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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Jun 24. 2023

중국 서북 탐방(IV), 서북의 길목 란저우

어머니 강 황허에 안긴 도시


란저우(兰州)는 상주인구 약 440만여 명의 간쑤성 직할 지급 시이자 성도(省都)이다. 중국 서북지역의 종합교통 거점이자 실크로드 경제벨트의 중요한 결절지로 '서북의 노도(路道)'로 불리며 석유화학, 바이오제약, 장비 제조 등 중요 공업기지이기도 하다.


한나라 때에 금성현(金城悬)이 설치되었고, 수나라 때 지명을 현재의 란저우로 바었으며, '안사의 난(安史之乱, 755~763)' 이후에는 토번(土蕃)왕국의 치하에 들기도 했다.


란저우 서역에 내린 후 전철로 이동하여 호텔에 짐을 내리니 밤 아홉 시가 지났다. 호텔은 깐수성 정부청사 옆에 자리하는데 먹거리로 이름난 따종항(大众巷) 거리도 지척에 있어 그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짱예로(张掖路) 보행가 거리를 따라 노점상 거리가 길게 이어지고 그 중간쯤에 황허 강변까지 북으로 곧게 따종항(大众巷) 먹거리 골목이 400여 미터 가량 이어진다. 이름을 다 셀 수 없이 다양한 갖가지 먹거리를 파는 포차 수백 개가 등과 어깨를 맞대고 길 한가운데 길게 늘어서 있다.


그중 회족 복장의 남녀 노점상이 7할가량을 차지하는데 닭고기, 양고기, 소고기, 내장 등을 재료로 특유의 소스를 곁들인 음식들이 많고 과일이나 음료를 파는 곳도 눈에 띈다. 닭날개와 찹쌀을 주재료로 하여 만든 '지츠빠오빤(鸡翅包饭; 닭날개쌈)'과 감자를 기름에 튀긴 와플처럼 생긴 음식을 하나씩 차례로 골라서 손에 들고 먹으면서 긴 골목을 빠져나왔다. 포만감이 들어 따로 저녁을 챙겨서 먹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란저우 먹거리 골목
란저우 황허강변 모습

난삔허동로(南滨河东路)를 건너니 어둠 속에 황허 북변 산록을 따라 층층 자리한 바이타산(白塔山) 공원의 여러 건물들과 황허철교를 비추는 화려한 조명을 수면에 드리운 황허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밤 10시경 늦은 시각에도 황허 강변은 친구, 가족, 연인 등 남녀노소 많은 시민들로 북적인다. 끼리끼리 어울려 강변도로를 걷거나 도로 가장자리를 따라 빼곡히 줄지어 놓인 안락한 릴랙스 체어에 앉아 해바라기씨 등을 주전리 삼아 생맥주 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더없이 여유롭고 낭만스러워 보인다.


황허철교는 이 도시의 랜드마크로 '황허제 1교(黄河第一桥)'라고 쓰인 비석이 자리하는 그 남단으로 다가가니 '중산교(中山桥)'라는 글자가 상단에 붙은 철교를 카메라에 담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조명을 받아 어둠 속에 건물들 하나하나 각기 자신의 모습을 선명히 드러내며 하나로 어우러진 바이타산(白塔山) 공원의 모습은 말로써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이 환상적이다.


철교를 따라 오고가는 사람들을 비켜가며 그 북단 바이타산 공원 맞은편까지 걸어가면서도 황허의 상하류 쪽 풍경을 감상했다. 이곳도 경도상 중국 표준시각보다 한 시간가량 늦어 밤이 깊었음에도 사람들 발걸음은 느긋하기만 하다.


'황허 어머니' 조각상, 백탑산 공원 등 중산교 부근에 몰려있는 볼거리들은 내일 하루면 찬찬히 둘러보기에 충분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발길을 돌려 호텔로 돌아왔다.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호텔의 객실은 넓지 않고 심플한 구조로 예전 브뤼셀 출장 때 투숙했었던 'Siru'라는 콤팩트한 호텔이 떠올랐다.


호텔 벽면을 채우고 있는 란저우 시내 황허 강변 관광 중심지 지도를 들여다보며 내일 둘러볼 곳들을 한 번 더 점점해 보았다. 옛 실크로드가 지나는 교역지로 번성했고 현재는 중국 서북지역 교통 요충지인  '서북의 노도(路道)' 란저우에서 출행 둘째 날 일정을 마무리하며 잠자리에 든다.


여정 세 번째 날 이른 아침 꿀 같은 단잠에서 깨어났다. 커튼을 열어젖히니 옅은 구름을 머금은 하늘과 경계를 긋고 있는 마천루가 도시의 빌딩숲은 이불을 뒤집어쓴 채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고 알린다.


조명을 받아 더없이 화려해 보였던 도시의 밤 모습을 보았으니 이제는 밝은 태양 아래 화장을 걷어낸 진정한 도시의 본모습을 볼 차례이다. 호텔에서 아침을 든 후 자전거를 지쳐 황허철교 상류 쪽에 자리한 '황허 어머니(黄河母亲)' 조각상 쪽으로 향했다.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의 란저우 시내 거리는 보행자, 자전거, 이륜차, 승용차량, 버스 등이 어우러져 활기차 보인다. 짙은 남색 기와지붕과 높은 첨탑 위에 걸린 신월(新月)이 인상적인 서관 청진대사(西关 清真大寺) 모스크 건물을 둘러보고, 백운관 앞 교차로에서 길을 건너니 낮게 엎드려 모습을 보이지 않던 짙은 황톳빛 황허가 누런 비늘을 일렁이며 꿈틀대는 황용(黄龙)처럼 도도히 흐르고 있다.


칭장고원(青藏高原) 바얀카라(巴颜喀拉) 산 북쪽 기슭 아래 카르취허(卡日曲河) 계곡과 위에구쫑리에(约古宗列) 분지에서 발원한 황허는 총길이 5,464km로 칭하이, 쓰촨, 깐수, 닝샤, 네이멍구, 산시(陕西), 산시(山西), 허난, 산동 등 9개 성을 지나 발해로 유입된다.


중국인들은 세계 고대문명 발상지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 황허를 '어머니 강(母亲河)'로 부른다. 황허는 매년 16억 톤의 토사를 운반하는데 그중 12억 톤이 바다로 흘러들고 나머지 4억 톤은 황허 하류에 남아 충적평야를 형성한다고 한다.


'황허 어머니' 길이 6m, 폭 2.2m, 높이 2.6m, 총 무게 40여 톤의 조각상이다.  중국인들이 '어머니 강'이라 부르는 황허의 상류인 이곳에  조각상을 세워 풍요로움을 선사하는 황허를 칭송하고 고마움을 표현한 것은 지극히 마땅하고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허리 높이 기단 위 화강석 조각상은 간쑤의 고대 채색도기의 물결과 물고기 문양 위에 머리운 채 비스듬히 누운 긴 머릿결의 젊은 어머니가 미소를 머금 엎드린 아기를 지긋이 바라고 있다.


낯선 외지인의 요청에 흔쾌히 스마트 폰을 받아 들고 사진을 찍어 주는 현지인 아주머니들의 친절에 '어머니 강' 황허의 너른 품에 안긴 듯 마음이 푸근해진다.

란저우 시내/청진사(이슬람 사원)
황허 모친상
양피 뗏목(좌)

황화철교 방향 황허의 하류 쪽으로 강변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볼거리들이 즐비하게 눈에 들어온다. 황허모친 나루터(黄河母亲 码头)는 12~20개의 공기를 채운 산양 가죽을 가로세로 얇은 나무살에 엮어 매어 만든 양가죽 뗏목인 '피파즈(皮筏子)' 래프팅 출발점이다. 피파즈를 두 선으로 번쩍 들어 올려 물 위로 옮기는 것으로 보아 무게가 무거워 보이지 않는다.


칭하이호 서남쪽 천여 리 지점에서 발원하여 이곳 란저우를 거쳐 발해를 향해 대륙을 가르 지르며 수천 리를 달려갈 젊은 황허 물살은 제법 빨라 래프팅 체험객을 태우고 물살에 휩쓸리듯 하류로 내려가는 양가죽 뗏목은 사뭇 위태해 보인다.


가는 가지를 길게 늘어뜨린 버드나무 고목들이 인상적인 황허강변 산책로를 따라 중산교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제비 무리는 제철을 맞아 신명 난 듯 물수제비를 뜨며 황톳빛 황허의 급한 물살 위를 힘차게 비행한다.


란저우 수차원(水车园)은 면적 약 14,500㎡의 물레방아 공원으로 지름 16.5미터의 수차 2기가 천천히 시계 방향으로 멈추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 물레방아는 명나라 때 기원한 것으로 란저우의 수차는 고대 황하 연안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1994년에 재현하여 수차원으로 조성했다고 한다.

'거따 후루(疙瘩 葫芦)' 작품

그 옆에 작은 화방이 자리하는데 크고 작은 각종 형태의 조롱박 표면을 바늘처럼 가늘고 긴 침으로 눌러 찍어서 그림을 그리는 '거따 후루(疙瘩 葫芦)' 예술품이 진열장 가득 전시되어 있다. 간쑤성 인정 '공예미술대사(工艺美术大师)'라는 주환쫑(朱换忠)은 거따 후루 한 점을 완성하는 데 약 10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전시된 작품들에는 우둘투둘 돌출한 작은 조롱박 표면 이마가 돌출한 남극성군(南极圣君)이나 동자 등 도교 인물상들이 주로 등장하고 있다.


그저께 타얼쓰에서 보았던 천연 야크 버터와 광물성 색소를 사용해서 낮은 온도에서 완성하는 '수유화(酥油画)', 상하이 쟈딩구(嘉定区) 박물관의 '죽각화(竹刻画)', 우이산에서 접한 '마부화(抹布画)', 상하이 진샨(金山) 농민화촌의 '농민화(农民画)' 등 중국 각지에서 만난 특이한 장르의 예술품들에서 하나같이 독창성과 높은 예술성을 엿볼 수 있어 감탄해 마지못하곤 했었다.


란저우시 남쪽에서 흘러드는 황허의 1급 지류인 레이탄허(雷坛河) 위에 놓인 물결치듯 아래위로 굴곡진 상판의 인도교를 건넜다. 너른 공터 한편에서 노년의 남녀 예닐곱 분이 빠른 박자의 음악에 맞춰 회전하거나 좌우로 스텝을 밟으며 흐늘거리듯 두 팔을 곧게 뻗고 들었다가 교차하 티베트 전통춤 '궈좡우(锅庄舞)' 추고 있다. 그 모습이 머리 위에서 길게 드리운 가지가 바람에 흐늘대는 수양버들과 닮았다.


황허 강변을 따라 나란히 뻗은 남북 빈허로(滨河路) 중단을 잇는 황허철교를 건너 백탑산(白塔山) 공원으로 향한다.


1909년 8월 완공된 길이 233.5m, 폭 8.36m의 란저우 황하철교는 미국 교량회사 설계, 독일 회사 건설, 중국 장인 시공 등 다국적 협력 모델로 1928년부 쑨원의 이름을 따서 '중산교'로도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황톳빛으로 굽이치는 황허를 굽어보며 100여 년 동안 중국과 란저우의 근현대 역사를 지켜본 이 다리는 여러 차례 증축과 보수를 거치며 2013년 3월부터 보행자 전용 다리로 바뀌었다고 한다.


황허 쪽에서 바라보는 백탑산 공원은 사찰, 탑, 정자 등이 오밀조밀하게 들어앉아 산 전체가 하나의 정치한 조각품처럼 보이기도 하고 수려한 한점 수석을 연상케도 한다. 중산교를 건너 백탑산 공원으로 들어섰다. 제비들이 한여름 들판의 잠자리 떼처럼 하늘을 수놓으며 활기차게 비행하고 있다.


황허 북변에 접해 있는 백탑산은 예부터 군사 요충지로 그 아래쪽에 고대 군사 시설인 금성(金城)과 옥질(玉迭) 두 관문이 자리다고 한다. 어림잡아 황허 수면에서 100여 미터 남짓 그리 높지는 않아 보이지만 이곳에 진을 치고 지킨다면 견고한 요새처럼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할 듯하다.


산마루의 백탑(白塔)을 향해 왼편 쪽으로 가파른 경사의 계단을 오른다. 쾌청한 초여름 서북 란저우의 내려 쬐는 햇볕이 뜨겁다. 산길을 올라 롱시구(龙溪谷) 쪽으로 향하는 길은 인적이 없어 짧은 산행을 하는 기분마저 든다. '롱시구(龙溪谷)'라는 글씨의 현판이 걸린 건물 앞에 열두 가지 띠를 상징하는 동물상이 자리한 식당에서 지름길로 들어서서 가파른 숲길을 치고 오르자니 금세 몸에 땀이 배인다.


능선마루로 올라설 즈음 머리 위쪽에서 철선을 구르는 롤러의 마찰음과 함께 비명처럼 높고 날카로운 환호성이 들려온다. 고개를 쳐드니 한 여성이 집라인에 매달려 능선 아래쪽으로 쏜살처럼 내려간다. 역사가 오랜 고찰, 나무가 울창한 숲길 등 볼거리와 휴식처를 제공하는 한편 집라인처럼 액티비티를 체험할 수도 있는 시민 친화적 공간으로 잘 조성해 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특이하게 삼각기둥 정자인 희우정(喜雨亭)을 거쳐 야트막한 계단을 통해 머리에 닿을 듯 나지막한 백탑사 산문으로 들어서니 황허를 굽어보며 우뚝 솟아 있는 백탑이 맞이한다.


백탑산 능선마루에 자리한 백탑사는 원나라 때 칭기즈칸을 만나러 몽골로 가다가 란저우에서 병사한 티베트 불교의 라마(喇嘛)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경내 백탑은 청나라 때인 1715년 낡은 옛 탑을 높이 약 17미터 녹색 지붕의 7층 8각 탑으로 증축한 것인데, 탑 겉면에 흰 회반죽을 발라 백탑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백탑 뒤쪽에 자리한 지장전은 커튼이 드리워진 채 굳게 문이 잠겨 있다. 백탑사, 운월사, 마당에 팔괘 문양이 있는 삼성전과 그 아래 소담한 문창각 등이 자리하는데, 종교 시설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린 지 오래된 듯 먼지가 쌓인 전각 문은 모두 굳게 잠겨 있다.


삼각 정자 동풍정(东风亭)을 거쳐 계단을 내려서면 사천왕상이 지키고 있는 정문과 작은 마당을 가운데 두고 대웅보전 등 전각들이 마주하는 법우사(法雨寺)가 자리한다. 스님들도 몇몇 눈에 띄는 것으로 보아 백탑사 등과는 달리 사찰로서의 기능을 아예 버리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백탑산 위의 백탑(좌)
백탑산에서 조망한 황하
란저우 우육면(牛肉面; 니우러우면) (좌)
란저우대학 역사관

공원을 뒤로하고 중산교를 건너서 어젯밤에 눈여겨보아 두었던 따종항 입구의 '금성노완(金城老碗)' 식당으로 향했다. 상하이에서도 즐겨 들던 '뉘우러우미엔(牛肉面)'을 그 본고장인 란저우에서 제대로 맛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식당으로 들어서서 주문을 하고 주방 앞에 줄지어 서서 한 그릇씩 주문한 뉘우러우미엔(牛肉面)과 뉘우지엔즈(牛腱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상하이의 여느 식당들에 비해  값이 절반 정도인 이 식당의 뉘우러우면은 비주얼부터 남다르다. 순백에 당초문이 가미된 사발에 담겨 나온 면은 숙성된 밀가루 반죽을 즉석에서 수타로 뽑아 내어 입안에서 씹히는 단단한 식감이 특별하다. 특유의 기름 양념을 더한 뜨끈한 국물 한 모금에 온몸이 후끈 달아오르며 금세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호텔로 돌아와서 땀을 씻고 체크아웃을 한 후 자전거를 지쳐 황허 강변 하류 쪽을 향해 달려 란저우 대학 정문에 도착했다. 기차 발차 시각까지 남은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친구 닝(宁)이 공부를 하고 졸업했다는 이 대학 교정을 한 번 들러볼 요량이다.


정문으로 다가가자 해병대 뉘앙스의 멋진 젊은 빠오안(保安)은 규칙상 외부인은 출입이 안 된다고 한다. 동행 Y가 간절한 몸짓으로 정중히 재차 요청을 하자 교문 안으로 손짓을 하며 입장을 허락한다.


캠퍼스 안은 소란하고 분주한 바깥세상과는 달리 차분하고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젊음과 생기가 넘친다. 졸업 시즌이라 그런지 졸업식 복장에 교내 곳곳 멋스런 건물을 배경으로 가족이나 친구 등과 함께 기념사진을 남기는 모습들도 눈에 띈다.


붉은 벽 졸업생 인명록 회랑을 배경으로 여학생 3명이 검은색 가운에 학사모를 쓴 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30여 년 전 이 학교를 졸업했을 친구 닝의 이름도 이 벽면 한 곳에 씌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붉은색 벽면의 목조 건물로 층간 높이가 높은 2층짜리 건물인 교사관(校史館)에 들러 1909년 청나라 말기에 설립된 간쑤 법정학당을 전신으로 하여 1928년 란저우 중산대학으로 확장되고, 1946년 국립 란저우대학으로 지정된 대학의 역사를 훑어보았다.


호텔에서 배낭을 챙겨 들고 란저우역으로 향했다. 역사 앞 너른 광장 한가운데 높은 기단 위에 한 발로 나는 제비를 밟고 세 발과 고개를 쳐들고 울부짖으며 질주하는 생동감 넘치는 말의 동상이 자리한다. 그 모습이 반주에 마춰 땅바닥에 발을 튕기며 스윙 춤을 추는 듯 경쾌하고 가벼워 보인다.

란저우 기차역 광장


이 동상은 1969년 간쑤성 우웨이시(武威市) 레이타이한묘(雷台汉墓)에서 출토된 동한(东汉) 시기의 청동기로 높이 34.5cm, 길이 45cm, 너비 13.1cm, 무게 7.3kg'의 마답비연(马踏飞燕)'으로 알려진 유물을 본뜬 것이다. 간쑤성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유물은 해외 전시를 금지한 첫 번째 국보급 유물로 중국 당국이 얼마나 애지중지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1983년 국가관광청에서 중국 관광표지로 지정하여 중국 전역 주요 성시의 광장이나 기차역 등에서 이를 형상화한 동상을 흔히 볼 수 있다. 란저우에서의 일정이 월요일로 잡혀 란저우박물관을 방문하지 못한 아쉬움을 역 광장에 서 있는 국보급 유물의 모형으로 나마 달래 보려 동상을 올려다보며 그 주위를 한참 맴돌았다.


마답비연 동상 앞에서 한 장 인증숏을 남기려 중년 여성과 말을 트고 십여 분간 유쾌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충칭이 고향으로 베이징에게 과기 분야 교육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짧은 순간이지만 말을 트고 함께 인증숏을 주고받으며 이곳 란저우에서의 특별한 한 순간을 공유하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


란저우를 출발해서 둔황까지 가는 침대열차는 정해진 시각 18:13에 역사를 빠져나와 북서쪽을 향해 쉬엄쉬엄 달리기 시작한다. 동행 Y와 함께 2층 침대 두 개가 마주 보며 자리한 르완워(软卧) 객실의 상층으로 나란히 올랐다.


아래층 침대칸의 노부부와는 잠시 어색한 시간이 지나자 서로 말을 트게 되자 열차가 우웨이시(武威市)를 지나던 10시 반경까지 대화가 끊겼다가 이어지길 계속했다. 우루무치에서 여행을 왔다가 둔황을 경유해서 돌아가는 길이라는 일흔을 바라본다는 노부부는 한국인과 나누는 대화가 즐거운지 늦은 시각에도 피로한 기색 없이 전혀 없다.


우루무치, 카스, 투르판 등 시장(西藏)의 도시들, 초원, 말과 양, 중국 서북 변방의 잊힌 왕국과 민족들의 역사, 가족과 현실의 삶,... 주고받는 이야기는 드넓은 대륙처럼 시공과 주제에 경계가 없고 편견이 없고 이념과 사상에 구애됨이 없고 일생 삶의 경험과 지식과 흔적이 배어 있을 뿐이다. 인증숏도 함께 찍고 위챗 친구 맺기도 하니 서로 오랜 친구가 된 듯하다.


열차는 쉬지 않고 중국 대륙 깊숙한 간쑤(甘肃)의 밤을 달려 둔황으로 향한다. 철로 위를 달리며 청하는 불편한 잠이지만 여로의 피 탓인지 번잡한 꿈을 꾸지 않아 오히려 꿈처럼 좋은 밤이다. 23-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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