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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Aug 17. 2021

하늘과 구름, 그리고 모락산

난곡 모친을 뵈러 다녀오는 길이다. 높고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탐스럽다. 마치 한여름 요란한 소나기가 지나간 뒤 햇빛 쨍쨍한 하늘을 보는 듯하다.


그 모습을 온전히 눈에 담아 보고 싶었다.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은 호암산 자락을 지나쳤다. 의왕 IC로 내려서서 백운호수를 지나 계원대 후문 모락산 자락의 갈미 한글공원에 차를 세웠다.

생수 한 병과 에너지바 두어 개를 사들고 들머리로 들어선다. 모락산은 그리 높지 않지만 절벽과 기암괴석, 암릉, 임영대군 전설, 한국전쟁 격전지, 모락산성, 고대 고분, 백운호수 등 많은 얘기와 볼거리를 갖고 있다.

서너 번 올랐던 익숙한 코스로 모락산 정상까지 1.5km 남짓이니 왕복 3km 거리다. 수목이 우거져 그늘을 드리운 들머리로 들어서자 밤꽃 냄새가 진하게 코끝으로 밀려든다.

얕은 산이고 정오가 지난 시각이라 산에 올랐다 내려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들머리에서 능선까지는 금방이고 나무데크 계단을 올라서면 동편을 향한 첫 전망대가 나온다.

좌로 청계산에서 우로 백운산으로 이어진 능선 위로 펼쳐진 하늘과 구름이 한 폭의 그림 같다. 반면 우담봉 바라봉이 둘러싼 눈 아래 백운호수 주변에 얼마 전 들어선 대형 아파트 군락은 생경하다.

산정 쪽에서 내려온 부부 한 쌍이 전망대 앞으로 펼쳐진 전경과 안내판을 번갈아 살펴본다. 안양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는 아주머니가 사십여 년 전 소풍의 기억을 되살린다.

"쯧쯔 호수공원 안에 아파트라니"
"어떤 *이 왜 건축허가 내줬는지 알고 싶네"

부부가 한 마디씩 던지는 말이 내 마음과 같다. 그녀는 옛 기억과 다르게 변해버린 모습이 안타까운 걸까 아니면 훼손된 녹지에 마음이 아픈 걸까?

마침 남성 배낭에 달린 휴대용 라디오에서 이선희의 노래 <알고 싶어요>가 흘러나온다. 노래가 젊은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마음을 조금 누그러뜨린다.


전망대를 지나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 큰 바위들이 중간중간 나타나며 자연스러운 전망대 역할을 한다. 어떤 바위에서는 수락산과 그 아래 펼쳐진 산본과 의왕의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특히 인영 대군이 자주 찾았다는 사인암에 올라서면 관악산과 청계산, 그 너머 멀리 삼각산까지 또렷이 보인다.


모락산엔 6.25 전쟁의 전흔도 남아 있다. 정상 일대가 중공군 개입으로 서울을 다시 적에게 내어주고 밀리던 전세를 뒤바꾼 격전지였다고 한다. 정상으로 가는 평탄한 능선 위의 안내판과 전승기념비가 옛 격전의 현장을 증언하고 있다.


1951.1.25일 개시한 썬더볼트 작전의 전선 가운데 하나였던 이곳, 그해 1.30일부터 2.4일까지 두 차례의 전투에서 국군 제1사단 15 연대 소속 두 개 대대가 2.3일 모락산을 탈환했단다. 중공군 사살 663명, 포로 90명의 전과를 거둔 이 전투의 승리는 국군과 UN군이 2.10일 서울을 재탈환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바위틈으로 난 길을 지나고 나무 계단을 오르면 국기게양대가 있는 해발 385미터 모락산 정상이 맞이한다. 툭 인 정상에서는 수리산과 관악산 사이로 광명의 도구 가서, 즉 도덕산 구름산 가학산 서독산과 인천의 계양산이 또렷이 보이고, 관악산 줄기 뒤로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도 선명하다.


작은 산이지만 주변에 아파트 군락이 많아서 산책 나온 듯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정상에서 전승기념비가 있는 능선으로 내려와서 절터 약수터와 팔각정 쪽을 둘러보고 다시 올라왔다. 경일암이 있었다는 옛 절터 거대한 암벽 아래 고인 물은 맑지 않고 그 아래쪽 약수터는 수질이 '적합'인데 물줄기가 말랐다.


산 아래쪽에서 바람을 타고 올라온 짙은 밤꽃 내음이 코를 파고든다. 전승비 부근 능선 우측 가파른 허리를 타고 우회하는 길은 평탄한 듯 거칠다. 색다른 느낌의 그 길은 팔부능선쯤의 주 등산로와 만난다.


백운호수 쪽 모락터널로 가는 갈림길에서 계원대 후문 쪽으로 내려선다. 녹음은 짙고 새들 노랫소리는 한가롭다. 여전히 하늘은 높고 구름은 탐스럽다. 그 하늘 한 조각과 구름 한아름을 가슴에 담고 모락산을 빠져나왔다. 19-06 L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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