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가서를 아시나요

도덕산, 구름산, 가학산, 그리고 서독산

by 약천

이번 설 연휴는 대체휴일 하루를 더해 사흘이다. 귀성 전쟁을 치러야 하는 것까지 감안하면 조금 짧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대체로 적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설 이튿날엔 눈이 내려 삶의 터전으로 되돌아오는 길이 다소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가뭄에 단비 인양 올 농사 풍년을 기약해주는 듯하여 반갑다.


도촌동에서 출발하는 3330번 버스를 아트센트 건너편 정류장에서 타고 판교 청계 평촌을 거쳐 안양 명학역에서 내렸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는 탄천 수변공원과 청계산 언저리 등 차량이나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은 어제 내린 눈이 녹지 않고 쌓여 있다. 외곽순환도로는 교통량이 평소보다 적은 듯하고 판교 부근 경부고속도로 상하행선도 양쪽 방향 모두 여유롭고 차량 흐름이 순조로워 보인다.

아산시 신창역을 출발하여 수원 노량진 서울역 도봉산 의정부 양주 동두천을 거쳐 소요산역을 종착지로 하는 전철 1호선 명학역에서 전철로 환승했다. 예전 수원과 청량리를 오가던 이 전철은 남으로 충남 북으로 동두천까지 노선이 엿가락처럼 늘어나 일일생활권의 반경을 크게 넓히는데 일조하고 있다.

가산디지털역에서 전철 7호선으로 갈아타고 철산역에서 내려 플랫폼을 빠져나왔다. 전철에서 내린 사람들과 전철을 타려고 밀려드는 사람들로 붐비는 홀에서 반가운 두 얼굴이 반겨준다.

오늘 산행의 주제는 소위 '도구가서 종주', 광명시 중심부에 남북으로 길게 누워있는 도덕산-구름산-가학산-서독산을 잇는 약 40여 리에 달하는 산길을 걷는 코스다. 철산역을 빠져나와 도덕산 자락에 기대어 비탈에 빼곡히 들어선 주택가 골목길을 10여 분간 걸어가야 들머리를 만날 수 있다.

도구가서 종주 산행을 하루 앞두고 밤새 많은 눈이 내렸다.

주택가 골목과는 달리 등산로 입구 체육공원 주변은 인적이 닿지 않았다. 어제 내린 눈이 그대로 쌓여있고 눈꽃을 피운 침엽수 가지들이 터널처럼 늘어선 등산로에는 부지런한 산행객들이 남긴 발자국들이 수북하다.


순식간에 해발 200여 미터 남짓한 도덕산(道德山) 정상에 있는 도덕정 정자 위로 올라섰다. 사방이 한눈에 들어오고 정자 처마 밑에 걸린 주자십회(朱子十悔) 현판이 잠시 마음을 붙든다.


구름산으로 가는 길에 밤일 분기점, 효종 때 청백리 인의 공(引儀公) 평우성 묘지, 노온 정수장을 차례로 지났다. 하루 56만 톤의 처리시설을 갖춘 노온정수장은 광명 부천 시흥 그리고 인천 일부 지역까지 수돗물을 공급한다는데 '구름산수'라는 고유 브랜드의 병입 수돗물도 생산한단다.


서울의 아리수, 부산의 순수, 안산의 상록수, 남양주의 다산수, 인천의 미추홀 참물 등 지자체들이 앞다투듯 내놓은 자체 브랜드의 병입 수돗물이 20여 가지에 달한다고 한다. 겉 무늬 빼고는 서로 크게 다를 것도 없을 듯한 수돗물도 가히 춘추전국시대를 맞은 것 같다.


도덕산과 구름산 사이의 한치고개를 지나서 산허리를 왼쪽으로 돌아 가리대(加里大) 광장을 거치는 우회길로 들어섰다. 구름산 산정으로 놓인 가파른 계단길이 끝나면 '구름산 전망대'라는 현판이 걸린 팔각정이 모습을 드러낸다. 정자 주변에 군락을 지어 늘어선 키 작은 나무들은 만개한 목화처럼 가지마다 눈꽃을 활짝 피웠다.


정자에서 산정으로 난 평탄한 능선은 좌우 양쪽 눈 아래로 펼쳐놓은 마을들을 굽어보며 걷는 순백의 눈길이다.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다. 그 능선 길도 잠시뿐 금세 구름산 정상이 나오는데 앞서 만났던 정자들과 닮은꼴의 팔각정 정자가 서있다.


구름산에서 가학산(駕鶴山)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은 경사가 가파르고 눈에 덮여 미끄럽다. 평지를 걷는 것은 중력 방향과 90의 각도로 이동하는 것인 셈이다. 경사가 가파를수록 발아래서 수직으로 잡아끄는 중력에 맞서 씨름하며 거슬러 올라야 하기 때문에 더 힘겹다.


오리(梧里) 이원익 기념관과 광명동굴을 학 날개로 감싸듯 양쪽에 품은 가학산에 올라섰다. 앞쪽 산 아래 높은 굴뚝의 자원 회수처리 시설이 한눈에 들어온다. 온통 빨간색 바탕에 구름무늬를 그려 넣은 디자인 감각이 돋보이는 높은 굴뚝이 눈처럼 하얀 연기를 내뿜고 있다.


'도구가서' 코스의 마지막 봉우리 서독산(書讀山)으로 가는 길 산허리에는 씽크홀과 크게 입을 벌린 폐광이 일제 치하 수탈의 상처로 남아있다. 가학산 아래 광명동굴 입구에 두 해 전 8.15 광복절에 시민 성금으로 '광명 평화의 소녀상'을 세웠다고 한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찾는 이들에게 일제 수탈과 징용의 뼈아픈 역사를 잊지 말라고 강변하고 있을 것이다.


표지석도 없는 서독산 정상 부근은 인적이 드물다. 정상 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자락 끝 마루의 군 경계초소를 우회하여 안서 초교 옆 날머리로 내려섰다. 도시 가장자리 시의 경계를 넘는 국도는 인적이 드물어 한적하고 우리가 타고 갈 버스는 좀체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한참을 기다려서 안서 초교 건너편 정류장에서 안양역으로 가는 11번 버스를 탔다. 반대편 정류장에서 광명 쪽으로 가는 같은 번호의 버스를 기다리는 두 친구와 손을 흔들며 작별했다.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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