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좋은 일요일 아침이다. 비가 지리하게 오락가락하던 한 주일 뒤에 찾아온 화창한 휴일이라 찌뿌듯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상하이 주변 구쩐(古镇)들을 검색하다가 눈여겨 둔 까오치아오(高桥)에 마음이 닿았다. 이 구쩐은 와이환(外環) 운하 쪽에서 황푸강(黄浦江)으로 흘러드는 길이 11.6 km 까오치아오강(高桥港) 중간 부분 일대에 형성된 마을로 약 2km에 이르는 옛 거리 주변에 오래된 건축물들이 모여 있다고 한다.
800년 역사를 간직한 곳으로 상하이 푸동 지역 18대 구쩐 중 하나이자 황포강변 4대 구쩐 중 하나라고 하니 그 풍치가 어떨지 자못 궁금증이 일었다.
솽강루(双江路), 까오치아오(高桥) 등 전철역을 지날 때 왼편 차창 밖 창장(长江)에 접한 자유무역 시험구의 컨테이너 야적장과 그 너머로 크레인 등 하역시설들이 스쳐 지난다. 약 한 시간 만에 전철 10호선 강청루(港城路)역에 도착해서 역사를 빠져나와 구쩐 쪽으로 향했다. 자전거와 모터사이클이 빼곡히 세워져 있는 전철 역사 옆 주차장 위 파란 하늘이 깃털 구름을 피워 올렸고 바람은 제법 매섭다.
까오치아오 전철역 앞 이륜자 주차장
강변을 따라 나란히 뻗은 길을 따라 늘어선 강동 서원(江东书院), 태극권관(太极拳馆) 등 단층 건물들의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다. 계원(溪苑) 초입 입구에 '양현당(养贤堂)'이라 쓰인 돌비석이 놓인 역사문화 진열관의 대문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로 인해 방역이 강화된 때문인 듯하다.
강 위를 가로지르는 양까오북로(楊高北路) 다리를 건너 거슬러 강 하류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나와 나란히 흐르는 물살이 까오치아오강(高桥港)이 황푸강의 지류 중 하나임을 되새겨 준다.
강변에 접한 건물에는 포목점 이용실 택배점 등 오래되어 낡아 보이는 점포들이 늘어서 있고, 햇볕이 좋은 공원과 운하 난간 등에는 이불 옷가지 등이 빼곡하게 늘려 있다.
강과 직각으로 만나는 지징북로(季景北路)에서 마주친 한 노파가 공상은행이 어딘지 묻는다. 이곳이 처음이라는 그 노파에게 나 역시 첫 방문인 이방인이지만 스마트 폰 지도 앱의 도움을 받아 300여 미터 지점에 있는 은행의 위치를 알려드렸다.
까오치아오 구쩐의 골목들 모습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어떤 길은 막다른 길이고 어떤 길은 대로로 뚫려 있기도 한다. 낡은 구옥들이 담벼락처럼 늘어선 좁은 골목길에는 노파 서너 분이 옛 기억을 추억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깊게 패인 얼굴의 주름에는 긴 인생 여정의 굴곡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듯 보인다.
까오치아오 구쩐에는 종씨민택(钟氏民宅), 황씨민택(黄氏民宅), 양현당(养贤堂), 경업당(经业堂), 인가화원(印家花园) 등 많은 고택들이 남아 있다고 한다. 까오치아오 서쪽 길(高桥西街) 중간쯤에 자리한 종씨민택(钟氏民宅)과 그 맞은편의 '인가(人家) 진열관'은 모두 코로나19로 인해 문이 닫혀 있다.
중국 근대 상하이의 낮과 밤을 지배했던 칭방(青帮)의 두목 두웨성(杜月笙, 1888-1951)도 이곳 출신이라고 한다. 영화 <친구>의 그 친구들처럼 그도 어린 시절 이 구쩐의 골목골목을 누볐을지도 모른다. 그는 이민족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한족 부흥운동의 주축이던 비밀결사 칭방(青帮) 300년 역사상 최고의 인물이라 평가받고 있다. '동황(冬黄)'이라 불리며 일세를 풍미한 경극 배우 멍샤오둥(孟小冬, 1908-77)을 향한 순애보와 서로 교차하는 인생역정은 아직껏 회자되고 있다고 한다.
만수교(萬壽橋)를 건너 까오치아오 서가(高桥西街) 쪽으로 넘어갔다. 그 서쪽 끝에 작은 구멍가게 하나가 자리한다. 1900년 경에 유래했다는이곳 특산 송삥(松饼)을 만들어서 파는 가게다. 얼굴색이 밝고 고운 할머니 한 분과 젊은 여성이 함께 가게 한켠에 나란히 서서 송삥 빚기에 여념이 없다. 할머니가 랩에 싸서 건네주는 송삥 하나를 맛보았다. 겉면은 기름을 발라 구워낸 듯 바삭하고 노릇한 윤기가 흐르고 속엔 팥고물이 들었다. 점심을 대신할 겸 해서 10위엔어치를 달라고 하니 네 개를 담아 주며 5 지아오 동전 하나를 거슬러준다. 하나에 1.9위엔인 셈이다.
송삥 가게 옆 장년 부부가 지키고 있는 포목점 매장 안 판매대와 벽면엔 온갖 색상 다양한 문양의 천들이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남편은 탁자 앞에서 배달된 음식으로 점심을 들고 있다. 여주인은 가게에 진열된 물건들은 모두 동북 지방과 칭다오 등지에서 들여온 것이라고 한다.
송삥松饼(@photo 百度)
만수교(萬壽橋) / 이곳 특산 송삥(松饼) 가게 / 포목점
옛 거리를 빠져나와 강변을 따라 강 중간의 작은 섬 허중다오(河中岛)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강이 호수처럼 넓어지는 수변 공원 둘레에는 낚시나 산보를 하거나 무대용 음향기를 틀어 놓고 노래를 하는 사람들이 어우러져 휴일 한 때의 한가하고 여유롭기 그지없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높고 웅장한 대리석 건물과 표쪽한 첨탑의 성당 건물이 둘러선 네덜란드 풍경구(荷兰风情小镇) 광장으로 들어섰다. 많은 사람들이 드넓은 광장에서 끝없이 높아 보이는 하늘 위로 갖가지 연을 띄우고 있다.
그중 한 건물(社区党群服务中心) 안에서는 '유동당 총지부(流動党总支部)' 주관으로 공산당원 교육을 실시하는지 백여 명의 사람들이 강당에 모여 있다. 개혁개방 정책과 급속한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에 따른 산업 간 지역 간 이동으로 인해 타 지역으로 거주지를 옮긴 소위 '유동 당원'이 적지 않을 터이니 이들에 대한 교육과 관리가 필요했을 것이다.
전면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 등 성화와 옆 벽면의 아치형 창문 등이 단출하고 수수한 천주교당 내부를 둘러보았다. 이곳 사회주의 인민의 나라는 무병장수 출세 재물 등 현세의 복을 의탁할 수 있는 온갖 신들이 존재한다. 설교단 아래 예배석에서 머리를 숙인 채 두 손을 모으고 앉은 열댓 명의 저 사람들은 기적 같은 예수님의 부활처럼 영생을 갈구하고 있는 것일까.
네덜란드풍 건물들이 늘어선 거리 초입의 푸동 영화광장(浦东电影广场)에 수 십여 명 노인들이 여러 개 작은 탁자 둘레에 옹기종기 모여 앉거나 서서 동전 내기 포커 게임을 하고 있다. 싸늘한 공기도 마다하지 않는 것은 방구석에 죽치고 앉아 있는 것보단 친구들과 얼굴을 부대끼는 즐거움 때문일 것이다.
등받이에 "Holland Street Plaza"라 적힌 벤치가 놓인 거리 안으로 들어섰다. 마치 네덜란드 어느 작은 운하 도시의 거리로 들어선 듯 특유한 형태의 지붕을 가진 건축물들이 거리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두 시 정각 오 분 전, 조금 전에 들렀던 성당에서 웅장한 종소리가 온 도시를 뒤덮을 듯 2~3분간 울려 퍼진다. 매서운 바람에 얼어붙을 듯 얼얼해진 손을 주머니 속에 넣으니 여태껏 온기를 지니고 있는 송삥(松饼)이 따뜻한 온기를 전해준다.
광장 한켠에서 포커 게임을 하는 노인들/ 네덜란드 풍경구(荷兰风情小镇) 광장
네덜란드 마을의 도개교와 반 고흐의 <아를의 다리와 빨래하는 여인들>
허중다오(河中岛)로 난 도개교를 건너 풍차를 가까이서 둘러보았다. 도개교는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아를의 다리와 빨래하는 여인들> 속 다리와 흡사하다. 고흐는 겨울의 끝자락 이맘때쯤인 1888년 2월 21일 프랑스 남부의 아를(Arles)에 도착해서 랑글루아(Langlois) 다리 채색화 5점을 남겼다고 한다. 고흐의 그림 속 도개교를 닮은 다리를 이곳에 재현해 놓은 것은 고흐가 네덜란드 출신 화가이기 때문이리라 짐작된다.
"비록 거창한 유적이나 특별한 자랑거리는 없지만, 까오치아오는 자기만의 인문(人文)과 역사(历史)와 이야기(故事)를 간직하고 있다."
구쩐과 그 옆 네덜란드풍 마을을 뒤로하고 발길을 옮기며, 어느 중국인 블로거의 글귀 한 줄을 빌어 까오차아오 구쩐 탐방의 감상을 대신한다.상하이의 여러 구쩐 중 하나를 찾아와서 덤으로 네덜란드의 이국적 정취까지 만끽한 한나절이었다.
까오치아오(高桥) 역에 도착하자마자 전철이 들어왔다. 오랜만에 상하이의 푸른 하늘빛과 햇살을 온몸으로 느낀 기분 좋은 하루다. 어제가 우수였으니 이제 봄도 머지않았다.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