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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의 물소리 봄 오는 소리

흑천과 남한강변 벚꽃길

by 꿈꾸는 시시포스


차를 몰아 양평으로 향했다. M의 제의로 본격적인 개화기에 접어든 벚꽃 감상을 겸한 하이킹을 하기 위해 양평 물소리길 3,4코스 주변을 함께 걷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하남 인터체인지로 내려서서 한강 위에 걸린 팔당대교를 건너자니, 초등학교 소풍이나 운동회를 앞둔 아이처럼 설렘으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팔당대교 북단을 예봉산 줄기가 턱 하니 막아서 있다. 산정에서 갈라져 나온 한 줄기 그 능선은 몸을 일으켜 막 하늘로 비상하려는 용의 등처럼 가파르다. 어느 때인가 저 산줄기를 따라 예봉산 정상으로 올랐던 기억이 있다.


라이더 서너 명이 한강 곁에 바짝 붙어 뻗은 다산로 옆 자전거길로 막 접어들고 있다. 눈 코 가슴 온몸으로 한강과 봄바람을 호흡하며 페달을 밟는 기분은 라이딩을 해본 사람들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신양수대교를 건너며 바라본 팔당호는 유리 거울처럼 매끈한 수면에 산 그림자를 품었고, 상류 쪽 수면은 살아서 팔딱대는 은갈치의 비늘처럼 아침 햇살에 반짝거린다.


지금 이 시각 세계 도처에서는 분쟁과 전쟁, 기아와 재난이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 와중에 미국의 트럼프(Donald Trump)는 괴이한 억측을 내세워 세계 각국에 대하여 고율의 관세 전쟁을 선포하여, 세계경제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트럼프의 저돌적 외교는 소설 속의 '돈키호테'를 연상케 한다. 깊이를 알 수 없는 한강은 지난 금요일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판결 등 국내외의 요동치는 세상사에는 아랑곳없이 흐르는 듯 멈추어선 듯 티를 내지 않고 평온하기만 하다.

경의중앙선 원덕역과 아신역 부근

경의중앙선 아신역에 차를 세우고 시간에 맞게 도착한 전철에 올라 두 정거장 떨어진 원덕역으로 향했다. 객실마다 서너 명 정도의 승객을 태운 전철은 가뿐하게 몸을 움직여 다음 역인 오빈역 방향으로 출발했다. 원덕역 역사 밖 벽돌을 빈틈없이 촘촘히 깐 아담한 광장으로 나서니, 앞쪽 제방길 너머 언덕처럼 야트막한 산 위에 옹기종기 자리 잡은 전원주택들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낯익은 추읍산이 눈에 들어온다.


얼마 후 도착한 M과 반갑게 악수하고 함께 흑천 위에 걸린 원덕교를 건너 흑천을 따라 남한강 쪽으로 길을 잡았다. 강 가장자리 하상의 버들나무들이 파릇한 작은 잎새를 틔웠다. 강둑을 따라 개나리가 만개했지만 벚꽃은 꽃망울을 맺은 채 듬성듬성 피어 있어 기대에 못 미쳤다. 반쯤 바닥을 드러낸 흑천 얕은 개울에는 백로들이 고고하게 서서 자리를 지키고 있고, 오리들은 둥둥 떠서 가끔씩 물질을 한다. 둑 어디선가 장끼가 꺼억꺽 하며 때마침 지나는 기차 소리에 장단을 맞춘다.


흑천 주변에는 나무를 심고, 길을 다듬고, 다리를 보수하는 등 인부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제방 너머 좌측의 비닐하우스 동에서는 거름 냄새가 온몸에 들러붙을 듯 콧속으로 음습해 온다. 봄밭갈이를 시작한다는 청명(淸明) 절기가 지났고 본격적인 농사철에 접어드는 곡우(穀雨)가 목전에 있으니, 누군들 몸과 마음이 들썩이게 되지 않을까! '소노* 호텔' 펜스 너머 정원의 여러 조각품들은 야외 전시장처럼 하이커들의 눈길을 끌며 볼거리를 제공한다.

양평 흑천 주변

흑천교 아래를 지난다. 건너편 제방의 벚나무 가로수는 꽃을 활짝 피웠고 천변에는 담벼락 아래서 봄볕을 즐기는 촌로들처럼 백로들이 한가로이 줄지어 서있다. 매끄럽게 포장이 잘된 벚나무 가로수길 보도로 라이더들이 가끔 스쳐 지나간다.


흑천이 남한강으로 흘러들기 직전에 긴 현덕교가 놓여 있다. 하상 가장자리에서 연초록 잎을 틔운 버들 군락, 지나온 물소리길 좌우로 벚꽃, 페달을 밟는 라이더들, 봄나들이 나온 처녀들의 재잘거림, 발걸음을 맞추며 다정히 걷는 노 부부, 하얗게 부서지는 맑고 투명한 여울의 물소리,... 다리는 난간 좌우 흑천 상하류의 하늘과 땅, 수면 위아래, 천지 간에 봄의 온갖 향연을 펼쳐 놓았다.


양평읍과 개군면의 경계를 가르며 흐르는 흑천의 현덕교를 건너면 개군면에서 양평읍으로 들어선 것이다. 흑천을 대신하여 남한강이 좌측으로 따라붙으며 길동무를 해준다. 흑천에 비하면 남한강의 더없이 넓고 깊다. 남한강 건너 얕은 산록에 옹기종기 자리한 강상면 '에*스빌리지'가 조망되는 벤치에 앉아서, M이 건네주는 두유와 넛츠로 목을 축이고 심심해하는 입을 달랬다.

남한강 자전거길

마주 오던 아주머니 두 분의 부탁으로 셔트를 몇 번 눌러 주니, 앞쪽 갈산공원의 벚꽃이 환상적이라는 말로 화답해 준다. 남한강 북변을 따라 갈산공원으로 걷는 길은 더없이 호젓하다. 벚꽃맞이 나온 상춘객과 라이더들이 점점 더 많이 보이고, 길 양쪽에 늘어선 벚나무들은 대부분 꽃을 활짝 터뜨려 갈산공원이 가까워질수록 점입가경을 펼쳐 보인다. 공간을 가득 채운 봄기운에 숨이 트이는 한편, 만물이 죽이고 있던 숨을 트며 정점을 향해 치달리는 봄의 정취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갈산공원 주변 읍내의 물소리길 벚나무는 모두 꽃을 활짝 만개했다.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화장을 하는 여인처럼 멀찍한 외곽과는 달리 이 부근은 자신들을 찾아 멀리에서까지 달려온 사람들이 많아서일까?


한강변과 나란히 칼처럼 좁고 길게 뻗은 야트막한 산을 따라 갈산공원이 아담하게 자리한다. 공원은 6.25 참전기념비와 월남전 참전기념비, 그 옆으로 정자 두 개, 어린이 놀이터, 호국무공수훈자공적비, 갈산공원 등대 등이 차례로 자리하고 있다. 갈산 위에는 충혼탑이 있음을 지도 앱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갈산공원 가장자리로 빠져나와서 양평교 북단을 지난다. 양평군을 관통하는 30km여 남한강에는 양평교와 양근대교, 그리고 중부내륙고속도로의 양평대교 등 교량이 세 개뿐이다. 교량 등 도로망 확충과 각종 개발행위에 대한 제약은 수도권 주민의 상수원 지역으로서 양평 주민들이 감내해야만 하는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일까! 그럼에도 양평군 내 곳곳 높고 얕은 산록마다 전원주택풍 마을들이 들어서고 있는 모습에 고개가 갸웃해진다.


수도권이나 의 교량갈산에 가로막혀 보이지 않던 원뿔형 뾰족한 봉우리를 가진 백운봉과 그 뒤 용문산 산군이 양평 읍내 너머로 위엄스레 버티고 서있는 모습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양평읍내를 가로질러 한강으로 흘러드는 양근천을 건넜다. 양근대교 북변 양근로 건너편에 양평도서관 군립미술관 양평군보건소 양평체육관 등이 어울려 번듯하게 자리 잡고 있다.

물소리길 남한강 양평읍 부근

지친 발과 허기진 배가 어디든 들어가자고 채근하기 시작했다. 봄의 정취에 빠져 네 시간여 약 12km를 걸었으니,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속담을 굳이 들먹일 필요도 없어 보였다. 마땅한 식당이 보이지 않아서, 하중도(河中島)인 양강섬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스*더양평'으로 들어섰다. 남한강 쪽으로 난 통유리창 옆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들며, 배낭 속에 챙겨 온 떡과 과일로 허기를 달랬다.


다시 길을 잡아 지척에 있는 물안개공원의 고산정(孤山亭)으로 올라갔다. 낮은 담장에 둘러싸인 팔작지붕 2층 누각인 고산정은 6번 국도인 양근로와 남한강 사이에 끼인 듯 오붓하게 솟아 있는 산 위에 자리하는데, 갈산공원에 비해 찾는 이가 없는 듯 '고산(孤山)'이라는 그 이름처럼 적막해 보이고 이층 누각으로 오르는 계단은 막아 놓았다.


양근로는 원래 조선의 3대로 가운데 하나인 관동대로로, 팔당댐 건설로 수몰되기 전에는 고산 고개 마루에 바라보는 남한강의 풍모가 예사롭지 않았다고 한다.


고산정 바로 아래 자리한 가수 김종환의 시비를 둘러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그의 노래 <사랑을 위하여>는 IMF 시기 5년 동안 서울에서 양평을 지나 아내와 가족이 있는 홍천을 오가던 때, 어느 날 새벽 양평 강가에 가득 피어 오른 물안개를 보고 영감을 얻어 만든 노래라고 한다.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너를 바라볼 수 있다면

물안개 피는 강가에 서서

작은 미소로 너를 부르리

하루를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그 길을 택하고 싶다

세상이 우리를 힘들게 하여도

우리 둘은 변하지 않아

너를 사랑하기에 저 하늘 끝에

마지막 남은 진실 하나로

오래 두어도 진정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남게 해 주오

_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 中

양근성당(좌)/ 6.25 및 베트남전 참전 기념비(중)
고산정(좌)/하이킹 루트(우)

남한강 쪽 생활문화센터로 내려가는 나무데크 계단길 주변에서 샛노란 개나리가 봄의 정취를 더해준다. 고산 바로 앞 남한강에 무리 지어 핀 연분홍빛 진달래로 덮인 작은 섬 떠드렁산이 일엽편주처럼 떠있다. 섬을 마주 보는 길 옆에 서있는 안내판이 무엇이건 부모가 시키는 반대로 했다는 '청개구리 설화'가 이 섬에서 유래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 더하여 안내문은 부친의 무덤을 떠드렁산에 쓴 '이괄의 난'의 주모자 이괄(1587-1624)의 전설을 함께 전하고 있다.


갈산공원에서 이곳 물안개공원 사이의 양평읍 중심지는 고구려 시대에 명칭이 유래한 양근리(楊根里)가 차지하고 있는데, 양평(楊平)이란 지명은 1908년 9월 양근군(楊根郡)과 지평군(砥平)이 합쳐지면서 생겨났다. 물안개공원 옆 오빈교차로에서 가까운 남한강변에 떠드렁섬을 마주하며 양근성당이 자리한다. 양근은 신유박해 이전 천주교 도입기에 천진암 강학회를 주도한 녹암 권철신(權哲身, 1736-1801)과 한국 천주교 창립 주역인 권일신 형제 태어난 곳이자 순교한 곳이다.


양근은 1795년 주문모(1752-1801) 신부의 조선 입국에 중요한 역할을 한 윤유일의 고향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신자인 이승훈이 천주교를 전파한 곳이며, 천주교 박해 당시 양근 지역 신자들이 순교한 곳이기도 하다. 봄맞이 나들이를 와서 새삼 양평이 한국 천주교회 공동체 설립의 요람이요 전교의 중심지이자 순교지임을 알게 될 줄이야. 때마침 임시로 성당 출입을 금하고 있어 대문 밖 멀찍이서 붉은 벽 이층 성당 건물을 눈에 담고 발길을 옮긴다.

성당을 뒤로하고 덕평천을 건너 오빈역(娛賓驛) 즈음 남한강변을 지날 때, '의로운 개 전설'을 알리는 안내판이 보였다. 그 안내판은 강물로 달려가서 몸에 물을 묻히고 와서 산불로부터 노파를 구하고 기진맥진해서 쓰러져 죽었다는 의로운 개(義犬; 의견)에 대한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소개하고 있다.


양근성당에서 1.5km여 거리 남한강변에 접한 야트막한 언덕에 또 다른 안내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안내문은 언덕 아래쪽에 감호암(鑑湖岩)과 감호정(鑑湖亭)이 있었는데, 감호정은 권일신이 당대의 지성인들과 학문을 교류하던 곳이라 한다.

'거울 같은 맑은 호수'라는 뜻의 감호(鑑湖)는 저장성 샤오싱(紹興; 소흥)에 있는 호수인데, 은둔하던 선비들이 자주 모이던 곳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이 명칭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문득 4년 전 봄이 완연한 오월 어느 날 샤오싱의 젠후(鑑湖; 감호)를 찾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샤오싱의 황주 상점과 젠후(鑑湖; 감호)

강변길은 양근로에서 경강로로 이름이 바뀐 6번 국도 위로 놓인 육교를 넘어, 옛 철길에서 자전거길로 바뀐 남산자락으로 난 길을 따라 아신역으로 인도한다. 발바닥은 쑤시고 저려 오지만, 농익은 샤오싱주(紹興酒)의 진한 향처럼 뿌듯한 성취감이 온몸으로 밀려든다. 집에 돌아가면 수납장에 남겨둔 샤오싱주 한 병을 꺼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25-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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