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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휴일과 집시의 추억

@영화 <로마의 휴일>의 한 장면

by 꿈꾸는 시시포스


브뤼셀은 북위 50도쯤에 위치한 도시다. 위도가 높아 밤늦게까지 어둠이 내리지 않고 여명의 새벽처럼 모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래서 이곳에 도착한 직후 며칠 동안은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았었다. 유럽의 시월은 우리 가을처럼 천고마비의 계절로 여행의 적기이다. 가을이 무르익을 무렵 이태리 여행을 위해 브뤼셀-로마, 피렌체-브뤼셀 구간 버스표를 예약하고 출발일자를 기다렸다. 화 <로마의 휴일>처럼 오래되어 빛바랜 추억이다.


출발 당일 날씨는 전형적인 가을날로 더없이 맑고 쾌청하다. 브뤼셀 북역 부근 유로라인(Euro Lines) 버스정류장으로 가서, 오후 7시 45분에 출발하는 로마행 버스에 올랐다. 브뤼셀자유대학의 '유럽의 대외정책' 과정에 함께 참여했던 이태리인 동료 G의 누나 C가 우연히 같은 버스에 동승했다. 그녀는 한 달 전쯤 식사 초대에 동생과 함께 우리 집에 왔었다. 그녀는 브뤼셀에 본부를 둔 유럽연합에 근무한다고 했었다. 친구의 결혼식에 가는 길이라는 그녀는 밀라노에서 파도바행으로 환승한다고 했다.


브뤼셀을 빠져나간 버스는 룩셈부르크, 프랑스, 스위스를 거쳐 알프스 산맥을 통과하는 터널을 지나 다음날 새벽녘에 이태리의 경계로 들어섰다. 프랑스로 들어설 때 허리춤에 권총을 휴대한 제복 차림의 남녀가 버스에 올라 여권을 살펴보고 내려갔을 뿐, 스위스나 이태리 국경을 통과할 때에는 아무런 절차도 없었다. 화장실이 딸린 장거리 버스는 기사 두 분이 교대로 운전을 했는데, 밀라노에 잠시 정차를 했다가 이내 쉬지 않고 남쪽을 향해 달렸다.


이탈리아는 우리나라처럼 반도 국가로 국토의 75%가 산악지대인 점도 우리와 비슷하다. 또한 백두대간이 한반도를 관통하는 것처럼, 알프스산맥의 북서쪽 끝부분과 맞닿은 아펜니노 산맥이 이탈리아 반도 끝까지 척추처럼 관통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밀라노에서 남쪽으로 향하는 도로는 능선 마루로 지나가는 구간이 제법 많았다. 능선 위 어느 도로변에 잠시 정차했을 때에는 땅바닥에 떨어진 밤톨을 주워 까서 입에 넣기도 했다.


밀라노-볼로냐-피렌체를 거쳐 로마에 오후 7시경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꼬박 하루를 달려온 셈이다. 동승했던 인도인 여행자의 안내로 테르미니역까지 이동해서, 역에서 북쪽으로 약 500미터 떨어진 거리의 S 호텔에 체크인을 했다. 도시 전체가 문화재나 다름없는 도시답게, 건축된 지 수 백 년은 되어 보이는 대리석으로 지은 호텔은 오랜 세월에 비해 튼실해 보였다. 숙박비는 예상 금액을 훌쩍 뛰어넘는 하루 6만 리라라고 했다.


다음날 아침, 로마의 주요 볼거리들을 둘러보기 위해 테르미니에서 64번 버스로 바티칸 시티로 향했다. 출근시간이라 그런지 승객을 가득 채운 버스는 문이 잘 닫히지 않을 지경이다. 바티칸시국은 로마 북서부의 교황청이 통치하는 가톨릭 국가로 인구 약 천사백 명, 영토 면적 0.44㎢의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이다. 바티칸시국의 성 베드로 광장과 성당, 바티칸박물관 등을 둘러보았다.

로마의 천사의 성, 트레비 분수, 천지창조, 아테나 학당, 스페인계단(시계방향)/나무위키 등
로마의 주요 관광 명소/구글맵

성 베드로 성당의 '피에타' 조각상, 시스티나 성당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천장화와 '최후의 심판' 벽화, 라파엘로의 방의 '아테네 학당(Scuola D'Atene)' 벽화 등 미술책에서만 접하던 불후의 명작들을 직접 마주하는 설렘과 감격의 순간들이 이어지며 오전이 훌쩍 지나갔다.


노천 식당에서 점심을 들고, 지하철 A선 바티칸의 옥타비아노 역에서 포폴로 광장 역으로 이동했다. 당시 로마에는 지하철 노선이 A, B 두 개였는데, 2014년에 C선이 새로 개통되었다고 한다. 땅 위는 물론이고 지하 곳곳에도 고대 유적들이 잠들어 있어 지하철을 뚫을 수 없을 터이니, 교통 체증은 피할 방도가 없을 것이다.


오후에는 핀초 언덕, 포폴로 광장, 스페인 광장, 배의 분수, 삼위일체 계단, 트레비분수, 콜론나 광장, 아우렐리이나 기둥, 판테온, 나보나 광장의 넵튠의 분수와 무어인의 분수, 천사의 성 등 야외 박물관과도 같은 로마의 주요 명소들을 둘러보았다. 저녁 무렵 테르미니역에서 이틀 뒤에 출발하는 피렌체행 기차표를 예매하고, 호텔로 돌아오며 하루를 마감했다.


보르게세 미술관(Galleria Borghese)으로부터 다음날 일정을 시작했다. 이 미술관은 교황 파울 5세(1550-1621)의 조카인 스키피오네 카파렐리 보르게세(1577-1633)를 시작으로, 보르게세(Borghese) 가문이 수집한 이탈리아 회화와 조각 작품의 정수가 모여있 보고다.


미술관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려니 다음날 입장분까지 모두 매진되었다고 한다. 낙담하여 기념품점에서 전시품 도록을 한 권 샀다.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다시 매표소로 가니, 노쇼(no show) 표가 한 장 있다고 한다. 아내의 배려와 함께 미술관을 둘러보고자 하는 간절함이 미안한 마음을 잠시 잊게 했는지, 혼자서 박물관으로 들어섰다.


한 시간여 동안 베르니니의 '다비드', '페르세포네의 납치', '아폴로와 다프네', 카라바조의 '과일 바구니를 든 소년', 다빈치의 '레다', 라파엘로의 '유니콘과 함께 있는 젊은 여인의 초상' 등 이탈리아 거장들의 조각품과 그림을 둘러볼 수 있었다. 보르게세 미술관은 베르니니(1598-1680)를 위한 미술관이랄 만큼 그의 걸작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특히, 그의 조각품 <다비드>는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작인 미켈란젤로(1475-1564)의 <다비드>에 비견되어, 바로크 시대의 대표 조각품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보르게세미술관 소장 다빈치의 <레다>, 베르니니의 <페르세포네의 납치>, 카라바조의 <과일 바구니를 든 소년> 등 조각품과 그림
로마의 스칼라 산타 성당(Pontificio Santuario della Scala Santa)
미켈란젤로의 3대 걸작인 피렌체 아카데미아미술관의 <다비드>, 로마 성베드로 성당의 <피에타>,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의 <모세>

미술관이 자리한 보르게세 공원을 벗어나서, 보수공사가 진행 중인 나보나 광장을 거쳐 트레비 분수를 둘러보았다. 분수 근처 골목 입구의 노상 피자 거게에서 피자 한 조각으로 점심을 대신했다. 구운 양파를 듬뿍 얹은 피자는 이제까지 맛본 피자들과는 다른 본고장의 특별한 맛을 선사해 주었다.


이어서 퀴리날레 궁전, 베네치아 광장, 캄피톨리오 광장, 에마누엘레 기념관, 보카델리베리다 광장, '진실의 입' 조형물이 있는 코스메딘 산타마리아델라 교회, 포로 로마노, 팔라티노 언덕, 콘스탄티노의 개선문, 빙콜리 교회 등을 차례로 탐방하며 하루를 마감했다.


로마에서의 셋째 날이자 마지막 밤을 보내고 짐을 챙겨 숙소를 나섰다. 테르미니 기차역에 백팩을 맡기고 산타마리아 마조레 교회, 에마누엘레 2세 광장, 산조반니 인 라테라노 교회, 스칼라산타 성당의 성스러운 계단 등을 둘러보고, 카라칼라 목욕탕 유적지 탐방을 끝으로 로마 여행이 끝나가려 하고 있다.


테르미니 역에서 지하철 B선에서 A노선으로 갈아타고, 공화국 광장으로 향하던 중 일이 터졌다. 지하철 안에서 지갑을 소매치기당한 것이다. 주머니 조심을 하라고 당부하던 아내의 얘기를 흘려듣듯 가볍게 넘기고, 지갑을 청바지 앞쪽 주머니에 넣어 두었었다.


지하철을 타기 전부터 우리를 눈여겨보던 남녀 집시 5~6명이 무리 지어 같은 칸에 올라탔다. 그들은 나와 아내 옆으로 바짝 다가와 왼쪽에서 내 몸에 몸을 부딪치며 주의를 분산시켰다. 손잡이를 잡고 있던 오른손을 내려 오른쪽 바지 주머니 위를 더듬어 보니 지갑이 만져지지 않았다. 왼쪽에서 몸을 밀착하며 주의를 끄는 사이 다른 쪽의 같은 패거리가 지갑을 뽑아간 것이다.


나와 내 주위의 집시 무리는 잠잠히 다음 역을 향해 달리고 있는 지하철이 정차하기를 기다렸다. 지하철이 다음 역에서 정차하고, 내가 그대로 있자 집시들이 지하철을 내리려 했고, 내가 내리려 하자 그들은 다시 지하철 문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지하철 문이 닫히기 직전, 지하철에서 내리는 제일 의심스럽던 집시 남녀 둘을 따라 뛰쳐 내렸다. 그들 중 남성을 잡아 몸을 뒤졌지만 지갑을 찾을 수 없었고, 여인을 쫓았으나 놓치고 말았다.


현금을 제외하고라도 지갑에 든 신분증과 카드 등이라도 건지려는 생각에 아내와 나는 공화국광장 지하철역의 쓰레기통을 모조리 뒤졌다. 아내가 주인을 알 수 없는 지갑 3개를 발견하였을 뿐, 내 지갑은 찾을 수 없었다. 허탈한 마음으로 소매치기 신고를 하려고 부근 경찰서를 찾아갔는데, 경찰은 앞서 소매치기를 당한 노 부부 두 쌍의 도난신고를 처리하고 있는 중이었다.

로마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암늑대가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에게 젖을 먹이는 장면을 묘사한<카피톨리나 늑대상>

신고절차를 마친 후, 테르미니역 수하물 보관소에서 맡긴 짐에 생각이 미쳐 그리로 달려갔다. 테르미니역 수화물보관소 일꾼들은 내기라도 걸었는지, 자기들끼리 무리 지어 떠들썩하게 소리 지르며 TV 속 자동차 경주에 열중해 있을 뿐, 여행자의 사정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짐 보관소 안으로 들어가서 선반을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집시들보다 한발 늦었는지 우리 짐은 찾을 수 없었다. 도난당한 지갑 속에 넣어 두었던 보관증으로 집시들이 벌써 찾아간 게 분명했다.


집시 떼에게 지갑 속 현금, 카드, 피렌체-브뤼셀 버스표, 백팩 두 개 속에 든 기념책자, 필름, 선물, 옷가지, 양치도구, 우산 등을 모조리 잃고 말 그대로 객지에서 거지꼴이 되었다. 그나마 상의 앞주머니에 따로 넣어 두었던 여권과 피렌체행 기차표를 건사할 수 있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한국에 연락하여 카드 분실신고을 하고, 오후 네 시경 로마발 피렌체행 기차에 올랐다.


로마의 기차역 '테르미니'에서 집시 도둑떼를 만나 지갑을 털린 것은 이십칠 년 전의 일이다. 지금은 추억이지만 당시는 피렌체로의 남은 여정과 브뤼셀로의 복귀를 장담할 수 없는 황망한 처지에 놓였었다. 짐 보관소에 맡겨둔 배낭 속의 필름과 기념품도 깡그리 도둑맞아, 이박 삼일 간의 로마 여행은 카메라 속 마지막 날의 몇 장 사진으로 반추할 수 있을 뿐이다.


자신들이 행한 일을 스스로 한 번쯤 참회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집시들의 악행을 일찍이 마음으로 용서해 주었다. 이태리 여행의 추억을 되돌아볼 때마다 듣는 아내의 핀잔에 아직도 속이 쓰린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기회가 되면, 다시 로마를 찾아 흑백 영화처럼 빛바랜 추억에 원색의 색칠을 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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