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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Oct 13. 2021

태산 일출

北京回忆(1)

북경 꽝화루(光华路) 사무실에서 오전 업무를 끝내고 베이징역으로 향했다. 13:30발 지난(济南) 행 잉워(硬臥) 열차는 18:00경 지난 역에 도착했다. 지난해관(济南海关) 부속 호텔에 딸린 식당(餐厅)에 마련된 저녁을 들고 곧장 황하 대교를 거쳐 타이샨(泰山) 들머리에 닿았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황제였던 진나라 시황은 기원전 221년 중국을 통일하고 서둘러 이곳 태산에 올라 하늘과 땅에 제사를 올리는 봉선(封禪)의 예를 올렸다고 한다. 진시황이 동이(东夷)의 땅에 가까운 이곳을 찾은 까닭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고 한다.

중국 해관이 세계 관세기구(World Customs Organization) 산하 국제기구인 RILO AP(Regional Intelligence Liaison Office for AP)를 자국에 유치한 원년인 올해 한중일 홍콩 등 다국적 직원들의 MT 장소로 이곳을 택한 것은 나름 의미심장해 보인다.


다음날 일출을 보기 위해 23:00경 시작된 태산 등정, 헤드렌턴을 켠 채 끝날 줄 모르고 계속되는 수많은 계단을 오르고 올랐다. 중천문(中天门)을 거쳐 남천문( 南天门)에 닿으니 날은 벌써 바뀌어서 시계가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다. 남천문 부근은 일출 시간이 다가오면 산정으로 오르는 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대기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남천문에서 태산 산정까지는 20여 분이 소요된다고 한다.

산 밑은 초여름 날씨인데 산정 부근은 싸늘한 기운이 감돌아서 얇은 점퍼를 입고 있음에도 한기가 느껴진다. 다행히 남천문에는 가벼운 끼닛 거리를 파는 식당과 더불어 텐트며 두터운 옷가지를 대여하는 점포들이 들어서 있다. 인민해방군의 겨울 외투처럼 보이는 두터운 옷을 빌려서 입었지만 차가운 기운이 뼛속으로 스며든다.

컵라면으로 추위를 달래며 일출 때를 기다리다가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새벽 5시경 일출객들이 일제히 산정을 향해 발길을 서두른다. 너른 산정 동쪽 가장자리를 빼곡히 메운 해맞이 산객들의 모습이 정작 일출보다 더 장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你是什么地方人吗? 어느 지방에서 오셨어요?
我是 东方人。 동쪽 지방 출신입니다.
啊! 你是 山东人。 아! 산동 출신이군요.
不 我是 韩国人。 아뇨. 한국인입니다.

중국은 땅이 넓고 공식적인 민족 수도 한족을 포함해서 56개에 달하여 지방마다 사투리가 워낙 독특하다. 그래서인지 서투른 중국말로 중국인들과 대화를 시도할 때면 종종 듣게 되는 '어느 지방 출신이냐?'는 질문에 유머스럽게 대답하곤 한다.


날씨가 맑아서 일출을 보기에는 더없이 적당한 날이다. 5시 35분경 태양이 옅은 구름 위로 모습을 드러내자 여기저기에서 일제히 탄성이 터져 나온다. 정상 동쪽 가장자리 뒤쪽 높은 벼랑에 올라앉아 산정을 가득 메운 해맞이객들 너머로 떠오르는 일출의 장관과 산정의 풍광을 찬찬히 감상했다.

발길을 돌려 산정 부근에 자리한 사원들을 둘러보고 다시 남천문으로 향했다. 남천문에서 중천문까지는 케이블카로 10여 분이면 닿는다. 산정에서의 해맞이, 그 짧은 일출을 보기 위해 4시간 여에 걸쳐 어두운 한밤중 해발 1,545미터 산정으로 놓인 수많은 돌계단을 올랐다. 그 계단을 묵묵히 오르던 헤일 수 없이 많은 사람들, 태산에 대한 중국인들의 숭앙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버스가 닿는 중천문에서 태안(泰安)으로 이동하여 택시로 환승한 후 태안 해관에 도착하니 채 오전 9시가 되지 않은 이른 시각이다. 해관 식당에서 미리 준비해 놓은 아침을 들고, 뒤에 합류한 일행과 더불어 지닝(济宁)으로 향하다.

지닝에 도착한 일행은 해관 훈련원 숙소와 그 앞 호텔에 각각 나뉘어 짐을 푼 후, 해관에서 준비한 오찬을 들었다. 해관이 베푼 맥주 등 주류를 곁들인 성찬에 밤 동안의 피로를 녹이며 취기가 돌았다. 호텔로 돌아와 지친 몸을 누였는가 싶었는데 오후 6시경 전화 벨소리에 잠을 깨어 지닝 해관 식당으로 달려갔다.


만찬 후 지닝 시내 중국광장으로 산책을 나서다. 6~70만여 명이라는 이곳 인구에 비해 엄청나게 큰 광장의 규모가 놀랍다. 호젓한 봄날의 밤 기운이 온몸을 점령했던 고량주 기운을 씻어내는 듯 하다.  광장에 들어선 도자기 야시, 야외 경극 공연, 唱을 가르치고 배우는 시민들, 각종 책을 파는 야시(夜市) 등을 유유히 둘러보았다. 다음날 아침, 만찬에 뒤지지 않을 성대한 조찬을 들고 차에 올라 취푸(曲阜)로 향했다.

지닝에서 취푸까지는 족히 1시간 여 거리다. 세계 4대 성인 가운데 한 분으로 추앙받는 공자의 탄생지이자 그가 묻힌 곳을 직접 방문하니 마음이 들뜬다. 먼저 공묘(孔廟)와 공부(孔府)를 둘러보았다. 황제를 능가하는 공자와 공 씨 가문의 위용을 어렵잖게 가늠할 수 있다. 오찬을 든 후 둘러본 공 씨 가문의 씨족 공동묘지인 공린(孔林)은 나무가 울창하고 꽃들이 만개했다.


3시경 지닝으로 돌아와서 단기유학을 와서 북경에 머물다가 이번 여정에 동행한 朴兄과 시내를 잠시 돌아보았다. 해관장이 베푼 만찬에 참석한 후 지닝의 여러 직원들과 '짜이찌엔', 작별을 고하고 옌저우 역에서 기차에 몸을 실었다. 산동의 제남, 태안, 지닝 해관 직원이 베풀어 준 호의와 세심한 배려는 두고두고 이야기해도 모자라지 싶다.

옌저우(兖州)에서 베이징으로의 야간 침대열차에 의탁하여 귀로에 올랐다. 귀로는 꿈속을 거닌 듯했던 태산과 취푸에서의 감흥에 잠들지 못하는 피곤한 몸과 잠을 청하는 강박이 씨름하는 전전반측의 여로다. 어둠을 달려 북경역에 도착하니 날은 벌써 훤히 밝았다.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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