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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Aug 15. 2021

봄의 도시 쿤밍과 서산

@photo: 팔선과해도(八仙過海圖)

봄의 도시 쿤밍에서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을 맞는다. 창밖 밤새 내린 비에 젖은 베이징루(北京路)와 주변 빌딩군이 차분해 보인다. 단독 군장 차림처럼 스마트폰과 여권 등 필수품만 챙겨 들고 08:30경 호텔을 나서서 시산(西山) 삼림공원 풍경구로 향했다. 윈난성에서 제일 큰 호수로 쿤밍해(昆明海)로도 불리는 띠엔츠(滇池) 서쪽 시산의 절벽 위에 있는 롱먼(龙门)을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구름의 고장' 답게 비가 그치자 하늘엔  구름이 드리웠고 공기는 서늘하여 산에 오르기에 딱 좋은 날씨다. 배수가 잘 되지 않아 도로 곳곳에 물웅덩이처럼 빗물이 고여 있고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30여 분만에 시산 풍경구 여행객 센터에 도착해서 입장권 셔틀버스 포함 75원 관람표를 구입했다.

버스는 09:23경 출발하여 시산 동쪽 기슭 포장도로를 따라 고도를 높여 간다. 아스팔트 포장도로 아래쪽 나무데크 보도에는 우산을 들고 산정 쪽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어제가 중복(中伏)이었고 오늘은 "염소뿔도 녹는다"는 24절기 중 가장 덥다는 12번째 대서(大暑) 날이다. 산 아래에서 19도였던 버스 온도계가 17도를 가리키고 있다. 버스는 15분 여 만에 태화산장 종점에 도착했다.


'용문승경(龙门胜景)'이란 글귀가 새겨진 패루(牌樓)를 지나 용문 풍경구로 접어들었다. 패루 옆에 명나라 때의 여행가요 지리학자요 문인이었던 서하객(徐霞客, 1586-1641)의 <유태화산기(游太华山记)>석비가 자리하고 있으니 그도 필시 이곳을 다녀갔음에 틀림없다.

다시 관람차로 옮겨 타고 롱먼(龙门)으로 오르는 절벽을 깎아서 낸 좁고 가파른 계단 길 직전에서 내렸다. 어느새 비는 그쳤고 스쳐가는 공기는 썰렁하여 몸을 잔뜩 움츠리게 한다. 발아래 펼쳐져 있는 디엔츠(滇池)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벼랑길을 따라 롱먼 쪽으로 향한다.

삼청각(三清阁)을 지나 좁고 가파른 계단을 따라 오르면 도관(道馆) 등 열세 개 건물들이 처마 밑 제비집처럼 절벽에 의지해서 겹겹이 박혀 있을 것이다. 원나라 때 운남을 지배한 양왕이 이곳에 천보애(千步崖) 돌계단을 쌓고 산에 올라 피서궁(避暑宫)을 열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네 개의 얼굴과 여덟 개의 팔을 가진 북두칠성의 어머니像을 모신 두모각(头母阁)이 제일 먼저 관람객을 맞이한다. 녹존은 업장을 소멸시켜 준다는 녹존성군(䘵存星君) 등 칠성(七星)의 조상(彫像)들 모습도 보인다. 이 작은 공간은 별이 인간의 길흉화복과 수명을 지배한다는 도교의 믿음에서 유래한  칠성신앙(七星信仰)의 세계다.

계단을 조금 더 오르면 디엔츠를 한눈에 내려다 보고 자리한 전무전이 나온다. 무대제(真武大帝)가 전각 중앙을 차지하고 있고 '팔선과해(八仙过海)'와 '노자 출관도(出关图)'라는 벽화가 좌우 벽에 그려져 있다. 팔선은 모든 신선들을 비롯해서 남녀노소 빈부귀천 등 인간 군상을 다양하게 상징하는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노자(좌)와 진무대제(真武大帝)

노자가 푸른 소를 타고 함곡관 밖으로 떠나는 모습을 그린 <노자 출관>는 우리나라에서도 ​겸재 단원 등 많은 유명 화가들이 화폭에 담은 주제이다. 김홍도의 <군선도(群仙圖)>에 빠져 한 참을 들여다보던 옛 기억이 떠오른다.

별유동천(别有洞天) 석문을 지나니 명나라 가정(嘉靖, 1522-1566) 시기에 조성된 봉황암(凤凰岩) 석굴이 내부 벽면과 천장에 음각된 여러 시문과 글귀를 보여준다. 그 뒤쪽으로 난 돌계단을 오르면 중국 고대 신화의 북방 신인 현무의 부모인 무(真武)이자 도교에서 무제군(真武帝君)으로 받드는 성부모(圣父母)를 모신 전각이 자리한다.

이쯤이면 디엔츠(滇池)와 접한 시산(西山)의 절벽은 온통 고대 전설과 도교(道教)사상이 얼버무려진 세계임을 짐작할 수 있다. 푸른 소 위에 앉은 노자상을 모신 노군전(老君殿)으로 오르는 계단길 절벽에 맺혔던 빗물이 이마로 뚝뚝 떨어진다.

남극선옹(南极仙翁)을 모신 남극궁에 올랐다. 이 인물은 도교 신화와 중국의 여러 민속화에 주로 등장하는데, 사슴이 있는 숲을 배경으로 흰 수염에 용머리 지팡이와 복숭아를 양손에 각각 하나씩 든 노인의 모습이다. 행복과 장수를 상징하는 '수성(壽星)'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돌출한 능선 마루에 자리하여 디엔츠가 한눈에 들어와 입에서 '하오지르(好极了)'라는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온다.

'보타승경(普陀勝景)'이라는 글귀가 적힌 작은 문을 들어섰다. 이미 예상치도 못한 기이하고 빼어난 승경(勝景)에 혼을 빼앗긴 듯한데, 자비로써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인 관음보살의 주거처인 보타(普陀)의 경계로 들면 어떤 빼어난 승경(勝景)을 펼칠지 자못 기대가 된다.

계단을 올라 문으로 들어서자 절벽을 굴처럼 파내고 강렬한 원색의 단청으로 채색된 전각이 맞이한다. 전각 안 자운동(慈雲洞)이라는 글자 아래 금빛으로 칠한 자애로운 모습의 조상이 앉아 있고 무릎 아래엔 천진스러운 모습의 어린아이 둘이 놀고 있다. 전각 바깥 절벽 난간에 서면 수직 절벽을 뚫어 낸 길 저편에 '용문(龍门)'이라는 글씨가 적힌 작은 문이 보인다.

용문으로 들어서니 도광 2년(1822)에 쓴 '달천각(達天閣)' 글씨 위에 걸린 '하늘이 거울 같은 바다와 맞닿아 있다(天臨海鏡)'는 현판이 눈길을 끈다. 바다처럼 넓은 디엔츠(滇池)를 하늘에 걸린 절벽에서 내려다보는 감흥을 한 마디로 잘 표현한 글귀가 아닌가 싶다.

용문(좌상)과 소석림(하)

자운동처럼 벽을 뚫어 공간을 만든 달천각은 도깨비 형상의 괴성(魁星)과 그 좌우에 관성제군(关圣帝君)과 문곡성군(文曲圣君)을 모신 칠성신앙의 세계를 펼쳐 놓았다. 괴성은 북두칠성의 첫째 별에서 넷째 별까지를 일컫는데, 그중 북두칠성의 4번째 별인 문곡성은 문운(文運)을 주관하는 별로 '문곡성의 화신'이라는 강감찬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다.

오른손으로 긴 턱수염을 잡고 있는 관성제군(关圣帝君) 상을 보면서, 청나라 황실 수호신으로 숭배된 뒤부터 전국적으로 관성묘(關聖廟)가 없는 마을을 찾아볼 수 없고, 유·불·도를 비롯 다양한 민간신앙으로 널리 숭앙되고 있는 관우는 중국 역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천운동(穿雲洞)이라 적힌 절벽 계단 동굴로 접어들어 절벽 길의 막바지인 천대(天臺)를 지나고 운애첩취(雲崖疊翠) 응문(鷹問) 벽해영월(碧海映月) 등 언제 누가 새긴 것인지 알 수 없는 절벽 글귀들의 뜻과 풍광을 음미하며 호연정(浩然亭) 요빙정(遙騁亭) 등 정자들도 스쳐 지났다.

절벽길을 벗어나 '속세가 없고 광활하다(曠朗無塵)'는 현판이 걸린 산문으로 들어서서 나란히 자리한 서너 개 매점 중 하나에서 오이를 사서 갈증과 심심한 입을 달랬다. 울창한 숲 사이로 난 경사진 계단길을 한참 동안 올르니 능선 마루에 자리한 능허각(凌虛閣)에 닿았다.

스마트폰 고도계가 해발 2,318미터라고 알리는 이곳은 사방이 툭 트여 디엔츠가 한눈에 들어오고, 특히 산정 쪽으로 '작은 석림(小石林)'이라 불리는 바위 숲으로 이어지는 암릉이 이어진다. 깊게 파이고 매끄러운 바위 숲 위를 밟고 건너뛰며 정상 쪽으로 100여 미터를 갔다가 능허각으로 돌아와서 하산길에 올랐다.

중국 국가 <의용군 행진곡> 작곡가 네얼 像

올라갈 때 들러지 않았던 연우정(煙雨亭)과 옥황각(玉皇閣)을 거쳐 삼청각과 용문승경(龙门胜景) 패루 밖으로 나섰다. 하늘을 찌를 듯 쭉쭉 뻗은 나무들이 울창한 왼쪽 산기슭에 작곡자 네얼(聂耳, 1912-35)의 묘소를 둘러보았다. 이곳 쿤밍 출신인 그가 작곡한 <의용군 행진곡(义勇军进行曲)>은 후일 중국의 국가(国歌)가 되었는데 황망히 23세에 요절했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비는 그쳤고 옅은 구름이 드리워진 하늘에서 내려쬐는 햇빛이 강렬하다. 조금 후면 봄의 도시 쿤밍을 뒤로하고 삼복더위로 한껏 달아올랐을 상하이로의 귀로에 올라야 할 것이다.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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