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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시시포스 Dec 27. 2023

마약과 배우의 죽음

마약류 비범죄화 논의(@photo UNODC)

겨울 날씨답지 않게 햇살이 좋은 포근한 날이다. 2020년 미국 아카데미 4관왕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의 주연 배우 중 한 명이 마약류 범죄 혐의로 조사를 받던 중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는 비보를 접했다.


우리 사회가 매우 엄격한 잣대로 처벌하고 있는 마약류 범죄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비범죄화나 형법상 처벌 반대의 논의가 이어져 다.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들은 법치주의의 원칙하에 사회의 기본질서를 수호하고 전제적 독재적 국가 권력으로부터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을 보호하며 사인간의 분쟁을 원활하게 해결하기 위해 헌법을 비롯한 각종 법률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다. 특히 공공안녕과 사회질서를 유지하되 개인의 의무와 책임을 강제하기 위한 통제수단으로 형벌을 대거 도입다.


런데 산업화, 도시화, 정보화, 국제화와 과학기술의 발전 등에 따라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사회현상에 대하여 기존에 적용되던 법이념과 법률체계로 규율하기가 부적절하거나 불합리

한 면이 표출되기 시작다. 그 결과 형벌을 통한 국가의 개인생활에 대한 과도한 개입은 오히려 형벌의 범죄 억제효과를 저하시키고 헌법에 보장된 자유, 평등, 행복 추구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과잉범죄화(Over-criminalization) 주장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에 1960년대 들어 형법의 정당한 적용범위를 둘러싼 소위 '비범죄화(Decriminalization)‘

논의가 시작되었다. 안락사 낙태 등 사람의 죽음에 관한 범죄, 성매매 간통 등 성 풍속에 관한 범죄, 교통범죄, 양심적 병역거부에 관한 범죄 등과 더불어 마약류 범죄도 비범죄화 논의의 주요 대상 가운데 하나다.


유럽 마약 중독모니터링센터에 따르면 비범죄화란 기존의 범죄로 규정된 행위를 형법의 영역에서 제외시켜 형사처벌 대상이 되지 않게 되는 것을

말한다. 포르투갈은 2001년 7월 1일 자로 코카인과 헤로인을 포함한 모든 마약류의 구매, 소지 및 사용 행위를 비범죄화하여 형법상 처벌대상에서 제외했다. 대신에 마약의 사용과 소지 행위를 행정규칙 위반 행위로 처벌하고 있다.


최근 소위 '피해자 없는 범죄(victimless crime)’의 비범죄화 논쟁 사례 가운데 하나로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한 여성을 처벌하는 법률 조항이 헌법에 위배될 수 있다는 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강요 없는 성매매에 대한 형벌은 최소 범위에 그쳐야 한다'며 헌법재판소에 성매매특별법의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했으나 헌법재판소는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2013 헌가 2)


마약류 사용의 비범죄화도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프랑스 소설가 프랑수아즈 사강(1935-2004)은 교통사고로 다친 후 모르핀 치료를 받았고 1990년과 1995년에는 마약류 투약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그녀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 자신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며 마약류 사용의 비범죄화를 주장하기도 했다.

프랑스 소설가 프랑수아즈 사강

우리나라에서도 마약류의 개인적 사용을 불법으로 규정하여 형벌을 부과하는 법률조항이 헌법에서 정한 개인의 자유와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에 대한 논쟁이 있고 헌법소원이 제기된 바도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의 판례는 대마류 사용으로 인한 환각상태에서 다른 범죄로 나아갈 위험성, 대마에 관한 우리의 역사와 문화 입법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국민일반의 가치관 내지 법 감정, 범죄의 실태와 죄질 및 보호법익 그리고 범죄 예방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술, 담배와는 달리 대마의 수수와 흡연을 범죄로 규정해 처벌하는 것은 합리적인 이유가 있으므로 평등의 원칙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미국의 경우 4매 분당 한 명이 마약치료소에 안치되고 주말 운전자 약물검사에서 8명 중 1명이 마약류 양성반응을 보이고 마약류 사용에 따른 사회적 손실 비용이 연간 1,930억 달러에 달하는 등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투입되고 마약류 남용에 따른 2차 강력범죄 발생, 범죄조직의 개입 등 마약류로 인한 심각한 사회문제를 겪고 있다는 통계도 있었다.


이처럼 마약류 남용이 일상화된 나라와 동등한 잣대로 우리나라의 마약류 비범죄화를 논의하는 것은 타당성이 낮아 보인다. 즉 마약류 비범죄화는 당해 사회나 국가가 처한 마약류 남용실태와 국민의 도덕관념 및 법 감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비범죄화 대상 마약류의 종류와 범죄유형 등에 대한 고찰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마약류의 불법적 오남용은 노동력 상실, 개인과 가정 파괴, 범죄유발 등으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는 사실이 명백하고 마약류 남용에 대한

사회적 금기의식과 마약류 범죄가 공익에 반하는 큰 해악이라는 국민적 공감대가 여전히 강한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까지 마약류 비범죄화 논의는 설 자리가 그리 넓어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연예인 등 유명인이 마약류 범죄에 연루되면 대개 피의 사실이나 사적인 은밀한 개인정보가 언론 등을 통해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마약류 범죄 혐의 선상에 오르는 것 자체가 당사자로서는 회복할 수 없는 명예나 금전적 치명상을 입게 되는 것이다. 우리 언론의 흥미 위주의 보도는 자칫 사법에 의한 정당한 판결을 배제하고 대중에 의한 공개 인민재판처럼 혐의인에게 비극적 결과도 종종 초래하고 있다.


이러나 저러나 마약류 흡입 혐의로 조사를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버린 전도양양했던 한 젊은 배우의 죽음이 안타깝고 씁쓸할 뿐이다. 마약류 남용이 심각한 사회적 폐해를 유발하는 범죄이긴 하지만 그 댓가로 목숨까지 버리야할 파렴치범으로 볼 수은 없기 때문이다. 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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