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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Oct 11. 2021

충칭 선녀산 황홀경

중경삼림 속으로

출행 첫날 타이트한 일정에 밀려든 큰 파도 같은 노곤함에 휩쓸려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홍진 대도(红锦大道) 위통 빈관(渝通宾馆)으로 향했다. 어제 예약을 해둔 천생삼교(天生三桥) 일일투어 버스가 출발하는 곳이다. 예정된 시각에 2층 높이 투어 버스가 중간 집결지를 향해 출발했다.

어제 둘러보았던 홍야동(红崖洞) 지에팡베이(解放碑) 등이 몰려있는 위쫑구(渝中区)의 동수문장강대교(东水门长江大桥) 아래 후광 회관(湖广会馆) 주차장 앞은 시내 곳곳 여행자들이 모이는 집결지이다. 이곳에서 모여든 투어객들이 관광지별로 버스를 갈아 탄 후에 한 대씩 목적지를 향해서 출발할 것이다.


혼자 하는 여행은 때로 고독하기도 하지만 자유자재 자기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둘이서 나서는 여행은 이인삼각(二人三角)과도 같아서 서로 마음만 잘 맞으면 빠른 의사 결정이 가능하고 서로 의지도 되어 가장 이상적이라 할 수 있다. 셋 이상이 함께 하는 여행은 늘어난 다리 수만큼이나 마음의 개수도 늘어나니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없으면 고역이 되기 십상이다. 중국에 온 후 셋이서 하는 여행은 처음이지만 어제 첫날 일정을 성공적으로 마쳤으니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일행이 탄 버스가 08:00경 출발했다. 버스가 머리 위로 보이던 동수문 대교를 건너 창장(长江)의 남쪽 남산 기슭의 고가도로를 타고 시 외곽으로 벗어나려 한다. 복잡하게 얽힌 수십 층높이 교각 위 고가도로가 마치 우주도시를 벗어나 은하의 세계로 향하는 비행선에 타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할 지경이다.

빌딩 숲 지붕 위에 '충칭 39중(中庆39中)'이라는 표시판이 보인다. 중학교를 아라비아 숫자로 1부터 차례로 넘버링하는지 궁금하지만 만일 그렇다면 너무나 몰개성한 작명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옮겨 탄 투어버스의 안내양은 높은 확성기 소리로 귀가 따갑도록 주의사항과 충칭 소개 등 장황한 안내를  토해낸다. 버스 출발과 함께 시작된 안내는 끊일 줄 모르고 30여 분이 지나도록 계속되자 소음이 되어 괴롭고 짜증마저 치민다.

충칭과 석주(石柱)를 잇는 시위 고속도로(石渝高速)에 갇힌 버스가 좀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주춤거린다. 일주일간 이어지는 국경절 연휴를 맞은 중국 대륙 곳곳의 명승지들은 여유커(游客)들로 넘쳐날 것이고 우리는 그런 여행지 중 하나로 뛰어든 것이다.

은백 고속도로(银百高速)로 들어서니 정체가 조금 풀렸다. 중국 내륙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이 고속도로는 닝샤후이족자치구의 인촨(银川)을 기점으로 출발하여 간쑤성, 중칭시, 구이저우성을 경유하고, 광시 자치구의 바이써(百色)를 지나 베트남과의 접경지인 징시룽팡진(靖西龙邦镇)까지 이어진다. 장장 2281㎞로 아직 일부 구간이 완공되지 않았지만 2030년까지 전 구간을 개통할 예정이라고 한다.

산기슭에 일군 텃밭, 계곡 위로 놓인 아찔한 높이의 교량,  다리 아래로 흐르는 하천, 간간이 지나는 터널 등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는 풍경이 마치 우리나라 경춘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기분이 들게 한다. 진녹색 침엽수림과 무성한 초목으로 덮인 높고 낮고 산군은 가을빛이라곤 찾아볼 수 없어 계절을 어림짐작하기 어렵다.

빠오마오(包茂) 고속도로로 바꾸어 타고 길게만 느껴지던 7,140미터에 달하는 바이윈 터널(白云隧道)을 빠져나오고 창바(长坝) 터널을 지나니 시원스레 질주하던 버스가 주춤거리다 멈추어 선다. 앞 유리창으로 가까워진 풍경구로 밀려가는 도로 위 긴 차량 행열이 눈에 들어온다.

버스는 길고 짧은 터널 서너 개를 더 지나고 나서야 선녀산 자락으로 접어들었다. 12:20경 우롱 뤼여우취(武隆 旅游区) 입구로 접어든 버스가 굽이굽이 지그재그로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길 옆에 듬성듬성 늘어선 갈대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린다.

초입에 들어선 지 30여 분 만에 해발 1200미터쯤의 선녀산 정상부 아래 마을에 도착했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몇 개 그룹으로 나눠져 같은 그룹 여행객 예닐곱 명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점심을 들었다. 말을 트고 얘기를 나누어 보니 중칭 뻔디런(本地人)도 있고 안후이 황산에서 온 여행객도 있다.


검표소로 들어서서 인근 지역에서 발견된 기암괴석들을 모아 놓은 전시관을 둘러본다. 수 천만년 전엔 이곳이 물속이었음을 알려주는 온전한 모습의 수생 식물과 거대 물고기 화석들이 생기를 불어넣으면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듯하다. 그중 수 십 종류의 음식 모양 돌조각을 커다란 탁자에 차려 놓은 '천하제일 석연(天下第一石宴)'이라는 전시품은 이 지역에 실로 다양한 종류의 희귀한 돌이 채광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버스로 7분 거리의 유리 바닥 전망대로 이동하는 중 버스 안 모니터에서 보여주는 우롱의 풍치는 내리치는 햇살만큼이나 강렬하고 기대를 부풀게 하기에 충분하다. 깊은 계곡을 굽어보며 깎는 깎아지른 절벽에 천 길 유리 바닥 전망대 보리탸오타이(玻璃眺台)가 걸려 있다. 전망대 가장자리로 걸어가니 유리가 꺼지지나 않을까 하는 기우가 들고 오금이 저려온다.

14:25 쯤 유리 전망대를 뒤로하고 다음 관람지인 천생삼교(天生三桥) 입구로 들어섰다. 해발 1300여 미터에서 좁고 가파른 계단을 따라 400여 미터 가량 고도를 낮추어 가니 사면이 천애 절벽으로 둘러싸인 너른 평지가 나온다. 천부관역(天福官驿)라는 이곳이 영화 <트랜스포머>를 촬영했던 현장임을 알려주려는 듯 대형 로봇 하나가 오른편 절벽을 관통하여 뻥 뚫린 천룡교(天龙桥)를 배경으로 위풍당당하게 서있다.

천룡교는 좌측 가파른 절벽 사이를 따라 가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내는 청룡교(青龙桥) 흑룡교(黑龙桥)와 함께 천생 3교로 불린다. 깎아지른 200여 미터 높이 절벽 가운데로 뻥 뚫린 길이 나 있는 형세가 SF 어드벤처 영화에나 나올법한 거대한 성벽에 대문을 뚫어 놓은 듯 기이하다. 시간과 자연이 빚어 놓은 풍치가 오묘하고 놀라울 따름이다.


한 시간 여만에 천생삼교 계곡을 빠져나와 카트 차량과 버스를 옮겨 타며 고도를 높여 용수협(龙水峡) 입구로 이동했다. 이곳도 중국 내 대개의 산악지역 풍경구들처럼 위에서 계단을 따라 계곡 아래로 깊숙이 내려가야 진경(真景)과 마주할 수 있다.

깎아지른 절벽 사이 협곡으로 난 계단을 따라 한 발 한 발 내딛지만 벼랑에 의지한 계단길은 좀처럼 끝날 줄을 모르고 이어진다. 한참만에 협곡으로 내려서니 계곡 아래쪽에 우렁찬 소리와 함께 폭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수천 길 벼랑 위에서 쏟아져 내리는 이 폭포는 은하 비폭(银河飞瀑)으로 산등성 위 하늘에서 고운 은하를 쏟아붓는 것처럼 허공을 가르는 물줄기가 눈부시다.

삼악산 등선 계곡을 열 배 높이 100여 배 길이로 이어놓은 듯 웅장한 기벽 암곡(奇碧岩谷) 사이로 청자빛 물이 흐르고, 보이지 않는 바람이 협곡 사이로 지나가 얼음골에 들어온 듯 달아오른 몸을 식혀 준다.


다섯 시쯤 협곡으로 내려서서 40여 분만에 비탈진 협곡 계단길이 끝나고 경사가 느려진 계곡 잦아든 물소리와 함께 출구 쪽으로 느린 발길을 옮긴다. 조물주가 큰 도끼로 내리치고 세세한 손길로 빚어놓은 듯 경이로운 비경 속에서 넋을 빼앗겼다가 제정신으로 돌아온 느낌이다.
 
하나둘 투어객들이 선계를 빠져나와 제자리를 모두 채우자 버스가 충칭을 향해 출발했다. 종일 따가운 햇살을 내리치던 태양은 서산 너머로 모습을 감췄고 산기슭을 타고 오르는 길 건너편 저 멀리 민가에서 저녁연기가 하얗게 피어오르고 있다.

예전에는 충칭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영화 <중경삼림(重庆森林)>이 충칭에 대한 모호한 궁금증을 유발했었다. 구릉과 산이 어우러진 지형에 빌딩이 숲을 이룬 충칭 시내와 기암절벽과 협곡이 별천지를 이룬 이곳 선녀산의 천생삼교와 용수 협곡을 보고 나니 충칭은 빌딩과 숲이 우거진 밀림의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녀산 자락을 굽이굽이 휘돌며 고도를 낮추어 가는 버스 차창 밖 저 멀리 산군이 파도가 밀려오듯 겹겹 늘어서 있다. 버스는 밤 9시 반이 지나서야 우주선이 내려앉는 활주로처럼 교각 위에 걸린 아찔한 고가도로를 통해 충칭으로 들어섰다. 황홀경에서 거대한 빌딩 숲의 도시로 돌아오니 충칭의 밤이 또 다른 황홀경을 펼쳐 보인다. 21-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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