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얼쓰(塔尔寺)를 뒤로하고 차를 몰아 약 150km여 떨어진 칭하이호 알랑지엔(二郎剑) 풍경구로 향한다. 산시성 시안에서 시작하여 간쑤와 칭하이를 거쳐 티베트 라싸에 이르는 3천 km가 넘는 당나라와 토번을 잇던 옛 당번고도(唐蕃古道)를 따라가는 셈이다.
우락부락한 산악 지대인 시닝(西寧)을 벗어나 외곽으로 나오자 멀리 만년설을 인 설산을 배경으로 광활한 초원이 펼쳐진다. 띄엄띄엄 양 떼들이 풀을 뜯고 유목민 가옥도 멀리 눈에 띈다. 바깥 기온은 10도 내외로 차창을 내리자 냉랭한 공기가 상쾌하게 얼굴을 때린다. 광활한 평원의 지평선 너머에 칭하이호(青海湖)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북경과 티베트 라싸(拉萨)를 잇는 3,718km 길이의 G6번 고속도로에서 내려 '칭하이호 관람전용도로(旅游專線)'로 내려서자 장족자치주 공화현 도창 하진(藏族自治州 共和县倒淌河镇) 마을이 메마른 평원의 오아시스처럼 홀연히 나타난다. 마을 초입의 황량한 공원에 거대한 문성공주(文成公主, 625-680년) 동상이 맞이한다. 이곳에서 머지 않은 곳에 자리한 일월산 문성공주 기념관은 내일 둘러볼 요량이다.
도창하진(倒淌河镇)의 문성공주 동상
칭하이호가 가까워지자 도로 좌우 산맥이 낮아지며 지평선으로 수렴한다. 칭하이호는 칭하이성 동부에 있는 면적 4,340㎢, 최대 수심 27m의 중국 최대의 염호(鹽湖)로 어업과 소금이 생산되고 그 부근에는 목축업이 활발하다고 한다.
드디어 도로 앞쪽 지평선 위로 수평선이 포개지며 하늘과 맞닿은 일직선의 풍경을 선사한다. 호수 죄 측 가장자리 위로 태양이 노을을 드리우며 하루를 마감할 채비를 한다. 오후 8시 쯤이지만 북경 기준인 중국 표준시간 보다 한 시간이 늦은 곳이라 일몰 시각도 한 시간 늦은 것이다.
숙소 등을 예약하는 앱에서 미리 예약을 해두었던 칭하이 호수변 객잔은 외국인이 투숙할 수 없다고 한다. 주인장이 소개해준 부근의 다른 호텔(牧家客栈)로 이동해서 짐을 내렸다.
비행기와 렌트카를 갈아타며 멀리 달려온 긴 여정과 해발 3500미터에 달하는 고도로 인해 모리는 무겁지만, 광활한 초원과 가축 떼, 서늘한 기온, 만년설 등 낯선 이국적 풍치에 마음이 빼앗겨 피곤함을 잠시 잊게 한다.
알랑지엔(二郎剑) 마을들은 완만하게 뻗은 산줄기를 뒤로하고 호수를 마주 보며 왕복 2차선 호수 관람전용도로 좌우로 멀찍하게 떨어져 점점이 자리하고 있다. 투숙한 객잔으로 진입하는 도로변에는 포장마차 하나가 영업 중인데 네댓 명의 관광객들 틈에 비집고 앉아 몇몇 먹거리를 주문했다.
덜 구워진 듯 입안에서 질겅거리는 양꼬치 구이에 잔뜩 기대를 머금었던 미각이 실망스럽다는 탄식을 토해낸다. 기실 같은 음식이라도 궁벽한 시골 포차가 중국 각지의 온갖 이름난 먹거리들을 본래의 특성에 풍미를 더하여 사람들 기호에 맞춘 상하이 등 대도시 식당을 능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포차의 양꼬치 구이에서 받은 실망감을 벌충해 보려고 하루 영업을 접으려는 다른 곳 번듯한 식당으로 발을 들였는데, 이 시도 또한 허망감만 떠안기며 객잔으로 발길을 돌리게 만든다.
고원의 밤이 깊었지만 별들은 어디로 다 숨었는지 한 두 개만 희미하게 보일뿐이다. 해발 고도 1700여 미터 남짓 지리산 장터목 산장 부근에서 쏟아져 내릴 듯 푸른 밤하늘을 가득 채웠던 별들의 기억을 이곳에서 소환해 보려던 기대도 헛된 바람임을 깨달았다. 칭하이 고원의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으면 두통이 사라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침대에 고단한 몸을 누였다.
도창하진(倒淌河镇)
다음날 아침 6시 칭하이호를 향해서 난 창밖은 벌써 날이 밝아 온전히 모습을 드러내며 또 다른 하루를 예비하고 있다. 뒷골이 땅기고 눈이 멍멍한 증상은 아침에도 가시지 않는다. 칭하이호 관람 전용도로 길가에 세워두고 호수변으로 가는 길 10도 아래로 내려간 기온이 몸을 잔뜩 움츠리게 만든다.
도로와 칭하이 호수까지는 1km 거리로 그 사이 평원에 말, 야크, 소 등 가축들이 띄엄띄엄 눈에 띈다. 태양은 벌써 호수 동편 수면 위로 떠올랐고 보일 듯 말듯한 설산과 수평선 자락을 멀리 펼친 칭하이호의 잔잔한 물결은 연신 호수변으로 밀려와서 스러진다. 푸른 하늘과 호수, 초원으로 내려앉는 원만한 능선과 만년설을 인 설산, 노란 유채꽃 등 온갖 원색의 꽃들이 만발한 칭하이는 그림 속에서 본모습으로 만족키로 마음을 접었다.
알랑젠 풍경구를 뒤로하고 어제 왔던 길을 되짚어가며 일월산과 시닝을 둘러보는 본격적인 이튿날 일정에 올랐다. 일월산을 향해 도창하진(倒淌河镇) 쪽으로 액셀을 밟고 가는 길 길가를 걷던 장족 복장의 키 작은 여성 둘이서 차량이 지날 때마다 차를 태워달라고 손짓을 보낸다.
장족인 그들끼리 서로 주고받는 그들 고유의 언어에는 중국어와는 다른 독특함이 있다. 이 지역 주민은 가족 당 양 3~4백 마리 정도를 보유하며 목축을 생업으로 하는데 양 한 마리당 시세는 약 500 위안 정도라고 한다. 중국어로도 소통이 가능한 것은 신 중국 수립 후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곳으로 중국인들을 이주시키는 정책 등 동화정책의 영향일 것이다.
낯선 이방인이 모는 차의 뒷 좌석을 차지한 두 여성은 도창허진으로 장을 보러 간다는데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대화 도중에 간간이 노래도 흥얼거리는 등 조금도 거리끼는 기색이 없다.
그녀들이 흥얼거리는 노랫가락은 필시 중국 북서부에 전해지는 민요인 '화알(花儿)'일 것이다. 중국 칭하이, 간쑤, 닝샤 3성에 거주하는 여러 민족들은 밭 경작이나 산과 들에서 방목 등 일을 하러 갈 때 틈만 나면 몇 마디 은은히 화알을 읊는다고 한다.
칭하이는 화알의 고향으로 그중 '허황화알(河湟花儿)'은 화알의 정수로 알려져 있다니 뜻하지 않은 곳에서 잠깐이나마 칭하이 민요의 정수를 지척에서 접한 셈이다. 문성공주 동상이 있는 도창하진(倒淌河镇)에 그녀들을 내려주었다.
일정(日亭, sun pavilion) 내부 벽면의 벽화
멀리 눈 덮인 설산 산맥을 바라보며 너른 평원 가운데 완만한 능선 마루를 가진 일월산(日月山)이 자리한다. 이곳은 당나라 공주로 토번 왕과 정략결혼을 한 문성공주 관련 유적이 위치 곳이다.
문성공주(文成公主, 625-680년)는 지금의 산동성 지닝(濟寧)에서 태어난 당나라 종실(宗室)의 딸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녀는 당 태종의 명을 받아 641년에 수도 장안을 출발하여 시닝과 일월산(日月山)을 넘어 라싸(拉薩)로 가서 토번을 통일한 송찬간포와 혼인을 했다.
이 지역은 중원의 한족과 서북의 여러 민족들이 세력을 다투며 부딪치고 다투던 곳이다. 한족 왕조는 이방 민족들의 위협을 벗어나고자 이이제의 정책을 펴거나 정략결혼을 통해 화친을 맺기도 했다. 서한(西漢)의 궁녀로 흉노의 왕 호한야(呼韓邪)와 혼인을 한 중국 고대 4대 미녀로 이름난 왕소군(王昭君, BC.52-20년 추정)에 관한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문성공주는 서적, 경전, 불상, 씨앗 등과 함께 장인들을 토번에 데려가서 40년 가까이 머물며 지역 교화에 힘을 기울여 경제와 문화 교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생면부지의 먼 이국 땅으로 가서 정략결혼을 맺었지만 사후 티베트인들로부터 여신으로 숭앙되며 지금껏 역사에 길이 이름을 떨치고 있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구불구불 난 도로를 오르니 능선마루 아래 너른 주차장은 예상외로 한적하다. 54위엔 입장권을 끊어 팔각 정자 일정(日亭, sun pavilion)이 자리한 능선마루 쪽으로 올랐다.
일정 바로 아래 위치한 '일월산(日月山)' 표지석 부근에서 네댓 분 나이 든 남녀 현지인이 여행자들이 특별한 추억을 남길 수 있도록 야크, 낙타, 어린 양, 전통 양털 복장 등을 빌려 주고 있다. 낙타와 처음 보는 야크(마오니우; 牦牛)를 눈앞에서 보고 등 떠밀려 야크와 낙타의 등에 올라본 것은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이곳이 아니면 체험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임에는 틀림없다.
6년생이라는 야크는 온순하고 60세라는 야크 주인 장족 남성은 가혹한 날씨와 환경 탓인지 얼굴이 검게 타서 더 나이가 들어 보인다. 능선마루에 자리한 일정(日亭, sun pavilion)에 오르니 사방으로 거칠 것 하나 없이 펼쳐진 조망에 절로 가슴이 탁 트인다. 어실어실 몸을 파고들던 한기는 일월산 위로 내려쬐는 따스한 햇살에 스르르 부지불식 사라졌다.
일정 안에는 거북 기단 위에 문성공주 진장기념비(近藏纪念碑)가 자리하고, 정자 벽면은 출발 전 하직인사, 칭장고원 모습, 토번 왕실에서의 생활 등을 묘사한 화려한 벽화가 차지하고 있다. 정자 아래 자리한 회망석(回望石)은 문성공주가 토번으로 향하던 길 이곳에서 멀리 있는 고향을 다정히 되돌아본다는 전설에 따라 세워졌다고 한다.
동쪽 고향을 향해 서있는 9미터 높이 옥으로 조각된 문성공주 동상은 가슴에 보경(宝镜)을 꼭 안고 있는데, 그녀는 서쪽으로 돌아서며 보경을 버리고 미지의 토번에서의 삶의 각오를 다졌다고 한다.
'당번고도(唐蕃古道)' 표지석을 스쳐지나 들어선 아담한 '칭하이 고도(古道) 박물관'에는 장족들의 은공예품 매장이 차지하고 있다. 찻병, 빗, 수저, 목걸이, 팔찌 등 공예품은 상하이의 예원상창(豫园商场) 등에서 익히 보던 것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문성공주와 그의 부군이 된 토번 왕 송찬간포의 형상을 나란히 모신 사묘(寺庙)를 둘러본 후 시닝으로의 길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