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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Jul 03. 2023

중국 서북 탐방(VI), 서역의 관문 둔황 2/2

막고굴 130굴의 미륵대불(@photo 百度)

두 번째 영상관에서는 앞 벽면과 천장을 하나의 대형 파노라마 스크린으로 막고굴 몇몇 주요 석굴에 대한 소개 영상이 이어진다.


막고굴에는 동굴 735개, 보존벽화 4만 5000여㎡, 채색 조상(彩塑) 2400여 점, 당송 목조굴 처마 5개 등이 남아 있는데,  중국 석굴예술 발전과 역사의 축소판이자 건축, 조각, 벽화의 3박자를 결합한 고대 입체 예술의 보고로 평가된다.


그 많은 석굴 가운데 대표적인 몇몇 석굴에 대한 소개가 이어진다. 285 굴은 서위(西魏, 535-557년) 때 조성된 석굴로 칠불설법도, 중국 고대 신화의 창조신 여와(女娲), 비천상 등 감실 가득 채색 벽화로 채워져 있다.


428 굴은 북주(北周, 557-581년) 시기 석굴로 굶주린 호랑이 가족을 위해 살신을 하는 어린아이 석가의 전생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285굴의 천정(藻井) 벽화(@photo 百度)
석가의 전생에 관한 벽화가 있는 막고굴 428굴 (@photo 百度)
막고굴 45굴, 협시보살들이 보여주는 '삐딱함의 미학' (@photo 百度)

45 굴은 8세기 당나라 때 조된 석굴로 부처상을 중심으로 천왕상, 보살상, 아난, 가섭 등 좌우에 6위의 조상이 시립해 있는 가장 완벽한 석굴이라 평가된다.


이 동굴의 협시보살들은 전형적인 근엄하고 단정한 모습을 벗어나 한쪽 발에 무게중심을 두고 다른 쪽 다리 무릎을 약간 구부려 신체의 정면이 조금 틀어진 '대칭적 조화' 즉 콘트라포스토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진경 교수가 주장한 소위 '삐딱함의 미학'이 이 석굴의 예술적 가치를 잘 피력하고 있다.


"이 보살상들은 당대(唐代) 조각의 사실성과 관능적인 아름다움으로 유명하지만, 그 이상으로 인상적인 것은 확실하게 이탈의 각도를 거듭 만들며 공간 전체를 유연하고 여유 있게 만드는 이 삐딱함이다." _<법보신문 2022.7.25.>


한편, 8세기경 당나라 시기에 조성된 45 굴 보살상을 BC 2-1세기경 제작된 밀로의 비너스로 대표되는 비너스 상에 비견된다고 유홍준 교수의 시공을 초월한 비교예술학적 안목은 흥미롭다.


420 석굴은 수나라(581-619) 때 석굴로  법화경변과 과거 현재 미래의 3 세불 등이 조성되어 있다. 220 석굴은 당나라 때인 642년 개굴 된 것으로 정면에 석가불이 문수 보현보살의 협시를 받으며 자리하는데, 벽면의 유마경변화 등 불경을 그림으로 표현한 변상도가 규모나 예술성에서 단연 최고봉이라는 설명이다.


61 석굴은 5대 10국(五代, 907-979) 시기 석굴로 문수보살 도량인 오대산으로 향하는 순례의 길을 표현한 오대산 전경도가 사방 벽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석굴 중심 불단처럼 조성된 단 위 기둥 앞에 자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문수보살상은 언제 누가 어디로 옮겨갔는지 행방이 묘연하다고 한다.


130 석굴의 '남대상(南大像)'으로 불리는 높이 26미터 미륵대불은 당나라 때인 8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높이 33미터의 96 석굴 '북대상(北大像)'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불상이다.

막고굴 220굴 북벽, 불경을 그림으로 표현한 변상도 (@photo 百度)
수나라(581-619) 때 조성된 막고굴 420굴 (@photo 百度)
막고굴 220굴 북벽, 불경을 그림으로 표현한 변상도 (@photo 百度)
막고굴 130굴의 높이 26미터 미륵대불(@photo 百度)

영상 소개가 끝나고 셔틀버스를 이용해서 나무나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벌판을 달려 막고굴 현장으로 이동했다. 비쩍 마른 바닥을 드러낸 강 위 다리를 건너니 언덕처럼 야트막한 싼웨이산(三危山) 동편 남북으로 뻗은 절벽에 뻥뻥 뚫린 석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절벽 맞은편엔 포플러 등 수목이 늘어서 있는 모습이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보인다.


석굴 투어는 셔틀버스를 함께 타고 온 20명 안팎의 관광객이 한 팀을 되어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이루어지는데, 팀별로 8개의 석굴을 한 시간 여에 쳐 둘러볼 수 있게 편성되어 있다. 예불 장소로 불상과 벽화가 조성된 남쪽 굴 492개 중에 가이드를 따라 겨우 여덟 곳 그것도 지정된 곳만 둘러본다는 관람 일정에 실망이 크다.


하늘에서 내려쬐는 무자비한 태양광을 받으며 석굴이 조성된 암벽을 따라 첫 관람지인 북쪽의 323 석굴로 이동하는 짧은 시간이 길게만 느껴진다.


323 석굴은 초당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실크로드 개척에 탁월한 공헌을 했다고 알려진 한무제 때 장건(张骞)의 서역 출사(出使)와 관련된 벽화가 있는데, 일부 훼손된 부분은 미국인이 무단으로 반출한 막고굴 벽화 12곳 중 한 곳이라고 한다.


33 석굴에는 정면과 양 측면에 석가 아미타불 대세지보살 등의 설법도, 칠불, 천왕 등의 벽화가 채워져 있는데 수나라 때 조성되고 당, 서하, 청나라 때 중수되었다고 한다.


335 석굴은 초당 시기 조성되었는데 감실과 벽면에 법화경변, 아미타경변, 유마경변 등의 벽화가 보존되어 있다.


17 굴은 1900년에 모래를 청소하다가 발견된 것으로 내부에 고대 불교 경전과 사회 문서 등 많은 귀중한 유물들이 발견되어 '장경동(藏經洞)'이라고 불린다. 이 굴은 당나라 함통 연간(851-862)에 16 굴 용도(甬道)의 북벽에 축조된 둔황 고승 홍변법사(洪辩法师)를 기념하는 영당(影堂)이었다고 한다. 한쪽 벽면에 보리수 두 그루가 그려진 벽화 앞에 가사 차림에 결가부좌를 한 홍변법사의 소상이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 다른 석굴들과는 달리 독특해 보인다.


428 굴은 여행자센터 영상실에서 소개되었던 석굴로 암벽 3층 높이에 있어 계단을 올라 입구 들어섰다. '색채의 연금술사'로 불리는 야수파 조르주 루오(1871-1958)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암갈색 굵고 투박한 터치의 보살상과 석가모니 전생의 투신 보시도 등이 인상적이다.


석굴 대부분은 입구 문이 굳게 잠겨 있는데 열린 곳 중 다른 팀이 관람 중인 곳은 건너 띄어 지나친다.


257 굴은 북위 때 조성된 것으로 당시 값이 황금의 5배에 이를 귀중했던 푸른색 안료를 사용한 벽화들이 옛 빛깔을 간직한 채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 석굴에는 중국에서 ‘아홉 빛깔 사슴(九色鹿)’으로 변용된 인도 늪사슴에 관한 전설을 담은 ‘녹왕본생도(鹿王本生圖)’ 벽화가 있다.

막고굴 323석굴 '장건 출사서역도(张骞出使西域图)'
막고굴 313굴 남벽의 설법도(说法图)
335굴 북벽의 유마힐경변(维摩诘经变)
제17굴 장경동의 홍변법사(洪辩法师) 소상과 벽화
257굴의 녹왕본생도(鹿王本生圖)/ 불상 소상
235굴의 쌍두서상(双头瑞像)
96석굴 미륵불과 9층루(九层楼) @photo 둔황연구원

어두컴컴한 석굴에서 스무여 명의 관람객들 틈에 끼어 해설사가 작은 플래시 하나로 벽면을 비추며  빠른 중국어로 들려주는 해설은 주어 담기 힘들다.


당나라 중기에 조성되었다는 237 굴도 마찬가지로 서벽 감실 윗부분의 37폭 서상도(瑞像图)가 있다는 것도 나중에 웹 검색에서 알게 되었다. 그 가운데 유일하게 몸체 하나에 머리 둘과 팔 넷의 '쌍두서상(双头瑞像)'라 명명된 석가여래 벽화도 있다고 하지만 버스 떠난 뒤에 손 흔드는 격이니 아쉬울 뿐이다.


마지막으로 둘러본 96 석굴은 당나라 초기에 조성되었는데, 이 굴 바깥 절벽에 의지해 지은 45m 높이 누각은 20세기 초에 9층으로 개증축한 것으로 막고굴의 랜드마크이기도 하다. 굴 안에는 '북대상(北大像)'이라 불리는 진흙으로 만든 높이 35.5미터의 거대한 미륵불상이 자리한다. 고대 조각상 중 러산 대불(樂山大佛, 62m), 룽현 대불(榮縣大佛, 36.67m)에 버금가는 높이로 당나라 초기 국가의 강성, 사회 안정 및 경제적 번영의 상징이라 평가되고 있다.


한편으론 부처님이 열반에 든 뒤 56억 7천만 년 후에 세상에 나타나 중생을 구제하여 풍요로운 세상을 가져온다는 미륵불을 저렇듯 크게 조성한 것은 어렵고 힘든 현실을 벗어나고자 했던 당시 민초들의 간절한 바람이 반영된 것인지도 모른다.


높은 기온과 강렬한 햇빛의 건조하고 더운 이 지역 특유의 땀조차 말라버리는 '깐러(干热)'한 날씨로 입술이 바짝 마른다. 그 많은 석굴 중 여덟 곳, 그것도 지정된 곳만 둘러볼 수밖에 없는 제약이 한껏 부풀어 올랐던 호기심과 기대를 꺾어 버리며 허탈감에 더하여 허기가 엄습하듯 몰려온다.


기실 막고굴은 관람객들이 한눈에 유물들을 볼 수 있도록 조명과 위치 등을 자유로이 활용 배치하여 전시한 일반 박물관과는 달리 거대한 야외 박물관이나 다름없다.


자연에 노출된 유물들을 오래도록 잘 보존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출입 관리와 가이드 통솔 아래 제한된 곳만을 관람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일 터이다. 막고굴 경구(景区) 내 '둔황연구원미술관(敦煌研究院美术馆)'등 전시관에서 막고굴 여러 석굴의 내부 모습을 사진과 함께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 아쉬움과 갈증을 달래주는 감로수처럼 느껴졌다.


오후 네 시경 셔틀버스에 올라 여행자센터로 회귀한 후 곧바로 택시를 타고 막고 공항으로 이동했다. 나흘간의 여정과 덥고 건조한 '깐러(干热)'한 날씨에 지친 탓에 비행기 출발 시각까지 두어 시간의 자투리 시간을 활용할 생각을 접었던 것이다.


망망대해에 고립된 작은 섬처럼 사방 끝없이 드넓은 사막 가운데 자리한 푸른 오아시스 도시 둔황에서의 가장 빠른 탈출로는 아담한 크기의 '막고공항'이다. 당초 기차 편 이용 시 시간 제약으로 일정에 없던 둔황을 포함한 것은 '둔황-인촨' 항공노선을 발견한 때문이다.

 

여덟 시 반이 가까워지지만 중국 서역의 일몰은 더뎌 사방은 대낮처럼 훤하다. 캐피털 항공 여객기는 예정 시각보다 30여분 늦게 이륙했다. 비행기는 활주로를 박차고 올라 꼬리지느러미를 요동치며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잉어처럼 동체를 부르르 떨며 중력을 떨치고 고도를 높여 간다.


칭하이에서 볼 수 없었던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이곳 둔황에서는 볼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잠재우며 황량한 벌판 위 하늘을 가로질러 인촨(银川)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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