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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산ᨒ 봄맞이 산행

눈 녹는 소리

by 꿈꾸는 시시포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말마다 산행을 하는 친구 M과 청계산 산행을 하기로 한 날이다. 아침 일곱 시 반경, 판교역에서 한 정거장인 청계산입구역에서 내려 M을 만났다. 조금 이른 시각이라 그런지 등산복 차림 산객들은 몇몇 밖에 눈에 띄지 않는다.


원터마을 '블*야크' 매장에서 출발해서 매봉, 망경대, 석기봉, 이수봉, 국사봉을 거쳐 하오재를 건너 백운산, 광교산 반딧불이화장실에 이르는 소위 '청광종주_청계산과 광교산 종주'를 하자는 M의 제의에 혀를 내두르며 사양했다. 하루 전에 두 주일 앞으로 다가온 '2025 성남 런페스티벌' 10km 달리기 연습을 했던 터라 무릎이 뻐근했기 때문이다. 친구는 원터마을 입구에 자리한 '블*야크' 매장을 배경으로 인증사진을 부탁했다. 동 브랜드 의류회사의 '청광종주' 이벤트 인증 요건을 갖추기 위함이다.


그는 울주군의 '영남알프스 완등 인증' 이벤트에도 참여해서 지난해 완등기념주화를 받기도 했다. 2019년 8월부터 매년 시행되고 있는 동 이벤트는 해발 1천 미터가 넘는 영남알프스 7개 봉우리를 완등한 뒤 모바일 앱으로 인증하는 서비스다. 2023년 기준 이벤트에 참가한 사람 중 외지인 비율이 92%에 달했다니, 영남알프스 홍보와 관광객 유입에 큰 역할을 한 셈이다.


원터마을 느티나무
청계산 산행 초입
2024 영남알프스 완등기념 주화

마을의 골목 끝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청계산 진달래 능선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같은 방향으로 길을 잡은 몇몇 산객이 눈에 띈다. 계곡이 끝나는 지점에 자리한 팔각정에서 옥녀봉 쪽 방향을 버리고 매봉 쪽으로 곧바로 치고 오르기 시작했다. 어떤 젊은 여성은 반려견과 일찍이 산책을 나왔는지, 능선 쪽을 바라보며 멈춰 선 목양견 보더콜리를 멀찍이서 내려오라고 채근하고 있다.


등로는 좌우로 옛골과 옥녀봉 쪽에서 올라오는 등로를 수렴하면서 돌문바위를 지나 매봉으로 인도한다. 표범의 얼룩무늬처럼 녹지 않은 눈이 등로 주변 곳곳에 보인다. 오래도록 이 산을 지키고 섰던 노송들 중 제법 많은 숫자가 습설에 가지가 부러지고 줄기가 꺾여 쓰러졌다. 겹겹 나이테를 드러낸 채 동강 나 쌓여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


등로가 합류하면서 산객들이 차츰 제법 많이 늘어났다. 해발 573미터 매바위에 올라서면 매봉은 100미터 지척 거리로 다가온다. 다소 일찍 한 시간에 시작한 산행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장노년층의 놀이터나 다름없었던 청계산 등로에는 젊은 층 남녀 산객들이 더 많이 눈에 띈다.


그중에는 청계산 북단에서 광교산 남단을 잇는 진정한 의미의 '청광종주' 트레일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러너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같은 그룹인지 또 같은 루트인지는 모르겠지만, 산행을 시작할 때 전철역 부근에서 트레일을 마치고 청계산역을 통해 원점으로 회귀하는 러닝 복장의 러너들도 몇몇 보였었다. 온몸으로 자연을 호흡하며 건강과 친목을 챙기고 자기 단련도 할 수 있는 취미로 이 보다 더 좋은 것은 없지 싶다. 시간과 순위를 다투는 전투와도 같은 트레일은 혈기가 왕성한 젊은 시절에는 누구나 한 번쯤 도전해 보고픈 것일지도 모른다.



해발 582.5미터 매봉에 올라서서 서울 도심 쪽을 잠시 조망해 보는데, 미세먼지 때문인지 시계가 흐릿하다. 망경대로 난 내리막길 등로는 녹지 않은 눈이 얼어붙어 미끄럽다. 며칠을 굶었는지 허기져 보이는 산 고양이 한 마리가 나무 뒤로 몸을 숨기며 산객을 응시한다. 완연한 봄이 되고 산객이 많아지면 고양이의 주린 배도 채워질까?


망경대로난 등로를 따라가다 보면 '과천향토사연구회'가 설치한 오래되고 허름한 '혈읍재(血泣)' 표지가 눈에 띈다. 조선조 영남 사림의 거유인 일두 정여창(鄭汝昌, 1450-1504)이 은거지인 금정수(金井水) 터로 가려고 이 고개를 넘나들며 통분해서 운 피 울음 소리가 산 멀리까지 들렸다 하여 후학인 정구가 명명한 지명이라는 설명이다.


정여창은 1498년 김일손(金馹孫) 등 신진사류가 유자광(柳子光) 등 훈구파에 의해 화를 입은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된 사림파 관료이자 학자였다. 그는 스승 김종직, 벗 김굉필 등과 함께 유배 후 사사 되고, 그 후 갑자사화 때는 죽임을 당했던 함경도 종성(鍾城) 땅에서 부관참시까지 당하는 치욕을 당했다. 절의(節義)를 중시하여 단종을 폐위하고 살해한 세조와 그의 공신들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던 신진사류에 대해 훈구세력이 자행한 피의 보복의 희생양이었던 것이다.


망경대에서의 조망

망경대(望京臺) 암봉 위에 올라 한동안 사방을 조망했다. 조선의 개국공신에 책록 된 고려의 유신 조견(趙狷, 1351-1425)이 이곳에서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開京)을 바라보면서 통곡으로 나날을 보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커 보인다. 조견의 형으로 고려의 문신이자 조선 개국공신에 책봉된 조준(趙浚, 1346-1405)이 앞 쪽에 자리한 국사봉(國思峰)에 올라 고려의 멸망을 슬퍼하였다고 전해오는 얘기도 미심쩍기는 마찬가지이다.


조 씨 형제와는 달리,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두문동에 들어가서 출사 하지 않은 '두문동 72현(杜門洞 七十二賢)'처럼 끝까지 고려에 충절을 지킨 유신들도 많았음을 역사는 전하고 있다. 배지를 쫓아 이 당 저 당 옮겨 다니는 정치 철새들은 '두문불출(杜門不出)'이라는 사자성어 앞에 얼굴을 붉힐 일말의 염치라도 있을까.


이수봉에 닿기 전 등로 옆에 줄기가 꺾인 채 처참한 몰골을 드러내고 있는 노송이 안쓰럽다. 정여창이 무오사화의 변고를 예견하고 이곳으로 피신하여 두 차례나 목숨을 보전한 곳이라는 '이수봉(二壽峰)'은 산객과 트레일 러너들이 거쳐가며 인증 사진을 남기거나 휴식을 취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청계산 국사봉
청계산과 우담산을 잇는 하오고개 구름다리

국사봉으로 향하는 등로로 접어들자 우측 산줄기에 싸인 고려 전기 의천(義天, 1055~1101)이 창건한 천년고찰 청계사에서 목탁 소리가 한동안 은은히 따라온다. 국사봉을 지나서 하오재고개로 내려가는 능선은 가파른 비탈길이 한참 이어진다. 길게 줄지어 뛰듯이 내려가는 트레일 러너들에게 길을 비켜주며 그 길을 따라 천천히 내려갔다.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한 산객의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표정이 가파른 비탈을 오르는 고통을 짐작케 한다.


청계산과 우담산을 가르는 하오고개 위에 걸린 구름다리에서 산행을 마무리하고 고개로 내려섰다. 바야흐로 계절은 봄을 재촉하는 겨울의 막바지라, 따사롭게 내려쬐는 햇살에 청계공설묘지의 뭇 혼백들이 당장이라도 기지개를 켜며 일어날 듯 포근하다. 비발디의 협주곡 <사계(四季)> '봄'의 경쾌한 리듬처럼 온천지에 봄의 찬가가 울려 퍼질 호시절도 머지않았다. 25-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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