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집과 고당봉과 범어사 할매
가을의 끝자락 부산에서 일박이일 워크숍을 가졌다. 5월에 발생한 급성 호흡기 감염병 메르스 때문에 열리지 못했던 워크숍이었다. 둘째 날 일정을 일찍이 마치고 자투리 시간을 덤 삼아 금정산으로 마음을 잡았다. 광안리에서 금강공원으로 향하는 길, 할배 기사님 입담이 구수하긴 해도, 산행 후 막차를 탈 수 있을지 몰라 마음엔 살며시 조급증이 인다.
공원 입구 건너편 김밥집 할매에게 김밥 한 줄을 주문했다. 김밥을 말면서 공원에서 남문까지 걸어서 오르라고 권한다. 웬만하면 그 말을 따랐겠지만, 시간에 쫓기는 마음과 눈앞 가파른 능선을 보며,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정산성 남문에서 동문 북문으로 이어진 길은 평탄하고, 남동쪽으로 해운대와 광안리가 눈에 들어온다. 서남쪽으로는 칠백 리를 달려와서 구름을 비집고 내려쬐는 햇볕에 반짝이며, 남해로 흘러드는 낙동강 줄기가 저 멀리 눈 아래 길게 펼쳐져 있다.
산성을 따라 얕은 경사의 오르막과 내리막으로 이어진 길은 갈매길이라고 한다. 그 이름처럼 산보하는 듯 평이한데 북문에서 금정산 최고봉인 고당봉으로 오르는 길은 제법 가파른 위세를 보인다. 이제 이쯤에서 하산길을 택하지 않을래, 하고 슬쩍 끈기를 시험이라도 하는 듯.
할매 신에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고당봉(姑堂峰), 그 봉우리 바로 밑에는 산신당이 자리 잡고 있다. 영도 봉래산에도 영도 할매 전설이 있는데, 바람을 타고 왔는지 부산 할마씨의 살가운 사투리가 귓전을 스치는 듯하다.
다시 북문을 거쳐 범어사로 내려오면 바윗길 틈으로 흐르는 물이 낮은 데로 모여 계곡을 이루고 붉고 샛노란 단풍들 사이로 작은 폭포가 되어 수정처럼 투명하게 부서진다.
규모에 비해 유난히 조용한 산사의 대웅전, 비로전, 관음전, 미륵전 등 여러 법당에는 저마다 바램을 기원하는 이들의 정성이 그득하다.
나이 많은 보살 한 분이 보재루, 불이문, 천왕문, 일주문 등 문을 나설 때마다 뒤돌아서서 합장을 한다. 이제 때?가 가까우니 마음을 깨끗이 닦으러 매일 이곳을 찾는단다.
산사를 찾는 중생이 많을수록 부처님은 기뻐하실지 아니면 무거운 어깨를 버거워하실지? 절문을 나서 버스 정류장으로 내려가는 길에 바보 같은 궁금증이 일었다. 1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