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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Jun 22. 2023

중국 서북 탐방(III), 칭하이성 시닝(西宁)


일월산(日月山) 문성공주 유적지를 뒤로하고, 올라탄 징짱(京藏)고속도로는 고도를 한껏 낮추며 시닝(西宁)으로 향한다. 베이징과 티베트 라싸를 잇는 총길이 3,718km의 징짱(京藏)고속도로는 베이징에서 허베이, 네이멍구, 닝샤, 간쑤, 칭하이를 거쳐 티베트까지 관통하는데, 1994년에 착공하여 2021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해발 3,500여 미터에 달하던 고도가 1천 미터 이상 낮아지 면서, 목 뒷덜미 뻐근함이 가시고 한결 몸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든다. 시닝이 가까워지자 험한 산악군과 그 사이 깊은 험곡이 이어지는데, 고속도로는 바위산을 뚫은 터널과 계곡 위에 놓인 다리를 번갈아 지난다. 시닝(西宁)과 시장 허텐(和田) 간을 잇는 시허고속도로(西和高速)로 갈아타고 시닝 시내로 들어섰다.


칭하이호에서 시닝으로 가는 길
시닝 시내 모습

시닝은 4~5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를 가진 해발 2,200여 미터의 고원 도시이다. 서한(西汉) 때에 군사와 우편의 거점인 서평정(西平亭)이 설치되고, 금성군(金城郡)에 예속되면서 본격적으로 중국 역사에 등장한다.


시닝 지역은 북위(北魏), 토번(吐蕃), 서하(西夏), 원, 명, 청을 거쳐 현재의 중국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이 여러 왕조를 거쳤다. 이곳이 한족과 이민족들 간 각축장이 된 것은 칭하이성 동부 황허 위쪽 분지에 위치하여, 칭장(青藏) 고원의 동쪽 관문이자 예로부터 고대 실크로드 남로와 탕번고도(唐蕃古道)가 경유하는 교통과 군사의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현재의 시닝(西宁)은 도시지역 인구 1,900만여 명 포함 전체 인구 2,500만여 명으로 칭하이성의 정치, 경제, 교육, 문화, 교통의 중심지이다. 시닝 주변은 나무가 잘 자라지 않는 산악지대로 녹지가 거의 없어 황량하다. 그에 비해 시내로 들어오면 활엽 침엽 등 온갖 가로수와 녹지가 잘 조성되어 있어,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아늑하다는 느낌이 든다.


칭하이성 박물관 부근 상가 건물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지상으로 올라오니, 푸싱지에(复兴街) 거리 한가운데라 출출한 허기를 채우기에 안성맞춤이다.


푸싱지에와 접한 좁은 골목 입구에 '차이홍샹(彩虹巷)'이라는 거리명 이정표가 서있다. 시닝시 북서쪽 지역에 위치한 중국 유일의 토족자치현(土族自治县)인 '후주(互助)' 여인네들의 의복 소매가 홍, 황, 흑, 녹, 백 등 여러 색깔로 구성되어, 마치 무지개를 닮았다는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 이 골목은 '무지개의 고향'이라 알려진 토족 마을을 기념해서 조성한 것일 터이다.


서상업항(西商业巷) 보행자 거리 포차에서 몇 가지 먹거리로 늦은 점심을 들었다. 교통항(交通巷) 거리 건너에 신닝(新宁) 광장을 끼고 칭하이성 박물관, 칭하이성 문화관, 칭하이성 도서관이 나란히 자리한다. 저녁 여섯 시쯤 둔황(敦煌)으로 가는 침대열차를 타야 하기 때문에 허락된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여, 박물관을 둘러보려는 발걸음이 바쁘다.


칭하이성박물관

박물관 입구로 가니 중국 여느 도시의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입장료 없이 여권만 확인 후 즉시 입장을 시켜준다. 옛 칭하이 지방 군벌 마부팡(马步芳)의 개인 저택에 1986년 처음 개관한 후, 2001년 5월 신닝 광장(新宁广场) 동쪽에 현재의 4층 건물이 완공되어, 대중에게 공개되었다고 한다. 박물관은 9천여 m²에 이르는 전시면적에 소장 유물은 진귀 유물 2천여 점 포함  총 1만 5천여 점에 이른다고 한다.


입구로 들어서니 벽면 부조와 안내문이 칭하이성의 개략적인 역사를 소개한다. 이 지역은 지금으로부터 3만 7천 년 전부터 인간의 활동 무대가 되었고, 6천 년 전부터 앙소문화인(仰韶文化), 가악문화(家岳文化), 채도문화(彩陶文化), 정가문화(井家文化) 등의 시기를 거쳐, 고강족(古羌族)이 중원 한 왕조와 흉노의 각축장이던 이곳으로 들어왔고, 기원전 111년에는 허황(河湟) 지역이 중앙 왕조의 판도에 들게 되었다고 한다.


위진(魏晋) 이후 요동의 선비족이 깐수와 청하이 지역으로 세력을 뻗쳐, '토곡혼(吐谷浑, 313-663년)'이라는 지방정권을 수립해서 300여 년간 존속하다가 토번의 공격으로 멸망한다. 그 후 이 지역은 당-토번 간 각축의 최전선이 되었다.


당나라 '안사의 난(安史之乱, 755-763년)' 이후 토번은 이 지역을 100년 넘게 장악했고, 11세기 초에는 옛 토번의 잔재가 칭당(青唐) 정권을 세웠으나 북송에게 멸망당한다. 그 후 서하(西夏), 원(元), 명(明), 청(淸)의 통일 왕조로 칭하이 지역의 주인이 바뀌게 된다.


구석기시대의 마제석기, 5300-4700년 전 마가요(马家窑) 문화의 아름다운 붉은색 각종 채색 무늬 도기들을 비롯한 4200-3600년 전 제가(齐家), 3600-2800년 전 신점(辛店) 등 청동기 시대에 대한 설명과 출토된 시기별 도기들을 둘러보았다.


'원원유장(源远流长)'이라는 표제 아래 3500-2600년 전 키위에(卡约), 3300-2800년 전 낙목홍(諾木洪) 등 황화 연안과 그 지류인 황수(湟水) 유역에 형성되었던 청동기 문화에 대해 소개한다. 한치허황(汉治河湟), 선비서천(鲜卑西迁), 청당풍운(青唐风云) 등 표제의  전시실에서는 차마고도, 당번고도, 일월산 문성공주 유적지, 아름다운 불상과 도자기 등 시기별 유물들을 볼 수 있다.


화려한 채색 수묵화 한 점을 옮겨 놓은 듯  아름다운 청나라 때의 '분채백록문(纷彩百鹿纹)' 자기, 화려한 장식과 세밀한 입체감이 돋보이는 명나라 때의 '영락관 동경금관음입상(永乐款铜鎏金观音立像)', 서역 신화 속 인물을 연상케 하는 당나라 때의 '우인와당(羽人瓦当)' 등이 특히 오랫동안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편, 이백(李白)의 <관산월(关山月)>, 두보(杜甫)의 <병거행(兵车行)>, 왕창령(王昌龄)의 <종군행(從军行)> 등 당나라 때 시인들의 시구절은 이민족들과의 각축장이던 이곳 변방에서 죽어간 이름 모를 병사들의 혼을 달래는 진혼곡인양 전시실 벽면 한편을 지키고 있다.


"그대 보지 못했는가 칭하이 언저리에는

 예부터 백골을 거두어주는 사람 아무도 없어

 새 귀신은 괴로워하고 옛 귀신은 통곡하여

 비오고 습한 날이면 훌쩍훌쩍 우는 소리 들린다오"


君不见青海头, 古来白骨无人收。

新鬼烦冤旧鬼哭, 天明雨湿声啾啾。

_두보의 <병거행(兵车行)> 중


박물관 3층에 위치한 '칭하이 고고(古考) 성과전', '칭하이 비물질 문화유산 정품전(非物质文化遗产精品展)' 전시실도 차례로 서둘러 둘러보았다.


상하이 농민화촌에서 접했었던 화려한 원색의 칭하이 지역 농민화(农民画), 허황 그림자극(河湟皮影戏), 전지(剪纸), 자수(剌绣), 살라족(撒拉族)의 양가죽 뗏목(皮筏子), 민요와 악기, 민속 의복, 화려한 색상의 티베트 역사, 문화, 종교 등을 주제로 한 두루마리 그림인 장족(藏族)의 탕카(唐卡), 독특하고 화려한 탈 등이 인상적이다.


이 박물관에는 유형 유물뿐 아니라 칭하이성의 무형문화유산 국가급 57개, 성급 93개를 비롯하여 계승자들을 소개하는 전시실도 구비하고 있어, 민속박물관의 역할도 겸하고 있는 것이다.


칭하이성 미술관
시닝 기차역

박물관을 빠져나와 너른 광장을 함께 끼고 자리한 '칭하이성 미술관'으로 뛰어가듯 바삐 걸음을 옮겼다. 나선형 계단을 오르며 벽면에 걸린 이 지역 풍경을 담은 풍경화들과 장수성미술관(江苏省美术馆)의 순회전시 작품들을 수박 겉핧기식으로 둘러보고, 발길을 돌려 시닝역(西宁站)으로 향했다.


번듯하고 규모가 큰 시닝역 광장에 하나같이 붉은색 모자를 쓴 산동성에서 온 단체 여행객 무리는 족히 수백 명은 되어 보인다. 각기 다른 번호표를 단 깃발 아래 끼리끼리 모여서, 역사를 배경으로 유쾌한 표정으로 인증숏을 남기는 모습이 여행의 흥취에 들떠 보인다.


시닝역에 도착해서, 다음 목적지인 란저우의 볼거리가 몰려 있는 시내 중심부 짱예로(张掖路) 보행가에 위치한 호텔('CitiGO 欢阁酒店')을 예약했다. 열차는 정해진 시각 17:55에 칭하이성의 성도 시닝을 뒤로하고 깐수성의 성도 란저우(兰州)를 향해 출발했다.


열차는 철로변을 따라오다 허주이촌(河嘴村)에서 황허(黄河)에 안겨드는 황수이(湟水) 강과 함께 중간 기착지 란저우로 들어섰, 어둠은 뉘엿뉘엿 소리 없이 조금씩 내려앉다.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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