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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Oct 18. 2020

묘봉, 그 오묘한 절경 속으로

속리산 묘봉 산행

토요일, 황금처럼 반짝이는 좋은 계절 가을의 한가운데 시월도 중순으로 접어들었다. 속리산 묘봉 원정 산행을 하기로 한 날이다. 배낭을 메고 등산화를 신고 밖으로 나섰다. 바깥은 아직 어둠이 차지하고 있다. 야탑 버스터미널에서 청주행 첫차를 탔다.

청주터미널에서 친구들과 합류해서 상주시 화북면 운흥리로 이동하는 길 안개가 자욱하다. 시계가 100여 미터밖에 되지 않아 신비로운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한 시간 여 만에 들머리인 운흥리, 일명 묘봉 두부마을에 도착했다.

1970년에 국립공원 제6호로 지정된 속리산은 백두대간이 지나며 동 남 북쪽은 각각 우리나라 3대 강인 낙동강 금강 한강이 지나는 유역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5년 만에 속리산을 다시 찾는다. 더위가 절정으로 치닫던 팔월 초 M과 함께 법주사를 출발하여 세심정, 문장대, 문수봉, 신선대, 천왕봉 등 속리산의 여러 봉우리들을 지나 법주사로 내려서는 원점회귀 산행이었다.

세심정 언저리 입간판에 적혀있던 최치원의 시 한 수가 속리산(俗離山)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말해 주었었다.

'道不遠人 人遠道 山非離俗 俗離山'
“도는 사람을 멀리 하지 않는데 사람이 도를 멀리하고,
산은 세상을 멀리 하지 않는데 세상이 산을
멀리하는구나”

사실 '도불원인(道不遠人)'이란 말은 중용(中庸) 도론(道論)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이니, 속리산은 최치원이 고전을 빗대어 지은 시에서 따온 이름인 것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안개는 걷혔고 공기는 차고 상쾌하다. 운흥리 '두부마을' 식당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예닐곱 개의 봉우리가 어깨를 맞대고 연이어 솟은 모습이 신비롭다. 기묘하고 빼어난 모습이 자연이 빚어놓은 희귀한 수석(壽石) 한 점을 보는 듯한데 여러 암봉 가운데 하나가 묘봉(妙峯)이라는 이름을 가진 봉우리 일 것이다.


마을 뒤 들머리로 가는 골목에 국립공원공단 직원 한 분이 산객을 맞이하며 예약 여부를 확인하고 코로나 19 방역수칙 준수도 다짐받는다.

속리산 국립공원사무소가 자연생태계 보전과 탐방객 안전을 위해 9.1~10.20 기간 속리산 묘봉 일대 탐방예약제를 시행하여 하루 400명까지 입장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을 위해 미리 예약을 한 부지런하고 믿음직한 친구 M이 고마울 따름이다.

마을 뒤 산행 초입은 골짜기를 따라 걷는 몸을 풀기에 좋은 경사가 완만한 구간이다. 물이 마른 계곡을 건너서 계곡을 좌측에 끼고 시작되는 비탈을 오른다. 고군분투했던 지난 한강기맥 운두령~비로봉 구간 산행의 기억을 반추해 보며 다음 산행에 대한 의견도 나눈다.

산행 시작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들머리에서 1.8km 거리 운흥리 안부 능선 위에 올라섰다. 충북과 경북을 가르는 경계로 속리산 서북능선의 주릉으로 상학봉 쪽으로 본격적인 가파른 비탈이 시작된다. 나무계단으로 바뀌며 거대한 암봉을 허리춤으로 휘돌아 오른다. 몸에는 땀이 배이지만 이마에 스치는 공기는 얼음처럼 차고 서늘하다.

비좁거나 거칠지 않은 넉넉한 품으로 산객을 맞는 첫 암봉에 올라서니 전망이 툭 터였다. 앞쪽의 상학봉과 토끼봉을 비롯한 조망이 일품이다. 서북능선은 뒤쪽 미남봉을 끝으로 잦아들지만 그 북쪽으로 도명산 낙영산 가령산 등 여러 산과 수려한 화양구곡을 펼쳐 놓는다. 화양구곡은 남송 때 주희(1130~1200)가 머문 무이구곡(武夷九曲)에서 유래된 말로 퇴계와 율곡도 각각 도산구곡(陶山九曲)이나 고산구곡(高山九曲)을 경영했다니 유도에 대한 각별한 정신을 엿볼 수 있다.

화양구곡의 제5곡 첨성대 아래 냇가의 바위 벽에 명나라 의종의 글씨 '비례부동(非禮不動)'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논어 안연(顔淵)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즉, 자기를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는(克己復禮) 방법을 묻는 제자 안연의 질문에 대한 공자의 대답은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말라"는 것이었다.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를 도와준 명나라 신종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송시열 사후 그의 제자였던 권상하 이선직 등이 1717년에 새겼다고 한다. 대학시절 여름방학을 맞아 붓글씨 동아리 동료들과 화양구곡으로 MT를 가서 탁본을 뜨던 기억이 빛바랜 사진처럼 남아 있다.


청주에서 오셨다는 장년 남녀 네 분, 아저씨는 전경을 조망하고 아주머니 세 분은 너럭바위에 앉아 음식을 나눠 들며 우리에게 옥수수를 하나씩 건넨다. 몇 차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산행을 하고 하산 후 식당에서도 조우했다.

거대한 암봉을 휘돌면 좌측 아래쪽에 토끼봉이 능선에서 떨어져 우뚝 솟아있다. 토끼봉은 서로 겹치고 기대어 선 거대한 바위틈으로 난 개구멍 바위를 지나고 비탈을 한참 내려가야 그 언저리에 닿을 수 있다. 거대한 암봉 아래에서 살찐 토끼 한 마리가 지나 갈만 한 바위틈, 토끼굴을 솟구쳐 오르고 밧줄을 타고 절벽을 올라야 한다.

너럭바위 한편에 모여 앉아 음식을 나눠들며 얘기꽃을 피우는 한 무리 단체 산객은 잊지 못할 가을동화 한 편을 엮어가고 있다. 문장대 쪽으로 상투를 튼 모습의 상학봉과 묘봉을 비롯한 네댓 개의 암봉이 능선 위에 나란히 앉아 있는 광경이 절경이다. 비로봉에 이어 들머리에서 3.7km 거리라는 상학봉, 암릉봉, 묘봉, 그 너머로 관음봉과 문장대 등이 차례로 펼쳐져 있다.

봉우리 사이를 오르내리는 길 곳곳에 철심을 박고 기둥을 세워 놓은 계단은 산행을 한결 편하게 해 주고 산객이 주위 풍광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준다. 이쪽저쪽 단풍이 번지는 산줄기와 충청과 경상의 산야를 조망하며 암봉 두 개를 허리춤 좌우로 휘돌아 앞으로 나아간다. 비로봉에 올라서서 숨을 한 번 돌리고 상학봉 쪽으로 향한다.

비로봉과는 달리 둥그스름한 자연석에 '상학봉 862m'라고 적힌 표지석이 자리한 상학봉은 표지석 뒤에 큰 바위가 자리하여 조망을 가리고 있다. 신선이 학을 타고 하늘로 오른 봉우리,라고 M이 해석한 봉우리 이름에 대해 이견을 달 여지가 없어 보인다.

암릉봉 능선을 우측 아래로 우회한다. 오밀조밀하게 펼쳐진 암릉과 암봉은 홍천의 팔봉산과 닮은 듯하고 기암괴석과 고목이 어우러진 비탈을 오르내리는 길은 흡사 설악산 공룡능선의 축소판 같다.

암릉봉 가장자리 능선에 올라서면 묘봉이 온전히 한눈에 들어온다. 깊은 안부 너머 여러 색깔 천연색 스펙트럼으로 물든 묘봉이 정상부에 기묘한 모습의 바위를 자랑하며 높이 솟아 있다.

묘봉 정상으로 지그재그로 놓인 계단은 고층건물 공사장의 비계처럼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 숲과 어우러져 특이한 풍경을 연출한다. 해발 874미터 묘봉 너럭바위가 가파른 능선 한쪽을 온전히 차지하고 조망을 펼치고 있다. 무채색 암봉, 울긋불긋한 능선, 파란 하늘, 하얀 구름 등이 어우러져 그려내는 풍경은 말로 다 담아내기 어려운 장관이다.


소중한 시절은 짧고 좋은 것은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고 했던가. 산수화 속 선경(仙景) 같이 아름다운 봉우리와 능선을 부지불식간에 다 지나고 이제 본격적인 하산 길이다.

법주사와 운흥리로 갈리는 북가치 고개에서 운흥리 쪽 2킬로 지점 미타사로 향한다. 미타사 쪽으로 내려가는 길 전망이 터인 곳 너럭바위에 앉아 각자 배낭을 열어 인절미, 마늘빵, 컵라면, 송편, 과일 등으로 허전한 배를 채웠다.

평탄한 흙길과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길은 호젓하고 편안하다. '오시는 님 가시는 님 모두 성불하소서'라는 푯말이 맞이하는 미타사는 내려온 길 오른쪽 능선으로 한참을 올라야 만날 수 있다. 비탈길을 올라 특별할 것도 없는 작은 절집 미타사를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미타사 해탈 길 500m'라는 표지판이 눈에 띈다. 어쨌거나 일산일사(一山一寺)의 산행 기치는 실천한 셈이다.

산자락을 빠져나와 절골 전답 사이로 난 지루한 길을 지나고 속리산로를 따라 두부마을로 돌아오며 원점회귀 산행을 마무리한다.


묘봉 두부마을 식당에는 손님들이 삼삼오오 탁자에 모여 앉아 음식을 들고 있다. 그중에는 산행 중에 몇 마디 얘기를 나눈 산객들도 눈에 띈다.

옥수수를 건네준 여성 세 분은 어렴풋이 짐작했던 것과 달리 연세가 75세 전후라는데 믿기질 않는다. 미타사 쪽 길을 버리고 빠른 길로 먼저 내려간 여성 산객 두 분은 알고 보니 동향 분들이라 새삼 반갑기 그지없다.


식당 야외 식탁에 마주 앉아 지나온 묘봉 능선을 바라보며 두부김치 한 접시에 '살 맛 나는 세상 풍악 생막걸리' 한 사발을 걸쳤다. 식당을 나서며 비닐 팩에 든 대추를 몇 통을 사드는데 하 수상한 시절마냥 대추도 올해는 씨알이 굵지 못하다고 주인아주머니가 덤덤하게 덧붙인다. 세상사 음지가 있으면 양지가 있고 희로애락과 흥망성쇠가 교차하니 조급해하거나 어리석게 한 해 농사의 흉풍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농심을 닮고 싶다.


“내가 지난밤 꿈에 나비가 되었다. 날개를 펄럭이며 꽃 사이를 즐겁게 날아다녔는데 너무 기분이 좋아서 내가 나인지도 몰랐다.
......
내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내가 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 호접몽 中 -

장자가 꾸었다는 호접몽처럼 햇볕 좋은 청량한 가을 한나절 꿈속을 거닐 듯 속리산 품 속을 노닌 흥취가 새삼 마음속에서 솟아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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