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고속터미널에서 제천행 첫차를 탔다. 충북 제천시 봉양읍과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경계를 이루는 감악산 산행을 할 요량이다. 오늘 제천 기온은 영하 9.3도라는 일기예보다. 대설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으니 겨울의 문턱으로 들어선 셈이다. 단양에서 차를 몰아 달려온 H와 제천 터미널에서 만나 기차로 도착할 M을 픽업하러 신림역으로 향했다.
신성한 숲이라는 이름의 신림(神林), 박해를 피해 천주교 신자들이 모여 생활하던 배론성지, 산중의 천년고찰 백련사 등이 자리하고 있는 감악산 자락은 민간신앙, 천주교, 불교가 한데 어우러진 성스러운 곳이라 알려져 있다.
신림면에는 김용기 선생(1909-1988)이 1973년에 세운 가나안 농군학교가 있고, 풍수원 성당과 원주 성당에 이어 1904년 강원도에서 세 번째로 설립된 용소막 성당도 자리한다. M이 도착할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신림역 맞은편 주포천 건너 용소막 성당을 둘러보기로 했다.
성당은 치악산과 백운산 줄기가 서로 어깨를 부딪히며 길게 골짜기를 이루며 뻗다가 멈춰 선 산자락 끝에 앞으로 너른 들판을 내려다보며 자리하고 있다. 고딕 양식 벽돌 건물로 명동성당을 닮은 이 성당은 1915년 시잘레 신부가 준공한 것으로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6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마당의 수령 100년이 넘는 네댓 그루 큰 느티나무가 성당을 호위하듯 서있다. 성당을 한 바퀴 둘러보고 성모 마리아상 앞에 봉헌초 하나씩을 밝히고 발길을 돌린다.
단선이라 교행을 해야 하는 철길 위로 상행선 기차가 지나가고 곧이어 친구를 태운 하행선 기차가 멈추었다가 소리 없이 꼬리를 감추며 사라졌다. 3년 전 가을 치악산 산행 때 외딴섬처럼 한적한 이곳 움막처럼 야트막한 역사에서 두 친구와 합류했던 추억이 새롭다. 30여 년 전 군 복무 때 강릉에서 저녁 늦게 비둘기호를 타고 이른 아침에 청량리역에 내렸던 기억도 가물거린다.
M이 2003년 시작된 중앙선 복선화로 서원주-제천 44.4㎞ 구간이 12월 하순에 개통된다고 한다. 서울에서 1시간 40분 걸리던 제천까지의 소요시간이 56분으로 단축되지만, 신림역은 빠름을 추구하는 시대의 물결에 밀려 그 역할을 다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니 마음속에 진한 아쉬움이 인다.
신림역을 출발하여 88번 신림 황둔로로 들어섰다. 신림이라는 이름이 유래한 천연기념물 93호 성황림은 도로 좌측 치악산 자락을 지키고 서있을 것이다. 10여 km 떨어진 들머리인 감악산 북쪽 감악산 쉼터 식당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행을 시작한다. 코스는 능선을 타고 올라 감악산 정상과 백련사를 지나 계곡을 따라 원점으로 회귀하는 10km 남짓 거리다.
초입부터 가파른 비탈을 내놓는 산세가 매섭지만 정작 몸속으로 파고드는 냉기가 더 매섭게 느껴진다. 매서운 비탈을 두어 개 오르고 평탄한 능선을 걸으며 숨을 고르는데 눈 앞에 안데스가 숨겨둔 잉카 최후의 요새 마추픽추처럼 피라미드형 봉우리가 우뚝 막아선다.
늠름한 노송들이 호위무사 인양 좌우에 도열해 있는 능선길을 지나면 그 목덜미에 가파른 바윗길을 내놓으며 턱밑에 긴 밧줄을 드리워 놓았다. 이정표와 함께 여러 번 보이던 '추락주의' 경고판을 세워둔 이유에 수긍이 간다.
어디인지 가늠할 수 없는 정상이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감악산은 밧줄을 타고 올라야 하는 몇몇 암봉과 멋진 파노라마를 눈아래 펼쳐 놓은 조망처를 내놓으며 산객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험한 등산로는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고 밧줄에 목조임을 당하는 비탈길 옆 나무들이 안쓰럽다.
암릉 위에 바윗돌 네 개가 탑처럼 층층이 쌓인 탑바위 옆 조망처에 올라서니 눈 아래 용두산과 삼학산을 비롯한 수많은 산군이 넘실대는 파도처럼 멀리까지 끝없이 펼쳐져 있다.
바위 절벽에 박힌 철심과 밧줄에 의지해서 또 다른 능선 마루로 올라서니 좌측 전면에 세 암봉이 동양화 속 선경처럼 나란히 위용을 자랑하듯 우뚝 솟아있다. 그 위에 오른 산객들 모습이 개미가 꿈틀대는 것처럼 작고 어렴풋하게 보인다.그중 첫 봉우리에 오르니 '감악산 930m 원주시'라고 적힌 표지석이 반긴다.
산행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사방으로 확 트인 전망을 내놓으며 '역시 멋있는 산이야!'라는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파란 하늘의 하얀 뭉게구름이 치악산의 수려한 능선들 위에 그늘을 드리워 비단에 수를 놓은 듯 아름다운 장관을 펼쳐 보인다.
동자바위 봉우리를 우회하고 하늘로 통하는 문처럼 생긴 바위 문을 한 바퀴 돌아서 봉우리 위에 고래등처럼 올라앉은 해발 945미터 감악산 정상 암봉에 올라섰다. 제천시에서 세운 표지석의 고도 숫자는 누군가가 무슨 이유로 그랬는지 긁어서 스크래치를 내어 흐릿하다. 정상 너른 바위 위에서 사방을 둘러보며 한동안 자리를 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정표를 확인하고 정상 아래 동편 1.4km에 자리하는 백련사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길옆 곳곳에 돌조각으로 하나하나 정성스레 쌓아 올린 낮은 돌탑들이 고해를 건너는 인생들의 간구와 염원을 엿보게 한다.
감로수 우물 옆을 지나 '萬物興我(만물 흥아)'라는 음각 글귀가 새겨진 아치형 돌문을 지나고 사천왕문으로 들어서니 마당 중간에서 아담한 석탑이 산객을 맞아준다. 백련사의 내력은 신라 문무왕 때인 662년 의상이 지었다는 백련암이라는 작은 암자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명대사가 1588년에 쓴 <치악산백련사중창기문> 등이 이 절의 성쇠 부침을 기록으로 자세히 전한다고 한다.
금수산 조계사 극락전의 주존불이었다는 1736년 조성된 극락전의 목조 아미타여래좌상이 이곳으로 온 사유는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한다. 극락전 우측 뒤편에는 산신, 칠성, 독성을 봉안한 삼성각이 자리하고 좌측 뒤편 편액이 걸리지 않은 두 건물은 이름을 알 수 없다.
백련사 마당에서 아래쪽으로 내려다보는 전망은 가히 환상적인데 부석사 망양루가 펼쳐 보이던 드넓은 망망대해 끝없이 굽이치는 성난 파도 같은 일망무제의 감동을 고스란히 되살려 준다.
삼성각에서 은은히 울리는 목탁소리를 들으며 산사를 뒤로하며 뒤를 돌아보니 병풍처럼 아늑히 산사를 보듬은 능선 위에 올라앉은 정상부 암봉들이 산객을 굽어보며 일찍이 작별인사를 보내고 있다.
우측 머리 위에서 산객을 내려다보는 정상을 한 번씩 올려다보며 태양을 등지고 길게 이어지는 계곡의 평탄한 길을 따라 들머리로 내려서며 원점회귀 산행을 마친다. 들머리에서 정상, 정상에서 원점까지 각각 3km여 거리를 네 시간 남짓 느긋하게 오르내리는 산행은 다소 짧은 감이 있었지만 유쾌한 영화 한 편을 감상한 듯 감악산의 매력에 흠뻑 빠져 든 여정이었다.
낮이 짧은 겨울이지만 태양은 아직 중천에서 밝고 따사롭게 비친다. 다시 찾기를 고대하며 신성한 숲을 뒤로하고 친구들과 함께 귀로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