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의 봄날씨는 꽤나 변덕스럽다. 오늘 새벽에는 천둥과 번개로 요란하게 치더니 아침나절엔 소나기처럼 굵은 비가 쏟아졌다. 무박 2일 일정의 우이산(武夷山; 무이산) 출행을 하기로 했다.
상하이 남역은 웬만한 국제공항을 방불케 하는 홍차오역이나 상하이역과는 달리 규모가 적당하고 편의점, 식당, 대합실 등 내부 시설도 여객 친화적으로 잘 구비되어 있다.
거대한 원반 모형의 지붕을 가진 남역에서 동행인 Y와 함께 18:18발 우이산(武夷山) 행 완행 침대열차에 올랐다. 푸저우를 종착역으로 하여 시발역인 난징에서 달려온 이 열차는 저녁과 밤을 달려 내일 새벽 세 시 전후에 장시성과 인접한 푸젠성 북부의 우이산역을 거쳐갈 것이다.
침대열차 11호차 3층짜리 잉워(硬卧) 객실은 승객들로 빼곡하다. '15호 중포(中铺)' 중간층에 짐을 내리고 창 측 접이식 간이의자 밑 콘센트에 충전기를 꽂았다.
열차가 쟈싱(嘉兴)과 항저우를 지나고 이우(义乌)와 진화(金华) 쪽을 향해 달릴 때쯤 2층 침대로 올라서 몸을 눕혔다. 얼마 후에 소등이 되고 부지불식 간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가 갈증에 잠을 깼다. 밤 11시 반 취저우(衢州市) 부근인데 언제부터인지 정차해 있던 열차가 천천히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이산역 도착 시각이 가까워지자 몇몇 승객들이 객차 사이에 위치한 세면대에서 양치질이나 머리손질을 하며 하차 준비를 한다.
상하이남역 / 우이산역 플랫폼
열차는 3:30경에 역에 정차했고 플랫폼으로 내려서니 제법 굵은 비가 내리고 있다. 일기예보를 획인한 터라 예상은 했지만 혹시나 하던 기대를 접으며 족히 500여 미터는 됨직한 플랫폼을 지나서 출구로 빠져나왔다.
우이산역 역사는 희미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고 사방은 어둠과 굵은 빗줄기 속에 잠겨 있다. 스마트폰으로 택시를 불러(따처; 打车) 우이산 남쪽 입구로 향했다.
빈시동로(滨溪东路), 따왕펑북로(大王峰北路), 우이대도(武夷大道), 위뉘펑로(玉女峰路) 등으로 이름을 바꾸는 도로를 따라 총양계(崇阳溪) 위에 놓인 란탕교(兰汤桥)를 건너 우이궁(武夷宫) 앞 도로변에서 하차했다.
푸젠성의 산수 중 으뜸으로 꼽히는 우이산, 그중 구곡계(九曲溪)는 그 산의 혼(魂)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우이산에는 36봉(峰)과 99 암(岩)이 서로 어우러지며 그 사이사이 종횡으로 10km의 시내가 굽이치며 흐르는데, 이 물길이 '구곡계'라 불리는 이유는 세 개의 만곡부와 함께 아홉 개의 구부러진 물길이 있기 때문이다.
우이산의 구곡계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데는 남송의 유학자로 주자(朱子)로 칭송받는 주희(朱熹, 1130-1200)의 칠언율시 <구곡도가(九曲棹歌)>에 힘입은 바 크다고 알려져 있다.
유일하게 공자의 친 제자가 아님에도 공묘(孔廟)에 향사되고 대성전 12 철자(十二哲者)로 자리한 주희는 1183년 이곳 구곡계의 제5곡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짓고 그 이듬해에 '무이구곡가'로 알려진 '구곡도가(九曲棹歌)'를 지었다고 한다.
무이산 산속에는 신선이 살고 있어
산 아래 찬 냇물 굽이굽이 맑아라
그 속의 멋진 경치 아시고 싶거들랑
뱃노래 두세 가락 조용히 들어 보소
武夷山上有仙靈 山下寒流曲曲淸
欲識箇中奇絶處 棹歌閑聽兩三聲
_주희, <구곡도가(九曲棹歌)> 중
유교를 기반으로 나라를 경영한 조선조의 성리학자들은 <구곡도가>를 연상하여 직접 구곡을 경영하고 구곡가 형식의 한시, 시조, 가사 등을 지어 불렀다고 한다.
무흘구곡, 오대구곡, 운곡구곡, 황강구곡, 성고구곡, 황계구곡, 화양구곡, 석문구곡, 우이동구곡, 운암구곡 등 조선 식자층이 직접 경영했던 수많은 구곡과 이이의 <고산구곡가> 등 시가들이 조선 지배층의 주자(朱子)에 대한 흠모의 깊이와 그가 조선 사회에 미친 사상적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우이궁은 구곡계가 우이산 국가공원과 우이산시를 가르며 남북으로 흐르는 총양계(崇阳溪)로 안겨드는 곳 언저리에 자리한다. 새벽 네 시경 빗속, 구곡계 위로 놓인 다리를 건너 일곡(一曲) 쪽으로 발길을 다잡는다. 구곡계 물길은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귓전을 때리는 요란한 소리가 비에 불어난 거센 물살이 앞다투어 총양계로 내려가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선하다.
대왕봉 / 구곡계 옆 도로
옥녀봉 셔틀버스 정차장(우)
구곡계 하류에서 상류 쪽으로 난 아스팔트길을 따라 '일곡'부터 '구곡'까지 걸어서 오르며 주요 승지(胜地)를 둘러볼 요량이다. 라이트를 켠 차량들이 간간이 스쳐 지나갈 뿐 비가 쏟아지는 새벽녘 왕복 2차선 아스팔트 도로에 인적이 있을 리 만무하다. 일곡 부근 구곡계 북변에 대왕봉(大王峰)이 자리하는데, 안개구름을 걸친 새송이버섯 형상이 어둠과 빗줄기에 갇혀 희미하게 눈에 들어온다.
제1곡과 제2곡 사이 옥녀봉 셔틀버스 정류장에서 비를 피하며 동행 Y 아내의 정성이 듬뿍 담긴 김밥으로 아침 겸 때 이른 요기를 했다. 다섯 시가 지나고 일출 시각이 다가오며 두꺼운 어둠이 점차 걷히자 운무에 싸인 우이산이 서서히 신비로운 모습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한다.
제2곡을 지나고 바다를 향해 돌출한 곶처럼 강을 밀치며 툭 튀어나온 제3곡을 휘돌고 제4곡으로 향해 걷는 길도 빗소리 계곡 물소리와 함께 한다. 빗줄기는 잦아들지를 않고 여전히 내리치고 있다. 바짓가랑이는 비에 젖어 흥건하고 백팩을 타고 흘러내린 빗물은 허리를 파고들어 속옷까지 적셨다.
제4곡을 지나고 제5곡 아래쪽 구곡계(九曲溪)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서 천유봉(天游峰) 쪽으로 향한다. 평소 맑고 푸르다고 알려진 구곡의 물은 많은 비로 진한 황톳빛을 띄고 있다.
제5곡 만곡부 은병봉(隐屏峰) 아래 자양서원(紫阳书院), 무이서원(武夷书院), 주문공사(朱文公祠) 등으로도 불리는 우이정사(武夷精舍)가 아늑히 안겨있다. 오십사 세 때인 1183년에 세운 곳으로 이곳에서 <사서집주(四书集注)>를 완성하고 강학을 하며 유교 사상의 정통을 바로 세우기에 힘썼다고 한다.
패루를 지나고 다가간 '학달성천(学达性天)'이라는 글씨의 현판이 걸린 우이 정사는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안내문이 오전 8시부터 관람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아직 채 6시가 되지 않은 이른 시각이니 당연하다. '학달성천(學達性天)'은 청 강희제가 1686년 서원의 이학전승과 인재양성에 기여한 공로를 기리기 위해 주희, 주돈이, 장재, 정호, 정이, 소옹의 사당과 백록동서원, 악록서원 등에 하사한 현판이라고 한다.
정문 처마 밑에서 배낭을 내리고 비를 훔쳐내며 몸 매무새를 가다듬고 정사 오른편 산자락 아래 '강학소' 터가 있다. 한 손에 책을 펴든 채 의자에 앉은 주희의 좌우에 각 2명의 제자들이 둘러서서 강학하는 모습의 동상이 강학소 터를 지키고 있다.
주자 像 / 우이정사 패루
우이정사를 뒤로하고 천유봉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구름이 깃드는 둥지라는 뜻으로 짐작되는 '운와(윈워; 云窝)'를 옆 석소정(石沼亭) 위에 오르니 눈 아래 제6곡에서 제5곡으로 휘도는 물길이 황소처럼 거센 물살을 일렁이며 소란하게 내려간다.
구곡계 물살은 진한 황톳빛이고 구곡계 양쪽에 자리한 여러 암산의 암벽 면을 타고 천천히 위로 오르는 운무는 비단옷을 걸쳐 놓은 듯하다.
암봉들의 숲 사이로 난 좁은 길 아래쪽 구곡계와 접한 너른 평지는 '벽립만인(壁立万仞)'이라는 붉은색 글귀가 쓰인 천길 암벽 아래 우이산의 특산인 대홍포(大红袍; 따홍파오) 차밭이 자리한다. 암봉 벽면의 굴곡부를 타고 내리는 면실같이 희고 가는 물줄기가 신비롭다.
우롱차(乌龙茶)의 일종인 대홍포는 난초 향이 풍부하고 오래 지속되는데 피로 해소, 체액 조절, 이뇨 촉진, 해열, 살균, 염증 더위 질병 예방, 해독, 기름기 제거, 체중 감량, 암 예방, 혈중 지질 저하, 노화 방지 등 수많은 특수 효과가 있다고 '바이두 백과(百度百科)'는 설명하고 있다.
우이산에서 생산되는 차는 대홍포(大红袍), 철나한(铁罗汉), 백계관(白鸡冠), 수금귀(水金龟) 등 대표적인 것을 비롯해서 그 생장환경, 차나무의 형상, 찻잎 모양, 발아 시기, 차의 향 등에 따라 수많은 종류로 나뉜다.
운와 위 절벽 모퉁이에 위치한 수월정(水月亭)에 오르니 구곡계 건너편에 마이산처럼 생긴 쌍봉을 비롯해서 머리 부분만 푸른 나무로 숲을 이룬 암회색 암봉들이 안개에 싸인 모습이 한 폭 동양화를 그려내고 있다.
그 아래 암봉을 칼로 잘라놓은 듯 좁게 갈라진 틈새에 급전직하 구곡계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데, 그 사이에서 머리를 들면 하늘이 한 줄 긴 선처럼 보인다고 헤서 '소일선천(小一线天)'이라고 불린다. 그 이름에서 우이구곡 풍경구 안에는 '일선천(一线天)' 명승도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붉은 글씨로 '다동(茶洞)'이라 쓰인 돌기둥 이정표가 서 있는 곳은 바위 밑으로 뚫린 계단길 옆으로 물줄기가 흘러 물을 끓여 차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으로 보인다.
소일선천(小一线天) / 선욕담(仙浴潭)
설화천(雪花泉)에서 청은암(清隐岩) 오른쪽 깊은 협곡으로 쏟아져 내리는 폭포 물줄기가 장쾌하다. 협곡 왼쪽 암벽 위에 약 2m 높이의 길쭉한 움푹 들어간 곳이 세 개 있는데, 그곳에서 신선이 목욕을 하던 곳이라는 전설이 있어 선욕담(仙浴潭; 시엔위탄)이라 불린다고 한다.
천유봉(天游峰)은 해발 408.8 미터로 정상까지 848개의 계단이 인도한다. 가파른 암벽의 사면을 깎아서 계단을 만들고 갈라진 틈새 위로 잔교를 놓아 정상부로 낸 길을 한발 한발 내딛는다. 중간중간 고개를 좌우로 돌리니 까마득히 높은 암벽 가파른 사면에 정신이 아찔하다.
멀리 병풍처럼 둘러선 봉우리들은 여전히 안개에 싸여 있고, 가까운 암봉들은 패인 골을 따라 실같이 가는 물줄기를 아래로 길게 늘어뜨리고 있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관람객들이 발아래 선욕담 앞 공터로 몰려들며 연신 감탄사를 토해 내는데 그 소리가 암봉 위 멀찍한 계단길까지 들려온다.
장년의 남녀 한 쌍이 우리 일행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절벽으로 난 계단길을 오르며 중간중간 인증 숏을 남기기에 여념이 없다. '중국청년(中国青年)'이라는 로고가 적힌 노란색 티셔츠를 입은 남성은 힘든 기색이 없어 보인다. "중국 청년, 멋있습니다."라고 엄지를 추켜세워 주니 올해 60세로 부부가 함께 허베이성 스지아좡(石家庄)에서 유람을 왔다고 한다. 오늘은 비가 많이 내려서 우이산 유람의 명물인 죽벌(竹筏; 주파) 래프팅을 할 수 없다는 그 부부의 귀띔에 실망이 적지 않다.
천유봉 오르는 길 풍경
천유봉 정상에는 도교에서 장수의 신으로 알려진 팽조(彭祖) 등 세 위의 신을 모신 천유각(天游阁)과 매점이 자리한다. 배낭 속의 드라이어를 꺼내어서 천유각 아래쪽 화장실 전기를 빌려 젖은 옷을 주섬주섬 대충 말렸다.
천유봉에서 '중정공원(中正公园)' 패루 쪽으로 가는 길은 평탄한 숲길로 암벽에 새겨 놓은 각자(刻字)를 천천히 감상하며 걷는 호젓한 길이다. 그 중간 찻집에는 인적이 없고 오늘 하루 장사는 접기로 했는지 주인장도 보이질 않는다. 주인장 허락도 없이 빈 탁자와 의자를 빌려 배낭을 내리고 몸을 앉혔다.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에 귀 기울이고, 처마에서 내리긋는 빗줄기를 쳐다보며, 안개에 묻힌 숲 속에 묻혀 있으니 저절로 신선이 된 기분이다.
중정공원 패루를 지나고 내리막 계단길이 이어진다. 천유봉 봉우리에 가려 있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구곡계 건너편 여러 암봉들은 여전히 운무를 온몸에 걸치고 있다. 공원 관리인으로 보이는 사람 몇몇이 계단길을 쓸거나 수로를 막고 있는 나뭇잎을 치우고 있다. 나무토막 지게로 물건을 나르는 사람도 한 둘 계단을 스쳐 지난다.
계단길 옆에 가건물처럼 서있는 허름한 화방을 중년 남성이 지키고 있는데, 벽면에는 우이구곡의 풍경화들이 걸려 있고, 매대(賣臺) 위에는 부채 그림이 몇 점 놓여 있다. 황치우스(黄秋石)라는 이름의 이 화가는 이곳 출신으로 30년 넘게 우이산 풍경을 '마부화(抹布画)'로 화폭에 담고 있다고 한다.
동행 Y의 요청에 이 화가는 능숙한 솜씨로 가로 세로 약 20×44cm의 캔버스에 채 5분도 되지 않아 구곡계 모습을 유려하게 그려낸다. 크기에 따라 가격이 다소 차이가 있지만 50~100위안에 눈에 다 담을 수 없는 우이산의 풍경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기념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부화(抹布画) 화가 황치우스(우)
오전 열 시경 계단길의 끝 '벽립만인(壁立万仞)' 암벽 아래 차밭이 있던 곳으로 내려섰다. 불어난 물로 제6곡 쪽으로 난 계곡 옆 갓길의 통행이 막혀 많은 사람들이 아쉬움에 서성이며 주위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어둠이 갓 물러난 이른 아침을 헤치며 왔던 길을 되짚어가며 이제는 문을 연 우이정사에 다시 들러 주자의 행적을 둘러보았다. 구곡계 남쪽 다리 건너편에 '우이산시 차엽 과학연구소' 간판이 보여 내부로 들어서니 찾는 이가 드물어서인지 전등을 꺼 놓았다.
전등을 켜고 찻잎을 실어 나르는 광주리와 수레, 차 덖는 솥과 건조대, 십 대 차인(茶人)과 차에 관한 서적들, 찻잔과 차 주전자, 우이산에서 생산되는 각종 차 제품 등 전시물을 둘러보았다.
오전이 다 지나지도 않은 시각이지만 비는 그치지 않고 줄기차게 내리고 비에 젖은 몸은 지쳐온다. 동행 Y와 의기투합해서 마음을 다잡고 빗속을 헤치며 구곡계 남쪽의 '호소암(虎嘯) 팔경' 풍경구로 향했다.
호소팔경은 호소암 주위 백련도(白莲渡), 집운관(集云关), 파선대(坡仙带), 보문도(普门兜), 법우현하(法雨悬河), 오아천(语儿泉), 불랑주(不浪舟), 빙희동(宾曦洞) 등을 일컫는다고 한다.
호소암 풍경구 입구의 전광판은 오늘 현재까지 우이산 풍경구 입장객 수가 1,314명이라고 알리고 있다. 우이산시 당국이 이번 노동절 연휴인 4.29일부터 5.3일까지 5일간 우이산을 찾은 관광객 수가 40만 3,600명, 우이산 풍경구를 찾은 관광객은 16만 6,500명이었다고 밝힌 언론보도가 있었으니, 우이구곡에 하루 평균 3만 3,300명이 방문한 셈이다.
돌계단길을 따라 얼마간 오르니 앞을 막아서는 거대한 호소암의 암벽을 따라 가파르게 깎아 놓은 계단길이 보인다. 원뿔꼴로 곧추 선 절벽의 가장자리로 난 계단과 천길 낭떠러지 사이에는 낮은 난간이 두려움을 덜어주는 유일한 구조물이다.
오르는 중간에 뒤로 돌아 밑을 쳐다보니 오금이 저려와서 얼른 얼굴을 위쪽으로 돌리게 되는 것이 가히 '호한파(好汉坡; 하오한포)'라는 이름이 걸맞다는 생각이 든다. 호한파 벼랑길을 다 오르니 '집운차관(執云茶馆; 즈윈차관)'이라는 이름의 매점이 자리한 넓은 평지가 나타나고 그 우측 50여 미터 거리에 '경관대'와 '정명교(定命桥)'가 있다는 이정표도 보인다.
호소암 암봉의 목덜미쯤 높이에 위치한 매점에서 오른쪽으로 휘돌아 '경관대(景观台)'에 서니 멀리 몸의 8할 정도를 운무 속에 감춘 봉우리들이 해무에 잠긴 섬들처럼 보인다. 경관대 옆 천길 높이 갈라진 바위틈 위에 놓인 짧은 석교인 '정명교(定命桥)'가 놓여 있다.
깨달음의 경지인 열반에 이르기 위한 수행의 여덟 가지 덕목인 불교 '팔정도(八定道)'의 하나로 일상생활에서 건전하고 바른생활 습관과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정명(定命)'을 실천하라고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일까. 끝을 알 수 없는 좁은 틈새를 내려다보니 정신이 번쩍 든다.
호한파(好汉坡)와 운무에 덮인 봉우리들
천성선사(天成禅寺) 관음상
매점 왼편으로 난 길을 따라서 치성소처럼 불상이 모셔져 있는 석굴을 지나고, 급전직하 지그재그로 계단을 협곡으로 내려서면 호소팔경 중 하나로 바위틈에서 흘러나온 물이 모인 오아천(语儿泉)과 천성선사(天成禅寺)이 자리한다.
천성선사는 바깥쪽으로 비스듬히 덮여 거대한 동굴 형태를 한 호소암 절벽 아래 아늑하게 자리한다. 절벽의 대형 관음 부조는 샤먼(厦门)의 엽려금(叶丽金; 예리진)이라는 사람의 기부로 1994년에 완공된 것이라는 건조 내력이 관음상 좌측 아랫부분 벽면에 각인되어 있다. 관음상 발에는 반야바라밀다심경이 적힌 나무판이 놓여 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揭諦揭諦波羅揭諦波羅僧揭諦菩提娑婆訶)"
역경사(逆傾斜)의 암벽에 저토록 거대하고 정교한 불상을 조성한 장인의 솜씨도 경이롭다. "저 피안의 세계로 가서 깨달음을 이루자"는 반야심경의 마지막 구절 주문처럼 신실한 믿음과 깨우쳐 반드시 해탈에 들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 없이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유산이리라.
다른 한편으론 1999년 유네스코 자연문화유산으로 지정되리만치 수려한 경관의 일부에 불상 조성을 허가한 당국의 결정도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천성선사를 뒤로하고 다시 구곡천 쪽으로 내려가는 길 옥녀봉과 호소암 사이 널찍한 평지와 경사가 느린 산록에 차밭이 가지런히 조성되어 있다. 수려한 산수, 맑고 깨끗한 공기, 온화한 날씨 등 좋은 조건에서 생육한 찻잎이니 중국 10대 명차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옥녀봉 셔틀버스 정거장으로 내려서서 우이궁으로 이동하여 그 내부를 둘러본 후 셔틀버스로 우이산 풍경구 남문 입구로 빠져나오며 우이산 유람을 마감한다.
침대열차에서의 짧고 불편한 쪽잠을 마다하지 않고 먼 길을 달려와서 이른 새벽부터 바삐 발걸음을 옮겼지만, 종일토록 내린 비와 불어난 물로 인해 제6곡부터 제9곡까지는 둘러보지 못했다. 주자가 <우이도가>에서 노래한 "구곡계의 푸른 물"과 "물가에 비친 옥녀봉"의 자태 또한 볼 수 없어 아쉬움이 크다.
그렇지만 구곡계 등 우이산의 명승지를 빗속에 거닌 일정이 황홀한 꿈을 꾸고 일어난 듯 마음속에 이는 감흥이 쉬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난핑시역(南平市站)으로 이동해서 안개에 젖고 비에 젖고 땀과 감동에 흠뻑 젖은 몸을 상하이행 고속열차에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