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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Jul 06. 2023

중국 서북 탐방(VII), 별들의 고향 닝샤 1/2

서하박물관과 서하왕릉@photo 百度

둔황을 출발한 지 두 시간 반쯤인 22:10경 인촨 시내 상공으로 접어들었다. 기체 밖으로 어둠을 밝히는 수많은 조명들이 인촨시의 윤곽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도시를 관통하는 황허 건너편으로 활주로 조명등이 보이고 10여 분 후에 사뿐히 착륙했다.

 

'별들의 고향(星星之)'으로 알려진 닝샤(宁夏) 회족자치주의 성도 인촨(银川)에 발을 내디뎠다. 기온은 21도로 반팔 셔츠 속으로 서늘한 기운이 스며든다. 공항 근무자나 택시 기사 등 남성들의 몸집이 크고 목소리는 괄괄하여 중국 서북방의 결기가 풍겨 나온다.


고루(鼓楼) 부근 호텔("同福酒店")에 짐을 내리니 밤 11시 반이다. 늦은 시각까지 과일, 먹거리, 장신구 등을 파는 행상들이 띄엄띄엄 자리하고 있는 숙소 지척의 너른 보행가 거리는 젊은 남녀 네댓 커플이 눈에 띌 뿐 밤날씨처럼 썰렁한 파시 분위기이다.

인촨 고루와 보행가 거리

여행 다섯째 날 아침을 인촨(银川)에서 맞는다. 긴 복도의 객실 중 벌써 퇴실을 한 몇몇 객실은 문이 열려 있고, 3층에 위치한 식당으로 내려가니 투숙객들이 여기저기 식탁에 앉아 아침을 들고 있다. 아침 식사 메뉴는 기대 이상으로 다양하고 모두 입맛에 거슬리지 않아서 다행이다.


이번 출행은 항공편, 렌터카, 야간열차 등을 이용해서 중국 서북지역 3개 성의 3개 성도를 포함해서 너른 지역을 한 번에 둘러보는 5박 6일 일정으로 결코 녹록지 않은 여정이다. 마주 앉아 아침 식사를 하던 중 상하이로 돌아가는 일정을 하루 앞당겨 항공편을 오늘 날자로 바꾼 동행 Y의 결정 십분 수긍되는 까닭이다.


기실 이번 중국 서북 지역을 둘러보는 일정은 내게 있어 '여행' 보다는 '탐방'이라는 단어가 더 적합하다. 자료를 통해서만 듣고 보던 그 지역의 역사, 문화, 날씨, 음식 등을 직접 가서 눈으로 보고 체험하는 것이 주목적이었기 때문이다.

탐방의 목적을 잘 달성하기 위해서는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방문지별로 치밀하게 나누어 배분하고, 일정 내내 체력과 호기심이 바닥나지 않게 컨디션도 잘 유지해야만 한다.


동행과 함께 하는 출행은 플러스적인 요소도 많지만 마이너스적인 위험도 적지 않다. 출발 전 서로 막연히 주거지를 벗어난 미지의 곳을 둘러보고자 의기투합했지만,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출행의 목적이 '여행'과 '탐방'으로 갈릴 수도 있다. 또 서로의 관심과 취향이 달라 몇 날 며칠 시간과 동선을 함께 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든 위기의 상황과 맞닥들인 수 있는 탐험대나 고산 등정대, 또는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 등에는 반드시 대장이나 선장이 절대 결정권을 갖는다. 이는 중요하고 급박한 위기의 순간에 의견의 분열을 차단하고 빠른 의사결정을 하여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까다롭고 한편 고집스러운 면도 있는 사람과 이곳까지의 길고 먼 여정을 함께 해준 동행이 고마울 뿐이다.


오늘은 서하 왕릉군과 닝샤박물관을 둘러보면 부족함이 없는 일정이 될 것이고, 마지막 내일 여정은 홀로 느긋하게 마음 가는 대로 따라가면 족할 듯싶다. 어제 묵었던 창이 없던 방을 퇴실하고 다른 방으로 하루 더 예약을 마쳤다.


택시를 불러 시내를 벗어나 허란산 남단 동편에 자리한 서하왕릉군으로 향했다. 웅장한 자연 풍경, 풍부한 역사 문화, 다양한 민족 풍광을 가진 깐수, 칭하이, 샨시(陕西) 등과 함께 닝샤(宁夏) 지역은 황허가 지나며 물산이 풍부하여 '서북의 소강남(西北小江南)'으로 불리는 지역이다. 강렬한 태양 광선 아래 도로변에 무성히 숲을 이룬 포플러 아카시아 등 수종의 나무들은 황량함 가운데 강렬한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다.


운전 중에도 여기저기 통화를 하고 메시지를 주고받는 여성 택시 기사는 어릴 적에 허난성에서 부모를 따라 이곳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그녀는 인촨에서 꼭 가봐야 할 곳들 중 하나로 포도주 와이너리를 추천하지만 넉넉지 않은 시간이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호텔 프런트에서 집어 들었던 접이식 안내서에는 이 지역 수많은 와이너리를 담고 있었다.


인촨(銀川) 시내에서 서쪽을 향해 40여 분쯤 달리자 이곳 사람들이 '아버지 산'이라 부른다는 허란(賀兰) 산맥이 탁 트인 평원 끝에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저 산자락 암벽 어딘가에는 1980년 발견된 3000~1만 년 전 암각화 수천 점이 여전히 세월의 이불을 덮어쓰고 있을 것이다.

서하박물관
서하박물관 내부


서하(西夏, 1038-1227년)는 북송 시대 송나라 서북쪽에 있었던 티베트 계열의 탕구트(党项) 족이 세운 왕조로 1227년 칭기즈칸의 몽골군 침입으로 멸망했다. 인촨 서쪽 서하왕릉 유적군에는 서하 황제 일가의 무덤 9기와 순장된 신하 등의 묘 250기가 5만 3000㎡에 달하는 평원에 펼쳐져 있다고 한다.


오전 열 시 반경 서하왕릉 여행자센터에 도착해서 88위엔 입장료를 지불하고 '서하박물관(西夏博物馆)'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제1전시관은 약 200년에 걸친 서하의 역사, 교육, 법제, 주요 전투 등을 소개하고 있다.


제2전시관에서는 한자와 유사해 보이지만 서로 다른 독자적인 독특한 서하의 자체 문자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서하가 중국을 통일했더라면 현재의 중국어는 서하의 문자가 통용되고 있을 것이라는 생뚱맞은 생각이 들었다.


제3관은 주로 당시 성행했던 불교 관련 유적지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중에도 간쑤성 과저우현(瓜州县) 남쪽 70km 지점에 위치한 유림굴(榆林窟)은 서하왕조 시대에 굴착된 석굴로 제274호굴과 제2호굴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암굴 내부 형태와 벽화 실물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생생한데, "중국의 복제 기술은 가히 세계 제일"이라며 감탄하는 동행의 말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제4전시관은 서하 왕국의 경제와 생활상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도기 등 당시의 유물은 그럴려니 하겠지만 제지(制紙), 장기와 바둑, 장묘, 주조(酒造), 제염 등 당시의 문화와 생활상에 대한 자료들 어떻게 수집하고 고증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특히 이 박물관은 중국 다른 지역의 박물관 들과 달리 송, 요, 금, 원, 서하 등 이 지역을 지배했던 여러 민족의 왕조별 탑, 도자기 등 유물들을 사진과 함께 비교 설명해 놓은 전시 기법이 돋보인다. 2층은 시기별 도자기 유물, 주요 유적지의 발굴 보존 관련 전시관을 둘러보고 제5관의 서하왕릉 전시관도 훌쩍 둘러본 후 들어선 지 한 시간 반 만에 박물관을 빠져나왔다.

서하왕조 고유 문자(좌)/시기별 탑과 도자기 비교
서하왕릉 실시간 영상
유림굴 2굴(좌)
박물관에서 셔틀버스 탑승장으로 가는 지하도

이제는 셔틀버스를 타고 허란산을 배경으로 드넓은 평원에 띄엄띄엄 자리한 서하왕릉을 탐방할 차례다. 박물관 밖 회랑은 그늘이 져서 뜨거운 태양을 피하기 좋은 통로다. 곧이어 셔틀버스 승강장까지의 지하로 놓인 이동 통로로 들어서자 냉기가 온몸으로 스미며 열기로 뜨거워진 몸을 순식간에 식혀준다. 이곳의 환경과 특성을 꼼꼼하게 관찰하여 이용객들의 편의를 도모하려는 건축가의 센스와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는 건축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왕릉으로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31인승 미니 버스에 올랐다. 좌석이 다 찰 때를 기다리는 동안 왕릉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승객들을 실은 버스가 10여 분 간격으로 출발지점으로 들어온다. 버스에서 내리며 이마의 땀을 씻거나 손부채를 흔드는 모습이 바깥의 뜨거운 날씨를 짐작케 한다.


서하릉은 서쪽 하란산에 기대어 동쪽으로 인촨평원이 펼쳐진 배산면하(背山面河) 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남북 10여 km, 동서 4.5km, 면적 50여 km²에 왕릉 9기, 부장묘 271기, 건물터 1곳, 그리고 벽돌 가마터 여러 기가 남아있다고 한다.


황량한 허란산을 등지고 펼쳐진 쥐 파먹은 듯 초목이 듬성 듬성한  망망한 대평원에 흩어져 있는 왕릉은 토루처럼 보이기도 하고 평범한 흙무덤처럼 보이기도 한다. 달리는 셔틀버스는 족히 수 킬로미터 간격으로 산재한 왕릉 사이를 달리며 차내 스피커를 통해 이곳의 지형, 왕조 내력 등으로 짐작되는 설명을 쏟아낸다.

서하왕릉 3호 릉(좌)/왕릉 원래 모습 예상모형(우)

버스는 왕릉이 산재한 인촨평원을 15분 여를 달려 서하박물관 남서쪽 '태릉(泰陵)'으로 불리는 3호 릉이 멀리 바라다 보이는 '서하왕릉예술관' 부근에 관람객을 내려놓았다. 마당을 가운데 두고 사각 회랑 형태의 단층 건물인 서하왕릉예술관은 서하의 11대 군주였던 태조  이계천(李繼遷, 963-1004년) 등 서하왕국의 역대 제왕들과 흥망성쇠의 역사를 실물 크기 인물상을 곁들여 설명하고 있다.


예술관에서 3호 릉으로 가는 길목 양쪽에 도열한 서하비림의 비석들을 지나자 허란산을 배경으로 3호 릉이 위용을 드러낸다. 3호 릉은 서하왕조를 개국한 경종 이원호(景宗 李元昊, 1003-1048년)의 능으로 묘역 면적은 약 15만 m²로 일부 훼손되었지만 규모가 가장 큰 왕릉이라 한다.


황토 진흙 등으로 쌓아 올린 릉을 보호했던 외곽 건물은  파괴되고 없지만, 능원의 궐대(阙台)와 능대(陵台), 능성(陵城)의 신벽(神墙), 문궐(门阙), 각대(角台) 등은 대부분 옛 모습 그대로 양호하게 남아있어 천 년 세월을 무색케 한다. 역사는 남아 있지만 그 역사를 일으킨 민족들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으니, 주인공 없는 역사를 대면하고 있자니 살아 숨 쉬지 못하는 화석을 보고 있는 듯 씁쓸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인다.


셔틀버스를 기다려 여행자센터로 돌아오니 오후 한시 반경이다. 너른 주차장 건너편 승강장에서 버스에 올라 인촨 시내로 향한다. 서북의 태양은 중천에서 여전히 불타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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