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인산 Apr 18. 2023

난쉰(南浔) 구쩐(I)

강남 수향 탐방

금요일 오후가 저녁으로 바통을 넘기려는 시각이다. 상하이에서 차를 몰아 강남 수향 중 하나로 서쪽으로 110여 킬로미터 떨어진 난쉰(南浔)으로 향했다. 후위(沪渝)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창 밖으로 주쟈지아오(朱家角), 저우좡(周庄), 통리(同里) 등 역사가 오랜 수향(水鄕)들의 이정표가 차례로 지나간다.


미리 예약을 해 둔 호텔에 짐을 내리고 나니 오후 8시 반이 넘었다. 호텔 앞 도로를 건너 맞은편 구쩐 입구의 광장으로 갔다. 코끼리 두상 부조 네 개가 코에서 물을 뿜어 내는 분수가 인상적인  너른 광장을 지나 패루와 입구를 통과다.


장쑤성과 저장성의 경계인 후저우(湖州)에 위치한 이 구쩐은 명청시대 강남의 이름난 잠사진(蚕丝镇)으로 면적이 34여㎢에 달한다. 2005년에 중국 역사 문화 명진(名镇)과 국가 5A급 관광 명소로 지정되었는데, 후저우 난쉰취(南浔区) 당국은 금년 1월 18일부터 전 세계 모든 관광객에게 경구 내 영구 무료입장을 선언한 바 있다.


그래서인지 조금 아담한 검표소를 지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회전 차단기도 관광객 출입통제의 역할을 내려놓았다.


완전히 어둠이 내렸음에도 구쩐엔 나들이객들로 시끌시끌하고, 좁은 수로를 끼고 어깨를 촘촘히 맞댄 채 한 몸이 된 단층의 낮은 건물들은 군데군데 불빛을 밝혔다.


폭 좁은 운하에는 유람객을 태운 배 하나가 사공의 삿대질에 들릴 듯 말 듯 우럭우럭 소리를 내며 유유히 흘러가고, 수면 위에 내려앉은 불빛은 이방인 마음에 이는 객수처럼 어른어른 흔들린다.


수로 건너편 높은 담장 아래 공터에서는 여학생 네댓 명이 다가올 축제에서 선보이려는 지 홍등 불빛 아래서 춤동작 연습에 여념이 없다. 수로변 버드나무 고목들이 갖 머리를 감은 여인네들이 고개를 수그리고 긴 머리칼을 빗는 것처럼 파릇한 잎사귀를 무성히 단 가는 줄기를 늘어뜨리고 서있다.


소련장 부두(小莲场 码头) 주변 수로엔 낮동안 관람객을 태우고 분주히 수로를 오갔을 나릇배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여행객들이 밤의 휴식을 찾아 돌아갈 시각이라 그 옆 소련장 정문도 굳게 닫혀 있다. 기념품 가게 수공방(手工坊)의 나이 많은 주인장은 진열장을 정리하며 하루를 마감하고 있다.


통리교(通利桥) 장가교(將家桥)가 직각으로 만나는 골목 '심풍제(潯豊齊)'에서는 여점원 둘이 마주 보고 서서 절구를 내리치는 떡매질이 매섭다. 그 앞으로 다가서니 볶은 콩강정인지 콩 냄새가 고소하다. 가게 진열대에는 비닐봉지와 종이상자에 포장되어 손님을 기다리는 완성품이 가지런히 쌓여 있다.


'무추이수(木棰酥)'라 불리는 이 먹거리는 맥아당, 땅콩, 참깨, 계화, 호두, 아몬드, 해바라기씨 등 다양한 원료로 만드는 일종의 강정으로 이 지역 특산품이라고 한다. 한 봉지를 20위안에 사서 저녁을 들지 않아 출출한 배를 달랬다.


통리교를 건너 '남송 어주방(南宋御厨房)' 술 가게에서는 주인 내외가 미주(米酒)를 걸러 내리고 있는데 코 끝에 와닿는 냄새가 향기롭다. 이곳에도 짧기는 하지만 저번 시탕(西塘) 구쩐의 연우장랑(烟雨长廊)처럼 술 가게 부근 보행로 중 일정 구간에 지붕을 얹었다.  


이곳 난쉰에는 "4상 8우 72 금구(四象八牛七十二金狗)"라 불리는 대표적 부상(富商)이 있었다고 한다. 구쩐 입구에 코끼리 분수를 설치한 연유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재산이 은 천만 냥 이상인 사람을 코끼리, 500만 냥 이상을 소, 100만 냥 이상을 개에 각각 비유한 것인데, 이곳 견사상인들의 재력이 대단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4상 중 한 사람이었던 유용(刘镛)의 저택이라는 '유씨제호(刘氏梯号)'의 대문 또한 굳게 잠겨 있기는 마찬가지다.


밤 11시가 가까운 시각이지만 여전히 '무추이수(木棰酥)' 포장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심풍제(潯豊齊)'를 스쳐 지나서 난시지에(南西街)를 따라 호텔로 돌아와서 하루 여정을 마감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