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란산(贺兰山) 자락 아래 광대한 평원에 흩어져 있는 서하왕릉 유적지를 둘러본 후 버스로 시닝(西宁) 시내로 들어와서 진펑구(金凤区) 베이징북로에 있는 '나싼 따오샤오면(纳三刀削面)' 식당을 찾아갔다.
바이두 지도 앱에 나오는 식당이라 유명할 법도 하겠다는 생각으로 찾아간 것이다. 기실 식당은 좁은 골목길 깊숙이 자리한 네댓 평 넓이로 벽면에는 면 두 종류와 채소 반찬 한 가지 이렇게 달랑 세 가지 메뉴 이름과 가격이 적힌 메뉴표가 걸려 있다.
떡볶이 양념처럼 붉은빛 걸쭉한 소스를 곁들인 차오따오샤오면(炒刀削), 같은 비주얼이지만 짬뽕처럼 국물이 있는 후이따오샤오면( 烩刀削), 그리고 파오차이(泡菜) 등 메뉴판에 있는 모든 음식이 주문한 대로 한 그릇씩 나왔다. 이번 여행 중 침대열차, 칭하이호 히치하이킹, 란저우 황허 강변 등 여러 곳에서 얘기를 주고받은 현지인들처럼 이 작은 식당의 젊은 여종업원도 우리 일행이 한국인임을 알자 반색하며 호기심을 보인다. 일반 중국인들에게 최근 경색 국면인 한-중 관계는 관심도 없는 딴 세상 일인지도 모른다.
양고기 볶음이 추가로 들어간 면 두 그릇은 양이 많아 두 명이 나눠서 다 먹기에 버거운 양인데 구수한 질감의 면발과 매콤한 소스와 국물이 젓가락을 쉽게 내려놓지 못하게 한다. 이 지역 특색이 듬뿍 든 음식으로 소소하지만 호사로운 늦은 점심을 들고 택시를 불러 호텔로 향했다.
중국 남쪽 지방과는 달리 인촨을 비롯한 서북 도시에서는 한 때 중국 내 시장 점유율이 10%를 웃돌았지만 지금은 1%에도 못 미치는 '현대' '기아' 브랜드의 자동차가 제법 많이 눈에 띈다. 여섯 살 쌍둥이를 두었다는 서른 살 엄마 기사가 모는 택시도 현대 브랜드이다. 그녀는 아침 7시 반에 나와서 9시간 운전을 하고, 남편이 같은 차 운전대를 넘겨받아서 새벽 세 시경까지 운전을 한다고 한다. 그녀 가족의 일과가 고단한 소시민의 일상을 보는 듯 안쓰러운 마음과 함께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로 일정을 하루 앞당긴 Y의 비행시간이 넉넉지 않아 호텔에서 어정쩡하게 서로의 안녕을 고하고 남은 여정을 각자 이어가기로 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호텔 주변에 있는 남관청진사(南关清真寺)와 남훈문(南薰门)을 둘러보기로 했다.
이슬람 사원인 남관 청진사(모스크)는 옥황각(玉黄阁)에서 남쪽으로 길게 뻗은 가로변 상가 가장자리쯤에 자리한다. 관리인이 눈에 띄지 않고 사원 정문을 들어서니 인공기가 걸린 게양대 뒤에 문이 굳세 잠긴 단조로운 중국식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듯 곳곳이 부실한 부속 건물은 손질한 흔적도 없다.
바이두 지도 앱이 보여주던 푸른 지붕에 신월 첨탑을 가진 아름다운 모습과는 너무나 달라서 의아했다. 매주 금요일 오후에는 수천 명의 교도들이 이곳에 모여 종교 활동을 한다는 바이두 백과의 설명에 믿음이 가지 않는다.
필시 안쪽 깊숙이 본당을 비롯한 부속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을 터이지만 입구만 맴돌다 모스크의 본모습을 제대로 대면할 기회를 놓쳐버린 셈이다. 기온이 35도 내외로 습도마저 없는 건조하고 뜨거운 이곳 날씨가 금세 몸을 지치게 하고 호기심 마저 꺾어버린 탓이다.
남관청진사(@百度)/ 입구에서 본 모습
옥황각(玉黄阁)/남훈문
남훈문 앞 대리석 바닥 너른 광장은 한여름 태양 아래 내어 놓은 솥뚜껑처럼 내려 쬐는 태양과 함께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고 있다. 중앙 문 위에 걸린 마오쩌둥의 사진 좌우로 "중국 공산당만세, 중화인민공화국만세"라는 글귀가 적힌 모습이 북경 천안문과 흡사하다. 현판조차 공산당 휘장이 대신하고 있어 옛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서하 당항족(西夏 党项族)의 수령 이덕명(李德明)이 1020년 도읍을 영주(靈州)에서 인촨으로 옮기면서 축성했지만 대지진과 전쟁으로 파괴되었던 것을 민국 초년에 복구했다니 그럴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훈문 광장 맞은편 임시 건물 아래 그늘에서 빨간 모자를 쓴 미화원으로 보이는 할머니 두 분이 햇빛을 피하며 담소하고 있다.
호텔로 돌아와서 땀을 씻고 몸의 열기를 식히고 있자니 중국 서역으로의 출행 다섯째 날이 저물어 간다. 강렬했던 태양이 지고 뜨겁던 열기가 식을 즈음인 오후 여덟 시 반경 호텔을 나섰다. 호텔 옆 공용 자전거(共享单车)를 타고 길거리를 달리며 인촨(银川)의 밤 모습을 둘러볼 요량이다.
신화서로(新华西路)를 따라 서쪽으로 페달을 지쳐가며 승천사 탑, 인촨 해관, 봉황비 탑, 닝샤 사법청 등 건물들을 잠깐씩 훔쳐보았다. 황허동로변 천안롄(晨晚练) 광장에서는 대형 야외 스크린 앞에서 간이의자에 앉아 정치색 짙은 드라마를 시청하는 사람들, 너른 공터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쌍쌍의 남녀들과 벤치에 앉아 그들의 춤을 지켜보는 주민들, 수레에 과일을 파는 노점상 등 많은 사람들이 뜨거운 낮시간이 지나고 찾아온 선선한 밤공기를 만끽하고 있다.
승천사 탑(承天寺塔)
봉황비(凤凰碑)
대세계상무광장(大世界商务广场)/인촨해관
크리스마스 철도 아닌데 조명전구를 둘러쓰고 있는 가로수가 이색적인 신창동로(新昌东路)의 해관 건물을 굳게 닫힌 철문 너머로 한참 동안 유심히 올려다보았다. 난징, 닝보, 항저우 등에서도 오늘처럼 자투리 시간이 허락되어 그곳의 세관 건물을 찾아보았었다. 평생의 2/3를 관문에 몸 담고 있어 자연히 그쪽으로 관심이 쏠리기 때문이다.
인촨 해관 맞은편 길 건너는 온통 불야성으로 빛나는 2~3층 식당 등 상가 건물이 수백 미터 길게 늘어서 있다. 부와 풍요를 의미하는 벼이삭 조형물로 장식한 식당가는 사람들이 빼곡히 몰려 앉아 음식과 음료를 들고 대화를 나누며 낮보다 행복해 보이는 밤을 만끽하고 있다.
공안청 건물이 있는 안닝동항(安宁东巷) 거리의 가로수들도 줄기와 가지에 조명 전선을 잔뜩 감고 있지만 불을 켜지는 않아 신창동로(新昌东路)의 가로수들보다 한결 편안해 보인다.
베이징중로의 닝샤농업, 닝샤은행, 닝샤방송국 등의 빌딩들은 별다른 조명을 밝히지 않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어둠이 내리면 빌딩마다 온갖 빛깔로 조명으로 치장되는 중국의 여느 도시들과는 달리 인촨은 수려한 외관을 자랑하는 건물들도 조명을 밝히지 않고 어둠 속에 묻혀 있다. 상하이 와이탄 허핑호텔의 지붕과 흡사하게 세 지붕을 녹색 조명으로 치장하고 한껏 아름다움을 뽐내던대세계상무광장(大世界商务广场) 빌딩도 호텔로 되돌아오는 길에는 조명이 걷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정원남지에 거리 서환청진사(西环清真寺) 앞을 지나고 후빈서로(湖滨西路)로 접어들었다. 로마 성베드로 광장의 분수를 닮은 이쁜 분수가 자리한 아파트 입구 옆 편의점 '만만촨(湾湾川)'에서 음료 한 병을 사서 갈증을 달랬다. 편의점 문을 자정에 닿는다는 인상 좋은 편의점 매대 아저씨는 아직 한 시간 여 더 자리를 지켜야 할 것이다.
편의점 맞은편에 자리한 중국 특송업계의 선두주자 차이니아오(菜鸟)의 작은 점포도 아직까지 문을 열어놓고 불을 밝히고 있다.
서로 마주보며 자리한 인민회의당과 닝샤체육관 사이 광장에는 무슨 행사라도 준비하는지 가설물 설치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길 건너 좌측 3.14 헥타르 넓이의 광명광장(光明广场)은 어둠에 묻혀 있다.
서둘러 페달을 밟아 호텔로 돌아오니 11시 반이 지나고 있다. 낮에는 볼 수 없는 인촨 시민들의 일상의 단편을 스쳐 지나며 엿본 라이딩이었다. 고단한 몸에 깊은 잠이 찾아오면 좋겠다. 23-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