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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Aug 18. 2021

수향(水鄕) 주가각(朱家角)

@세월은 물 따라 흘러가고

가을의 문턱 입추(立秋)가 지났으니 더위도 한풀 꺾일 것이다. 상하이에 온 지 반년이 다 되어 간다. 여덟 시가 조금 못되어 집을 나서서 10호선과 17호선을 갈아타며 지척 거리 주가각(朱家角)으로 향했다. 한 시간 여만인 아홉 시가 조금 지나 주가각역에 도착했다.


주가각은 상하이에서 가장 오래된 수향(水鄕)으로 '상하이의 베니스'라고 불린다고 한다. 약 7천 년 전 신석기시대 때부터 춘추전국시대 때까지의 유물이 인접한 띠엔샨호(淀山湖)에서 출토되었다는 사실이 긴 역사를 말해준다.

이틀 전 사무실 부근 텐샨 의원에서 코로나19 백신(北生,  북경에서 생산한 시노팜)을 맞았다. 예약도 없이 찾아가서 신청서 작성, 혈압 체크, 접종, 30분간 관찰 등 한 시간 반 만에 마쳤으니 참 신통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 일이든 되는 것 하나 없이 느려 터졌다는 의미의 '만만디(慢慢的)'라고 얍잡아 보던 생각을 무색케 한다. 평소 정상치보다 높았던 혈압은 겨우 기준치를 통과했는데, 걱정과는 달리 접종 후 부작용이나 별다른 이상 증세가 없어 다행이다.


곧장 띠엔푸허(淀浦河) 위로 놓인 방생교 쪽으로 향했다. 명나라 때인 1571년에 처음 세워졌고 1812년에 중건된 방생교는 길이 70.8m, 폭 5.8m의 모 있는 돌다리이다. 상하이에서 가장 길고 가장 크고 가장 높은 아치형 다리로 '상하이 제1교'라고 불린다고 한다.


바이두(百度) 검색에 따르면 주가각(朱家角)의 인구는 약 9만 5천여 명이고 장족(壯族), 묘족(苗族), 토가족(土家族) 등 31개 소수민족들도 약 1,1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시장 골목을 지나 강과 운하가 교차하는 모퉁이 길에 자리한 술 소매점에 진열된 공부가주, 상하이 노주(老酒), 팔월계화(八月桂花), 취자미(醉紫薇), 천리표향(天里香), 비자소(妃子笑) 등 귀에 익은 듯 생소한 이름이 적힌 술병들이 눈에 들어온다.


앳된 아가씨와 터울 심한 언니뻘 점원은 들르는 사람 하나 없이 한적한 오전 시각에 안으로 들어와서 의자에 잠시 몸을 맡기는 과객이 싫지 않은가 보다. 병뚜껑 만한 작은 시음용 컵에 화주 황주 고량주 등을 차례로 담아 건네준다. 모두 부근 상해에서 생산되는 술이라고 한다. 서너 잔 받아 들다가 문득 백신 접종 유의사항이 떠올라 손사래를 치며 몸을 일으켰다.

사람들로 북적였을 평소와 달리 한산한 주가각 거리

폭이 좁은 운하 건너편 길옆 과식원(植園)으로 들어섰다. '거꾸로 사자 정자(倒挂子亭)'라고도 불린다는 오각정을 비롯해서 구곡교(九曲), 타작마당, 백복정(百亭), 관어대(觀魚), 장서각 등 생각보다 너른 정원 안을 조목조목 둘러보았다.


우리와는 반대로 서고동저 지형인 중국 대륙, 그중에서도 바다에 접한 상하이는 최고 높다는 셔산(佘山)이 겨우 100미터 남짓이다. 상하이를 비롯한 쑤저우 항저우 등 화동지방의 예원(豫) 졸정원(拙政園) 등 이름난 정원들은 모두 대개 평평한 곳에 자리하고, 그렇다 보니 일부러 호수나 수로를 파서 그 위에 다리를 걸치고 바위나 흙으로 산을 쌓아 정자를 앉힐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을 것이다.


산기슭이나 언덕배기에 의지하고 자연 하천이나 계곡 등과 조화를 이루는 우리의 전통 정원과는 달리 중국의 정원은 형태와 구조가 자못 천편일률적이고 인공미가 물씬 풍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과식원(課植園) 내 화랑에 전시된 상하이 출신 화가인 Ann Yen(颜正安, 1957~)의 작품들 몇 점을 만난 것은 예상치 못한 덤이다. 배우였던 그녀는 1983년 미국 뉴욕대학에서 영화감독을 전공하고 리안 감독의 후배가 되었다가 유화로 전향해 2003년 홍콩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상하이 주재 미국 총영사와 미 상공회의소 상하이 회장 등을 지낸 케네스 재럿(Kenneth Jarrett)과 결혼한 인생 역정이 조금은 독특해 보인다.


거리로 나서기 전에 매점에 들러 자수 작업을 하고 있던 중년 여성에게 이것저것 물어 궁금증을 풀면서 기념 삼아 '수묵 강남(水墨江南)'이라는 표제가 붙은 자수 그림 한 점을 샀다. 난징과 장쑤성 양쩌우 등에서 터진 코로나19 확진자 소식 때문인지 한낮 열기로 점점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꾸쩐(古) 마을 좁은 거리엔 그리 많지 않은 관람객들만 간간이 오갈 뿐 한적하다.

과식원(课植園) 모습

운하 거리 끝 지점쯤에서 눈에도 잘 띄지 않는 곳 전지(剪紙) 명인 첸난쥔(陳南君)의 작업실을 발견한 것은 뜻밖이다. 1945년 7월 쑤저우 강변의 작은 재봉사 집에서 태어난 그는 돌잡이 때 작은 가위를 잡았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왜 또 작은 재봉사냐"라고 푸념했다지만 유전 때문인지 그는 어릴 적부터 가위 장난을 너무 좋아했고 명인의 경지에 올랐다고 한다.


일곱 살에 시작된 전지 작가 경력은 올해로 70년째가 된다고 한다. 띠를 묻기에 '롱(龍)'이라고 하자 손바닥 크기의 색종이를 네 겹으로 접어서 중지 손가락 길이의 작은 가위로 수염 뿔 입 발가락 몸통 비늘 등 날아가는 용의 모습을 유려하게 오려 낸다. 명인의 작업 모습을 코앞에서 지켜보는 감동이 자못 적지 않았다.

 

작업 중 틈틈이 전지 작가로서의 자신의 유명세와 벽에 걸린 작품들의 이름과 가격 등을 몇 차례 되뇐다. 오려낸 명함 크기의 용 모양 전지 작품을 코팅해서 건네주는 그에게 10위엔을 위챗으로 건네주었다. 명인의 경지에 올라 한때 각광을 받기도 했겠지만 늙은 예술가의 생활은 궁핍하고 조금은 쓸쓸해 보였다. 그의 제자들 네댓 명도 그 자신처럼 지금은 관광지로 바뀐 쑤저우의 꾸쩐(古) 통리(同里) 등의 작은 작업실에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전지 명인 첸난쥔(陈南君)과 작품들

여름 하늘의 구름 흘러가듯 나그네들은 스쳐가겠지만 구쩐(古)은 천 년 고목처럼 의연히 나이테만 하나씩 보태어 갈 것이다. 수 천 년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켜온 수향(水) 주가각을 뒤로하고 귀로에 오른다.


천 년 옛 나룻 길 위엔 발자취 겹겹이 쌓였고

생 꿈처럼 하늘에는 구름이 솟아올랐구나

뒤돌아보면 세월도 물처럼 흘러가 버렸으니

사공이! 서두를 것 없소 천천히 노 저어 가세.


千年古路上足迹叠叠 / 像一生天上云高升起

月也如水逝 / 艄公慢慢划桨别着急繁。

<游朱家角> 仁山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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