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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Dec 18. 2020

소설 <남한 산성>을 읽고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춥고 혹독했을 것이다. 김훈 작가의 <남한산성>은 병자호란이라는 역사적 사실 속 주인공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소설이다. 1636년(인조 14년) 12월, 청 태종이 12만 대군을 일으켜 12.9일 압록강을 건너고 파죽지세로 한양 목전에 당도하자 인조는 도성을 버리고 12.14일 밤늦게 남한산성으로 들었다.


소설은 최후의 결전지요 피난처인 남한산성으쫓겨 들어간 조선의 왕과 위정자들이 생존과 죽음, 명분과 실리, 자존과 굴욕이라는 서로 타협할 수 없는 극단의 명제를 놓고 다투고 번뇌하다가 결국 항복을 하기까지 47일간 참담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그려내고 있다.


처절한 죽음과 생존의 전쟁 이야기를 일상의 어조로 관조하는 듯 담담히 읊조리지만 역설적으로 당시 상황은 독자에게 더욱 생생하고 참혹스럽게 다가온다. 그러면서 말 못 하는 벙어리가 가슴속 가득히 간직한 울분을 삭이듯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계속해서 많은 질문을 던진다.


거대한 침략의 파도, 그 앞의 민중들은 고통도 삶의 한 부분 인양 담담히 감내하고 지배계급인 통치자들은 주화(主和)와 주전(主戰)이라는 상반되는 논리로 갈린다. 기실 극한의 상황 아래서 두 논리 모두 생존과 죽음, 명분과 실리, 자존과 굴욕이라는 궁극의 갈림길에서 어떤 것이 생존과 자존을 지킬 수 있는 길인가, 라는 질문에 대하여 서로 다른 해석을 하고 있는데 지나지 않는다.


결사항쟁을 고집한 주전파 김상헌, 치욕도 삶이 있어야 그 고통스러운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주화파 최명길, 승산이 없는 상황 아래서도 군인의 본분을 지키려는 전시 총사령관 김류, 결사항전의 자세를 잃지 않는 수어사 이시백, 번민 속에 결단을 주저하는 인조, 꺼져가는 조국의 운명 앞에서 고통받는 민초들, 이들 모두가 삶과 죽음이라는 명제 앞에서 자기의 입장에서 나름대로의 주장에 대한 당위(當爲)의 이유를 찾고자 고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청병(淸兵)에게 길을 잡아주고 곡식이라도 얻어 볼 요량으로 피난을 가지 않았던 송파나루의 늙은 사공, 그의 도움으로 강을 건너고 청병을 돕지 못하게 칼로 뱃사공을 베는 김상헌, 적에게 빌붙어 사욕을 채우려는 관아 노비 아들 출신 정명수, 초가지붕 뜯어 말에게 먹이고 마누라 속곳까지 벗겨 군병을 입힌 말 그대로 “할 만큼 한” 대장장이 서날쇠,....


전쟁의 아수라장에서 소설 속 어떤 사람은 삶을, 어떤 이는 자존(自尊)을, 어떤 이는 사직(社稷)을, 또 어떤 이는 사욕(私慾)을 생각한다. 임금과 지배계층의 몸부림도 결국은 살자는 것이고 살되 굴욕적이지 않게 살자는 것이지만 자존과 삶을 동시에 얻을 수 없는 극한 상황이 문제인 것이다.


"지배자들이 일으킨 전쟁 속에서도 그저 땅을 파고, 쟁기를 만들고, 아이를 낳고 낳아 끝까지 남을 것"이라는 소설 속 인물 나루의 말처럼 민초들에겐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라는 사치스런 질문은 무의미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에겐 삶과 아름다움, 삶과 더러움은 서로 비교할 수 있는 명제가 아니다. 아름다움도 더러움도 모두 ‘삶’이 존재해야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자기 백성들, 부녀자들의 비참한 절규를 듣지 않기 위해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투항대(投降臺)로 걸어간 인조는 오랑캐 황제에게 피가 나도록 이마를 땅에 찧으며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치욕스러운 항복의 예를 올렸다. 60여만 명의 부모형제 아들 딸들이 청나라로 끌려간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인조의 치욕스러운 항복 절차는 사치스러운 의식에 불과했다고 하겠다.


남한산성은 단순한 산성이 아니라 우리 선조들이 격은 치욕의 상징이다. 유비무환이라는 만고의 진리를 등한시한 혹독한 댓가다. 우리 땅과 우리 민족이 이민족의 침략의 말발굽 아래 처절하게 유린당한 지배계층의 무능에 대한 질책이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는 담담하지만 뼈 있는 경고다.


총칼 들고 포연과 선혈이 낭자하는 전쟁만이 전쟁은 아니다. 평시에는 ‘유비무환’이라는 단어는 한낱 모토에 지나지 않지만, 막상 유사시에는 이미 때는 늦고 생존과 자존을 담보할 수 없게 된다. 병자년 남한산성에서의 전쟁은 이미 끝났으나 아직도 끝난 것이 아니다. 역사의 아픈 교훈 앞에 눈감는 우리들 마음속 망각이라는 둥지에서 굴욕이라는 알을 품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남한산성> 속 소설가 김훈의 글은 생각을 강요하는 글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글이다. 그래서 아름답게 읽힌다. 또 다시 겨울이다. _2010 겨울 초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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