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의 소요산을 소요하다

포천 소요산

by 약천

푸른 오월이다. 석탄일 주말과 대선 임시휴일이 징검다리 마냥 이어져 있다. 이제나저제나 벼뤄오던 소요산 산행을 하기로 했다. 날씨 맑음, 미세먼지 나쁨, 기온 아침 10도 낮 24도로 날씨와 기온은 양호한데 미세먼지가 껄끄럽다. 이른 아침이라 날은 밝았지만 아직 거리는 한산한데 얼리버드들은 자기들 만의 짊을 하나씩 둘러매고 자신들이 있어야 할 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야탑 터미널을 출발하여 잠실 장암 의정부 양주 덕계리 동두천 소요산 한탄강을 거쳐 전곡까지 가는 3300번 시외버스는 6시 정각에 출발했다. 출발지에서 승객은 달랑 2명인데 모란 가락시장 잠실을 지나면서 하나둘씩 늘었다. 석촌호수 옆 롯데빌딩은 차 안에서 고개를 젖혀야 겨우 차창 밖으로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다. 잠실대교를 건너면서 강 상류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민족의 젖줄 한강의 작은 물결의 일렁거림이 아침 햇살을 받아 잉어 비늘처럼 싱그럽게 파닥인다.


잠실대교를 건너고 강변북로를 거쳐 토평에서 외곽순환도로로 진입했다. 버스는 남양주 구리 퇴계원 별내 등 나들목을 지나고 불암산 외곽으로 돌아 의정부 나들목으로 빠져나왔다. 왼편으로 도봉산 자운봉이 웅자하고 오른편으로 아침 태양을 이고 병풍처럼 둘러서 있는 수락산 능선이 수려하다.

소요산역에서 내려 소요산 매표소를 지나 자재암 일주문까지는 한참 거리다. 평일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국민관광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인적이 드물고 나이 많은 어르신들만 간간이 한가로운 걸음을 옮기고 있다. 소요산 자재암(逍遙山 自在庵), 경기 소금강(京畿小金剛)이라 적힌 현판이 아래 위로 나란히 걸린 일주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원효 굴과 원효폭포가 그림 속 풍경처럼 그윽하게 자리하고 있다. 자재암으로 가는 백팔 계단 앞 갈림길에서 산행객은 백팔 가지 번뇌에 하나를 더하여 어느 길로 갈 것인지 고뇌하게 마련이다. 그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오른쪽의 공주봉으로 오르는 코스 대신 자재암 쪽으로 길을 잡았다


생각보다 짧게 느껴지는 백팔 계단 그 끝에는 머리에 닿을 듯 말듯한 높이의 해탈문이 산객들에게 짧은 계단길을 벗어난 해탈의 즐거움을 준다. 계곡 옆 절벽에 기대어 놓인 잔교는 저 밖 속세와 부처의 세계인 자재암을 이어주는 다리로 '극락교'라 불린다. 뒤쪽으로 깎아지른 듯 가파른 바위 산 앞쪽으론 계곡, 그 사이 넉넉한 평탄한 공간에 들어선 자재암은 대웅전 삼성각 나한전 요사채가 반듯하게 들어앉은 아담한 사찰이다. 초파일이 지났지만 봉축등은 하늘에 핀 연꽃처럼 마당 위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다.


신라 선덕여왕 때인 645년 원효가 창건했다는 자재암은 출가 전 둘 사이에 아들 설총을 둔 요석공주와의 애틋한 사랑 얘기가 전해온다. 이곳에서 수행 중 원효는 비 내리는 한밤 약초 캐다가 길 잃은 아녀자로 화현 한 관세음보살의 시험을 자재무애 (自在無碍)의 법문으로 답해 미소 짓게 했더란다. 나한전은 거대한 바위로 된 옥류봉 아래 반듯하게 들어서 있는데, 출입문 오른편 원효 샘은 바위에서 약수를 졸졸졸 떨구고 그 옆 옥류폭포는 계곡 아래로 투명한 물줄기를 펼치고 있다. 젊은 남녀 한 쌍이 나한전에 들어서서 여자가 절을 올리고 남자는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

자재암의 대웅전과 나한전 사이로 난 산행 들머리로 들어서면 군대 유격훈련 때 강하 점퍼대를 오르는 계단처럼 비탈의 굴곡을 따라 놓인 가파른 계단길과 암반 길이 능선까지 이어진다. 뻐근해 오는 다리와 가쁜 숨이 버겁고 머릿속에는 닦친 고통을 벗어났으면 하는 생각뿐이다. 오체투지의 고행은 극한 육체의 수고로움을 통해 삶의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나 보려는 처절한 수행의 방편일 것이다. 산행 중 흘리는 땀도 육체의 찌꺼기인 동시에 영혼을 키우는 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계곡에서 산 위쪽으로 부는 서늘한 바람은 하백운대로 오르는 가파른 길에 흐르는 땀을 씻어주고 기운을 돋궈주는 큰 응원군이다. 표지석이 없어 그냥 지나칠뻔한 하백운대를 나무 이정표가 확인해 준다. 자재암에서 나보다 앞서 갔던 산객을 앞질러 지나쳤다. 그는 중백운대 바로 아래에서 다시 나를 지나쳐 앞서갔다. 앞지르거나 뒤처지는 일이 허다한 산행에서 스쳐 지나며 '힘 내시죠'하며 가볍게 던지는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되기도 한다.


중백운대 오른편으로는 수직 절벽이고 절벽 가장자리에는 노송들이 위태하게 늘어서 있다. 달포 전에 심심풀이로 응모해 보았던 문예대전, 입상쯤이면 족할 텐데 동상의 낭보가 메시지를 타고 백운대 능선 위로 날아왔다. 누군가가 '힘 내시죠'하고 스쳐간 듯하다.


표지석 하나 없이 및및한 상백운대를 지나서 나한대까지의 칼바위 능선길은 산행의 재미요 한편으론 거칠고 힘든 난코스다. 뒤덮인 바위 틈새로 소나무가 자리를 틀었는데 모두 나 보다 나이가 많을 듯싶은 노송이다. 칼바위 능선 왼쪽 아래쪽 캠프 캐이시에 딸린 사격연습장과 오른쪽 계곡 아래 자재암에서 각기 들려오는 펑펑펑 총소리와 은은한 목탁소리가 어울려 묘한 화음을 만들어낸다. 철쭉 꽃잎 절반은 벌써 떨어져 바닥에 뒹구는데 그 절반쯤은 여전히 가지에 달려 싱그럽고 발랄하다. 소요산 철쭉은 남쪽의 산에 피는 철쭉보다 꽃잎이 크고 화려하다. 나무한테도 남남북녀가 적용된다면 철쭉은 여인일 것이다.

여러 꽃들도 산행길 곳곳 바위틈에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자태를 뽐내고 있다. 아름다운 외모나 특출한 능력을 당당하게 드러내기를 주저 않는 것은 사람이나 야생화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쁘면 다 용서된다'지만 외모가 특출해도 마음이 추하고 사악하면 평범한 꽃에도 비할 바가 못될 것이다. 나한대 오르는 길은 번뇌를 끊고 생사마저 초월했다는 나한들처럼 강인한 결기와 기운을 뿜어내는 가파르고 험한 길이다. 온통 바윗돌로 뒤덮인 나한대 가장자리에는 노송 두 그루가 뿌리를 드러낸 채 긴 줄기와 가지를 산 아래로 늘어뜨리고 드러누웠다.

나한대를 지나고 의상대로 향한다. 해발 587미터 소요산 정상 의상대는 힘들지 않게 놓인 계단길과 길지 않은 오르막 길을 오르다 보면 깨달음과도 같이 홀연히 산객 앞에 나타난다. 그 표지석은 높은 곳에서도 항상 몸을 낮추고 겸손한 마음을 견지하라는 가르침 인양 네모 반듯한 대리석으로 바닥에 낮게 놓여있다.


공주봉으로 내려가는 길에 연세 지긋한 노부부 한쌍과 스쳐 지나며 인사를 나눴다. 전철역으로 내려가는 길을 묻길래 그들의 진행방향으로 자재암을 거쳐 소요산역으로 가는 코스를 귀띔해 주었다. 조금 후 뒤돌아서 한참만에 그분들을 따라잡아 정확한 목적지를 묻고 선녀탕으로 내려가는 단거리 코스를 일러주고 나니 마음이 가볍다.


공주봉은 정상이랄 것도 없이 평평하고 너른 공터로 표지판에 자기 이름을 알리고 있을 뿐 표지석도 없다. 그 동쪽 편 절벽 너머로 상승기류에 몸을 실은 까마귀가 날개를 활짝 펴고 날짐승의 권리를 마음껏 만끽하고 있다. 들머리이자 날머리인 백팔 계단 입구로 내려가는 길은 평탄하다. 공주봉 4부 능선쯤에 있는 옛 절터는 너른 터에 풀만 무성하고 여기저기 넉넉하게 놓인 벤치는 좋은 쉼터가 되고 있다. 절터 아래 길옆 계곡에는 물이 흘러 곳곳에 행락객들이 자리를 틀고 앉았다.


자연보호 헌장탑 옆 공터에서는 아마추어 여성화가 3분이 주변 풍경을 스케치 북에 담기에 여념이 없다. 그 아래쪽 날머리로 내려서니 오후 한 시가 조금 넘었다. 원효암 주변을 둘러보거나 백팔 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행락객들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원효의 숨결이 스며있는 백운대 나한봉 의상대 공주봉으로 이어진 소요산 일주 산행을 마감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자재암의 일주문을 나섰다. 1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