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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Oct 07. 2020

남한산성의 봄소식

경기지역 초미세먼지 수치가 113㎍/㎥로 '매우 나쁨'이라는 예보다. 금년 이월에 시행된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에서 시도지사가 비영업용 자동차 운행 정지 등 '미세먼지 비상 저감조치'를 발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초미세먼지 평균 농도 50㎍/㎥를 두 배 이상 초과한 수치다. 그래서인지 거리의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전철 8호선 산성입구역에 내렸다. 부근 좁은 골목 한편에서 앳된 여자가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좁고 깊은 그 골목처럼 알 수 없는 고뇌가 얼굴에 서려있다. 니코틴과 미세먼지 중에 어떤 것이 더 몸에 해로울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집을 나설 때 미세먼지와 운동이 몸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가늠해 보며 한편으로 산행이 주저되기도 했었다. 산성 아래 체육공원으로 들어서자 미세먼지에도 아랑곳없이 운동이나 산행 나온 사람들이 적지 않다.

오늘처럼 산성 둘레길을 도는 코스는 정해진 들머리나 날머리가 없으니 마음 가는 대로 걸어볼 요량이다. 산정으로 가는 길은 수없이 많은데 어디로 간들 빠르고 늦음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 산정이라는 목적지에 닿게 마련이다.

체육공원에서 '어린이 숲 체험장'이 있는 오른쪽 능선으로 길을 잡았다. 5부 능선쯤에 올라서자 계곡 건너편 능선 마루를 타고 산성마을로 난 남한산성로와 산성이 눈에 들어온다. 시가지는 절해고도 마냥 미세먼지에 갇혔고 시가지 너머 청계산도 모습을 감췄다.

산길 옆 곳곳 나무에 여러 산악회의 산행 계획 전단이 붙어 있다. 섬, 국립공원, 진달래, 군항제, 산행, 트래킹 등 테마나 컨셉도 다양하다. 수요일이나 목요일 등 평일 산행을 알리는 적지 않은 전단들은 아마도 은퇴자들을 겨냥한 것이리라.

검단산과 제1남 옹성의 중간쯤 능선 마루로 올라섰다. 비스듬히 사면을 따라 실천을 건너고 옹성 쪽으로 다가섰다. 질척이는 산길 위 곳곳에 바다를 건너온 야자수 섬유 멍석이 깔려서 걷기가 한결 수월하다.

산성 안으로 들어서자 성곽을 따라 삼삼오오 걷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그들 중 대부분은 60대로 보인다. 이웃 일본은 15세 이상 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가 31.9%로 UN의 초고령 사회 기준 20%를 훌쩍 넘어섰단다. 노령인구 비율 16.6%인 한국도 고령사회 기준 14%를 넘었고 초고령 사회로의 진입도 목전이다. 머지않아 웰빙을 넘어 '웰다잉' 열풍이 이는 일본을 쫓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될 성싶다.

남장대 터를 지나면 멀리 북쪽으로 산성 안의 행궁과 산성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동문 격인 좌익문으로 내려가는 길에서는 동문과 그 건너편으로 망월사 그리고 산성 아래 송암정 터가 온전히 눈에 들어온다.


산성마을을 가로지르는 남한산성로를 건너면 동문이 맞아준다. 지난 번 찾았을 때 보수공사로 해체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던 동문은 다시 제 모습을 찾았다. 하늘에서 땅으로 하강하는 용이 비탈진 능선 위로 긴 꼬리를 늘어뜨린 듯 성곽을 뻗치고 우뚝 멈춰 선 위용이 늠름하다.

동문에서 가파른 경사를 오르면 황진이 일화가 전하는 송암정(松巖亭)이 있었다는 큰 바위가 산성 바깥 사면에 위태롭게 자리하고 있다. 정조대왕이 여주로의 능행길에 대부 벼슬을 내렸다는 소나무, 대부송(大夫松)은 고사목이 되어 그 옆에서 옛 영화를 회고하고 있다.

산성이 골을 타고 산정 쪽으로 깊숙이 들어간 곳 능선 자락에 장경사가 안겨있다. 인조 때인 1638년 산성 축성을 하는 역승(役僧)들 숙식을 위해 창건되었다는 개원사 한흥사 국청사 천주사 동림사 남단사 등 9개 사찰, 그중 '장경사(長慶寺)'라는 이름답게 유일하게 현존한단다.

목탁 소리에 맞춰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불경 소리가 들려오고 추임새라도 넣듯 까마귀가 숲에서 가끔씩 까악 까악 소리친다. 요사채 마루에 걸터앉아 듣자니 대웅전의 불경 소리가 천도재를 올리는 것이라 멀찍이서 한 번 합장을 하고 발을 옮긴다.

동장대 터 쪽으로 굴곡지며 오르내리는 산성을 따라 걷는 산객들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아 스마트 폰 셔터를 연이어 눌러본다. 풍경 사진 속에 사람이 들어가면 생동감이 있다. 그래서 나는 산행 때마다 주로 뒷모습이지만 일행이나 낯 모르는 산객들을 엑스트라로 많이 등장시키곤 한다. 나도 알게 모르게 여러 번 다른 이들 사진 속 엑스트라가 되었을 것이다.

동장대 터에서 암문을 통해 본성 밖으로 나서서 예전에 가보지 않았던 봉암성과 한봉성 쪽으로 발을 옮겼다. 우뚝 솟은 바위 봉우리인 '벌봉'을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2km여 뻗어 있는 봉암성은 숙종 때 쌓았다는데 곳곳이 허물어지고 무너져 내린 모습이 안타깝다.

동장대 터로 돌아와서 전승문이라 불리는 북문을 지나고 네 개의 문 가운데 규모가 가장 작다는 서문에 다다르면 그 아래 국청사가 포근히 안겨 있다. 국청사 약수터에서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양팔을 벌리거나 위로 손을 뻗치면 닿을 듯 아담한 인왕상이 그려진 대문을 들어서면 대웅전 천불전 삼성각이 마당을 가운데 두고 디귿 자로 앉아 있다. 산문을 사이에 두고 인적 없이 고요한 그 안과 하고 행락객들 발길로 번잡한 그 밖이 극단의 대조를 보여 흥미롭다.

다시 걸음을 옮겨 수어장대 쪽으로 가다 보면 왼쪽에 둔턱처럼 솟은 능선 위에 '병암남성신수비'가 서있다. 정조 때인 1779년 남한산성 보수 감독관 광주부윤 이명중, 석회와 벽돌을 구워 운반하던 감독관, 구역별 책임자 18명 등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바위, 건축 실명제를 보여주는 금석문이다. 나들이객들은 성벽 옆으로 난 넓은 길을 따라 걸을 뿐 '병암(屛岩)' 바위에는 관심조차 없어 보이지만...

청량산의 정상부인 수어장대 마당으로 들어섰다. 인조 때 산성 축성 비를 탕진했다는 누명을 쓰고 죽은 축성 책임자 이회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의 처첩의 억울한 이야기가 서린 매바위와 청량당, 무망루(無忘樓) 편액이 걸린 보호각, 1953년 9월 6일 이승만 대통령이 기념으로 심었다는 전나무 등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시야는 먼지에 갇혀 갑갑하다. 남문이라 불리는 지화문을 통과해서 남한산성로 버스정류장에서 가파른 나무계단을 따라 체육공원 쪽으로 내려왔다. 오가는 산객과 행락객들이 부쩍 늘었고 노인들은 여기저기 정자와 벤치마다 빼곡히 모여 앉아 바둑판을 펴고 세월을 낚고 있다.

춘래불사춘이라는 말처럼 봄은 올 것 같지 않지만 틀림없이 우리 곁으로 찾아오고 나무들도 곧 메마른 가지에 싹을 틔울 것이다. 머지않아 꽃망울을 터뜨릴 약사사 자목련이 문득 보고 싶다.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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