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새벽에
모기떼에 쫓기는 꿈에 쫓겨서 잠을 깼다. 호랑이나 사나운 개도 아니고 한낱 모기에 쫓기다니 시쳇말로 스타일 구겨진다. 네 시 언저리다. 화장실에 한 번 다녀와서 다시 누인 몸은 뒤척거릴 뿐 달아난 잠은 봄날 산불처럼 번지는 상념을 잠재우기에 버겁다.
하지로부터 각각 세 번째와 네 번째 경일(庚日)인 일 년 중 가장 덥다는 초복과 중복이 든 칠월이다. 여름이 곧 절정으로 치달을 채비를 하는 때이지만 열린 창틈으로 들어오는 서늘한 새벽 공기는 이불을 끌어당기게 한다.
다섯 시경이 되자 창틈으로 날이 샜고 쎄롱 쎄롱 하며 매미가 두어 번 울다가 멈추었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듣는 매미 소리다. 올여름의 첫 매미 소리를 이른 새벽 꿈결에 듣게 될 줄이야.
첫날, 첫차, 첫물, 첫사랑, 첫눈, 첫 경험, 첫 키스, 첫 무대, 첫발, 초행, 초경, 초야,... '처음'이나 '첫'이라는 글자나 의미가 담긴 것들에는 마음 설레고 잊지 못하게 하는 그 무엇이 숨어 있다.
첫차에 대한 기억의 실타래는 쉽게 풀려 나오지만 당기기가 버겁다. 두어 차례 지방으로 발령을 받아 주말부부로 객지 생활을 하며 꼭두새벽에 출발하는 첫 버스나 기차를 타는 일이 많았었다.
월요일 첫차를 타고 근무지로 내려가고 금요일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고단했던 일상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그 시절 첫차를 타러 가는 길은 여행을 떠날 때의 설레는 마음과 가벼운 발걸음 대신에 비탈길로 바위를 굴려 올리는 시시포스의 발걸음 마냥 무겁기만 했었다.
첫사랑, 누구라도 잊지 못한다는 첫사랑이 내게도 있었던가? 수학여행 중 밤 깊은 경포대 해변의 초소에서 만났던 육군 병장이 알려준 천안 모 여고 여학생의 주소, 첫 편지에 완곡한 거절의 레터를 받았으니 얼굴도 모르는 그 여학생을 첫사랑이라 하기엔 어설퍼 보인다.
대학 첫 미팅 때 손 한 번 잡아 보지 못한 주경야독 하던 그녀나 몇 번 얼굴을 마주쳐 두어 번 차를 나눈 백화점 점원 아가씨에 생각이 미쳐서도 고개가 갸웃한다. 첫사랑은 커녕 풋사랑 리스트에도 올리지 못할 기억들만 한 겨울 빈 들판의 마른 수수깡처럼 머릿속에서 흔들린다.
첫 비행기 여행은 제주도로의 신혼여행이었다. 특히 그 두 해 뒤인 1997년 5월 말 생애 첫 해외로의 비행은 잊을 수 없다. 아내와 함께 들뜬 마음으로 벨기에 브뤼셀로 단기연수 길에 오른 내 옆 좌석에 앉았던 K 씨, 그는 초면인 젊은 부부에게 창가 좌석을 양보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김포공항을 이륙한 후 말없이 창밖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이윽고 우리 땅과 섬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나는 열두 시간이 넘는 비행 내내 쉬지 않고 쏟아내는 그의 인생역정을 도리 없이 듣고 있어야만 했다.
그는 70년대에 파독(派獨) 광부였다고 했다. 광부 일을 은퇴한 후 독일의 쾰른 옆 알스도르프라는 소도시에서 호프 가게를 운영하고 있단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공항 대신에 벨기에 자벤템 공항을 통해 돌아온 이유는 집에서 더 가깝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때 석탄의 도시로 파독 광부의 성지와도 같은 알스도르프는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3국의 접경에 위치하고 있다.
파독 간호사였던 부인과의 사이에 아헨대학 의대생인 아들과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딸 하나를 두고 있다고도 했다. K 씨는 한국에서의 젊은 시절과 파독 후 현재까지의 길고 고단했던 삶에 대한 얘기를 이어갔지만 지금까지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기억은 그리 많지가 않다.
해외여행이 흔치 않던 그 시절, 나와 아내는 초행인 유럽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부풀어 있었다. 젊은 부부가 기대했던 비행 중 오붓한 시간을 그의 인생역정 스토리에 버무려진 내 인내심이 대신 채워 버렸다.
비행기가 브뤼셀 자벰템 공항에 도착하자 꼭 한 번 놀러 오라고 신신당부하며 건네주던 전화번호, 까맣게 잊고 있던 그 번호로 전화를 한 것은 그로부터 한 달여가 지나서였다.
그는 친구 한 분과 같이 알스도르프에서 벨기에 브뤼셀까지 족히 3시간이 걸리는 길을 낡은 폭스바겐을 몰아 한달음에 달려왔다. 벨기에서 네덜란드를 거쳐 국경을 넘나들며 먼 길을 달려 그의 집에 도착할 때까지 그는 헤어졌던 절친을 다시 만난 듯 즐거운 표정으로 얘기를 그치지 않았다.
고달프고 외롭고 때론 서럽기도 했을 오랜 타국 생활이 그의 마음속에 고국과 자신의 얘기를 귀담아 들어줄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얼마나 키웠으면 그랬을까, 하고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었다.
60년대부터 독일로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가 1만 7900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들 중 귀국하지 않고 현지에 정착한 사람들의 고국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은 K 씨와 다름없을 것이다.
그의 집은 3층짜리 단독주택으로 1층은 '아인 비테 아인스(Ein bitte eins)'라는 소박한 이름의 작은 호프 가게였고 2~3층은 살림집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학기 중이라 K 씨의 아들은 학교 기숙사에 머무른다고 했다. 선뜻 내어준 그의 아들 방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깨어나던 이국 소도시의 그 여름날 아침은 햇살처럼 싱그러웠다.
K 씨의 예쁘장한 딸은 1층 가게에서 바(bar)를 사이에 두고 늙수그레한 손님 한 두 분과 마주 보며 체스를 두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맥주 한두 잔을 시켜 놓고 하루 종일 가게에 앉아서 소일하는 은퇴한 동네 노인들의 따분함을 달래주던 그녀는 마음씨 또한 더없이 착해 보였다.
그의 집에 2박 3일 동안 머물며 우리는 '현지인'인 그의 안내로 인근 아헨 시내와 쾰른의 대성당과 라인강 등을 둘러보는 호사를 누렸다. 그의 호프 가게에서 톡 쏘는 맛의 전통 독일 생맥주를 마음껏 마시는 것은 덤이었다.
몇 차례의 사양에도 끝내 브뤼셀까지 우리를 다시 태워다 주시던 다감하던 그분, 20여 년이 지난 일이지만 지금도 가끔 그분이 어떻게 지내고 계실지 생각나곤 한다.
때론 '처음'이라는 타이틀이 값비싼 대가를 요구하기도 한다. 소중한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모험이자 '무상(無償)의 행위', 미답(未踏) 루트를 통한 고산 초등(初登)처럼. 실제로 '죽음의 지대'라 불리는 해발 7500미터가 넘는 히말라야 고봉들을 향한 초등의 열망은 알피니즘의 역사에 수많은 등반가들의 피와 땀과 목숨을 아로새겨 놓았다.
요즘 나는 국내 여러 명산들 중 가보지 않은 곳 위주로 찾아다니는 산행의 취미에 빠져 있다. 누군가 최초로 오른 사람이 있겠지만 내겐 초행인 산, 시간과 땀과 육체적 고통을 감내해야 하지만 그 미지의 품속으로 찾아들 때면 설렘으로 가슴이 뛴다.
우리 산들은 빙설 낙석 크레바스 눈사태 등 갖가지 함정이 도사린 히말라야의 고봉들처럼 목숨을 걸고 올라야 할 만큼 높거나 까탈스럽지 않으니 얼마나 고맙고 다행한 일인가.
수줍은 듯 조심스럽던 매미 울음소리는 새벽을 깨워 일으켜 세울 기세로 맹렬해졌다가 잦아들곤 한다. 매트리스에 누운 채 덜 깬 잠은 창틈 너머 먼 도로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달리는 소리에 귀를 맡기고 '흐어어~' 목구멍을 지나 입으로 긴 날숨을 내뱉는다.
일찍 깬 잠은 여느 아침보다 잔뜩 게으름을 피우기 일쑤다. 여섯 시가 가까워지자 까치가 아침 기상나팔을 불듯 요란하게 짖어댄다. 어젯밤 공원에서 보았던 야생 고양이도 까치 등살에 일어났을까?
자 그럼, 이제 나도 기지개를 쭈욱 한 번 켜고 일어나 볼까나. 오늘 하루 동안 만나고 경험할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무미건조한 일상의 반복이 아니라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들 인양 기대와 설렘을 가슴 가득 품어야지.
그리고 주말엔 따분한 일상과 사람들 틈바구니를 벗어나 자연으로의 유쾌한 탈출을 해 보는 거야. 이 계절에 맞는 산행, 되도록이면 가보지 않은 산으로의 초행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