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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Dec 13. 2021

바다 빛 여름 속초에서

일상을 탈출하여 속초엘 왔다. 하늘은 여전히 무거운 구름이 낮게 드리웠고 파도는 연신 해안으로 밀려온다. 일출을 보리라는 기대와 바람은 접었다. 느긋하게 일어나서 아바이 마을로 갔다. 속초항 옆에 달항아리처럼 육지로 들어와 안긴 청초호를 바다와 갈라놓으며 방파제 역할을 하는 마을, 아바이 마을의 행정구역상 명칭은 청호동이다. 6.25 전쟁 때 북한에서 피난 온 주민들이 귀향을 위해 임시로 거처하던 곳이라 한다.


속초항 남쪽 등대로 가는 방파제 초입에 하나호 선장 유정충의 기념비가 서있다. 제주도 서남방에서 침몰한 하나호 선장으로 선원 21명을 구하고 자신은 끝내 배와 최후를 함께 했다니 살신성인의 본보기다.


금강대교 위 인도를 걸어서 육지 쪽에서 건너편의 아바이 마을로 건너갔다. 청초호에서 바다로 뚫린 다리 밑 양안에는 낚시를 드리운 사람들이 늘어서서 해면을 주시하고 있다. 고기를 낚으려 하는 것이겠지만 내 생각엔 미끼에는 세월만 걸려들지 싶다.


여행객들은 대개 육지 쪽 갯배 선착장에서 50여 미터를 건너 이곳으로 들어온다. 금강대교 밑 교각을 벽면 삼아 전시해 놓은 아바이 마을의 옛 모습이 담긴 사진들, 빨래를 하고 물동이를 이고 가는 아낙들의 벽화, 소달구지 등 조형물도 눈길을 끈다. 


마을은 온통 식당촌이고 드라마 '가을동화' 촬영지답게 곳곳에 드라마 속 장면들과 주인공들 사진이 눈에 띈다. 동편 바다 쪽은 아바이마을 상징 조각상이 있는 조각공원과 너른 백사장 너머로 동해 바다가 끝간 데 없이 펼쳐져 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엑스포공원에 들러 전망대에 올랐다. 엑스포타워로 불리는 높이 74미터 '99 강원국제관광엑스포 상징탑' 15층 전망대에서는 사방으로 속초 전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전히 하늘은 무거운 구름으로 덮여 있고 간간이 빗방울도 듣는다.

교동 먹거리촌 'H가네' 식당에서 생선구이 정식을 시켰다. 메뉴판에는 대구, 청어, 임연수어 등 구이로 나오는 생선들은 모두 '국산'이라고 원산지를 표기하고 있다. 맨 아래에 적힌 '주인: 속초산'이라는 문구가 웃음을 자아낸다. 속초 토박이라는 주인은 싹쓸이 어로로 명태, 오징어 등 이 고장 대표 어종이 사라져 가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땀을 씻고 휴식을 취한 다음 순두부로 저녁을 들고 청초호수공원 주변을 걸었다. 많은 사람들이 공원으로 산책을 나왔다. 둘레 5km라는 청초호는 생각보다 더 넓어 보인다. 청초호 가운데 쪽으로 난 잔교 끝에 자리한 '청초정'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청초호 수면에 아른거리는 흐릿한 불빛처럼 좀체 잠들기 힘든 여름밤이 깊어 가고 있다. 더위도 더위지만 일상을 잠시 벗어난 휴가는 텅 비우러 떠나는 여정이니만큼 서두르며 이것저것 채우려는 욕심은 버려야 마땅하지 싶다.

남은 여정도 느긋하고 여유로움이 함께하리라 마음을 다독이며 호수공원 가로등 불빛에 드리운 그림자를 동행 삼아 나의 하룻밤 모항으로 길을 잡는다.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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