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관의 역사는 개항의 역사와 궤적을 같이 한다.
1876년 조선은 일제와 맺은 강화도조약을 맺고 1876년 부산항, 1880년 원산항에 이어 1883년 인천항을 개항했다. 개항 이후 1878.9.28일 부산에 최초로 세워진 두모 진해관과 함께 근대 세관의 역사가 시작되었지만 석 달이 못되어 폐쇄됨으로써 중단되고 말았다.
그 후 1883.6.18일 인천해관에 이어 그 해 11.3일 개청 한 부산세관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 오래된 세관이다. 객지 생활은 일면 고달프기도 하지만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세관에 두 번씩이나 발령받아 근무하는 것은 아무나 누릴 수 없는 행운인지도 모른다.
중앙동 연안여객선 부두 옆에 위치한 현재 청사는 부산시 지정문화재였던 1911년 준공된 옛 르네상스식 청사가 부두路 확장공사로 인해 1979년에 철거되자 이전해 온 것이라 한다.
최근에는 부산지역 학계를 중심으로 1876년 '근대개항'과 구분하여, 조선초 일본 상선 정박을 허용하고 왜관이 형성된 1407년을 부산의 첫 '자주 개항' 시기로 봐야 한다는 신선한 주장도 일고 있다고 한다.
역사를 되짚어보면, 이종무가 대마도를 정벌한 때인 1426년(세종 8년)에는 대마도의 요구로 제포(창원), 염포(울산), 부산포를 개항하지 않았던가.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 때 벽란도는 송, 요, 금, 일본, 아라비아 등 여러 나라 상인들이 드나들어 '코리아'를 세계에 알리게 되었으니, 그때로 개항의 역사를 올려 잡을 수도 있지 않나 싶다.
내항 건너편 한눈에 들어오는 영도를 비롯해서 ‘국제시장’, ‘자갈치’, ‘40계단 거리’ 등 여러 명소들이 부산세관 가까이에 모여 있다. 유월의 한낮이지만 거리의 공기가 상큼하다.
구내식당에서 서둘러 점심을 들고 C 과장과 함께 세관 담장을 벗어나 낮은 펜스 너머로 바다가 펼쳐진 ‘수미르’ 공원 쪽으로 걸었다. 바다 내음이 밀려온다. 출무했던 감시선은 부두로 막 귀항해서 계선 밧줄을 내리고 있다.
부산대교 아래 바다가 햇빛을 받아 은비늘처럼 반짝인다. 일렁이는 수면에 낚싯줄을 던져놓고 살랑대는 바람에 몸을 맡긴 강태공, 지날 때마다 어망은 항상 비어 있는 듯 보여 정작 그가 낚으려고 하는 게 뭘까 궁금해진다.
영도다리 밑 ‘유라리’ 공원 피난민 가족 조각상의 한 손에 어린 딸 손을 쥐고 무거운 단봇짐을 머리에 인 아낙이 힘겨워 보인다. 영도 쪽 다리 입구에는 이곳 출신 가수 故 현인 선생의 동상과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비가 서 있을 것이다.
바닥의 먹이를 쪼는 비둘기들이나 벤치에 앉은 노인들 모두 한가롭기 그지없다. 할머니 두어 분이 보도 위 가로수 옆에서 가자미를 손질하여 채반에 담아 간이의자 위에 올려놓는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가자미들은 반쯤 건조되어 말랑말랑하다. 가자미 한 채반을 달라고 하니 할머니가 반색한다.
종종 북적대는 시장 골목이나 노상 좌판 옆을 지날 때면 딱히 당장 필요치 않은 소소한 물건에 눈길이 가고, 좌판 아주머니나 할머니에게 지폐를 건네고 비닐봉지를 받아 드는 일이 있다. 호주머니 속에 만 원짜리 지폐 한 장 넣고 나서는 산책의 즐거움 중 하나다.
번듯한 현대식 건물로 단장한 자갈치 시장 안은 활어 가게들이 빼곡히 어깨를 맞대고 있다. 억척스러운 시장 상인들은 구경 삼아 들른 과객에게 느긋하게 둘러보는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얼른 자갈치 시장을 빠져나와서 그 앞 광복동으로 가는 횡단보도를 건넜다.
‘도떼기시장’에서 ‘자유시장’으로 그리고 1950년 ‘국제시장’으로 이름이 바뀐 시장의 먹자골목으로 들어섰다.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건물들이 빽빽이 늘어섰고 가게와 좌판들로 좁은 골목은 더 복잡하고 좁아 보인다. 전통 공예품과 특산품 가게가 몰려있다는 ‘아리랑 거리’는 덮개가 없는 터널처럼 좁고 길다. 빌딩 사이 빼꼼히 트인 앞쪽 공간으로 용두산 공원 전망대가 눈에 들어온다.
피난살이 애환이 고스란히 담긴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의 배경이 된 영도다리, 국제시장 등 이곳을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여전히 녹녹지 않아 보이지만 활기만은 잃지 않았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골목 어디선가 들려올 것만 같은 익숙한 노래 가사처럼 이들 마음속엔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광복중앙로로 빠져나와 대청로를 지나서 짧은 산책을 마치고 사무실로 발길을 돌린다. 내일은 금요일이라 수서행 급행열차를 탈 것이다. 아내에게 검정 비닐봉지 속에 든 말린 가자미를 내밀면 길거리 좌판 할머니처럼 반색할지 모르겠지만 가자미 맛이 어떨지 벌써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