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신사의 나라 영국, 런던

별로인 음식 특별한 친절

by 꿈꾸는 시시포스


런던행 버스를 타기 위해 브뤼셀 북역 코치스테이션으로 향했다. 버스는 예정된 시각보다 한 시간 이상 늦은 10:45에서야 출발했다. 남녀 도합 3명이 근무하는 장거리버스정류소 사무실은 시골의 간이역처럼 초라해 보였고, 승객은 아내와 나를 포함해서 열 명 남짓이다.


브뤼셀을 출발한 버스는 겐트와 프랑스 릴리를 거쳐 칼레(Calais) 항에 도착했다. 1995년에 프랑스의 칼레와 영국의 포크스톤을 연결하는 해저 유로터널이 개통되었지만, 버스는 화객선에 올라 35.4km 도버해협 너머에 있는 도버로 향했다. 도버항이 가까워지자 해안의 흰색 절벽(White cliffs of Dover)이 눈에 들어오고, 곧이어 도버항에 도착한 배는 승객을 실은 장거리버스를 항에 내려놓았다. 런던의 시각은 브뤼셀과 한 시간 시차가 있는데, 오후 6시 빈을 가리키고 있다.


도버항에서의 출입국 심사는 까다롭고 엄중해 보였다. 불법 취업이 의심되는 동구권 젊은이들의 유입을 막아 자국민 일자리 잠식을 방지하기 위함일 것이다. 같은 버스 탑승객 중 슬로바키아 국적의 여성 한 명이 입국을 거부당했다. 버스에서 큰 트렁크 두 개를 내리면서 울상을 짓던 그녀는 왔던 길을 따라 다시 대륙으로 돌아가야만 한다고 했다.

영국 도버(Dover)의 백악절벽(白堊絶壁 ; White Cliffs)
런던의 명물 빨간색 2층버스

런던 중심부에 자리한 빅토리아 장거리버스 정류장(Victoria Coach Station)에 도착해서 그 부근에 물색해 두었던 호텔로 이동했다. 내부가 깨끗하지 못하다는 등 숙소문제로 아내와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다. ‘Southway Hotel'은 '자유자재 유럽여행'이라는 여행안내책자에서 소개된 대로 요금이 하루에 30파운드인데 깨끗한 편이 못되었다. 'Luna House Hotel'은 책자에 나와 있는 요금보다 20파운드가 비싼 50파운드라고 했다. 더군다나 빈방도 없다고 했다. 빅토리아 코치스테이션의 친절한 직원과 길거리 런던 시민에게 물어 물어 빅토리아역 근처의 B&B 'Romano Hotel'에 하루 40파운드에 투숙하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호텔에서 샌드위치용 식빵, 계란프라이, 베이컨에 커피를 곁들여 아침식사를 하고, 빅토리아역 부근 길거리 매점에서 버스 노선도를 구입하다. 호텔 앞에서 24번 2층 버스를 탔다. 빅토리아역, 웨스트민스터 사원, 국회의사당, 트라팔가 광장, 토트넘 등을 거쳐가는 노선이다.


토트넘 코트 로드(Tottenham Court Road)에서 하차해서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으로 이동했다. 1753년에 개관한 대영박물관은 이집트 수단, 그리스 로마, 중동, 인쇄 그림, 아시아, 영국 유럽 선사시대,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아메리카 등 지역별로 구분된 전시관에 약 8백만 점에 달하는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기실 이름은 '대영 박물관'인데, 주요 소장품의 대부분은 타국에서 약탈이나 강제로 가져온 유물이 더 많아 침략과 강탈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기도 한 것이다. 어쨌거나 방대한 유물 가운데 빙산의 일각이나마 글과 사진으로만 접하던 박물관의 주요 전시물들을 눈앞에서 생생히 둘러보는 호사를 누렸다. 유치원생을 비롯한 현지 학생들의 현장학습 모습을 지켜보며, 그네들의 교육방식에 부러움을 감출 수 없다.


동양관, 그중에서도 신설 독립 전시관으로 준비 중인 한국관도 잠시 둘러보았는데, 전시된 유물이 그리 많지 않았고 전시된 작품들도 우리 문화유산의 정수에는 한참 모자라 보여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고구려관은 선사시대와 유사시대 몇몇 유물을 전시해 놓은 한국관과는 별도로 마련한 것이 특이했다. 우리도 외국 못지않은 훌륭한 유산들이 적지 않고 잘만 복원, 보전, 전시한다면 훌륭한 자랑거리가 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 입구에 있는 서점에서는 한국어판 설명서가 있어 반갑게 한 권 구입했다.


대영박물관
아멘호테프 3세/원반 던지는 사람/여신 바스트/벌거벗은 아프로디테/아폴로/아르테미스 신전 장식/네부갓네살 왕 벽돌상/이슈타르 여신/세크메트 여신
동남아지역의 '금제 보살상'(上右), 라파엘로의 <엄마와 자식 스케치(가운데)>, 아스텍 제국의 '옥으로 만든 뱀'(下右) 등 대영박물관 전시품
런던 국립 미술관 소장 베르메르의 <버지널 앞에 앉아 있는 여인>,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의 약혼>, 반 고흐의 <해바라기(Sunflowers)>

차이나타운에서 중국식으로 점심을 들고, 피카딜리를 거쳐 트라팔가 광장 뒤편에 있는 내셔널갤러리(National Gallery)를 찾았다. 엄청난 규모의 미술관 전시실에 전시된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1672년)의 <버지널 앞에 앉아 있는 여인>,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1390-1441년)의 <아르놀피니의 약혼(The Arnolfini Portrait)>,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년)의 <해바라기(Sunflowers)> 등을 비롯해서 걸작들의 숲 속을 쉴 새 없이 두어 시간 헤집고 다녔다. 미술관 정보를 미리 파악하여 보고 싶은 작품들을 점찍어 두지 않은 탓에 빼먹고 보지 못한 작품들이 수두룩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갤러리를 나서서 트라팔가 광장 한편에서 분수, 넬슨 제독 동상, 사자상, 비둘기 떼,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 등을 한동안 지켜보았다. 다시 런던의 상징과도 같은 빨간색 이층 버스를 타고 타워 힐까지 가서, 그 부근의 런던탑과 타워 브리지 등을 둘러보았다. 타워힐(Tower Hill)에서는 존 피셔, 토머스 모어를 비롯해서 고위층 출신 반역자들과 범죄자들에 대한 공개 처형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1894년에 완공되어 런던의 대표적 랜드마크가 된 타워 브리지를 눈앞에서 보니 새삼 런던에 와있다는 실감이 났다.


런던에서의 셋째 날,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과 국회의사당을 둘러보고 버킹검 궁전으로 향했다. 사원원에서는 왕실의 대관식이나 결혼식이 치러지고 왕족이나 위인들이 잠들어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영국민들로부터 각별한 사랑을 받았던 다이애나 웨일스의 공주(1961–1997)는 불과 한 달 반 전인 1997년 8월 31일 이른 아침 프랑스 파리에서 차량 사고로 사망했다. 그녀의 장례식이 1997년 9월 6일 이 사원에서 치러지고, 유해는 그녀의 친정이 있는 올소프에 안장되었다.


사원의 서쪽 문 위 외벽에는 우리가 다녀간 일 년 후인 1998년에 마틴 루터 킹, 본회퍼, 에스터 존, 완즈밍 등 20세기에 순교한 목사, 신부, 수녀 등 여러 나라의 대표적인 기독교 신자 10인의 조각상이 세워졌다고 한다. 영국인의 세계인다운 열린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옆 웨스트민스트궁은 1860년에 지어진 네오 고딕식 건물로 빅 벤이 있는 종탑이 유명한데, 영국의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의사당 주위를 순시하던 남녀 경찰에게 함께 사진을 찍자고 부탁하자 '아저씨 미소'로 흔쾌히 함께 포즈를 취해 준다.


정원에 자리한 오귀스트 로댕의 조각품 '칼레의 시민'을 덤으로 감상하는 행운도 누렸다. 1914년에 이곳에 놓인 이 조각상은 '100년 전쟁' 때 프랑스 칼레에서 일어났던 아래와 같은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영국 국회의사당 앞 '칼레의 시민'(上)/우리 국회 앞 '애국애족의 군상’(下)
세계최초의 만국박람회인 1851년 런던 세계엑스포가 열렸던 수정궁(水晶宮; The Crystal Palace)

100년 전쟁(1337-1453) 당시 영국군에 일 년 간 저항하던 프랑스의 도시 칼레가 결국 항복하자,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저항에 대한 보복으로 도시 지도자 6명의 목숨을 요구했다. 시민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지도자 6명이 자발적으로 나섰으나 왕비의 간청으로 다들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부와 권력에는 책임과 의무를 수반한다'는 의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고사하고, 생은 뒷전인 채 당리당략과 특권층의 부와 권력 지키기에 이전투구하는 우리의 모습을 생각하니, 참담한 생각이 밀려들었다. 우리 국회의사당 앞을 지키는 '애국애족의 군상(群像)’이 안쓰럽고도 위대해 보이는 이유이다.


버킹검 궁전 앞에서 거행되는 위병 교대식은 격일로 거행된다는데, 마침 그날은 쉬는 날이다. 그런데도 궁전 앞 너른 광장이 사람들로 가득 찼는데, 기마경찰들과 마차 행렬 등 흥미로운 볼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버킹검궁 정면과 접한 그린 파크를 지나 하이드 파크로 향했다.


하이드 파크(Hyde Park)는 면적 1.4 km²로 세계 최초의 박람회인 1851년 런던 세계엑스포가 열린 장소로 조셉 팩스턴이 디자인한 '수정궁(水晶宮; The Crystal Palace)'이 자리했었다. 수정궁은 철과 유리로 된 모듈식 건물로 길이 564m, 높이 39m로 축구장 18개 크기에 달했는데, 1936년 11월 30일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이 공원의 명소 스피커스 코너(Speakers' corner)엔 주중이라 그런지 연설을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없고 관광객만 몇몇 보일뿐이다.


길 건너 옥스퍼드 거리가 시작되는 곳 맥도널드에 들어가 햄버거로 점심을 대신했다. 영국인에겐 미안한 얘기이지만, 런던의 음식은 다른 어떤 나라 도시들과 비교해도 끔찍이 맛이 없다. 이날은 KFC에서 튀김 닭으로 저녁도 대신하니 무얼 먹을까 하는 고민을 덜 수 있었다.


웨스터민스트 궁(上)/친근한 런던 경찰(下)

옥스퍼드, 리전트, 리버풀 등 거리를 걷고 트라팔가 광장(Trafalgar Square) 근처로 돌아왔다. 1805년 트라팔가 해전을 기념하여 만든 이 광장에는 넬슨 제독(1758-1805)을 비롯해서, 찰스 제임스 네이피어(1786- 1860), 헨리 해블록, 조시 4세(1762-1830)의 동상이 각각 자리하고 있다. 찰스 황태자와 고 다이애나 황태자비가 1981년에 결혼식을 올렸던 성 바울 성당에서는 예배가 진행되고 있었다. 리전트 거리와 소호거리를 거쳐 호텔로 돌아왔다.


런던 시내는 시민들보다 여행자가 더 많아 보일 정도이지만, 시민들은 여행자에게 배타적이거나 짜증스럽게 대하지 않고, 기꺼이 친절을 베푼다. 출퇴근길에 만난 시민, 2층버스 안내원, 매점의 점원, 경찰, 우체국 직원 등 런던에서 만난 남녀노소 시민들의 상냥한 미소와 몸에 밴 듯 자연스러운 친절에는 런던 시민이라는 자부심마저 엿보였다. 과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은 친절, 중용을 지킬 줄 아는 친절이 신사의 나라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브뤼셀로 돌아가는 차표를 예매하러 호텔을 나서서 코치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한나절 둘러보고 밤차를 타려던 당초 계획을 바꾸어, 막 출발하려는 브뤼셀행 버스에 올랐다. 돌아올 때는 입국 때와는 달리 출국심사와 세관의 절차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로 매우 간단했다. 승객과 함께 버스, 승용차, 트럭 등을 싣고 도버해협을 오가는 거대한 페리의 위용이 볼만하다. 도버항의 White Cliffs를 뒤로하고 유럽 대륙 프랑스의 칼레(Calais)항으로 향하는 뱃전에 하얀 거품이 넘실댄다.


프랑스 칼레항에서의 입국수속도 영국의 그것에 견줄 바도 되지 않게 간단했다. 릴리를 거쳐 브뤼셀에 오후 여섯 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3박 4일의 런던 여행이 왠지 아쉽고 짧게만 느껴졌다.

지금의 런던과 런던 시민은 그때 그대로의 모습일까? 97-10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로마의 휴일과 집시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