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라이딩의 추억, 그리고 강

힐링, 웰빙, 그리고..

by 꿈꾸는 시시포스

사월 첫날, 화단의 목련이 만우절 거짓말처럼 어느 한순간에 화사하게 꽃을 피웠다. 라이딩을 하러 집을 나서 탄천공원으로 내려섰다. 탄천운동장 부근에서 탄천을 상류로 거슬러 성복천 합수 지점까지 달려볼 요량이다. 바야흐로 봄의 길목이라 탄천 제방에는 개나리가 노란 꽃을 만개했다.

지난주 성남 런페스티벌 10km 달리기 준비와 완주 후유증으로 무릎 통증이 찾아왔었다. 친구의 권유도 있고 해서, 러닝에 비해 무리가 덜한 라이딩을 시작하기로 했다. 먼저 포항으로 발령받아 관사와 사무실을 오갈 용도로 구입해서 세워만 놓았던 로드자전거를 처분하고 새로 MTB 한 대를 중고매장에서 구입했다. 헬멧, 라이딩 져지와 팬츠, 고글, 안장, 라이트 등 장구와 부속물도 요 며칠 사이에 하나씩 주문했다.

나의 자전거 이력은 초등학교 때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체격에 맞지 않는 덩치 큰 구형 자전거를 황소 고삐 끌듯 대문 밖으로 끌고 나와, 집 앞 경사로를 동력원 삼아 자빠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스스로 자전거를 배웠다.

중학교 때엔 자전거가 신문 배급소를 하시던 선친을 돕는데 요긴한 존재였다. 자갈 깔린 신작로를 따라 장터 정류소로 가서, 읍내에서 버스에 실려 온 일간지를 받아서 장터 주변 구독자에게는 직접 돌리고, 원거리 구독자에게는 우체국에서 노란 봉투를 반으로 잘라 그 위에 주소를 적고 우표를 붙인 띠지에 신문을 접어 넣어 분류함에 꽂았었다.


고등학교 때에는 자취집에서 약 5km 거리에 있는 학교까지 매일 자전거로 등하교를 했다. 감천교(甘川橋)를 건너 자산로를 거쳐, 김천로의 가파른 비탈길을 치고 올라 기차역 앞을 지나고, 송설로(松雪路)로 들어서서 학교 교문으로 들어서면, 벚꽃 터널이 맞아주던 등굣길이었다. 처음으로 접한 기어가 달린 그 중고 자전거는 늦은 밤 도서관과 자취집을 함께 오간 친구였다.

중국 베이징에 거주하던 이십 년 전 봄, '헤이리마(黑立馬)'라는 자전거를 채 2만 원도 안 되는 153위안에 구입했었다. 불혹의 나이에 만난 그 자전거는 수시로 타이어 펑크, 체인 끊김, 페달 고장 등 문제를 일으켰지만, 베이징에 머무르는 근 2년 동안 출퇴근길과 후퉁(胡同) 골목 구석구석을 비롯해서, 베이징 곳곳을 헤집듯 함께 달렸던 친구로, 내겐 관우의 적토마 같은 존재였다.

그 후로 자전거는 대게 아이들과의 추억으로 기억되는데, 그 무대는 주로 이곳 탄천이었다. 수색과 노량진 달동네를 거쳐, 결혼 후 일산에서 5년 남짓 거주하다가, 2000년에 정착한 이곳은 탄천 자전거길이 있어 자전거 타기에 적격인 동네이다.

구입한 지 하루 만에 도둑맞은 자전거의 쓰라림으로 자전거 타기를 그만둔 것이 십여 년쯤 전의 일이다. 2021년 상하이 주재관으로 가면서 자전거는 나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평탄한 시내, 잘 갖춰진 자전거 전용로, 거리 곳곳에 배치된 공용자전거, QR코드 휴대폰 결재 시스템을 활용한 손쉽고 기본료 1.5 위안(약 300원)의 저렴한 이용료 등 상하이를 비롯한 중국 대부분의 도시들은 자전거 이용자들의 천국처럼 느껴졌다. 베이징과 상하이 시절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면 '자전거'라는 단어가 수시로 등장한다.

상하이 거리 라이더
베이징 옛 골목(후퉁; 胡同) 라이딩 '04-04

어제 새로 구입한 자전거로 집에서 탄천을 따라 한강 잠실한강공원 부근까지 왕복하는 약 40km의 첫 라이딩을 했었다. 걱정과는 달리, 걸을 때 느껴지던 통증은 없었고, 오늘 아침에도 다리에 별다른 통증이 없어 조금 의아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어온 오랜 자전거 이력을 다리의 근육이 익숙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오늘도 배송되어 온 헬멧을 쓰고 탄천으로 페달을 지쳐 나온 것이다.

평일임에도 걷거나 뛰거나 라이딩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띈다. 곳곳에 설치된 운동시설에서도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 운동에 열심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노령층이 즐겨하는 스포츠인 파크골프 구장이 군데군데 새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이 19.4%이다. 향후 고령화 추세가 가속화되어 2050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40.1%에 육박할 것이라고 한다. 현하 대한민국이 급속도로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에 반해 출산율 저하와 고령 인구를 부양할 생산연령 인구 비율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수명 연장으로 소위 '백세시대'가 현실이 될 날도 머지않았지만,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이유이다.


탄천 위에 걸린 야탑교 하탑교 양현교 서현교 수내교 백현교 궁내교 정자교 금곡교 불정교 돌마교 미금교 구미교 등 교량은 하나같이 인도교를 신설하거나 보강하는 공사로 장비와 인부들이 분주하다. 이들 교량 대부분은 분당 신도시 조성과 함께 1993년경 건설되었다.

작년 이맘때쯤인 4월 5일 오전 9시 40분경, 정자교 다리의 인도교가 붕괴되어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을 당하는 사고가 발생했었다. 이 사고를 기화로 탄천 교량 정비 보강사업이 대대적으로 추진되어, 예산 반영 등 여러 절차를 거쳐 지금에야 진행되고 있는 것일 터이다.

지난달 29일에는 창원 NC파크 야구장을 찾았던 20대 여성이 야구장에서 떨어진 구조물에 머리를 다쳐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 사고와 삼풍백화점 붕괴, 1997년 대한항공 801편 추락, 1999년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사고 등으로 문민정부는 '사고 공화국'이라는 오명이 붙었었다. 지금도 그 오명을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탄천 둔치에는 나물을 캐는 아낙들도 보이고, 야외 수업을 나온 인근 학생들의 모습도 여기저기 눈에 띈다. 종전 홍수 조절 등 이수(利水)와 치수(治水) 위주의 하천정비 정책은 80년대 말 하천환경 개념이 도입되면서, 수생태계 건강성과 보전으로 그 패러다임이 전환되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전국 50개소 국가하천 생태하천 조성사업과 2007년에 총 1,400억 원 예산의 '생태하천 만들기 10년 계획(2006~2015)' 수립 등 구체적인 정책이 실행되었다.

일찍이 조지프 스티글리츠 美 컬럼비아대 석좌교수는 사회발전 측정의 지표인 GDP에 대한 사망 선고를 내리고, 그 대안으로 이른바 '행복(well-being) GDP'를 내놓은 바 있다.

_2009.10월 부산 벡스코 제3차 0ECD 세계포럼 기조연설


탄천을 비롯해서 서울의 청계천 양재천 안양의 안양천, 부산의 온천천, 제주의 산지천 등 전국의 수많은 하천이 친환경 생태하천으로 주민들 품으로 돌아왔다.

웰빙시대의 요구에 따라, 오수 배출구로 방치되었던 하천이 생태하천으로 새롭게 변모하여 주민들의 생활 속으로 다가오게 된 것이다. 정치권을 비롯하여 온 국민들을 찬반 논란과 대립 속으로 몰아넣은 '4대 강 정비 사업'이 2009년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는데, 그 실효성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다만, 4대 강 정비 사업과 함께 추진되어 건설된 4대 강과 전국 주요 하천을 잇는 자전거도로는 라이더들뿐 아니라 주민들의 힐링이자 웰빙의 공간으로 각광받고 있으니 천만다행이다.

2009년 인재개발원 교육과 중에 「친환경 생태복원을 통한 삶의 질 향상방안_Mini 강(江) 복원사례를 중심으로」 제하의 분임 연구과제를 수행했었다. 보고서 작성을 끝낸 후, 분임원들은 '물과 강에 대한 생각'을 아래와 같이 다양하게 한 줄로 표현했었다.


"강은 추억을 배달하는 우체부다."

"물(水)은 물이요 강(江)은 강이다."

"강에는 뱃사공, 내 마음엔 콧노래"

"강이 마르지 않는 한 인류역사는 흐른다."

"물 보기를 돌같이 말라! 물은 황금이다."

"물은 생명이요 강은 생명의 젖줄이다."

"강(江)은 역사다. 한 순간에 역류시킬 수 없다."

"물은 사랑이요 강(江)은 기쁨이다."

"강 하나에 추억과 동경과 어머니 어머니"

"강은 생명의 원천이요 보이지 않는 행복이다."

"아름다운 강, 행복한 우리의 미래 우리의 삶!"

"강은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이다."

"강은 우리 미래이자 우리 삶이다."

"어제는 물, 오늘은 강, 내일은 바다."

"후손에게 빌려 쓰는 강, 정성껏 복원하여 돌려주자!"


무지개 보도교 부근에서 탄천으로 흘러드는 동막천으로 길을 잘못 들어섰다. 그런들 어떠리!

광교산과 바라산 계곡에서 발원하여 낙생저수지를 거쳐 탄천으로 흘러드는 동막천의 자전거길은 저수지에 한참 못 미쳐서 끊긴다. 페달을 지쳐 출발지 원점으로 돌아오는 탄천 자전거길과 그 주변에는 걷거나 뛰거나 라이딩하거나 벤치에 앉아 담소하는 남. 녀. 노. 소 사람들이 더 늘어났다.

소확행 힐링 웰빙을 추구하는 현시대의 한 장면을 고스란히 담고있는 모습이다. 한편,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일본에서 일고 있는 '웰다잉(well-dying)'의 바람이 우리를 피해 갔으면 하지만, 부질없는 바람으로 보인다. 자못 지친 페달을 밟아 봄의 왈츠를 연주하듯 경쾌하게 흐르는 탄천 물줄기를 따라 자전거 바퀴를 굴린다. 소월(素月, 1902-1933)의 「엄마야 누나야」를 조용히 흥얼거리면서.


엄마야 누나야 강변(江邊)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金)모래빛

뒷문(門)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江邊) 살자.

25-04-01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탄천에서 동방삭과 조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