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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Dec 21. 2021

상하이 크리스마스 즈음

상하이 한낮을 유영하다

한국에는 에제 눈이 내렸다는데 일요일인 오늘 상하이는 봄날 같다. 집 근처에서 자전거를 지쳐 중산 시루(中山西路)를 거쳐 창닝루(长宁路)로 접어들었다.

차량 오토바이 자전거가 어우러진 도로는 평일보다는 한가롭고, 거리에는 가족 단위의 행인들이 많이 눈에 띈다. 목줄을 한 애완견을 한 마리씩 데리고 건널목을 건너는 젊은 부부의 모습은 휴일이면 자주 눈에 띄는 전형적인 '상하이 니즈'의 모습이다.


상가 빌딩 앞 광장과 백화점 내부 데코레이션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한가지 어딘지 어색하고 의아한 점이즈음이면  거리마다 캐럴송이 울려 퍼질 한국과는 달리 별다른 추위가 없지만 음악도 없는 이상한 겨울 왕국에 온 듯 썰렁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백화점 건물(龙之梦购物中心) 안으로 들어서서 에스컬레이터를 바꿔 타며 위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5층쯤이던가. 자동 안마의자 판매점이 두 곳 있는데 한 곳은 일본 제품, 다른 한 곳은 상하이에서 생산되는 제품이라 한다. 판매원의 설명을 들으면서 각각 몇 분씩 몸을 맡겨 보았다. 기계의 손맛은 매섭기가 조금 차이가 나 보이는데 가격은 중국산이 일본산의 절반 수준인 만 위엔대이다.


일본과 일본인을 죽도록 미워하면서도 한때 마이마이, 캠코더 등 '일제(日制)'라면 사죽을 못쓰던 옛 시절이 떠오른다. 지금이야 일본 제품들과 대등하거나 오히려 더 뛰어난 성능과 디자인을 자랑하는 국산 제품들이 수두룩하고 그들에게 느끼던 경제적 열등감도 버린지 오래다. 저들이 과거 제국주의 침탈의 만행을 진정으로 반성하여 그들에 대한 증오의 감정도 던져 버릴 수 있는 날도 왔으면 좋겠다.


어린 시절 시골 온돌방에서 선친의 등과 다리를 밟아주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그 아이처럼 나도 내 아들이나 딸이 내 등을 밟아주었으면 하던 때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어깨엔 항상 무거운 짐을 지고 사셨던 선친은 당신 자식들에겐 그렇게 살갑진 않았어도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시고 잔정도 많은 분이셨다. 집에 한 대 들여놓으면 몸이 찌뿌듯할 때에도 아쉬움이 없을 듯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빌딩을 빠져나왔다.

중산공원으로 들어서서 벤치에 앉았다. 많은 시민들이 여유롭게 거닐고 노래를 하고 춤을 추고 배드민턴을 치고 장기를 두고 산책을 하고 나무에 등치기를 하기도 하면서 공원의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고 있다.

공원 한편에 '상하이 응취력 공정(凝聚力工程)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말로 풀어쓴다면 "결속력(단결) 사업 박물관"이랄까? 마오쩌둥,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 등 역대 지도자들의 상하이 방문 자료와 어록을 비롯하여, 지역 발전을 위해 애쓴 주민과 지도자들의 발자취를 엿볼 수 있는 자료들이 너른 박물관 전시홀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컬러풀한 비늘의 잉어들이 유유히 유영하는 연못을 지나 공원 북서쪽 가장자리 가까이에는 롤러코스트를 비롯한 놀이기구들이 갖춰진 어린이 놀이터도 자리하고 있다. 상하이에 백오십 개가 넘는 공원이 있다는 자료를 본 적이 있다. 방문해 보았던 여러 공원들이 어린이 놀이터,  연못, 정자, 조각품, 원시림처럼 울창한 숲 등이 어우러져 있어 부럽기 그지없었다.


듬성듬성 잎사귀를 달고 있는 키 큰 플라타너스가 드문드문 서있는 공터마다 중년 남녀들이 서로 짝하여 마주 서서 유려한 음악에 맞추어 빙글빙글 돌며 왈츠를 춘다. 그 옆 두 줄로 서서 군무를 추는 예닐곱 명 아주머니들 몸동작은 졸졸 흐르는 시냇물에 몸을 맡긴 채 두둥실 떠내려가는 나뭇잎처럼 자연스럽고 유연하다.

위위엔 루(愚园路) 상하이 푸춘 샤오롱(上海富春小笼) 식당 안은 빈자리가 없고 식당 문 앞에서 사거리까지 줄이 50여 미터 길게 늘어서 있다. 아마도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임에 틀림없다. 지도 앱을 검색해 보니 사무실 근처 난펑청(南丰城) 건물에도 점이 있으니 언제 한 번 찾아가 봐야겠다. 황금빛 지붕이 인상적인 징안쓰(静安寺)를 지나 신자루(新闸路) 버스 승강장에서 걸음을 멈추고 벤치에 앉아 잠시 다리를 쉬게 했다.

석문로(石门路) 사거리에 있는 라오 상하이 훈툰 푸(老上海馄饨铺)에서 지차이러우(齐菜肉) 훈툰 한 그릇을 시켰다. 넓은 꼬리지느러미를 가진 금붕어처럼 생긴 작은 훈툰이 씹을 틈도 없이 입안에서 저절로 으깨진다. 뜨겁고 말간 국물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며 찬 공기에 얼얼해진 몸을 금세 훈훈하게 해 준다.

봄날처럼 따사로운 초겨울 휴일의 상하이 한낮을 가로질러, 난징시루(南京西路) 역에서 전철 13호선을 타고 집으로 향한다. 집에 도착하니 아직 해가 남아 있어 커피 한 잔 하며 마음껏 여유를 부려볼 수도 있지 싶다. 머라이어 캐리의 "Santa Claus Is Comin' to Town" 캐럴송을 곁들이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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