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뒤로하고 귀임할 날이 두어 달 앞으로 다가왔다. 당초 중국으로 나오면서 22개 성(省)에 한 번씩은 발을 들여놓아 보고자 했던 터라 마지막 휴가 기간 중 지금껏 가보지 못했던 곳으로의 출행을 구상했다.
칭하이성, 깐수성, 그리고 닝샤 회족자치주의 주도인 시닝(西宁), 란저우(兰州), 인촨(银川)을 한데 묶어 둘러보려는 구상을 동료 Y가 동행키로 하면서 용기백배하여 즉시 결행하게 되었다.
중국 서역으로 출행하는 날, 느긋하게 일어나서 동행인 Y의 차량으로 지척 거리의 홍차오 공항 1터미널로 갔다. 홍차오 공항은 인천공항에게 메인 자리를 내어주고 서브공항 기능을 하는 우리의 김포공항처럼 푸동공항의 서브공항으로서 요긴하게 기능하고 있다.
공항은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기 전보다는 여객이 많이 늘긴 했어도 여전히 국내선 출발 대기실은 크게 붐비지 않는다. 공항 내로 들어오고 기내로 탑승하는 절차 등은 꼼꼼한 보안검색을 제외하곤 코로나 시국과는 다르게 많이 간소화되고 편해졌다.
춘추항공 9C6833 에어버스 320기는 09:30경 활주로를 박차고 올라 중국 대륙을 가로질러 시닝으로 향했다. 창문으로 기체 밖을 내려다보니 한참 동안 끝없는 평원이 이어지다가 시안이 가까워지자 산악지역이 나타나고 멀리 날개 밑 구름 아래 보일 듯 말 듯 누런 몸을 길게 늘어뜨리고 누워 있는 황허(黄河)도 어렴풋이 보인다.
시닝이 가까워지자 "변방의 강남, 신비로운 닝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塞上江南,神奇宁夏欢迎您)"라는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인접한 세 개의 성 중에서 닝샤회족자치구의 문화여행청(宁夏文化和旅游厅)에서 보낸 것이다. 란저우 북부 '바이인(白银)' 상공은 도시의 이름에 걸맞게 온통 은빛 구름바다로 덮여 있다. 햇빛을 받아 솜사탕처럼 빛나는 구름에 눈이 부셔 창밖으로 향했던 고개를 얼른 되돌렸다.
중국 서북으로 향하는 길 깐수성 상공
시닝(西宁) 공항에 도착하니 시각은 오후 1시로 향한다. 중국 서부 깊숙이 자리한 이곳 시닝은 경도 차이로 실제 시각은 상하이보다 한 시간 정도 늦으니 정오쯤이 되는 시각이다. 칭하이성 동부 황허 위쪽 분지에 위치한 해발 2300여 미터의 고원 도시 시닝은 칭하이성 주도로 칭장(青藏) 고원의 동쪽 관문이자 예로부터 고대 실크로드 남로와 탕번고도(唐蕃古道)가 경유하는 중국 서북의 교통과 군사의 요충지였다.
역사가 4~5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닝은 서한(西汉) 때에 군사와 우편의 거점인 서평정(西平亭)을 설치하고 금성군(金城郡)에 예속되면서 본격적으로 중국 역사에 등장한다. 이후 북위(北魏), 토번(吐蕃), 서하(西夏), 원, 명, 청을 거쳐 현재의 중국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은 수많은 민족 여러 왕조에 속했다. 현재 칭하이성의 정치, 경제, 교육, 문화, 교통의 중심지로 도시지역 1,900여만 명 포함 전체 인구 약 2,500만 명의 큰 도시이다.
공항 야외 주차장에서 미리 예약해 둔 렌터카를 인수했다. 젊은 직원은 렌트 계약서 설명과 주의사항 고지와 더불어 휴대폰으로 차량 상태를 꼼꼼히 기록해서 반납 시에 있을 수도 있는 분쟁에 대비한다.
자동차 키를 받고 오늘의 최종 목적지를 칭하이호 알랑젠(二郎剑) 풍경구로 잡고 가는 길에 중국 6대 티베트 불교 사원 중 하나로 알려진 타얼쓰(塔尔寺)를 거쳐가기로 했다.
차오지아빠오(曹家堡) 공항에서 시닝 시내를 거쳐 타얼쓰까지는 약 50km 거리다. 강한 햇빛으로 양 미간에 잔뜩 주름이 잡히게 해서 안경을 선글라스로 바꾸고 교대로 운전을 했다. 여행을 혼자서 하면 시시로 고독과 싸워야 하지만 마음 가는 대로 할 수 있어 좋은데 둘이 하는 여행은 서로 도우며 의지할 수 있어서 좋다.
파란 하늘에 백설탕처럼 흰 구름 등 이국적인 풍치에 신기해하며 '닝구이(宁贵) 고속도로'를 거쳐 상가들이 밀집한 타얼스 사하촌(寺下村)으로 들어섰다. 시닝 시내와는 달리 해발 3천 미터가 훌쩍 넘는 고원지대라 그런지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목 뒷덜미가 뻐근해 오며 메스꺼운 구토 증상도 나타난다.
좁고 길게 뻗은 상가 거리 초입에 자리한 회족 식당에 들러 뉘러우면(牛肉面)을 한 그릇씩 시켜서 맛을 음미하며 허기를 채웠다.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던 식당 여인네들에게 부탁하여 푸른색 상의에 검은색 스카프로 머리를 가린 그녀들과 인증숏을 한 장 남기고 타얼쓰로 걸음을 옮겼다.
회족 식당
타얼쓰의 오체투지 순례객
타얼쓰(塔尔寺)는 티베트 불교의 중흥조인 쫑카파가 히말라야로 수행을 떠난 후 1379년 그의 모친이 그가 탄생한 자리에 세운 탑을 중심으로 1560년에 창건된 사찰이라고 한다.
동서중(东西中) 세 산문, 여래팔탑(如来八塔), 호법전(护法殿), 대경당(大经堂), 기도전(折寿殿), 대다방(大茶房), 석가불전(释迦佛殿), 문수보살전(文殊菩萨殿), 미륵불전(弥勒佛殿), 의고전(依怙殿), 시룬경원(时轮经院), 밀종경원(密宗经院), 길상신궁(吉祥新宮), 시룬탑(时轮塔), 장의원(藏医院), 수유화관(酥油花馆), 도모전(度母殿), 인경원(印经院), 보리탑(普提塔), 사문탑(四门塔) 등 무수한 건물들이 산록에서 느린 경사의 산기슭을 따라 빼곡히 자리하고 있다.
수많은 관람객들로 붐비는 사찰 밖 여행자 센터에서 입장권을 구입해서 경내로 들어섰다. 우측에 탄생, 성장, 출가, 고행, 깨달음, 전법, 열반, 가르침 등 석가모니의 8가지 공덕을 기려 1776년에 세웠다는 여래팔탑(如来八塔)이 맞이한다. 한 순례자가 탑 주위에서 오체투지 힘겨운 순례를 이어가고 있다.
중산문(中山門) 정면의 호법신전(護法神殿)은 1692년 건립되고 1802년에 재건되었는데 티베트와 중국의 복합 건축 양식이 반영된 건물이라고 한다. 그 안으로 들어서니 좌우 전각 2층 회랑에 들소, 영양, 원숭이, 오랑우탄, 호랑이, 표범, 흑곰 등의 동물 표본이 아래쪽 마당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생경한 모습에 의아한 생각이 들었는데, 불교가 정착하기 전 여러 토속 종교를 대표하던 동물들이라고도 하고 불법을 수호하는 위엄을 상징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한편, 마당을 둘러선 전각 벽면에도 기괴한 동물과 인물상 등 화려한 채색 불화가 지금껏 보았던 사찰과는 다른 독특함을 지니고 있어 깊은 인상을 준다.
타얼쓰 티벳사원
불당과 담장에 작은 마당을 가진 기도전도 다른 전각과 마찬가지로 불상, 벽화, 탱화 등을 정치하게 빼곡히 배치한 것이 크고 과장된 표현 양식의 여느 중국 전통 사찰과는 많이 달라 보인다.
타얼쓰 전각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대경당(大经堂)은 1612년 처음 건립된 건축물이다. 우리의 종묘 건물처럼 특별한 치장이나 굴곡이 없이 가지런한 기와지붕 건물로 참선 수행을 할 수 있도록 구획된 내부는 천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규모라고 한다.
경당 안은 본 사찰의 주지, 달라이 라마 및 판첸 라마의 법좌, 천수천안관음, 미륵보살, 10대 판첸 라마와 총카파 스님 등의 동상과 수 천 개의 불상, 경전, 탕카, 벽화 등으로 채워져 있다.
타얼쓰는 티베트 불교문화의 요람이자 종교예술을 꽃피운 곳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파일 자수와 함께 전각의 벽면, 복도, 통로 등 사찰 다양한 곳에 천연 야크 버터와 광물성 색소를 재료로 낮은 온도에서 완성한 수유화(酥油畫) 벽화는 가히 한 번 보면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석가의 삶, 티베트 왕과 결혼한 문성 공주의 티베트 진입, 서유기 등 불교 관련 이야기와 민속을 생생하게 해석하여 화려하고 우아한 색감으로 창조해 낸 걸작들이다.
약사불전, 석가모니불전, 의고전, 미륵불전, 문수보살전, 지장보살전, 밀종경원 등을 둘러보고 곳곳에 자리한 윤장(轮藏)도 힘주어 돌리며 수박 겉핥기 하듯 분주히 타얼쓰를 훑어보았다. 고원의 희박한 공기 탓인지 티베트 불교사원 타얼쓰에서 받은 감동과 충격 때문인지 한 대 얻어맞은 듯 머리통은 여전히 멍멍하다.
마음은 조금 더 찬찬히 더 오래 보다 더 많이 보자고 우기고 머리는 너무 많은 것을 담아 벅차다고 하소연하며 서로 버틴다. 미리 세워둔 일정이 칭하이호(青海湖)로 가야할 시간이라고 가르마를 타주니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