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신만고의 월악산 산행

by 꿈꾸는 시시포스


오랜만에 친구들과 원정 산행에 올랐다. 암사역에서 M의 차량에 올라타 충북 제천의 월악산을 향해 출발했다. 당산역에서 픽업한 B, 단양 고향집의 노모를 돌보고 있는 H까지, 오랜 벗 넷이 모여 월악산 종주 산행을 할 요량인 것이다.


괴산 IC로 빠져나와 충주호 가장자리를 따라 난 월악로를 거쳐 미륵송계로를 거슬러 올라 덕주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M의 차량을 덕주사에 남겨두고, 단양에서 운전해 온 H의 차량에 함께 올라 보덕암으로 향했다. 오늘 산행은 보덕암에서 출발해 하봉, 중봉, 영봉을 지나 덕주사로 내려오는 코스다. 칠 년 전 이른 봄 M과 함께 걸어갔던 코스 그대로다.


보덕암으로 향하는 좁은 외줄기 산길을 올라 차를 사찰 아래 작은 주차장에 세우니, 고도계는 해발 350여 미터를 가리킨다. 녹음이 짙게 드리워진 초여름의 산천은 살아서 숨을 쉬듯 생기가 넘치고, 어디선가 뻐꾸기 울음소리도 들려온다.

보덕암
보덕굴

말안장처럼 포근히 내려앉은 능선 아래, 보덕암이 아늑하게 안겨 있다. 비탈을 올라 암자로 들어서자, 처마에 달린 원통형 풍경이 은은한 음색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인기척에 얼굴을 내미는 스님께 인사를 드리며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예전에 색소폰 연주를 들려주시던 그분 맞으신가요?” 스님은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신다. 칠 년의 세월이 흘렀고, 스님의 수염엔 희끗한 시간의 흔적이 묻어나 있다.


암자 옆 능선엔 작약이 탐스럽게 피어 있고, 그 너머 바위 암벽 아래 보덕굴이 자리한다. 보덕굴은 그 앞쪽에 작은 연못과 하얀 꽃잎에 황소눈깔 크기의 샛노란 꽃술의 옥스아이데이지를 지천으로 깔아 놓아 비밀의 정원처럼 신비스러워 보였다. 보덕암을 뒤로하는데 예전 스님의 색소폰 소리를 대신하여 처마의 풍경이 바람결에 은은히 울리며 작별 인사를 건넨다.


하봉으로 향하는 길은 산행 초입부터 가파른 계단으로 우리를 맞는다. 보덕암에서 0.5km, 영봉까지는 3.5km. 이정표를 확인할 즈음엔 벌써 얼굴이 땀에 흥건하다.


퇴적암이 나이테처럼 겹겹 주름진 단면을 드러난 바위틈 사이로 난 계단을 오른다. 어느새 동료들과의 간격이 벌어지고 자꾸만 뒤처진다. 풍치 좋은 곳에서 한 세월을 묵묵히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바위 위에 눌러앉아 이끼처럼 그 자리에 붙어버리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주능선에 올라서니 일행들이 기다려주고 있다. 함께 자리를 틀고 앉아서 잠시 숨을 고른다. 그때, 반바지 차림에 작은 배낭 하나를 멘 여성 트레커 한 분이 바람처럼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간다. 몸을 일으켜 다시 길을 걷는다. 영봉까지의 거리는 2.5km, 2km... 조금씩 가까워지고 땀방울은 모자챙에서 연신 떨어진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산에선 산불조심, 집에선 아내조심'이라고 적힌 리본이 입가에 미소를 자아낸다. 좌측으로 산줄기 사이를 휘돌아 청풍호로 흘러드는 남한강의 푸른 물결이 눈에 들어온다. 무성한 숲에서는 들꽃 향기와 함께 묵직한 피톤치드의 내음이 폐부 깊숙이 스며든다.

보덕암-하봉-중봉-영봉으로 이어지는 등로

하봉은 그 목덜미쯤에 전망대를 내놓으며 가파른 사면 저 멀리 송계계곡과 청풍호를 눈앞에 펼쳐 보인다. 첫 구름다리를 건너고, 하봉과 중봉이 보이는 작은 봉우리로 올라섰다. 산행 리본이 빽빽하게 걸린 게시대 옆, 햇살 든 노송 가지 위에 구렁이 두 마리가 꼼짝 않고 몸을 데우고 있다. 그 생경한 풍경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하봉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


두 번째 구름다리를 건너자,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해발 926m, 영봉까지 1.9km 남았다. 또다시 가파른 계단길이 하봉으로 이어진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고 다리는 점점 무거워지지만, 천신만고 끝에 마침내 월악의 첫 봉우리 하봉에 올라섰다. 안도감이 밀려들고 시원한 바람은 잠시 피로감을 잊게 하며, 중봉과 영봉으로 향할 용기를 새롭게 불어넣는다.


하봉에서 중봉까지는 다시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고 또 올라야 한다. 중력에 순응하며 걷는 내리막길은 평온하지만, 그것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은 한 걸음 한 걸음이 고행이다. 그래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철학자 노자는 높은 곳을 지향하지 않고 낮은 곳을 향해 흐르는 물을 상선(上善)에 비유했는지도 모른다.

계단과 구름다리로 이어지는 등로

하봉과 중봉은 형제처럼 나란히 붙어 있지만, 영봉은 그 둘과는 다르게 멀찍이 떨어져 솟아 있다. 하봉 오름길에서 우리를 스쳐 지나갔던 여성 트레커를 중봉 내리막길에서 다시 마주쳤다. 아직도 까마득히 멀게 느껴지는 영봉까지 벌써 갔다가 되돌아오는 길이라니, 우리 일행은 모두 혀를 내둘렀다.


중봉으로 오르는 철계단 난간을 붙잡은 채 턱을 손으로 고이고 숨을 골랐다. 오랜만에 하는 산행이라 그런지 몸이 예전 같지 않게 몹시 힘들어한다. 모자챙 끝에서 땀방울이 고드름 녹듯 뚝뚝 떨어진다. 기진맥진한 몸을 타이르며 한 걸음 또 한 걸음 나아갔다.


중봉을 지나 깊은 안부에 이르자, 보랏빛 큰앵초가 등산로 옆에 옹기종기 피어 고단한 산객의 마음을 달래듯 시선을 붙든다. 영봉 아래에 다다르자 이번엔 산길 옆에서 가지마다 붉은 꽃을 활짝 피운 붉은 병꽃나무가 우리를 반긴다. 들꽃들은 고도에 따라 저마다 어울리는 자리에서 무리 지어 피어난다.


머리 위로 가파르게 놓인 계단을 따라 사방이 툭 트인 영봉 정상으로 올라섰다. 희뿌연 날씨 탓에 시야는 멀리까지 허락되지 않지만, 정상에 오른 쾌감은 각별하다. 칠 년 전 영봉에 올랐던 그때의 감흥이 떠오른다.

"해발 1097미터 월악의 맏형 영봉은 호락호락하지 않고 힘겹다. 눈을 질끈 감고 사다리처럼 암벽 위로 놓인 철 계단을 올랐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를 무렵 먼저 오른 산객들의 모습이 하나 둘 보이고 정상이 너른 데크를 허락했다. 영봉 사방으로 펼쳐진 모습은 말 그대로 일망무애, 걸리적거리는 것 하나 없이 남쪽으로 멀리 북바위산 박쥐봉 주흘산 등이 하늘과 맞닿아 있고 북쪽으로 지나온 중봉 하봉 너머로 충주호가 그림처럼 누워있다.

둥근달처럼 동그란 구형 바위 돌에 새겨진 '영봉' 글자가 보름달처럼 옹골차다."

월악산 정상 영봉과 덕주사로의 하산로

산객 한 분에게 부탁해 친구들과 함께 표지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긴다. 뿌듯함이 훈장처럼 가슴에 가득하다. 일기예보의 소나기 소식을 긴가민가하며 서둘러 하산을 시작한다. 덕주사까지의 하산길은 4.9km로 보덕암에서 영봉까지의 거리 4km보다 조금 더 길다.


철계단 아래로 숲을 내려다보니, 옛 전설을 뒤뇌고 있는 듯 녹음의 바다 위로 고사목들이 삐죽삐죽 솟아 있다. 고층빌딩의 비상구처럼 좌우로 휘도는 가파른 나선형 철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고도가 뚝뚝 떨어진다. 영봉 아래를 시계방향으로 휘돌아서 평탄한 능선을 따라가다 보면 헬기 착륙장이 나오고, 그곳에서 뒤돌아서면 영봉의 모습이 한눈에 온전히 들어온다. 깎아지른 암벽 벽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우뚝 솟아있는 그 모습은 멀리서 볼 때 짙푸른 녹음의 영험스러운 모습과는 또 다른 장관이다.


해발 300여 미터쯤의 덕주사까지는 가파른 사면의 허공 위에 놓인 가파른 계단의 연속이다. 송계삼거리 분기점을 지나자 등로 왼편, 솔숲 사이로 암반이 골짜기 아래로 미끄러지듯 긴 사면을 이루고 있다. 노송과 고사목들이 바위와 어우러져 서 있고, 어떤 소나무는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강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고도가 해발 700여 미터로 낮아지자 철계단이 다하고, 해발 550미터쯤에 자리한 덕주사 마애불까지 숲길과 돌계단이 이어진다. 등로 위쪽 마애봉을 호위무사인양 배경 삼아 덕주사 마애불이 계곡 아래쪽을 굽어보며 자리하고 있다.

마애불로 올라가는 돌계단 틈에 뿌리를 내린 민들레가 노란 꽃을 바람에 흔들며 산객을 맞는다. 마애불이 있느누 마애암은 마의태자의 누이인 덕주공주가 세운 절로 알려진 덕주사에 딸린 암자이다. 마애불 왼편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약수터의 물을 두어 주걱 마시니 아우성치던 갈증이 잠잠해진다.

마애암 대웅전과 마애불
대불정주범자비
산행 중에 만난 들꽃(좌)/산행 루트(우)

마애불 앞에 서서 한 번 합장하고 고개를 쳐들어 마애불을 올려다보았다. 지그시 감은 눈, 긴 콧등, 두툼한 입술, 전륜법인의 수인을 한 채 가슴 높이로 든 두 손,... 거대한 화강암벽에 조각된 이 마애여래입상은 전체 높이 13미터로, 얼굴은 양각, 신체는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고려 초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이 마애불은 어떤 꿈을 꾸며 천 년 세월을 버텨왔을까. 덕주암 대웅전 뜨락에 걸터앉아 상념에 잠기니, 새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장성한 은행나무와 바위를 끌어안고 긴 세월을 견뎠을 느티나무 배웅을 받으며, 마애암에서 덕주사로 인도하는 반듯하고 너른 돌길을 따라 덕주사로 발길을 옮겼다. 그 중간에는 덕주골과 송계계곡을 4겹의 성벽으로 둘러싼 15km에 달하는 덕주산성 성곽이 눈에 띄기도 했다.


덕주사 경내에 들어서자, 스피커를 통해 불경이 은은하게 흐른다. 웅장산을 배경으로 계곡을 낀 이 사찰은 여느 절집처럼 넉넉하고 완만한 지세를 지니고 있다. 용머리 모양의 약수터 수구에서 나오는 물로 갈증을 한 번 더 달랬다.


대웅전 좌측에는 1988년 송계계곡 정비 중 발견된 ‘대불정주범자비(大佛頂呪梵字碑)’ 비각이 있다. 고통받는 중생을 제도한다는 내용의 능엄경이 산스크리트어로 새겨져 있다. 그 옆에는 덕주사에 전해 내려오는 세 개의 남근석이 나란히 서 있다.

전설에 따르면, 수산리에서 바라본 영봉이 누워 있는 여인의 얼굴을 닮아 음기가 강하다고 하여 남근석을 세워 음양의 조화를 이루었다 한다.

누가 지은 내용인지 모를 설명문은 삶과 구원의 궁극적 궁금증에 대한 답을 들려주려 한다.


“우리 조상들은 유한과 무한, 음과 양, 빛과 어둠으로 나뉜 우주의 질서 속에서 영원불변의 진리를 체득했고, 어떤 매개체를 통해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구원을 추구했다. 장승이나 남근석은 생과 삶, 윤회의 진리를 체득한 조상의 지혜가 응축된 상징이다.”


차에 올라 보덕암으로 가서 H의 차량을 회수하여, 광천 위 수산교를 건너 '옛날할머니손두부' 식당으로 가서, 옥수수막걸리를 반주 삼아 두부김치와 메밀빈대떡을 들며 산행을 갈무리한다. 식당 주인 할머니의 거친 반말조차 정겹게 들린다. 아름다운 산과 강, 호수를 눈과 마음에 담고 온 탓일까, 혹은 그런 산수 속에 사는 이가 반 신선처럼 느껴지기 때문일까.

십일 년 전 늦가을 월악산 만수봉에 올랐을 때, 만수계곡 초입에서 만났던 충주의 모 여고 학생이 쓴 시 <월악산의 달>이 문득 떠오른다.


<월악산의 달>


차근차근 한 걸음씩 가라는 듯

울퉁불퉁 바위들이 길을 가로막고


멀리멀리 내다보며 가라는 듯

나무들이 하늘을 받쳐주고


떠나가는 사람들이 아쉬운 듯

바람소리 울음처럼 울려 퍼지고


그래서 오늘 밤도 월악산 영봉에는

달이 쉬엄쉬엄 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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