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도협 트래킹을 마치자 마자 쏟아지기 시작하던 비가 잠시 그쳤다. 리장 고성(丽江古城) 성곽 안 객잔에 짐을 풀고 고성을 둘러보기로 했다. 면적 약 7.3㎢의 이 고성은 송말 원초(宋末元初, 13C후반)부터 건설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을 북쪽 샹산(象山)에서 마을로 흘러드는 세 줄기 강물을 식수와 용수로 사용한다고 한다. 수로와 붉은색 각역암(角砾岩)으로 포장된 얽히고설킨 골목을 따라 옛 건축물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고성의 동남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숙소의 근처 골목은 인적이 뜸하다. 상업지역 사방가(四方街), 관리들 처소였던 목부(木府), 오봉루(五凤楼) 흑룡담(黑龙潭) 문창궁(文昌宫) 설산 서원(雪山书院) 보현사(普贤寺) 접풍루(接风楼) 등 볼거리가 수두룩하지만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사방가로 향했다. 맑디 맑던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소나기처럼 굵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나시족의 문화를 잘 나타내고 있는 온갖 꽃으로 장식된 창문과 거리, 고풍스러운 옛 가옥들과 즐비하게 늘어선 가게들, 수로 위에 놓인 354개의 돌다리 등이 이곳이 '동방의 베니스' 또는 '다리의 도시'라고 불리는 이유를 말해준다.
한산하던 굽이굽이 골목을 지나 쓰팡지에(四方街) 입구로 들어섰다. 어디에서 몰려들었는지 좁은 골목은 발 디딜 틈 없이 인산인해다. 세상의 모든 엑스트라들을 한 곳에 모아 놓은 영화 세트장처럼 보이기도 하고, 이곳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는 에니 영화 <쎈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의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난샹 구전(南翔古镇), 치빠오노가(七宝老街), 우쩐(乌镇) 등 중국의 여느 옛 마을 거리들처럼 쓰팡지에도 사람에 밟히고 밀리며 소란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내일 일정을 정하지 않고 비워둔 탓에 골목의 여러 여행사 부스를 둘러보다가 중국 국제여행사에서 옥룡설산 일일 패키지여행을 예약했다. 밤은 깊어 가는데 비는 그치지 않아 사진을 보며 감탄하던 고성 시가지 야경은 제대로 감상도 못하고 서둘러 숙소로 돌아와서 내일 일정에 대비했다.
모기와 씨름하다 잠든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았다. 우려와는 달리 몇 날 며칠을 두고 내릴 듯하던 굵은 비는 밤새 잦아들고 거짓말처럼 뽀얀 뭉게구름을 드리운 하늘이 옥빛으로 빛나고 있다.
소설 <서유기(西游记)>에서 손오공이 갇혀 벌을 받았다는 옥룡설산(玉龙雪山)을 보러 가는 날이다. 06:45경 호텔 부근에서 15인승 버스에 올랐다. 리장 주변 산들은 '구름의 땅'이라 일컬어지는 운남답게 백옥처럼 빛나는 구름이 피어오른 하늘을 이고 있다.
시 외곽 여행자 안내센터에는 옥룡설산에 오를 많은 관람객들로 북적인다. 정상부에 만년설을 이고 있는 이 설산은 해발 5596미터로 최고 지점 전망대가 해발 4680미터의 고지대라 주의사항 교육을 귀담아듣고 나눠주는 방한복과 산소통을 챙겼다.
버스가 초소를 지나면서 탑승객들에 대한 체온 검사와 젠캉마 확인 후 08:10경 설산 자락으로 접어들었다. 좌측 창문으로 소나무 숲 능선 키 낮은 잡목 능선 뒤로 머리에 하얀 눈을 쓴 거대한 회색빛 암봉이 한눈에 눈에 들어온다.
해발 2,990미터쯤에 위치한 설산 탐방의 전초기지 격인 안내소에 내려 나시족 복장 여성 안내원으로부터 나시족의 역사 문화 종교 등에 대해 장황하다는 생각이 들만큼 상당한 시간 동안 설명을 들었다. 홍 황 녹 백 청 각기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 오색 깃발 중 흰색 깃발을 골랐다. 안내에 따라 동행들과 함께 옥룡설산을 향해 두 손에 바쳐 들고 저마다의 소원을 기원하고 이미 빈자리가 없이 빼곡한 기둥에 단단히 묶었다.
우리 일행이 옮겨 탄 대형 버스가 옥룡설산 동쪽 사면 소나무 숲 사이로 난 아스팔트 길을 따라 버거운 엔진음을 내며 고도를 높여 갔다. 10여 분만인 09:24경 해발 3,322미터 승강장에 도착하여 길게 늘어선 관람객에 떠밀려 가며 8인승 케이블카에 올랐다.
날씨는 거짓말처럼 맑고 쨍쨍한 햇빛은 강렬하게 내려 쬔다. 설산은 검은 머리에 희끗희끗 보이는 새치처럼 정상부에 흰 눈을 이고 있고, 설산 위 시리도록 파란 하늘엔 목화꽃처럼 순백색 뭉게구름이 미동도 않고 머물러 있다.
케이블카는 채 10분도 걸리지 않은 짧은 시간에 고도차 1,200여 미터를 단숨에 치고 올라 정상 봉우리 어깨춤 완만한 경사면 해발 4,500여 미터 정거장에 멎었다. 고도 급변한 탓인지 가슴이 답답한 느낌이 들고 가벼운 어지럼증도 느껴진다. 나무데크 계단을 따라 두터운 외투 차림의 많은 관람객들이 느릿느릿 산정 쪽으로 발길을 옮기며 산소통을 코와 입으로 가져가기도 한다. 고도가 적힌 표지석과 이정표가 4,506미터 4,576미터 4,680미터 세 곳에 놓여 있는데, 나무데크 계단 어디서나 나무 한 그루 없이 암벽과 무채색의 능선을 드러낸 설산이 한눈에 들어와서 따로 전망대가 필요치 않아 보인다.
해발 5,596m 최고봉 선자두(扇子陡) 봉을 비롯해서 모두 13개 봉우리로 이루어진 옥룡설산은 마치 한 마리의 은빛 용이 누워 있는 모습을 닮았다고 한다. 봉우리 너머에는 어제 이른 아침부터 한낮까지 8시간 여에 걸쳐 약 20km를 걸었던 호도협을 사이에 두고 해발 5,396m 합바설산(哈巴雪山)이 솟아 있을 것이다.
어제 차마고도 트래킹 때 만났던 윈난 젊은이는 합바설산 정상에 오른 사진을 내게 자랑스레 보여주었지만, 신성시되는 옥룡설산 정상은 누구에게도 발길을 허락지 않는다고 하니 일면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급강하하는 케이블카 속에서 산 위쪽을 올려다보니 천상의 세계에 잠시 발을 내디뎌 한바탕 노닌 꿈에서 깨어난 듯 멍한 느낌이다.
나시족 전통가옥 식당으로 이동해서 둥근 식탁에 대여섯 명씩 끼리끼리 둘러앉아 훠궈와 몇 가지 반찬을 곁들여 점심을 들었다. 광저우에서 두 딸과 함께 여행을 왔다는 아주머니 일행과 유쾌하게 얘기를 주고받으며 식사를 마쳤다.
옥룡설산을 배경으로 해발 3100미터에 자리한 거대한 붉은색 암벽에 지그재그로 길을 낸 무대에서 펼쳐지는 <붉은 수수밭> 등의 명작을 남긴 영화감독 장예모(張藝謀)가 연출했다는 인상 여강(印象丽江) 공연을 관람했다.
공연은 차마고도 마방, 나시족 남자들의 술판, 이루지 못한 남녀 간의 사랑, 노래와 민속 춤, 북춤과 제사, 나시족과 관광객들이 하나되어 올리는 기원과 응답 등 6개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이 지역 여러 소수민족 수 백 명이 직접 출연하여 삶에 대한 애정과 도전, 눈물과 회한, 차마고도에 얽힌 설화 등을 약 1시간에 걸쳐 펼쳐 보인다.
장대한 설산을 배경으로 화려한 전통 복장 차림의 인물들이 일사불란한 몸동작으로 펼치는 웅장한 스케일의 공연은 수 천 명 관람객들과 하나가 되어 옥룡설산을 향하여 두 손을 모으고 서로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공연이 끝날 즈음 그들의 열과 성을 다하는 공연과 '이곳에 다시 올 수 있기를' 기원하는 진심 어린 모습에 찔끔 눈물이 삐져나온다.
옥룡설산에서 눈이 녹아 흘러내리며 계곡과 호수를 이룬 란위에구(蓝月谷)로 이동하여 매혹적인 비췻빛 물빛과 멀찍이 물러나 있는 설산의 또 다른 매력에 한동안 빠져 들었다.
다섯 시경 시내를 향해 출발했다. 옥룡설산과 란월곡 등 황홀한 풍치에 매혹된 때문인지 고도 탓인지, 아니면 피로 탓인지 뒷머리와 목 윗부분이 둔기에 얻어맞은 듯 뻐근하다. 리장 고성 밖 시내에서 서둘러 저녁을 들고 배낭을 챙겨 리장 역으로 이동했다. 시내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위치한 산뜻한 역사 앞 광장의 벤치에 앉아 다음 행선지 따리(大理)의 기차역에서 멀지 않고 비교적 저렴한 숙소를 예약하고 20:15발 열차에 올랐다. 피로에 잠이 솔솔 몰려오는데 시속 120km 전후로 달리는 열차는 아쉬운 내 속내를 읽었는지 좀처럼 속도를 내지 않고 리장을 뒤로하고 더디게 더디게 어둠 속을 달린다. 2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