얕은 산이고 정오가 지난 시각이라 산에 올랐다 내려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들머리에서 능선까지는 금방이고 나무데크 계단을 올라서면 동편을 향한 첫 전망대가 나온다.
좌로 청계산에서 우로 백운산으로 이어진 능선 위로 펼쳐진 하늘과 구름이 한 폭의 그림 같다. 반면 우담봉 바라봉이 둘러싼 눈 아래 백운호수 주변에 얼마 전 들어선 대형 아파트 군락은 생경하다.
산정 쪽에서 내려온 부부 한 쌍이 전망대 앞으로 펼쳐진 전경과 안내판을 번갈아 살펴본다. 안양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는 아주머니가 사십여 년 전 소풍의 기억을 되살린다.
"쯧쯔 호수공원 안에 아파트라니" "어떤 *이 왜 건축허가 내줬는지 알고 싶네"
부부가 한 마디씩 던지는 말이 내 마음과 같다. 그녀는 옛 기억과 다르게 변해버린 모습이 안타까운 걸까 아니면 훼손된 녹지에 마음이 아픈 걸까?
마침 남성 배낭에 달린 휴대용 라디오에서 이선희의 노래 <알고 싶어요>가 흘러나온다. 노래가 젊은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마음을 조금 누그러뜨린다.
전망대를 지나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 큰 바위들이 중간중간 나타나며 자연스러운 전망대 역할을 한다. 어떤 바위에서는 수락산과 그 아래 펼쳐진 산본과 의왕의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특히 인영 대군이 자주 찾았다는 사인암에 올라서면 관악산과 청계산, 그 너머 멀리 삼각산까지 또렷이 보인다.
모락산엔 6.25 전쟁의 전흔도 남아 있다. 정상 일대가 중공군 개입으로 서울을 다시 적에게 내어주고 밀리던 전세를 뒤바꾼 격전지였다고 한다. 정상으로 가는 평탄한 능선 위의 안내판과 전승기념비가 옛 격전의 현장을 증언하고 있다.
1951.1.25일 개시한 썬더볼트 작전의 전선 가운데 하나였던 이곳, 그해 1.30일부터 2.4일까지 두 차례의 전투에서 국군 제1사단 15 연대 소속 두 개 대대가 2.3일 모락산을 탈환했단다. 중공군 사살 663명, 포로 90명의 전과를 거둔 이 전투의 승리는 국군과 UN군이 2.10일 서울을 재탈환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바위틈으로 난 길을 지나고 나무 계단을 오르면 국기게양대가 있는 해발 385미터 모락산 정상이 맞이한다. 툭 트인 정상에서는 수리산과 관악산 사이로 광명의 도구 가서, 즉 도덕산 구름산 가학산 서독산과 인천의 계양산이 또렷이 보이고, 관악산 줄기 뒤로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도 선명하다.
작은 산이지만 주변에 아파트 군락이 많아서 산책 나온 듯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정상에서 전승기념비가 있는 능선으로 내려와서 절터 약수터와 팔각정 쪽을 둘러보고 다시 올라왔다. 경일암이 있었다는 옛 절터 거대한 암벽 아래 고인 물은 맑지 않고 그 아래쪽 약수터는 수질이 '적합'인데 물줄기가 말랐다.
산 아래쪽에서 바람을 타고 올라온 짙은 밤꽃 내음이 코를 파고든다. 전승비 부근 능선 우측 가파른 허리를 타고 우회하는 길은 평탄한 듯 거칠다. 색다른 느낌의 그 길은 팔부능선쯤의 주 등산로와 만난다.
백운호수 쪽 모락터널로 가는 갈림길에서 계원대 후문 쪽으로 내려선다. 녹음은 짙고 새들 노랫소리는 한가롭다. 여전히 하늘은 높고 구름은 탐스럽다. 그 하늘 한 조각과 구름 한아름을 가슴에 담고 모락산을 빠져나왔다. 19-06 La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