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비길, 복우물과 인릉산

by 꿈꾸는 시시포스

첫눈이 내린다는 절기 소설이다. 이른 아침 창밖을 내다보니 밤새 내리던 비가 그치지 않았다. 다시 침대로 돌아갔다가 느긋하게 일어나서 아침을 들었다. 토요일인 어제는 다시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 19로 인해 집드리 참석 일정이 취소되어 대신에 갑자기 김장을 했다.

비가 그쳤지만 열 시가 훌쩍 지난 시각 어려워진 원행 대신 집에서 멀지 않은 성남 누비길 미답 구간을 걸을 요량으로 집을 나섰다. 거주하는 곳이 그 어디건 우리들 주변 가까이에는 으레 쉽게 접근이 가능한 산과 둘레길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파트를 나서니 바깥은 온통 늦가을 빛깔이다. 비가 내린 탓인지 물기를 잔뜩 머금은 풍경은 더욱 짙고 무거운 가을색을 띠고 있다. 마을버스를 타고 태평역에 내려 전철로 갈아타고 한 전거장 지나 가천대역에서 내렸다.

복정역 부근 행정복지센터를 출발점으로 삼아 누비길 제7구간인 인릉산 구간을 둘러볼 요량이지만 저번 제1구간 탐방 때 확인하지 못한 복우물을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동네 이름이 세조 때 정호라는 선비의 사연에 나오는 복우물(福井)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마을 뒤 영장산 기슭에 있는 망경암의 복우물(福井)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어 복우물의 실체를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가천대 캠퍼스 앞을 지나 복우물어린이공원 주변을 한참 동안 두리번거리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우물의 위치를 물어봐도 도리질을 하며 알지 못한다는 대답뿐이다. 지나는 행인뿐 아니라 동네 미용실 슈퍼 심지어 파출소에 들러 물어봐도 똑같이 모른다고 한다. 성남대로 옆 솔숲과 공터가 있는 분수광장 가장자리에 누비길 표지판이 서 있지만 복우물에 대한 실마리는 찾을 수가 없다.

복우물을 찾아 헤매다가 찾지도 못하고 거의 한 시간여 만에 누비길 제1구간 시작점이자 제7구간 종점인 기와말(瓦谷) 마을 유래비 부근 복정동 행정복지센터에 당도했다. 궁금증을 풀지 못한 채 성남대로를 건너 나란히 놓인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와 분당-수서 간 고속화도로 고가교 밑을 지나고 탄천 위에 놓인 대왕교를 건너며 누비길 제7구간을 거슬러 간다.


탄천으로 내려서니 수질복원센터에서 탄천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물줄기가 깨끗한 물로 다시 태어난 기쁨을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처럼 높은 소리로 노래하고 있다. 천변 갈대숲에서는 참새들이 무리 지어 낮게 날아올랐다가 다시 내려앉는다.

누비길은 대왕교에서 탄천 상류 쪽 500미터쯤에서 탄천으로 흘러드는 세곡천(細谷川) 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인릉산 서쪽 내곡터널 북단에서 발원해서 성남과 서울의 경계를 이루며 서울공항 북단을 지나 탄천에 유입되는 길이 4.8km 세곡천은 그 이름처럼 폭이 좁다. 합수점에 한 무리 가마우지 떼와 멀찍이 떨어져 앉아 물속을 응시하던 왜가리 한 마리가 날개를 펼쳐 자리를 뜨고 있다.

세곡천 초입 둔턱 위에 서울공항 담장과 경계를 두고 세곡천 힐링텃밭이 있다. 십여 평씩 정연하게 구획된 텃밭에 무 배추 당근 파 등 채소들이 무성한데 걷이를 끝낸 배추밭엔 배춧닢만 군데군데 널브러져 있다.

임시 건물 관리실에서 호시탐탐 텃밭을 넘보는 참새? 들을 쫓는다는 60대 관리인 아주머니는 늦은 아침을 들며 텃밭 위치는 세곡천 건너 성남 쪽이지만 강남구 세곡동에 속하고 관리도 강남구청에서 한다고 한다. 창문으로 지나는 과객을 한 번 흘낏 쳐다보던 그 관리인 아주머니에게 칼을 청하여 주머니에 넣어 온 감을 반으로 잘라 한 쪽을 내미니 반색한다.

저번 주중 전에 없던 11월 폭우로 물이 넘쳤는지 세곡천변 도로 곳곳이 진흙에 덮여 있다. 천변로 한편에서 맨홀 뚜껑을 열고 하수관 상태를 점검하는 분들이 있어 점검 방법 주기 관리기관 등 이것저것 물어보며 일의 전문성에 손을 한 번 추켜 들어 보이고 걸음을 옮겼다.

세곡천 위 세곡 2교를 건너서 서울공항 맞은편 '새말'이란 표지석이 자리한 신촌동으로 들어섰다. 동네에 내걸린 플래카드가 개발을 두고 이해를 달리하는 주민과 LH공사 등 개발사들 간의 알력을 말해준다. 빨래 건조대와 비닐봉지 등을 양손에 든 미얀마에서 왔다는 청년 넷이 총총 발걸음을 옮긴다.

항공기와 여객 수가 크게 줄어든 인천공항과 마찬가지인 듯 이착륙하는 비행기는 한 대도 보이지 않는 서울공항은 적막하기만 하다. 이름과 달리 성남시 심곡동에 위치한 이 공항은 1916년 일제가 건설한 여의도 기지를 모체로 하여 1974년 현재 위치로 이전 설립되었으며 대통령이나 방한 국빈의 전용기, 군 수송기 등이 이용한다고 한다.

서울공항 북문 맞은편 '학생부군'이란 비석 두 개를 지나 광주 이공이라 적힌 묘비명이 자리한 인릉산 자락으로 접어들었다. 이정표가 정상까지 3km라고 알린다. 참나무들이 잎사귀를 모두 떨군 얕은 능선으로 접어들며 냉큼 마스크를 벗고 찬 공기를 크게 한 번 들이켜 본다.


온 산을 뒤덮은 갈색 낙엽, 봄 여름 가을 세 계절을 나뭇가지에서 보내고 겨울이 되기 전 나무와 작별하고 땅에 떨어져 흙으로 돌아가는 낙엽의 융단 위를 걷는다. 사람의 생과 사도 어찌 보면 낙엽처럼 덧없는 것이리라. 새삼 신라 경덕왕 때의 승려 월명사가 죽은 누이의 명복을 빌며 지었다는 노래가 떠오른다.

"삶과 죽음의 길은
여기에 있으매 머뭇거리고
나는 간다는 말도
못다 이르고 갔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에 떨어지는 잎처럼
같은 나뭇가지에 나고서도
가는 곳을 모르겠구나.

아아, 미타찰에서 만날 나는
도 닦으며 기다리겠노라."
- <제망매가>, 월명사 -


내려오는 노산객 예닐곱 분과 스쳐 지났다. 요즘은 마주치는 산객들과 예사롭게 나누던 가벼운 인사조차 서로 간에 거북스럽고 오히려 입을 굳게 다물거나 살짝 고개를 돌리며 지나치기도 한다. '산'이란 이름이 어색하게 조금 높은 능선이나 다름없는 범바위산까지 산길은 줄곧 평탄하다.

스쳐 지나가려던 산길 옆 너른 바위 두서너 개가 자리한 범바위산으로 되돌아왔다. 원탁 벤치에 둘러앉은 노 신사숙녀 세 분이 과일을 들며 이야기를 나누는 목소리가 밝고 유쾌하다. 벤치 옆 바위 하나에 올라 대모산과 구룡산 너머로 보이는 남산타워와 좌측의 관악산과 청계산의 송신탑 등을 한 번 조망했다.

대모산 자락에는 조선 태종과 순조의 무덤인 헌릉과 인릉이 자리할 것이다. 대동여지도 등에 천림산(天臨山)이라 표기되었던 인릉산 이름도 인릉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범바위산은 그 이름처럼 큼지막한 바위들이 능선 좌우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다. 지척에 성벽의 장대처럼 솟아 있는 해발 326.5미터 인릉산 정상으로 올라섰다.

웅크리고 앉은 큰 바위 위에 놓인 낯익은 표지석이 반갑다. 나처럼 배낭을 메지 않고 올라오는 산객 서너 분에게 정상을 양보하고 반대편 능선으로 향한다. 능선 좌측 아래로 둘러쳐진 군부대의 철조망을 따라 휘돌아 걷는다. 철조망이 끝나는 지점 능선 마루에서 시작되는 내리막길은 낙엽이 수북이 쌓여 희미하고 가파르다.


앱을 들여다 보고 잘못 든 방향을 바로 잡으려고 산기슭을 크래버스하며 옆 능선 누비길 코스로 향한다. 잠시 궁리해 보니 남은 구간은 예전에 지나온 길로 별다른 조망도 없이 능선을 길게 휘도는 길이다. 마음을 돌려 신구대 식물원이 있는 대왕저수지 쪽 짧은 길로 방향을 바꾸었다.

노루 한 마리가 불청객을 피해 저편 능선 쪽으로 서둘러 자리를 옮긴다. 낙엽 융단 위를 미끄러지듯 내려가서 신구대학 식물원 쪽으로 내려섰다. 산기슭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식물원을 입구 쪽으로 내려가며 여러 가지 꽃들과 꽃꽂이 전시회장 등을 둘러봤다.

산책처럼 짧은 산행을 마치고 대왕저수지 가장자리 정류장에서 341번 버스를 타고 짧은 귀로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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