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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Mar 03. 2024

용화산, 산행과 깨우침

악전고투 속 활로를 찾아서

삼천리 방방곡곡으로 태극기 물결과 만세 함성이 퍼져 나갔을 3.1 운동이 일어난 지 105주년이 되는 날이다. 산악회 버스를 이용해서 춘천시와 화천군의 경계를 이루는 용화산과 오봉산 연계 산행을 다녀오기로 한 날이기도 하다.


배낭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서니 냉랭한 공기가 얼굴과 옷매무새 빈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그동안 온화했던 늦겨울 날씨가 갑자기 영하 4도로 강하했다. 지하철 복정역에서 내려 역사 바깥으로 나서니 바람이 매섭게 몰아친다.


은하수가 사라진 지 오래된 도심이지만 날이 밝아 왔음에도 동요 <반달>의 하얀 쪽배처럼 서쪽 푸른 하늘엔 하현달이 말간 얼굴로 떠 있다. 도로 건너편 멀리 산정에 눈을 뒤집어쓰고 있는 청계산도 눈에 들어온다. 필시 이곳보다 위도와 고도가 높은 용화산과 오봉산은 기온이 훨씬 더 낮을 것이다. 추위, 바람, 눈, 비탈과 함께 하게 될 오늘 산행은 결코 녹록지 않을 것이라 예상된다.


십여 분 후에 도착한 산행 버스에 올라 M과 합류했다. 몇 해 전 산악회 버스 이용 산행 때와는 달리 최근에는 버스가 45인승에서 28인승으로 업그레이드되었고 그에 따라 비용도 2~3만 원에서 4~5만 원 수준으로 올랐다.

춘천, 홍천 등 영서지역 산행버스가 거쳐가는 복정역

복정역에서 일단의 산객을 태운 버스는 수도권 제1순환도로로 들어섰다. 정체가 시작된 강일 IC를 지나 서울-양양고속도로로 이름을 바꾼 경춘고속도로로 들어서자 귀성 차량 행렬 못지않게 차량들로 빼곡히 덮여 있다. 춘천으로의 출행은 늘 정체로 인한 시간에 발목을 잡히기 일쑤다.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나자 차량 흐름이 다소 나아져서 다행이다.


강릉, 춘천, 속초,... 이런 강원도 도시들에서는 청춘, 로망스, 동경 등의 단어가 연상되고 메말라가는 노스탤지어를 자극한다. 한편 인제, 현리, 원통 등의 지명에서는 김민기의 노래 <늙은 군인의 노래>에서 처럼 푸른 옷에 실려간 스물한 살 꽃다운 청춘의 날들이 아련히 떠오른다. 감찰입회병으로 근무하던 군 시절 춘천, 강릉, 인제, 원주 등은 그곳에 있던 군수사령부 예하 보급부대 두 달씩 떠돌며 파견 근무를 했던 도시들이다.


금년 새로 도전한 영남알프스 8봉을 완등을 했다는 M이 보여주는 천황산 설경 사진은 가히 환상적이다. 상고대로 치장한 숲 춤추듯 휘날리는 눈발을 헤치며 온통 눈으로 뒤덮인 설산을 올랐던 몇 해 전 늦겨울의 남덕유산 산행의 기억을 잠시 소환해 보았다.


춘천을 지척에 두고 중앙고속도로 춘천휴게소에서 15분간 휴식했다. 솔숲에 눈이 덮인 희끗희끗한 산군이 아늑하게 둘러싸고 있는 휴게소로 내려서니 따스한 햇살이 가득 내려쬔다. 화장실 벽면에 걸린 액자 속 시 한 편이 한낱 대추 한 알에도 우주의 섭리가 담겨 있다고 일깨워 준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저 안에 벼락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 장석주의 诗 <대추 한 알>


춘천 북동쪽 신북읍 외곽을 휘도는 순환대로의 좌측 버스 차창으로 들어오는 멀리 수리봉에서 뻗어 내린 긴 능선에 분지처럼 아늑히 둘러싸인 춘천시 교외의 전원 풍경이 가히 일품이다.


새밑터널과 용화산 줄기 아래를 관통하는 부다리터널을 지난 버스는 용화산 북변에서 큰고개 방향으로 유턴하듯 진행했다. 연신 좌우로 휘돌며 구불구불 이어진 좁은 산길에 뱃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어질어질해질 지경이다.


버스가 예정되었던 시각보다 50여 분 늦은 09:50 경 당초 계획상 들머리였던 큰고개에 1.8km 못 미친 아래쪽에 일행을 내려놓았다. 길이 얼어서 큰고개까지 접근이 어렵다는 것이다.


당초 오늘 산행은 큰고개에서 용화산 정상으로 오른 후 고탄령과 배후령을 거쳐 오봉산을 1봉부터 5봉까지 차례로 지나고 청평사로 내려서는 약 14km에 이르는 코스다. 산행에 직접 동참하지 않는다는 산행대장은 산행 기점이 1.8km여 늘어나고 출발시각도 1시간가량 늦어져서 산행 종점인 청평사 도착 예상 시각도 17:30으로 한 시간가량 늦춘다고 안내했다.

새남바위 능선

하늘 높이 치솟은 낙엽송 군락 사이로 난 느슨한 오르막 아스팔트 길을 따라 큰고개 쪽으로 바삐 발을 옮긴다. 날씨는 쾌청하지만 공기는 차갑다. 발자국이 없는 하얀 눈 위에 태극기를 한 장 그리고 발길을 재촉한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밑에서 밟히는 눈과 얼음이 뽀드득뽀드득 소리를 낸다. 버스에서 내린 지 30분 만에 용화산 들머리 큰고개에 도착하여 아이젠을 채우고 스틱을 폈다.


본격적인 산행의 초입부터 다짜고짜 급경사의 오르막이 시작된다. 용화산 정상이 약 1km로 지척에 있는 만큼 산정까지 가는 길은 가파르고 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산정에서 가파르게 내리닫는 사면을 마주하고 십 여분 가량 고도를 높여 가니 분만에 홀연히 좌측으로 완만한 사면 우측으로 깎아지른 낭떠러지를 내놓으며 크랙 등반의 명소인 새남바위 암벽 윗 능선이 나타났다. 절벽 가장자리에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몇 그루 소나무는 늠름하고 위풍당당하다.


여성 산우 세 명이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우리 일행을 앞질러 갔다. 산정 쪽에서는 태극기를 든 젊은 산객 등 몇몇 하산하는 산객들이 스쳐 지나간다. 오늘따라 유난히 몸이 무겁고 걸음은 느리고 중심이 상체로 쏠리며 흔들린다. 쳇기 때문인지 혹은 멀미 때문인지 버스에서 느꼈던 어지럼증의 영향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앞서가다 한 번씩 뒤돌아보며 기다려 주는 동행 M과의 거리는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한다.


산행 버스에서 내린 지 약 두 시간 만에 사각의 화강석 삼단 기단 위에 어깨 높이의 정상 표지석이 자리한 해발 878미터 용화산 꼭대기로 올라섰다.

정상에서는 우리 일행을 앞질러 간 여우 3명을 비롯해서 대여섯 명의 산객들이 차례로 정상 표지석 옆에 나란히 서서 인증 사진을 남기기에 여념이 없다.


산정은 파로호를 비롯해서 사방으로 화천 양구 춘천 등으로 툭 트인 전망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동편으로 흰 눈을 뒤집어쓰고 있는 거대한 사다리꼴 모양의 사명산의 자태가 웅장하다.


정상 부근에 세워진 표지석이 현 지점의 위도가 38.2도라고 알린다. 해방 후 한반도가 38도 선을 기준으로 허리가 잘리면서 이 산 능선 위로도 남과 북을 가르는 경계선이 그어졌을 터이다.


산정에서 뻗어 내린 여러 산줄기 중 하나가 북쪽 7km여 거리에 있는 파로호로 내려앉는다. 우리나라 최북단 38선 이북에 위치하는 이 호수는 1944년 5월 화천댐 건설로 생긴 인공호수로 6.25 전쟁 후 대한민국에 복속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6.25 전쟁 용문산 전투에서 조선인민군과 중국인민지원군 2만 4천여 명을 사살하고 전사자 시체를 수장시킨 곳이라 하여  당초 화천호에서 파로호(破虜湖)로 명명했다고 한다.


최근 이승만 대통령의 공과를 사실과 기록에 입각하여 균형 있게 다룬 다큐 영화 '건국전쟁'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동안 좌편향의 편협된 역사 인식을 바로잡고 건국 대통령의 위업을 재평가하는 계기가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이건 공(功)과 과(過), 장점과 단점이 있게 마련인데, 한쪽 면은 외면한 채 다른 한쪽 면만 바라보는 편협된 시각으로 역사와 인물을 평가하고 폄훼하려 드는 세태는 마땅히 배격되어야 할 것이다.


변절이니 어쩌니 하는 말도 있지만 고도성장기 자본주의에 날을 세웠던 박노해 시인의 '평화 운동가'로의 환골탈태와도 같은 변신은 놀랍기만 하다. 그는 수감 중 사회주의 몰락을 접하며 사회와 이념에 함몰되었던 때와는 달리 개인의 중요성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한다. 굴곡진 현실을 이념의 돋보기로 들여다보던 편협된 시각이 보편적 인본주의의 망원경으로 대체된 것이다. 때론 현미경도 필요하지만 망원경을 들어야 더 멀리 넓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온몸으로 부르던 새벽

그때 우리는 스무 살이었다

_박노해 <스무 살의 새벽 노래> 中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 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_박노해 <사람만이 희망이다> 中


용화산 정상에서 배후령 쪽으로 난 8km 여 긴 능선으로 내닫는 눈 덮인 길은 산객이 드물어서 희미하고 종아리 깊이로 빠져들어 진행이 더디고 발길은 힘겹다. 오르락내리락 하는 등로와 능선 아래 쪽으로 우회하기를 반복하며 고탄령과 사여령 쪽으로 진행한다.


많은 눈과 거센 바람에 꺾이고 넘어져 길을 막아선 나무 둥치를 넘거나 몸을 수그려 통과하고 비탈에서 엎어지고 넘어지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앞서서 간 산객의 눈 속으로 깊게 파인 발자국을 징검다리 건너듯 따라 밟으며 진행했지만 두어 번 길을 잘못 들어 고행이 배가되기도 했다. 뒤따라 오던 젊은 산우 2명에게 길을 비켜 주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종아리 깊이까지 발이 빠져 등산화 속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눈을 손가락으로 후벼 파내고, 연이어 벗겨지는 발밑 아이젠을 다시 채우기를 반복하는 것도 번거롭고 성가시다.


능선 우측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은 광풍처럼 휘몰아 내닫는 십만 기병의 말발굽 소리처럼 맹렬하게 귓전을 때린다. 깊은 눈에 빠지기를 반복하며 등산화는 물기를 잔뜩 머금어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겁고 체력도 급격히 소모되어 가는 느낌이다.


언젠가 한 번 올라 보리라 마음먹고 있던 좌측 멀리 시야에 들어오는 사명산의 위용스런 자태도 위압감으로 바뀌어 일순간 몸서리치게 한다. 불현듯 간혹 들려오는 겨울산행 조난 소식이 떠오르며 극한의 겨울 산행은 삶과 죽음이 함께 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공포가 스쳐갔다.


제대로 된 장비와 산행 지식 없이 무모한 객기로 나서는 산행일 때에는 위험은 배가되기 마련일 터이다. 다음 겨울 산행 때에는 스패츠와 보다 튼튼한 아이젠을 꼭 챙겨 와야겠다는 생각이다. 산행을 마친 후 생각해 보니 차가운 칼바람이 불고 깊이 싸인 눈길을 헤치고 가는 산행이라 간간히 멈추어 서서 숨을 고르고 다리를 쉬게 하는 여유를 갖지 못한 것도 아쉬웠던 점이다.


참나무에 등을 기대고 고개를 쳐드니 사면의 참나무 가지 높이 차갑고 푸른 하늘에 파릇한 겨우살이가 뭉게뭉게 꿈 마냥 피어 있다.


뒤쳐졌다는 초초함과 앞서가는 동행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미안함이 뒤섞여 마음이 착잡하기만 하다. 능선을 빨리 벗어나고픈 생각뿐이지만 마음을 다잡으며 한 발 한 발 전진할 밖에 달리 방도가 없다.


해발 688미터 소슬봉을 목전에 두고 우리 일행을 앞질러 갔던 예닐곱 명 등산팀을 소슬봉에서 다시 만났다. 그들도 우리 일행처럼 배후령에서 오봉산으로 산행을 이어갈 것인지 여부를 두고 의견을 나누고 있는 듯 보인다. 그중 한 산객은 용화산 산행이 이토록 힘들 줄 몰랐다며 혀를 내둘렀다. 시각은 벌써 오후 네 시가 가까웠다.


당초 청평사로 내려서며 '일산일사(一山一寺)'의 모토를 실행하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다. 십여 년 전에 찾아보았었던 청평사를 다시 찾아 당나라 공주를 사모하다가 죽어 상사뱀으로 환생한 청년이 이생의 윤회를 벗어나 하늘로 올랐다는 회전문과 공주탑의 전설도 곱씹어 보고 싶었던 터였다.


그렇지만 M과 나는 바뀐 상황과 늦춰진 일정 등으로 일찌감치 당초 계획했던 용화산-오봉산 연계산행을 용화산 종주산행으로 바꾸기로 결정했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배후령으로 내려서는 활로를 두고 굳이 사지로 들어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소슬봉에서 지척인 배후령으로 내려섰다. 산행대장에게 전화로 배후령으로 탈출해서 픽업할 장소와 시간을 논의했다. 여차한 사정으로 한 시간여 후 청평사에서 일단의 산객을 픽업한 후 복귀하는 길에 배후령 터널 출구 쪽에서 우리 일행을 태우겠다고 한다. 배후령 꼭대기에서 옛길을 따라 3.3km여를 더 걸어 픽업 장소로 내려왔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두 명의 젊은 산객은 어디서부터인가 동행이 되었다. 터널 출구 부근 한편에 함께 모여 앉아 배낭을 풀고 음식을 나눠 들며 산행과 군생활 등 인생 여정의 보따리를 하나씩 풀었다. "산정의 아름다움도, 위대한 공간 속의 자유도, 다시 발견한 자연과의 친밀한 관계도, 산친구와의 진정한 우정 없이는 무미건조한 것이다."라는 가스통 레뷔파의 말을 되뇌게 하는 악전고투와도 같았던 산행이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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