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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Oct 03. 2020

사패 도봉 그리고 오봉

추석 이튿날이다. 분당-수서 고속화도로를 타고 청담대교를 지나 동부간선도로로 들어섰다. 중랑천을 따라가는 동부간선도로는 막힘이 없다. 긴 연휴의 한중간이라 그런지 천변 공원을 걷는 사람들 모습이 느긋해 보인다.

"더 이상 당신의 말에 상관하지 않아.
 이건 내 삶이거든. 당신 인생이나 신경 쓰도록 해.
 날 그냥 내버려 둬."
- Billy Joel의 <My Life> 중 -

라디오에서 귀에 익은 빌리 조엘의 노래 'My Life'가 흘러나온다.

"난 영화배우가 될 수 있을 거야 여길 벗어날 수 있다면"
그의 노래 <피아노맨> 가사처럼 한때 LA 어느 술집의 피아노맨이던 그는 살아있는 팝의 전설이 되었다. 꿈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의정부 IC에서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로 올라서서 의정부시 호원동과 양주시 장흥면을 잇는 사패터널을 난생처음으로 통과했다. 환경단체와 불교계의 반대로 착공이 지연되기도 했는데, 총길이 3,997m 폭 17.6m로 세계 최장 광폭터널로 기네스북에 올라있다고 한다.

부지런한 산객들 차량이 송추계곡 주차장 한편을 채우고 있다. 뒤이어 도착한 친구들을 만나 송추계곡 쪽보다 한적한 원각사 쪽 들머리로 이동했다. 친구들은 익숙한 코스라지만 도봉산과 북한산을 몇 번 올랐던 내게도 사패산, 오봉능선 여성봉은 첫 대면이라 마음이 설렌다.

뾰족한 암봉을 높이 추켜세우고 있는 사패산을 올려다보며 물이 마른 계곡 옆 포장도로를 따라 올랐다. 한참만에 아담한 절집 원각사를 비껴지나 본격적인 등로로 접어든다. 옆으로 따라오던 계곡이 원각사 뒤편에서 한 줄기 졸졸졸 물을 떨어뜨리는 제1,2 원각 폭포를 내놓는다.


요 며칠 새 공기가 완연히 서늘해졌지만 사패산으로 오르는 비탈길은 몸에 땀이 배이고 긴팔 옷소매를 걷어붙이게 한다. 사패산 정상은 올라선 사패능선 좌측 300여 미터쯤에 자리한다. 한 시간 여만에 가뿐히 사패산 정상에 올라섰다.

북한산 국립공원 북쪽 끝에 자리한 사패산은 조선 선조가 여섯째 딸 정휘 옹주가 유정량에게 시집갈 때 하사한 산이라고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마당처럼 넓고 평평한 너럭바위 위에 놓인 해발 552미터 표지석 뒤로 북한산과 도봉산 준봉들과 능선이 구름 낀 하늘과 또렷이 경계를 그으며 실루엣을 드리우고 있다. 바람은 청량하고 조망은 사방으로 호쾌하여 마음이 절로 인다.

사패산 정상을 뒤로하고 3.5km 거리 도봉산 자운봉 쪽 사패능선으로 발을 옮긴다. 잿빛 구름 사이를 비집고 흰 암릉, 검푸른 능선으로 내리비치는 굵은 아침 햇살이 신비감을 자아낸다.


사패능선은 곳곳에 큰 바윗돌과 어우러진 너럭바위를 내놓으며 산객을 불러 세워 숨을 고르게 하며 눈앞에 장관을 펼쳐 보인다. 회룡 사거리 기점 조금 못 미쳐 능선에서 비껴 앉은 너럭바위 거대한 바윗돌 아래에서 산객들 네댓이 멀리 수락산과 불암산을 조망하고 있다. 동료들과 숨을 고르며 간식을 들던 산객 한 분이 사과 한쪽을 건넨다. 쓴 입속에 들어간 사과 한 조각이 꿀처럼 달다.

별다른 조망이 없고 힘만 허비하게 하는 거칠고 가파른 암릉 아래로 우회하는 길이 두세 군데 있어 산객의 수고로움을 덜어 주고 산행을 한결 편하게 한다. 평탄한 우회로가 끝나면 필시 비탈길과 거친 암릉이 나타난다.

앞서가는 동료들 뒤를 쫓아가며 시시각각 펼쳐지는 장관을 스마트 폰에 담는다. 산행 중에 내가 찍은 사진 속 인물은 천편일률 똑같은 모습, 뒷모습이 대부분이다. 체력은 뒤떨어지고 호기심의 눈길은 전후좌우로 번거롭기만 하니 뒤에 처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생의 삶도 필시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겠지만 빌리 조엘의 노래처럼 '여길 벗어날 수 있다면' 영화배우건 뭐건 새로운 내가 될 여지가 있고 인생이 다채로워질 수도 있지 싶다.

원도봉 암봉 위에 올라서면 사패능선과는 작별이고 포대능선이 시작된다. 도봉산은 거의 모든 봉우리가 암봉이다. 원도봉 아래 망월사가 보이고 앞쪽으로 자운봉 신선대 만장대 등 뾰쪽한 암봉들이 키재기 하듯 솟아 있다. 뒤돌아보면 지나온 암봉들이 푸른 능선 위에 섬처럼 듬성듬성 솟아있다. 암봉과 물들기 시작한 단풍이 어우러져 언뜻언뜻 설악의 일면을 보는 듯도 하다.


도봉산 주봉인 자운봉에서 사패산 쪽으로 1.4km 뻗어있는 포대능선은 능선 중간에 대공포 진지인 포대가 있어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거친 암릉 아래 우회로 비탈에 보랏빛 산부추 서너 송이가 바람에 산들거린다. 작은 벌 한 마리가 산객이 귀찮다는 듯 꽃송이 주위를 떠나지 않고 맴돈다.

철제 가드레일에 의지하며 암릉 비탈을 내려서고 가파른 계단도 지나며 산불 감시초소, 망월사 분기점, 민초샘 기점 등을 지나 716봉 기점에 서면 자운봉 만장대 신선봉 등 봉우리들이 또렷이 조망된다.

네 해 전 찾았던 도봉의 늦가을이 떠오른다. 망월사역을 출발해서 원효사와 망월사를 거쳐 이곳으로 올라섰었다. 암봉마다 산객들이 올라서서 경관을 조망하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이나 다름없다.

포대능선의 백미 가운데 하나는 와이계곡이다. 도중에 마주치면 서로 피할 길이 없어 일방통행인 급전직하 깊고 좁게 패인 바위 절벽, 신선대 만장봉 등을 올려다보며 철제 난간을 붙잡고 바위 절벽을 기어오르는 짜릿한 맛은 무엇에도 비길 수 없지 싶다.

출입이 금지된 자운봉 옆 가파른 신선대 정상으로 길게 늘어선 산객들 줄이 줄어들 기미가 없다. '신선대 정상 726m'라 적힌 푯말을 점령한 듯 젊은 남녀 산객들이 줄지어 기다리는 뒷사람은 아랑곳 않고 온갖 포즈를 취하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지척의 범상치 않은 모습의 해발 740m 자운대를 조망하는 것에 만족하며 오봉 쪽을 향해 발을 옮긴다.

주봉과 칼바위를 비껴지나 오봉 갈림길에서 오봉능선으로 들어섰다. 오봉능선은 산객들이 뜸해서 한결 마음이 느긋하다. 오봉에 올라서니 아래쪽 짧은 능선 위에 나란히 줄지어선 오봉과 함께 멀리 북한산 관악산 등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져 있다.

M이 오후에 예견된 비 예보를 걱정하며 재차 하산을 채근한다. 오봉을 좌측 능선에 두고 하산길로 접어드는데 가늘게 빗줄기가 사선으로 내리친다. 지난번 한강기맥 산행 때 용문산에서 만난 소낙비를 예견했던 대로 이번에도 빗나가지 않았다.

말로만 듣고 사진으로만 보던 여성봉이 능선 가운데 놓여있다. 부부 산객과 모녀 산객이 여성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빗줄기가 굵어지자 모자 창에 땀방울 대신 빗방울이 맺힌다.

빗물에 젖은 철제 가드레일을 붙잡고 가파른 암릉을 내려서며 하산길을 서둘렀다. 오봉탐방지원센터로 내려서며 산행을 마쳤다. 점심때가 조금 지난 시각이다. 졸음과 피곤에 힘겨워하는 몸을 달래며 차를 몰아 집에 도착하니 네 시쯤이다.

당초 밤차를 타고 내려가서 성삼재에서 새벽 세 시경 출발하여 천왕봉을 지나 중산리로 내려서는 지리산 무박이일 종주산행을 계획했었다. 몸살이라도 날 것처럼 다리가 저리고 어깨와 목덜미는 뻐근하고 졸음도 밀려든다. D 산악회에 신청했던 지리산 산행을 취소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을 되새겨 보는 추석 연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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