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세계 보건기구의 2020년 3월 11일 팬데믹 선언 후 코로나19 정국이 햇수로 3년째로 접어들었다. 세계 여러 나라들이 '위드 코로나' 시책을 채택하는 추세와는 달리 중국은 여전히 '제로 코로나' 정책을 확고하게 고수하고 있다. 이로 인해 중국에서 성(省)의 경계를 넘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려면 핵산 검사나 격리 등 절차로 인해 번거롭기 그지없다.
중국 내 대부분의 성에서 일일 확진자 수가 제로 또는 한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어 정부의 일사불란하고 엄격한 코로나19 방역 정책이 일면 효과적이고 부럽게 보이는 면도 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장 기본적인 개인 권리인 이동의 자유를 철저히 통제하는 전체주의의 차가운 얼굴을 보는 듯도 하다.
상하이에 부임 후 알게 되어 가까이 지내게 된 소탈한 성품의 지인 두 분과 함께 산동성 타이안(泰安) 시에 있는 태산(泰山)엘 다녀오기로 했다. 사무실을 나란히 쓰는 동료와도 서로 마음 맞추기가 쉽지 않지만 이 두 분을 비롯해서 이곳에서 알게 된 몇몇 분들과의 공적 사적 교류는 각별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행 중 한 분이 상하이에서 야간 침대열차가 운행하는 허난 후베이 후난 등 화중지역과 산동 안후이 등 화동지역의 도시들 가운데 타이안의 태산 출행을 제의해서 삼인행(三人行) 팀을 이룬 것이다.
금요일 일과 후에 사무실을 출발해서 상하이역으로 향했다. 겨울 날씨답지 않게 며칠째 내리던 비가 어제 하루 반짝 햇빛을 보여주더니 오늘 다시금 추적이며 도시를 적시고 있다.
어둠이 내린 상하이역에 도착하여 젠캉마(健康码)와 신분증 확인, 엑스레이 검색대 통과 등 절차를 거쳐 상하이역 역사 안으로 들어섰다. 역사 안을 빼곡히 채운 여객들 모습이 마치 이곳이 팬데믹 상황과는 상관없는 딴 세상처럼 보인다.
야간 침대열차는 이곳 상하이를 출발해서 쑤저우 난징 등을 지나고 우리 일행을 목적지 태산 역에 내려놓고 요녕성의 진저우(锦州)까지 약 1,100km를 밤새 달려갈 것이다. 오후 8시경 출발 시각까지의 틈새 시간에 상하이역 역사 구석 한적한 곳에 자리 잡고 앉아서 일행이 준비해온 파전 김치전 등을 안주 삼아 막걸리 몇 잔으로 저녁을 대신했다.
여덟 시가 조금 넘어 탑승구가 열리자 열차에 올라 동행 두 분의 좁은 침대 칸 객실에 무릎을 마주 대고 앉았다. 2층 침대 두 개가 서로 마주 보게 배치된 루안워(软卧) 침대 칸의 맞은편 2층에서 몸을 누이고 있는 젊은 중국인 승객은 기척이 없다. 출행의 설렘으로 들뜬 분위기를 타고 1층 중국인 승객과도 조심스레 말을 트고 남은 막걸리 병 뚜껑을 열어 마음의 문도 조금씩 더 열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산동 태안 부근에 거주한다는 쑨(孙) 씨 성의 그 중국인은 나와 동갑이고 24세에 결혼해서 상하이에서 의사로 일하는 36세 아들에게 다녀오는 길이라고 한다. 순박하고 겸손해 보이는 그분은 권하는 막걸리 잔을 손사래 치며 과자를 내놓으며 먹어보라고 권한다.
아홉 시가 조금 넘어 3층 침대 두 개가 나란히 맞보며 마주한 2등석 내 침대칸으로 돌아왔다. 앉아만 있어도 천정에 머리가 닺는 3층 침대로 올라갔다. 밤 아홉 시를 지나 열 시로 향하는 시각 느릿한 속도의 열차가 잠시 정차했던 쑤저우를 출발해서 우시 쪽을 향해 달린다.
차창 밖 어둠 속에서는 빗줄기가 부딪히는 소리만 들린다. 침대칸 승객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몸을 누인 채 조용히 뒤척이거나 누군가와 통화를 하거나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등 좀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모습들이다. 네 시 반경 덜컹대면서 쉬저우 역에 정차한 열차는 20여 분이 지나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밤새도록 전전반측하다가 태산 역에 도착하기 직전 한두 시간 잠이 들었었나 보다. 눈을 뜨니 차창 안으로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들이친다. 여덟 시경 열차가 아담한 규모의 태산 역에 정차했다. 내린 승객은 우리 일행을 포함해서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그다지 많지가 않다.
택시로 동악(东岳)대로를 경유해서 10여분 만에 태산으로 오르는 출발지 홍문(红门) 입구로 향했다. 많은 사람들 틈에 끼여 경사진 길을 따라 매표소 쪽으로 향했다. 일천문(一天门), 공자 등림처(孔子登臨處), 천계(天階) 등 패루(牌樓)를 거쳐 홍문으로 들어서서 비각 군을 지나서 매표소에 닿았다.
뜻밖에 안내원이 핵산 검사 결과지를 제시해야 입장할 수 있다고 한다. 택시 기사분이 외지인 입장 시 필요한 사전 48시간 내 핵산 검사를 받았냐고 묻던 말에 느끼던 불길한 예감이 눈앞에서 현실로 벌어진 셈이다. 타이안(泰安)으로 들어올 때와는 달리 태산을 비롯한 관광지에 입장할 때는 48시간 내 핵산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꼼꼼히 확인하지 않은 불찰이다. 중국 각 지역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정책을 알려주는 앱 '뻔디빠오(本地寶)'를 너무 믿은 탓도 있다.
밤새 열차로 달려온 노고를 헛수고로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부근에 있는 '해방군 제960 의원'으로 달려가서 핵산 검사를 받았다. 12시경 결과지를 찾으러 오기로 하고 택시를 잡아 타고 따이묘(岱庙) 정문 쪽으로 이동했다. 시간과 다투며 조급해하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근처 식당에서 교자와 샤오롱 빠오 등으로 허전한 배부터 채웠다.
다이먀오(岱庙)는 태산 남쪽 타이안 시내에 자리한다. 진한(秦汉) 시대 제왕들이 태산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던 장소로 웬만한 도성 못잖은 규모의 높고 경고한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다. 핵산 검사 결과지가 손에 없어 그 내부로 들어가지 못하고 정양문 등 겉 둘레만 훑어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여러 제왕들이 태산에 오르기 전 먼저 이곳에서 봉선의 예를 올리러 왔노라 태산 신에게 고했다고 한다. 정양문을 통해 내부로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태산제일행궁(泰山第一行宫)' 현판이 걸린 정문으로 들어 정양문 앞 야오찬팅(遥参亭)에 모신 태산 노모(泰山老母) 신상도 마주할 있어 좋았다.
제왕들이 거친 정식 코스를 밟아서 태산에 오르게 되는 셈이니 이것으로 조금 어긋난 일정으로 불편했던 마음의 위로를 삼는다. 오전이 훌쩍 지나고 있는 시각 '해방군 제960 의원'으로 달려가서 핵산 검사 음성 결과지를 받아 들고 서둘러 홍문으로 향했다.
등고(登高) 태산은 산동성 중부 타이안(泰安), 지난(濟南), 쯔보(淄博) 세 개 시에 걸쳐 자리하는 해발 1545미터 산이다. 중국 오악의 하나로 대산(岱山) 대종(岱宗) 대악(岱岳) 동악(东岳) 등으로도 불린다.
상고시대부터 황제를 비롯해서 72명의 제왕들이 태산에서 봉선(封禅) 제사를 올렸다고 하며, 역사서에는 진 시황제(BC 219), 후한 무제(BC 156), 동한 광무제(BC 5), 당 고종(665), 청 강희제(1703) 등 12명의 황제가 태산에 올라 봉선을 행했다고 한다.
예부터 제왕들이 제사를 지내는 신산이자 백성들로부터 숭배를 받아 온 것은 '태산이 평안하면 온 세상이 평안하다(泰山安 四海皆安)'라는 믿음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계문화유산, 세계 자연유산, 국가 5A급 관광구 등으로 지정된 것만 보아도 태산의 지위를 알 수 있다. 일출(日出), 운해옥반(云海玉盘), 노을석조(晚霞夕照), 황하금대(黄河金带) 등 네 가지 진풍경과 함께 20여 곳의 옛 건축군과 2,200여 개의 비갈석 등이 남아 있다고 하니 태산이 품고 있을 진면목이 어떨지 궁금하다.
태산을 오르는 코스는 대체로 아래와 같은 네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 대묘(岱庙)에서 출발하여 홍문(红门)을 통해 정상(岱顶)으로 오르는 길로 제왕들이 봉선의 예를 올릴 때 지나는 전통적인 코스 둘째, 천지 광장(天地广场)에서 버스를 타고 중천문(中天门)까지 올라 남천문(南天门)을 거쳐 옥황정(玉皇顶)까지 오르는 코스
셋째, 서북쪽 도화원(桃花源) 입구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남천문으로 오르는 코스
넷째, 동북 쪽 천촉봉(天燭峰)을 거쳐 오르는 코스
우리 일행은 제왕들이 오르던 옛 코스를 따라 태산 문화광장에서 홍문을 거쳐 12시 반경 검표소를 통과해서 태산 정상을 향해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반나절이 지난 정오 경이라 그런지 산객은 아침에 비해 뜸하다. 바람이 없이 차갑게 와닿는 서늘한 공기가 산행을 하기에 딱 좋은 날씨다.
홍문 아래 서있던 안내판이 해발 230미터 지점 관제묘(关帝庙)에서 해발 1,545미터 태산 정상까지 7,863개의 계단이 놓여 있다고 알려준다. 올라야 하는 계단의 수도 혀를 내두르게 하지만 1300여 미터의 고도 차이도 주눅이 들게 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오색 약수터에서 설악산 주봉 대청봉까지 고도차 900여 미터의 힘겹던 산행과 비교해 보아도 만만찮은 산행임에 틀림없다.
십팔 년 전, 북경에서 같이 근무했던 중국 일본 홍콩 등의 세관 직원들과 함께 한밤에 이 계단을 오르던 봄날이 떠오른다. 그때는 일출을 볼 요량으로 한밤중에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헤드랜턴에 의지해서 힘겹게 올랐었다.
오늘은 그때와는 달리 주간 산행이고 말도 잘 통하는 동행이 있다. 서로 기운을 북돋우며 산길 주변 옛 유적들과 풍치를 조망하면서 오를 수 있어 마음속에는 걱정보다 기대가 한층 더 크다.
산기슭 숲 속 여기저기에서 토종닭들이 간간이 홰를 치며 먼 길을 달려온 산객을 맞아준다. 계단길 옆 뭇 별들의 어머니 두모원군(斗母元君)을 모신 두모궁(斗母宫)을 서둘러 둘러보고 다시 산정으로 길을 다잡았다. 중천문을 거쳐 옥황정으로 가는 길목 능선 마루에 자리한 남천문까지는 깊숙한 계곡을 따라 널찍하고 가파른 돌계단을 일직선으로 오르는 고되고 무미건조한 길이다.
산기슭에 듬성듬성 거리를 두고 높이 솟아 있는 아름드리 측백나무들이 태백산의 신령스러운 주목의 품격이 느껴진다. 일찌감치 등정을 마치고 내려오는 산객들 대부분은 두터운 외투를 벗어 팔에 걸치고 있다.
멈추었다 오르기를 반복하며 민간에서 천관(天官), 지관(地官), 수관(水官)의 삼원 대제(三元大帝)를 모신 삼관묘(三官廟), 태산 할머니 신을 모신 벽하령응궁(壁霞灵应宫), 도가에서 선경(仙境)을 의미하는 이름으로 건륭황제가 이름을 붙였다는 호천각(壺天閣) 등을 차례로 거쳐 지나며 계단을 올랐다. 오후 2시경 회마령(廻馬岭) 패루를 지나 고개를 쳐드니 중천문과 남천문을 연결하는 케이블카 삭도가 가파른 능선 위 하늘에 걸쳐 있다.
태산의 수많은 묘우들 중에는 도교 불교 유가를 비롯해서 민간신앙에서 받드는 여러 신들을 모신 사묘가 허다하다. 회마령 바로 위 해발 800여 미터 지점에 자리한 약왕전(药王殿)도 그중 하나로 인술을 베푼 저명한 의학자로 세계 최초의 국찬 의학서인 <唐新本草>을 지은 손사막(孙思邈, 541-682)을 모신 사당이다. 태산에는 기백(歧伯), 소유(少俞), 태을(太乙), 편작(扁鹊), 화타(华佗) 등 28명의 신화나 실제의 신의들을 모신 사당이 있었다고 하니 인생의 고해를 무병 무탈하게 건너가기를 바라는 세인들의 간절한 염원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음을 알 수 있다.
약왕전 옆 좌우에서 보현과 문수보살이 관음을 협시하고 있는 관음전을 한 번 들여다보고 경사가 한층 더 가팔라진 계단을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계단 옆을 따라오는 계곡과 산기슭 음지 군데군데 녹지 않은 얼음과 잔설이 눈에 띈다.
힘겹게 계단을 올라 해발 847미터 지점 중천문에 도착하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패루가 반갑기 그지없다. 동쪽으로 중계산(中溪山)을 바라보고 서쪽으로 굽이굽이 뻗은 봉황령(风凰岭)이 호위하는 아늑하고 절묘한 지점이다.
지팡이 기념품 먹거리 등을 파는 가게들 틈에 이 고장 특산 뉘얼차(女儿茶) 가게도 눈에 띈다. 평소 차보다 커피에 익숙하지만 중국 각지 갖가지 종류의 차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 또한 적지 않다. 예기치 못한 시행착오로 줄어든 시간에 쫓기는 마음이 차 한 잔 시음할 여유를 허락지 않는다.
초보등고(初步登高) 인간선경(人間仙境) 운로(雲路) 천구(天衢) 봉회노전(峰回路轉) 산고수장( 山高水長) 진충보국(盡忠報國) 불(佛) 준령(峻岭) 인간천상(人間天上) 장정(長征) 묘극(妙極) 등 중천문까지 오르며 보았던 수많은 석각군(石刻群)이 남천문으로 오르는 계단길 옆으로도 한동안 이어진다. 가히 바위 절벽을 화선지 삼아서 쓴 서예 작품을 전시해 놓은 거대한 야외 전시장이나 다름없다.
원래 나무다리였던 운보교(云步桥)는 1937년에 돌다리로 고쳐지었다고 한다. 태산의 주봉인 거대한 암봉을 등지고 동악묘가 자리한다. 동악 대제 등 여러 도교 신들과 한 손에 죽간을 들고 있는 공자 상을 함께 모신 점이 특이하다. 태산은 민간신앙, 칠성신앙, 유불도교의 여러 신과 성인들이 서로 반목 없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대송문 패루를 지나니 남천문까지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치솟은 계단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경사가 조금 더 가팔라진 계단길을 가다 서다 주저앉았다 일어섰다 하며 오르고 또 오른다. 수 천 개 계단과 씨름하는 저 사람들은 무슨 연유로 무엇을 위해서 이런 고통을 감수하며 태산을 오르고 있는 것일까?
많은 산객들은 산행을 할 때면 세상사 모든 시름을 잊게 되고 정신이 맑아진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산행은 걱정 욕심 분노 오만 등 번뇌를 떨쳐내고 잠시나마 자기 본연의 내면과 마주하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용문(龍門)과 승선방(昇仙坊) 패루를 지나 하늘로 가파르게 뻗은 계단길을 따라 원나라 때인 1264년에 세웠다는 남천문으로 치고 올랐다. 턱밑까지 차오른 숨과 함께 안도와 뿌듯한 희열의 감정이 밀려들었다. 서편 황애산(黄崖山) 꼭대기에 걸린 태양이 발걸음을 재촉한다.
인간계를 벗어나 선계로 드는 문일까, 천가(天街) 패루를 지나 옥황정(玉黄顶)으로 향했다. 반나절을 어이없이 허비한 탓에 아쉽게도 정상부의 첨노대(瞻魯台) 공자묘(孔子庙) 대정(岱顶) 건륭행궁 벽하사(壁霞寺) 등 명소들을 둘러볼 여유가 없다.
입구가 굳게 잠긴 옥황묘 아래 너른 조망대에 한참 동안 머물다가 정상석이나 다름없는 '오악독존(五岳獨尊)' 석각 앞에서 동행과 함께 기념사진을 남기는 것으로 위로를 삼는다.
공자, 사마천, 조식, 이백 등 수많은 선인들이 동경하고 숭앙하며 이곳에 올라 감회를 시로 남기지 않았던가. 그 가운데 단연 돋보인다는 두보의 시 <망악(望岳)>으로 태산의 이모저모를 다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 본다.
《望岳》_杜甫 岱宗夫如何, 齊魯靑未了。 造化鍾神秀, 陰陽割昏曉。 盪胸生曾雲, 決眥入歸鳥。 會當凌絶頂, 一覽衆山小。 태산은 대저 어떠한가? 제노에 걸쳐 가없이 푸르구나. 신령하고 빼어난 기운이 모이고 산의 앞뒤로 아침과 저녁이 나뉘네. 층층 구름에 흉금을 씻어내니 부릅뜬 눈에 둥지로 돌아가는 새가 들어오네. 반드시 산 꼭대기에 올라 작은 산들을 한 번 내려다보리라.
귀로(歸路)
옥황정을 뒤로하고 남천문 쪽으로 내려오는 길, 태산은 짙어지는 어둠에 서서히 몸을 감추고 검푸른 빛 하늘에는 둥근달이 얼굴을 내밀었다. 막 운행을 마감하려는 남천문과 중천문을 잇는 케이블카의 승강장 안내원이 우리 일행을 보자 서둘러 오라고 채근한다.
남천문에서 버스에 올라 천외촌(天外村)에 도착하며 태산 산행을 마감했다.
태안역으로 달리는 택시 기사를 채근했지만 상하이로 직행하는 7:17발 고속열차 시간에 맞추기는 버겁다. 난징까지 고속열차로 이동해서 완행 침대열차로 바꿔 탔다. 상하이에는 이른 아침에 도착할 것이다. 좁은 침대칸에 누인 몸은 7,863개 계단에 지쳐서인지 산행의 여흥을 반추할 겨를도 주지 않고 죽은 듯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La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