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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Jul 25. 2021

피서산장(避暑山庄)

北京回忆(2)

북경의 여름 더위는 겨울의 추위 못지않게 만만찮다. 황제들이 북경 북쪽 외곽인 청더(承德)에 피서산장을 짓고 그곳에서 즐겨 여름을 나곤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팔월도 하순으로 접어들었으니 더위도 수그러 들면 좋겠다.


잠시나마 북경의 더위를 피해보려는 심사로 단기 유학차 북경에 머던 朴형과 함께 청나라 황제들이 그랬던 것처럼  청더 투어를 하기로 했다. 

이른 아침 전철로 북경역으로 가서 07:10발 청더행 열차에 올랐다. 북경에서 260㎞ 떨어진 청더는 청나라 황제의 별궁이자 피서지인 피서산장을 비롯해서 그 주변의 외팔묘 즉 부인사, 보녕사, 안원묘, 보타종승지묘, 수상사, 수미복수지묘, 광연사, 부선사 등 절과 사당 등 볼거리가 많다고 한다.


네 시간 만에 청더역에 도착하여 좁은 출구 빠져나왔다. 수많은 여행객들 사이에서 호객을 하는 현지 숙박업소와 여행업소 직원들이 분주하다. 그 틈에서 우리 이름이 적힌 푯말을 든 젊은 여성이 얼른 눈에 띈다. 우리 일행을 위해 북경의 여행사에서 주선해 준 현지 가이드 시아(夏) 양이다. 다른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패키지 관광의 경우 반드시 현지의 가이드를 이용해야 한다고 한다.

가이드와 인사를 나누고 택시를 타고 하룻밤 묵을 이위엔반점(易元饭店)으로 가서 짐을 풀었다. 본격적인 탐방을 위해 첫 행선지인 보녕사(普寧寺)로 향했다. 전각으로 올라가는 계단 난간에 자물쇠들이 빈틈없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계단 아래에서 드릴로 열쇠에 이름을 새겨서 파는 사람이 있는데, 연인들이 자물쇠에 자신들의 이름을 새겨 난간 줄에 채운 후 열쇠는 멀리 던져버린다고 한다. 난간 너머 멀리 던져버린 열쇠를 다시 찾을 일이 없을 것이고 설사 찾으려 해도 찾기가 난감할 터이다. 난간 줄에 굳게 채운 저 자물쇠 주인들의 염원처럼 저들이 맺은 사랑의 맹서도 깨지지 않고 영원했으면 좋겠다.


입장료를 내고 보녕사 경내로 들어서니 중국의 다른 사찰들처럼 이곳에도 기념품점, 점 보는 곳, 향 파는 곳 등이 있어 세속화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수수깡처럼 굵고 긴 향을 한 움큼씩 양손에 들고 불상 앞에서 사르며 건강, 재물, 승진 등을 기원하며 연신 허리를 굽히는 모습은 어느 사찰이나 다를 바 없다.


불교나 도교가 종교를 넘어 기복의 대상이 되어 생활의 일부가 된 듯하다. 삼국시대 촉의 장수 관우를 황제로 숭배하여 재물이 들어오기(发财)를 기원하는 차이션(財神)으로 모시는 관제묘(關帝庙)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호텔로 돌아와서 점심을 든 후, 1시경에 가이드와 함께 호텔 건너 편에 있는 피서산장의 정문으로 들어섰다. 청나라의 황제들이 여름 궁전으로서 집무를 보았던 전각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놀이열차처럼 생긴 전동차를 타고 피서산장의 높은 곳으로 올랐다. 라싸의 포달라궁을 모방한 건축물인 보타종의 보타종승지묘와 멀리 도깨비 방망이를 곧추 세워 놓은듯 한 모양새의 경추봉 등을 조망했다. 시간이 허락되어 일정에는 없던 경추봉(磬锤峰)과 보락사(普乐寺)도 차례로 둘러보기로 했다.


경추봉은 그 정상에 방망이처럼 우뚝 솟은 암봉이 있어 봉추산(棒槌山)이라고도 불린다. 산밑 평지 입구에서 케이블카로 15분여 만에 산정 바로 아래까지 닿는다. 승덕의 어디서든 한눈에 들어오는 남근처럼 생긴 60m에 달하는 높이의 암봉을 그 바로 아래에서 올려다 보는 느낌이 남다르다.


피서산장 북동부 방추산 기슭에 자리잡은 보락사는 청 건륭제 때인 1766년 창건된 사찰로 북경 천단(天坛)을 닮은 금빛 둥근 지붕의 본전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보락사를 둘러보고 나니 가늘게 내리던 빗줄기가 굵어 졌다. 승용차로 호텔로 돌아와 저녁을 들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시내를 둘러보고 10시가 조금 지나 호텔로 돌아왔다.


연암 박지원(1737~1805)은 1780년 건륭제의 칠순연 축하를 위한 사행단 일원으로 이곳 등을 여행하고 열하일기(熱河日記)를 남겼다.

그가 쓴 <열하일기>로 인해 '청더' 하면 쉽게 연상되는 단어가 '열하(热河)'이다.  청더를 남북으로 가르지르는 무열하(武烈河) 서쪽에 온천이 많아서 겨울에도 강물이 얼지 않는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그가 선진 문물의 수용과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실학을 강조한 북학파의 영수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지 싶다.


이튿날, 전날 많은 비가 내려 자못 걱정되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날씨가 맑아 마음이 놓인다. 7시 20분경 짐을 챙겨 식당으로 내려가니 식사를 하고 있던 夏 양이 오늘은 자기 대신에 짱(張) 양이 우릴 안내하게 되었다고 한다.


보녕사를 한 번 더 둘러보고 그 출구 쪽을 향해 옛 복장을 한 판매원들이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전각과 간이 점포들을 스쳐지났다. 여행의 즐거움을 맛본 흡족한 마음으로 다음 행선지인 보타종승지묘(普陀宗乘之庙)로 향했다. 이 건물은 건륭제가 1767년 황태후의 8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지었다는 건물로 티베트의 포탈라궁(布达拉宫)을 닮아 소포탈라궁, 또는 승덕의 포탈라궁이라 불린다.


언덕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서 전각들이 늘어서 있고 맨 윗부분에 본전이 한껏 위용을 자랑하며 서있는 티벳풍의 색다른 사원이다. 산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늦여름 더위를 일거에 날려버릴 듯 더없이 쾌청하고 시원스럽다. 금으로 도금을 했다는 궁전 지붕에 일제 침략시 약탈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 씁쓸한 역사의 뒷모습을 음미하게도 한다.

포탈라궁을 뒤로하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관제묘에 들렀다. 관제묘 한켠 서방(书房)에 어떤 사람이 화선지에 붓글씨를 쓰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朴형과 같이 각각 붓글씨 한 장씩을 요청했더니 한나라 소열제 유비가 아들 유선에게 남긴 유훈이라는 문구를 일필휘지 유려하게 써내리고 나서 말미에 '짱윈(張雲)'이라는 자신의 이름까지 적어 넣는다.

"勿以惡小而爲之 勿以善小而不爲”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악한 일은 하지 말며, 아무리 작다고 할지라도 선한 일을 그만두지 마라.

글씨를 받아들며 50위엔을 드리니 이름을 묻더니 서두에 '贈 张**'이라 적고 "功到自然成"이라는 글귀 하나를 더 안겨준다. 좋은 볼거리와 함께 평생 마음에 담아 두어도 좋을 글귀까지 받아드니 흡족하기 그지 없다.

호텔로 돌아와서 짐을 챙겨 들고 , 張 두 문화해설사(導旅)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작별하고 승덕 역으로 향했다. 승덕에서의 감흥과 피곤으로 밀려드는 잠, 서로 밀고당기며 씨름하는 영육(灵肉)을 달래며 북경역에 도착했다.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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