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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Jun 22. 2021

상하이 초여름

쑤저우 허(苏州河) 강변 라이딩

가파른 한 주의 비탈을 오르고 맞는 주말은 힘든 산행 중 만나는 옹달샘처럼 큰 위안이다. 계림공원 역에서 지하철 12호선으로 갈아타고 한쫑루(汉中路) 역에서 내렸다. 쑤저우 허(苏州河)를 따라 황푸강 쪽으로 도보나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며 주변을 둘러볼 요량이다.

그 명칭이 등장한 것이 백여 년에 불과한
쑤저우 허(苏州河)는 우쏭강(吴淞江) 하류 상하이 경내 유역을 지칭한다. 우쏭강(吴淞江) 수원지는 쑤저우 오강구(吴江区) 송릉진(松陵镇) 남쪽의 타이 후(太湖)이다. 그곳에서 출발하여 동쪽으로 강남 운하를 지나 상하이 황푸 공원 북쪽 외곽 백도교(白渡桥)에서 황푸강과 합류한다.

원래 황푸강은 우쏭강의 지류였으나 소위 '황포탈송(黄浦奪淞)'이라는 말처럼 주종의 관계가 뒤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우쏭강에는 1856년 건설된 웨이얼쓰교(威尔斯桥)와 1906년 건설된 외백도교(外白渡桥)를 비롯해서 모두 31개의 다리가 놓여 있다.


한쫑루(汉中路) 역에서 쑤저우 허 강변으로 다가가서 남북 고가로(南北高架路) 다리 밑을 지나면 1912년 지은 복신면분공사(福新麵粉公司) 건물이 다가온다. 아파트와 새로운 현대식 건물들과 대조적인 모습으로 역할을 잃은 채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강변 빌딩 숲 가로수에서 매미 울음소리가 여름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올 들어 처음 듣는 매미 소리다.

강 건너편 콘크리트 강둑 난간에는 왜가리들이 드문드문 간격을 두고 자리를 잡고 앉아 물속을 주시하고 있다. 신갑교(新閘橋)를 건너니 '팔호교 예술공간 1908 양창(八号桥 艺术空间 1908 粮仓)'이라는 붉은 벽돌 건물이 맞이한다. 건물 1층에 미술 전시관과 전 세계 각종 브랜드의 병맥주가 백여 대의 키높이 냉장고를 가득 채우고 있는 대형 맥주집 등이 들어서 있다.

강 건너편에 오래되어 보이는 대형 건물이 궁금증을 불러일으켜 시쟝루교(西藏路桥)를 건넜다. '쓰항 창고(四行仓库, Sihang Warehouse)'라는 이 건물은 1937.10.26-31일까지 항일 격전지로 측면 벽면에 총탄 자국이 선명히 남아있는데 현재는 항전 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1937년 7월 7일 북경 교외의 루거우챠오(卢沟桥) 사변을 빌미로 중국 침공을 시작한 일본은 중국 전역으로 전선을 확대하여 중·일전쟁으로 돌입했다. 일본군이 상하이로 진공한 날은 1937.8.13일로 소위 '쏭후(淞沪)' 항전을 촉발하였다. 같은 해 10월 26일 심야에 제88사단 262 여단 524 연대 대원 420여 명은 최후의 결전을 위해 쓰항 창고에 진을 치고 10월 31일까지 사흘간 일본군과 격전을 치렀다고 한다.

2021년 말 국내에서도 개봉된 영화 <800>의 실제 배경인 쓰항창고(四行仓库)

굴욕의 역사는 감추고 외면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기도 하겠건만 중국인들은 기록과 사실을 고증하여 생생히 되살려 놓고 있다. 이곳뿐 아니라 남경의 '침화일군 남경 대도살 위난 동포 기념관(侵华日军 南京大屠杀 遇难同胞 纪念馆)', 즉 '난징대학살 기념관'을 방문했을 때에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전율을 경험했었다.

중국의 역사는 대륙을 무대로 한족과 이민족들 간의 흥망과 성쇠가 교차해 왔는데, 중국인 특히 한족만큼 사실의 기록에 철저했던 민족은 지구 상에 찾아보기 쉽지 않다. 방대한 사적이나 유물, 그리고 지금까지의 유구한 역사가 말해 주듯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역설적으로 중국의 미래를 짐작케 한다.

저쟝류루교(浙江路桥)를 건너 수저우허 남쪽 베이징동루(北京东路) 부근 골목길을 자전거로 누비며 골목 풍경을 스마트폰에 담아 본다. 오토바이 자전거 차량 사람들이 서로 뒤섞인 좁은 골목에는 제대로 전문가용 카메라를 손에 든 와국인과 현지인들도 가끔 눈에 띈다. 어떤 골목은 중국 각 지역별 음식점들이 모여 있고, 어떤 골목은 전기 기계 공구 등 점포들이 줄지어 있고,  다른 골목엔 카페나 간이 즉석음식 코너가 늘어서 있기도 하다.


자그마한 산동 차이(山东菜) 식당에서 미판(米饭)에 닭고기 조림을 반찬 삼아 저녁을 들고 자전거를 지쳐 왔던 길을 되짚어 한쫑루(汉中路) 역으로 갔다.

바둑판처럼 도시를 구획 지으며 뻗은 크고 작은 도로가 중국 내 여느 다른 도시들처럼 하나같이 성(省)이나 도시(城市) 이름이 붙어 있어 개성이 없고 인위적인 느낌이 든다. 그에 비하면 세종로 충무로 퇴계로 율곡로 가로수길 청계천로 인사동길 순라길 등 저마다 개성을 간직한 우리의 길 이름은 얼마나 정겹고 친근한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상하이의 여름은 잦은 비에 습하고 더운 날의 연속이라지만 오늘은 어쩐 일인지 상하이 날씨답지 않아서 다행이다. 하루 종일 맑고 쾌적하여 제대로 힐링이 되는 하루다. 머지않아 매미 울음소리가 온 도시를 뒤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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