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릉도원과 미련
오랜만에 전철 첫차를 탔다. 어제는 하루 종일 제법 많은 비가 내려 여름날씨처럼 달뜬 봄의 이른 열기를 식혀 주었었다. 제천 금수산 산행을 하기로 한 날이다. 지난 1월 덕유산을 마지막으로 산행을 멈췄던 친구들이 4월 하순에서야 다시 기지개를 켠 것이다.
그동안 M으로부터 몇 차례의 산행 제의가 있었지만 모두 성사되지 못했었다. 모두 저마다 정년과 퇴직을 맞이하면서 여러모로 혼란스럽고 괜스레 마음이 분주했을 것이다.
넘어지면 일어나서 다시 넘어져 무릎 까이며 배운 자전거 타기, 고등학교 입학시험과 대학 입시, 취업과 결혼, 퇴직과 노후,... 누구나 한 번은 거쳐가야 할 인생의 여러 변곡점들이다.
현대인 셀러리맨에게 있어 육십갑자를 전후해서 홀연 닥쳐오는 '퇴직'은 어쩌면 인생 최대의 변곡점이다. 고정적 수입이 끊기고, 생활 패턴이 변하고, 대인 관계의 범주가 바뀌는 등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면서 새로운 인생 항로도 모색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암사전철역 부근에서 일산의 B를 픽업해서 달려온 M의 차량에 올라 반갑게 인사했다. 서울을 탈출한 넥소는 제2중부고속도로, 광주원주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를 차례로 갈아타며 제천 IC로 빠져나왔다.
도로변을 스쳐 지나는 산천은 어제 하루 종일 내린 비에 초록빛 색채를 머금고 짙푸른 신록으로 성장할 채비를 하고 있다. 청풍호수 가장자리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청풍호로(路)를 따라 금수산 산행의 들머리인 상천휴게소에 도착했다.
노모를 돌보기 위해 단양의 고향집에 내려가 있는 H도 시간에 맞춰 도착하여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다들 얼굴에 주름이 자리 잡았지만 각기 개성은 처음 만난 스무 살 때 그대로라, 서로 어울릴 때면 스무 살 그때로 돌아가는 것은 강산이 네 번 바뀌는 긴 세월도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
산림청이 선정한 우리나라 100대 명산 가운데 하나인 금수산(錦繡山)은 해발 1,016미터로 단양군 적성면과 제천시 수산면에 걸쳐 있다. 오늘 산행의 들머리는 금수산 산정에서 내리 뻗은 몇 갈래 산줄기와 가은산 능선 사이 깊은 골에 자리한 제천시 수산면 상천리 마을이다.
들머리에서 올려다보니 마을 뒤쪽에 여덟 폭 병풍을 세워 놓은 듯 한 금수산의 선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금수산에서 발원하여 용담폭포를 거쳐 마을을 가로질러 청풍호로 흘러드는 상천천을 거슬러 오르며 산행을 시작했다.
마을 중간쯤 길 아래 상천리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는 '가장 오래 살았수유' 산수유 고목 한 그루가 오랜 풍상을 견뎌온 강인하고 유려한 자태를 머금고 서있다. 나무를 만지면 무병장수한다는 안내문의 설명이 있어 손을 뻗어서 가지를 한 번 쓰다듬어 주었다.
지난달 29일 상천리 산수유마을은 ‘제5회 산수유 축제’를 열어, 인구소멸 위기 대응의 일환으로 이웃 맺기 캠페인 참여자를 초대하는 한편 '산수유 마실길 걷기' 행사 등을 통해 마을의 자연환경과 경관을 홍보했다고 한다.
이 마을은 제천의 자드락길_'나지막한 산기슭의 비탈진 땅에 난 좁은 길'이라는 뜻_ 5코스의 시작점이자 4코스의 일부가 지나는데, 산수유 꽃이 전체를 황금빛으로 물들인다는 3월 말 즈음 그 길을 걸어보고도 싶다. 산수유 꽃이 지고 난 자리를 화사하게 분칠을 한 젊은 여인네의 얼굴을 닮은 핑크빛 복사꽃이 채워주며 산객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절집 보문정사 입구의 오른편으로 길을 잡자니, 어제 내린 비로 계곡의 물줄기는 제법 호기롭고 힘차다. 계곡 옆에 서있는 용담폭포를 알리는 표지석을 지나치며 오른편 능선을 향해서 본격적인 산행에 접어든다.
숲의 활엽수들은 저마다 연초록 잎사귀를 틔웠고, 순백색의 말발도리꽃, 바위틈에서 샛노란 꽃을 피운 괴불주머니, 추위에 떨듯 바람에 흔들리는 노랑제비꽃, 연분홍 고깔제비꽃 등이 고도를 높여감에 따라 차례로 인사를 건넨다.
숲 사이로 비단처럼 흰 물줄기를 드러내던 계곡은 모습을 감춘 후에도 우렁찬 물소리로 귓전을 울리며 첫 고갯마루로 올라서기까지 따라온다. 호기롭게 흐르는 저 계곡물은 청풍호로 흘러들어 곳곳에서 모여든 물과 하나가 되어 남한강 물길을 따라 서해로 흘러들 것이다.
산벚꽃은 등로 위에 분홍 이파리를 온통 흩뿌려 놓았다. 선선한 바람이 이따금 산들산들 몸을 스치고 지나가지만 어느새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계곡 옆 옛 화전민 촌락의 공터에 앉아 간식을 들며 땀을 식혔다.
곳곳에 돌을 쌓은 축대 위에 집터로 보이는 반듯한 공간이 보이고, 계곡을 끼고 있어 식수 확보가 용이했겠지만, 바위 너덜이 많고 경작이 가능할 만한 공간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옛 화전민들은 어떻게 삶을 이어 갔을지 미스터리다.
이제나저제나 하다 보면 문득 봄은 우리 곁에 왔다가 이내 여름에게 자리를 내어 준다. 숲의 참나무들도 우리들처럼 봄이 온 것인가 미심쩍어하는 것인지 아기손처럼 자그마한 잎새를 틔운 채 계절을 가늠하고 있지만 곧 짙푸르게 성장을 차려입을 것이다.
문득 지난달 21일부터 30일까지 약 열흘간 10만여 ha를 태우고 약 4200여 가구의 가옥을 전소시키는 미증유의 피해를 남긴 영남지역 산불에 생각이 미쳤다.
M이 내게 건네준 정책분석평가학회보(제35권 제1호 2025 봄)에 게재한 자신의 연구논문 <입산통제 정책의 산불예방 효과에 대한 실증 연구>에 따르면, 최근 10년 평균 우리나라 산불 발생 건수 및 피해면적은 567건 4,004ha 라고 하니, 지난달 영남지역 산불피해의 규모를 가늠해 볼 수 있다.
해발 497미터 지점에 서있는 이정표가 정상까지 1.5km가 남았다고 알린다. 그 아래 바위틈에서 금낭화가 수줍은 듯 발그레하게 얼굴을 붉히며 산객에게 인사를 건넨다. 왼쪽 이마 위로 모습을 드러낸 봉우리는 아득히 높고 멀어 보이고, 곧이어 나타나는 급전직하 아찔해 보이는 계단이 우측으로 휘돌며 정상을 향해 가파르게 고도를 높여 간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산 아래쪽으로 시야가 트이기 시작한다. 고개를 돌려 뒤돌아보니 손가락처럼 뻗친 산줄기 사이사이로 파고든 청풍호가 수면에 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청풍호는 1978년 착공하여 1985년에 완공된 충주댐에 물이 갇히면서 생겨난 유역면적 6,648m²의 인공호로 공식 명칭은 '충주호'이지만 제천에서는 '청풍호', 단양에서는 '단양호'로 각기 불리고 있다.
천국의 계단처럼 높게 뻗은 철계단을 따라 산정 부근이 가까워지자, 바위 틈새 여기저기에 자리를 튼 키 큰 진달래들이 억센 줄기에서 뻗친 가지마다 연분홍 립스틱 화장을 한 시골처녀처럼 화사한 모습으로 반겨준다.
멀리서 보면 산능선이 미녀가 누워 있는 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미녀봉'이라고 불린다는 금수산 정상에 올라섰다. 해발 200m쯤의 들머리로부터 해발 1016m 산정까지 800여 m를 올라온 셈이다.
큼직한 두 개의 바윗돌 사이에 정상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기고, 청풍호 월악산 단양 방향 등 사방으로 툭 트인 전망을 한동안 조망했다. 단양의 적성면을 지나는 중앙고속도로는 숨바꼭질하 듯 숨었다 나타났다 하며 산줄기 속으로 모습을 감춘다.
정상을 뒤로하면 지그재그로 난 가파른 철계단이 1.9km 거리의 망덕봉으로 안내한다. 올라올 때와는 달리, 능선을 따라 난 시야가 툭 트인 등로는 산행의 묘미를 더해며 정상에서 300m쯤 거리에는 전망 데크도 내어 놓는다. 전망대 아래 망덕봉삼거리로 내려서면 단양군 적성면 상학동과 제천시 삼수면 갈림길에서 이정표가 망덕봉까지 1.6km라고 알려준다.
철계단길이 다하자 능선은 앙상한 참나무숲 사이로 폭신한 흙길로 인도한다. 그 앞쪽에 망덕봉이 무명봉이라는 작은 봉우리 하나를 앞세우고 버티고 서있다. 우측으로 신선봉 줄기와 마주 보는 능선은 긴 골을 이루는데, H는 그 아래쪽 여름에도 얼음이 언다는 얼음골이 자리한다고 귀띔했다.
잘 생긴 감자처럼 원만한 표지석에 유려한 글씨체로 새긴 해발 926m 망덕봉 표지석에서 인증 사진을 남겼다. 본격적인 하산은 망덕봉에서 시작되는데, 산행 들머리였던 상천주차장까지는 2.8km로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이다.
우측의 독수리 바위에서 비스듬히 경사를 낮추며 내리 뻗은 바위 능선에 눈길을 빼앗기며, 계단을 따라 고도를 낮춰가자 청풍호가 손에 닿을 듯 눈앞으로 가까이 다가온다.
상천리 마을 위쪽 가장자리가 가까워질 무렵 철계단 좌측 아래로 용담폭포가 위용을 드러낸다. 깊이 파인 암반 사이에서 30m 높이 절벽 아래 웅덩이로 우렁찬 소리와 함께 세찬 물줄기를 쏟아 내리는 폭포는 가히 이번 산행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서둘러 계단을 내려와서 계곡을 100여 미터쯤 거슬러 올라 폭포 가까이로 다가갔다.
폭포 아래쪽에서 올려다보는 폭포는 더욱 웅장해 보이고,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에서 부서져 흩날리는 찬 물보라가 얼굴에 와닿으며 산행의 피로가 말끔히 씻겨 가시는 듯 상쾌하다.
상천리 마을로 내려서서 보문정사의 뒤편 산신각 쪽으로 들어서서 정문 쪽으로 내려오며 경내를 둘러보았다. 번듯한 법당의 모습은 볼 수 없지만 경내 곳곳에 자연석 돌로 정성스레 쌓은 돌탑들이 여기는 절집입니다,라고 무언의 말을 건네고 있다. 상천주차장에 도착하며 원점 회귀 산행을 마무리하고 뒤돌아서서 다시 한번 금수산을 올려다보았다.
연초록빛으로 치장한 수목, 제각기 제 빛깔을 머금은 꽃, 바위와 어우러진 푸른 솔, 간간이 들리는 산새들의 노래, 비단처럼 하얗게 부서지며 흐르는 계곡의 물, 산벚나무가 등로에 흩뿌려 놓은 꽃잎,...
이처럼 그림 같은 풍경 속에 중국 동진 시대 구강(九江) 출신의 전원시인 도연명(陶淵明, 365~427)이 <도화원기(桃花源記)>에 그려낸 무릉도원(武陵桃源) 사람들의 푸근한 인정(人情)이 더해진다면, 그 어디든 무릉도원 아닌 곳이 있으랴!
도연명은 팽택(彭澤) 현령이던 41세 때 “쌀 다섯 말의 녹봉 때문에 허리를 굽히고 향리의 소인에게 절을 해야 하랴”라며 한직으로 전전하던 13년 간의 관리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귀향하면서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지었다고 한다.
"돌아가련다. 전원이 거칠어지려는데 아니 돌아갈쏘냐"
한 갑자를 살고도 여전히 현실에 연연하며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어떤 연유일까! 귀로에 청풍호변에 자리한 식당에서 묵사발에 '단양막걸리' 한 잔을 곁들여서 출출해하는 허기를 달랬다. 단양의 노모에게 달려간 H는 막걸리 병과 부침개가 올려진 교자상 사진을 보내왔다.
‘못에서 물고기를 보고 부러워하느니 돌아가서 그물을 짜는 게 낫다'라는 경구도 있지만, 부러워하면서도 실행을 하지 못하는 것은 도시생활에 순치된 우리들의 아이러니한 일면이기도 하다. 25-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