, 꾸역꾸역 참아내며 주먹을 쥔다. 그것들은 모두 탄수화물과 지방과 당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그리고 새벽에 집안에 있는 모든 걸 뒤집어 꺼낸다. 라면, 빵, 과자, 음료수 등등 입에 넣고 씹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다음 날 아침 음식 무게라는 걸 인지하고 있음에도 늘어난 체중계의 숫자를 보면 한없이 우울해진다. 그러고는 자책한다.
‘왜 식욕 하나 참지 못하고 그랬을까.’, ‘세상에 내 몸만큼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어디 있다고 그거 하나 못 할까.’ 분명 먹고 싶은 걸 참았다가 무리해서 터져 버린 결과인데도, 우리 몸은 생각과는 달리 마음대로 휙휙 변하지 않는데도 자괴감에 고개를 숙인다.
평균적으로 한 달에 한 번 월경을 겪는 여성들은 호르몬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월경이 다가오면 갑자기 단 게 땡기고, 식욕이 증가하고, 몸이 붓기 시작한다.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들에게 월경이란 그야말로 지옥 같은 시간이다. 열심히 먹는 걸 참아가며 운동도 꾸준히 하는데 월경 이 자식 때문에 내 아랫배와 허벅지는 괜히 더 뚱뚱해 보인다.
식욕도 평소보다 참기 힘들며 월경 중에는 관절이 약해져 있기 때문에 운동도 함부로 해선 안 된다. 모르겠다며 내던지고 음식을 먹고 나면 후회의 굴레로 빠진다. 그거만 안 먹었으면 됐는데, 그거 한 번 참았으면 됐는데. 생각의 고리는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다시 음식을 참고, 외면하고, 완전히 잊지 못하고 찾아가고, 그 행위를 후회하며 다시 고개를 돌리고, 또 찾아간다. 마치 미련이 남은 전 애인처럼.
그리움을 떨쳐내지 못하고 찾아갔을 때는, 더 이상 이전처럼 ‘정상적으로’ 음식을 섭취할 수 없게 된다. 이게 이렇게 맛있었나, 아니면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별로네, 반응은 둘 중 하나다. 그러나 공통점이 있다. 내게 주어진 한도보다 더 많이, 최대한으로 음식을 저장해두려 하는 것. 그렇게 터질 것 같은 배를 부여잡고 되돌아보면 밀려드는 건 자책의 감정. 이게 반복될 경우 식이장애 즉, ‘폭식증’이 된다.
또 다른 심각한 경우는 다이어트로 인해 월경을 하지 않는 경우이다. 하루에 500칼로리 이상 먹지 않으며 최소한의 먹는 거라곤 전부 방울토마토, 곤약젤리 등 필수 섭취 영양소를 채우지 못하는 것들, 그것도 아니면 생수 2리터를 병째 들고 틈틈이 마셔준다. 물론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체중계의 숫자는 내려가지만 월경은 뒤로 밀리고 머리카락은 생기를 잃고 푸석푸석해져 한 번 빗을 때마다 우수수 빠진다.
그래도 체중계의 숫자는 계속해서 내려간다. 그들은 자신이 행복하다고, 성공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어느 순간부터 몸무게가 변하지 않는다. 정체기가 찾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최소한의 섭취도 마다하고 말 그대로 쫄쫄 굶는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면 몸이 견뎌내지 못하고 다시 체중을 떨어뜨린다.
정체기를 극복해 낸 자신이 대견하고 행복하다고 믿는다. 갈수록 음식을 멀리한다. 말라가는 내가 만족스럽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그들은 ‘거식증’에 잠식되어 간다.
식이장애가 심각한 문제인 이유는 내가 글에서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 수 있다. 몸에 영양분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발생하는 질병, 우울증과 강박증 및 불안장애 등의 정신 질환, 가족이나 친구 등 사회적 관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등. 이에 맞는 극복 방법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직관적 식사, 정신과 상담과 같은 해결책, 그리고 같은 고통을 느꼈던 여성들의 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이장애는 탈출하기가 왜 이렇게 힘든 건지.
다이어트를 주제로 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작년 이맘때, 2022년의 시작을 알리는 겨울부터 벚꽃이 예쁘게 핀 봄까지 나를 괴롭혔던 거식증, 폭식증, 강박증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감량을 시작했을 때의 목표는 42kg였다. 52kg까지 생각보다 쉽게 달성했을 때, 안 그래도 낮았던 목표가 38kg로 내려갔다. 162cm에 38kg는 건강에 치명적인 저체중인데도 나는 그걸 원했다.
몸에 지방이라고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마른 몸이 되고 싶었다. 거울 속에 있는 내가 너무 뚱뚱해 보였고, 허벅지를 감싼 살집 때문에 둔해 보였고, 내가 입고 싶은 옷들을 걸쳐도 예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자꾸만 밥을 거부하고 채소나 요거트만 소량 주워 먹는 나를 굉장히 걱정하셨다. 속상한 마음에 밥 먹자고 나를 설득하려 들면 한순간 짜증이 팍 올라오는 기분을 느꼈다.
‘내가 뚱뚱한 게 싫어서 이렇게 고생하며 살을 빼는데 왜 그걸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방해하려는 걸까?’ 걱정을 ‘방해’로 취급하며 언짢아했고 주변의 말에 귀를 닫았다. 내 방식이 맞다고 생각했으니까. 근거는 빠르게 떨어지는 체중계의 숫자뿐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특정 음식이 엄청나게 먹고 싶다거나 충동적으로 무언가를 입에 욱여넣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철저하게 식사를 거부하고 출근해서는 점심으로 삶은 계란 두 개나 단백질바 한 개를 까먹으며 오후를 버텼고, 집에 와서는 단백질 쉐이크를 한 잔 마시거나 그마저도 마시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끼리 간만의 외식이라며 수육에 막국수를 먹으러 나갔을 때 내게도 폭식증의 조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 그릇을 다 먹지 않아도 괜찮았을 텐데 오랜만에 들어가는 양념된 음식이 너무 맛있었고, 오랜만에 잘 먹는 손녀에게 한 점이라도 더 주고 싶으셨던 건지 수육은 거의 다 내 차지였다. 그 시절 이주일 동안 먹었던 식사의 양보다 그 순간 먹었던 막국수와 수육의 양이 더 많았을 것이다. 빵빵하게 부른 배를 끌어안고 집에 돌아가는데 굉장히 불쾌했다. 이렇게 배가 부르면 안 되는데, 그럼 내일 몸무게가 늘어나 있을 거고 나는 38kg가 될 수 없을 텐데, 이런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그런데 아뿔싸, 집에 오니 삼촌이 날 주려고 사 왔다며 과자를 한 봉지 내미신다. 먹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생각해서 사 온 건데 속상하다고 하시는 반응을 보니 거절할 수 없었다. 결국 몇 입만 먹자는 다짐으로 봉지를 뜯었다. 과자의 양은 봉지 절반을 겨우 채울까 말까 할 만큼 적어서, 순식간에 한 봉지를 전부 먹어치웠고, 텅 빈 봉지를 손에 쥔 채 방 안에서 엉엉 울었다.
이거까지 먹으면 안 됐는데, 이제 어떡하지, 생각하다 머릿속에 어제 본 폭식증 유튜버의 영상이 스쳐갔다. 나는 곧장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 앞에 앉았다. 먹은 걸 전부 게워낼 생각이었으나 실행하진 않았다. 그 정도로 나 자신이 망가졌다는 걸 인정하기 싫었다. 침샘이 붓는 것도 싫었고, 치아랑 위장이 상하는 것도 싫었으며 무엇보다 토하고 난 뒤 몸무게가 증가하지 않은 걸 보면 이 행위를 반복하게 될 것만 같다는 짐작이 들었다.
결국 먹토는 하지 않고 운동을 하며 나는 스스로를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정상인이라면 밥 먹고 간식 좀 먹었다고 게워낼 생각은 하지도 않는데 그건 간과한 채 나는 남들과 달리 망가지지 않고 무너지지도 않고 계획대로 살을 잘 빼고 있는 것이라 믿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을 입안에서 씹다가 가족들 몰래 변기에 뱉어버리는 먹뱉을 반복하면서도 나는 토하지 않았으니 괜찮다고 믿었다.
시험기간에 아침 일찍 도서관으로 나가는 – 사실 집에 있으면 자꾸 밥을 주니까 먹지 않으려고 나간 건데도 – 손녀를 위해 할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을 살찔까 봐 몰래 버리고 죄책감에 울면서도 살이 빠지니 좋았다. 그러다 내게도 정체기가 찾아왔을 땐, 사람이 답답해서 속이 터져버릴 거 같다는 화병이 어떤 건지 처음으로 느꼈다. 52 아래로는 죽어도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는 숫자에게 원망을 퍼부으며 울었다.
살가죽 위 갈비뼈는 갈수록 선명해지는데 근육이 없어 늘어진 뱃살이 너무 싫어 그 부위만 뜯어내고 싶었다. 다이어트 보조제는 바보들이나 사는 거라며 비웃던 과거의 나는 어디로 가고, 식욕억제 및 체지방 연소 효과가 뛰어나다는 약을 해외직구로 구입했다. 한 알이 무척 커다란 약이라 삼키려면 750ml의 물을 다 마셔야 한다. 약을 먹지 않아도 식전에 그만큼 물을 마시면 누구든지 밥을 두 숟갈밖에 못 먹는다. 그러나 나는 약이 효과가 뛰어난 거 같다며 하루에 6알씩 욱여넣었고 약에 들어 있는 대량의 카페인 때문에 새벽 4시가 넘어서까지 잠에 들지 못하면서도 복용을 끊지 않았다.
4월에 2박 3일로 서울 여행을 갔을 때는 기어이 먹토를 하고 말았다. 여행이니 먹어도 된다는 사고가 머리를 지배하면서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식욕 이상으로 음식을 구매했다. 간식까지 전부 먹고 나니 그제야 두려웠다. 힘들게 뺀 살이 도로 찔 것만 같아서 친구 몰래 화장실로 가 과음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며 먹은 걸 전부 게워냈다. 토를 하면 어쩔 수 없이 내가 먹은 음식들이 더러운 꼴로 모여 있는 걸 보게 되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질질 나왔다.
절망스럽고 비위도 상하고 화도 나고 속상하고 내가 너무 싫었다.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화장실에 들어가 먹은 술과 치킨과 케이크를 또 게워냈다. 그래도 한 번 해봤다고 어제보다 음식을 게워내는 속도도 빨랐고 혀뿌리를 찌르는 손가락도 능숙해졌다. 눈물은 덜 났던 거 같다.
다 뱉어내고는 화장실 바닥에 앉아 멍하니 벽을 보고 있던 게 기억난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그때 나는 딱 한 가지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냥 이대로 사라지고 싶다고, 그게 더 행복할 거 같다고.
엉망진창이었던 나는 여기서 더 최악의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다이어트를 포기했다. 내가 마를 필요도 없으며 이미 충분히 예쁘고, 설령 못생겼다고 해도 내가 예뻐야만 하는 이유는 없다는 걸 받아들이기 위해 6개월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여전히 고열량의 음식을 먹을 때면 두려웠지만 그래도 웃으면서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식이장애는 그렇게 잠깐 웃는다고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장애’가 붙는다.
대학교에 들어오고 나서 처음 남자친구를 사귀었다. - 지금 생각했을 땐 딱히 좋아했던 거 같지 않지만 – 내가 먼저 좋아했었고, 고백도 내가 했기 때문에 늘 마음 기저에 불안함이 깔려 있었다. 문득 지금보다 더 예뻐지면 나를 더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다이어트에 돌입하려 했다. 그러나 살을 빼겠다는 다짐과 달리 맛있는 걸 잔뜩 먹어버린 내 발걸음은 당연하다는 듯, 나도 모르게 변기 앞으로 향했다.
방금 삼켰던 짜장면이 도로 식도를 타고 쏟아져 나오는 감각은 전혀 유쾌하지 않으며 이러다 목이 막혀 죽을 것만 같다. 나는 또다시 룸메이트가 자고 있는 밤에 화장실에 앉아 엉엉 울어야 했다. 다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원점에서 빙빙 돌기만 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차오르는 좌절감을 무사히 감당하는 걸 배운 적은 없었다.
나를 좀 먹는 연애가 될 거라는 걸 깨닫고 이별을 통보한 뒤, 나는 나아지고 싶었다. 비록 새해 목표 첫 번째로 다이어트를 적었지만 이전과는 달리 건강하게 천천히 뺄 것이라고 결정했다. 근육도 열심히 키우고 몸에 안 좋은 음식은 피하며 깨끗하게 먹으면 나도 망가지지 않고 몸도 예뻐질 테니까. 그러나 살이 빠질수록 깊은 곳에서부터 잘못된 습관들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이렇게 배불리 먹어도 살이 빠지는데, 안 먹고 운동하면 얼마나 잘 빠질까. 그런 나를 지켜보던 여자친구가 내 다이어트를 뜯어말리고 나서야 나는 또 강박과 우울에 집어삼켜지기 전에 그만둘 수 있었다.
먹는 거에 제한을 두지 않으면 오히려 먹고 싶은 게 줄어든다는 말은 내 개인적인 경험에선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먹고 싶은 건 너무 많다. 이걸 언제 다 먹어보고 죽나, 싶을 만큼. 그러나 먹고 싶을 때 그걸 실컷 먹어주면, 그 음식 자체에 질려서 다시 먹고 싶어 지는데 시간이 걸린다. 난 마라탕이나 떡볶이 같은 매운 음식을 무척 좋아하는데 한 번 먹어주고 나면 물려서 한동안은 생각도 안 난다.
아직도 빼빼 마른 몸매를 동경하게 되지만, 내 몸도 똑같이 만들겠다며 강박적으로 고강도 유산소를 뛰지도 않고, 양이 줄었다는 거짓말을 하며 음식을 피하지도 않는다. 겉으로라도 완전히 탈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처럼 지내야 내 일상이 더 이상 무너지지 않고 운영될 수 있을 거 같아서, 우울에 빠지지 않으려고 기를 쓰며 살고 있다.
여전히 거울 속 나를 보면 가장 말랐을 때보다 배가 나온 게 싫고, 월경이 다가올 때마다 부은 허벅지와 종아리가 미워 죽을 거 같다. 전날 많이 먹고 다음 날 아침에 체중계에 올라갔을 때 내가 원하는 숫자가 보이지 않으면 짜증이 확 나기도 한다. 배가 고파서 적정량을 넘겨 먹으면 남은 끼니를 전부 먹지 않고 굶을까 고민하고, 음식을 보면 절반은 본능적으로 칼로리를 검색한다.
마른 여자들을 보면 부럽고, 가끔은 내가 너무 많이 먹는 거 같아서 살이 불어날까 걱정한다. 거식이나 폭식, 먹토는 사라지고 있어도 머릿속에 남은 강박은 지우는 게 쉽지 않다. 그건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내 속에서만 나를 괴롭히니까.
그래서 나는, 식이장애를 고칠 때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 바로 ‘나 자신을 믿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상적인 식사를 하지 않고 다이어트에 시달려도 살이 빠지고 있으니 괜찮다던 그때의 믿음처럼 강력하게 나를 믿어야 한다.
이 모든 게 종내에는 괜찮아질 거라고. 무엇이든지 먹고 싶으면 먹어도 되고, 살이 찌더라도 상관없으며, 건강을 위해 운동하는 거지 비정상적으로 마르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고, 누구보다도 본인이 믿어주어야 한다. 내가 나를 믿지 않을 때 나는 비로소 바닥까지 떨어지게 된다. 그러니 부정도 의문도 품지 말고 무작정 신뢰를 품고 있어야 한다.
뉴스를 틀면 하루에도 수많은 범죄 기사를 볼 수 있다. 사람을 때리거나, 스토킹하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한다. ‘죄’라는 건 그렇게 반인륜적인 행위를 저지른 자들에게 붙어야 하는 단어이지, 다이어트 중인데 정제 탄수화물을 섭취한 여성들에게 붙을 게 아니다.
그러니 누구든 다이어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식이장애에 시달리고 있다면 스스로에게 말해주었으면 한다. 네가 먹는 건 죄가 아니니 슬퍼할 이유도, 자신에게 실망할 이유도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