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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봉 산행과 순례길

광주 초월읍 국수봉

by 꿈꾸는 시시포스


초월읍 선동리 국수봉을 탐방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여섯 개의 '국수봉(國守峯)' 가운데 도척면 진우리, 광주시 쌍령동, 초월읍 지월리, 광주시 중대동에 각각 자리한 국수봉은 이전에 모두 찾아보았었다. 나머지 두 개의 국수봉, 즉 초월읍 선동리의 국수봉과 곤지암읍 오향리의 국수봉 가운데 선동리의 국수봉과 그 주변을 둘러보기로 한 것이다.


광주시 일대는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대와 전투를 치른 격전장이었다. 그 전투가 임진왜란 때의 칠천량전투와 용인전투, 6.25 때의 현리전투와 함께 우리 역사상 4대 패전으로 알려져 있는 쌍령전투이다.

경상좌병사 허완(許完)과 경상우병사 민영(閔栐)은 남한산성에 고립된 인조를 구하고자, 약 8천 명의 근왕병을 이끌고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이들은 1637년 1월 28일 쌍령 일대에서 3천여 청군과 맞부딪쳐 싸웠으나 아군이 전멸하다시피 크게 패하고 말았다.


쌍령전투의 패배로 인해 인조는 남한산성 성문을 열고 나와 삼전도에서 적장 홍타이지에게 삼궤구고두(三跪九叩頭)의 예로써 항복을 고하는 굴욕을 겪게 된다. 국수봉(國: 나라 국, : 지킬 수, : 봉우리 봉)이라는 이름에는 병자호란의 막바지 남한산성에 고립된 인조를 구출하고 나라를 보존하고자 했던 간절한 염원과 전투에서 패한 원통함이 담겨 있다.

초월역과 곤지암천

판교역에서 여주역까지 연결된 경강선 전철은 수도권 타 노선에 비해 운행간격이 약 25분으로 두 배 정도 길다. 화장실 다녀온 사이에 이십여 분이나 기다리던 전철이 지나갔는지, 어떤 승객 한 분이 플랫폼에서 애꿎은 역무원을 붙들고 전철이 제때 운행되지 않는다며 항의를 하는 웃픈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경강선 이매역에서 전철을 탑승해서 세 정거장 떨어진 초월역에서 내렸다.


학동천을 끼고 국수봉과 떨어져 나란히 함께 봉긋 솟아 있는 고목덤불산 마준짝산 비향산을 먼저 둘러보기로 했다. 역사 맞은편 산자락에는 전철이라는 교통수단을 낀 역세권 고층 아파트 군락이 하늘을 찌를 듯 자리하고 있다.


역사 옆 아카시아와 함께 숲을 이룬 붉은병꽃나무 아래 벤치 그늘에 앉아 썬크림을 바르고 나서 탐방의 발길을 옮긴다. 초월성신교회 옆 소로를 통해 곤지암천 천변도로를 거쳐 용수교를 건넜다. 지난주 라이딩을 했던 곤지암천이 녹음이 무성한 너른 제방에 발랄한 들꽃을 관객으로 앉혀놓고 경쾌하게 흐르며 합창을 들려주고 있다.


장담길을 따라 벌목으로 까까머리처럼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고목덤불산의 들머리를 찾았다. 낯선 방문자에게 겁도 없이 다가오는 고양이를 뒤로한 채 용수리 롯데빌리지에서 산자락으로 치고 올랐다. 중부고속도로와 3번 국도에서 질주하는 차량 소음이 온 산을 집어삼켰다. 다람쥐 등 야생동물들은 모두 떠나버린 듯, 산자락에는 낙엽과 함께 지난가을에 떨어진 밤톨이 밤알을 머금은 채 수북이 흩어져 있다. 낮은 언덕이나 진배없는 고목덤불산에는 고목이나 덤불은 보이질 않고 밤나무만 무성하다.

용수3리 골목길과 담장 너머로 고개를 내민 불두화

고목덤불산과 마준짝산 산정 옆으로 3번 국도 성남이천로가 관통해서 지나고 있다. 국도가 끊어 놓은 고목덤불산 능선에서 내려서니 두들로 전원주택의 불두화가 탐스러운 꽃송이들을 담장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나그네에게 인사를 건넨다.


자연에 묻혀 살기를 바라는 도시 피난민들의 주거지인 전원주택들이 요새처럼 마준짝산 가장자리를 가로막고 있다. 마구 짖어대는 개소리에 쫓기며 진입로를 이리저리 탐색해 보았다. 전원주택 단지 골목 깊숙한 뒤쪽 텃밭을 가로질러 앞을 가로막는 넝쿨 숲을 헤쳐 마준짝산의 가장자리로 다가갔다.


낮은 산이 내놓는 절벽처럼 가파른 사면을 우회하려고 우측으로 방향을 잡았다. 낙엽 위에 가죽과 형체만 남은 고라니 사체가 머리를 산정 쪽으로 향한 채 누워 있어 잠시 가슴이 섬뜩했다. 가엽은 저 생명은 어떤 연유로 도로와 전원주택 단지에 가로막혀 사방이 고립된 이 산에서 최후를 맞이해야 했을까. 지난겨울 폭설에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한 걸까? 먹이를 찾아 마을로 내려왔다가 험상궂은 개소리에 놀라서 삶을 포기했을까?


족히 45도쯤 되는 경사와 사투?를 벌이며 20여 분만에 산정으로 치고 올랐다. 지도 앱이 정상 고도가 고작 84미터라고 알리고 있다. 활엽수의 녹음이 하늘을 가리고 갈색 낙엽이 뒤덮인 산정 부근에는 까마귀 떼가 까악 대는 소리만 차량 소음과 함께 어지럽게 귓전을 때린다. 아무런 표지도 없는 지도 앱이 가리키는 산정 지점에 발을 한 번 꾹 눌러 밟고 국수봉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두들교 부근(좌)/마준짝산 능선에서 바라본 선동리(우)

곤지암천 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가파른 사면을 끼고 능선을 따라 걷는 기분이 더없이 상쾌하다. 능선 우측 아래로 국수봉과 학동천 사이에 자리한 선동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바람에 실려 간간이 들려오는 험악한 개 짖는 소리는 하나같이 무슨무슨 '테리어'로 끝나는 맹견들을 떠올리게 한다. 전원에 묻혀 살면서도 집 주위에 울타리를 두르고 철조망을 치고 호위무사로 맹견을 두는 사람들의 속성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자연을 무서워하는 걸까, 낯선 사람들이 접근할까 두려운 것일까.


철제 울타리로 둘러쳐진 사유지를 우회하여 곤지암천 지류인 학동천으로 내려서서 물 위로 삐져나온 돌을 징검다리 삼아 가까스로 반대편 도로로 올라섰다.


무들로 2차선 도로와 맞닿은 국수봉 가장자리는 옹벽 위에 철책까지 둘러쳐져 있어 들머리를 찾을 길이 막막하다. 텃밭에서 김을 매는 주민에게 물어봐도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다. 지도 앱을 들여다보며 들머리가 어딜지 가늠해 보았다. 학동천 위에 놓인 무들교 부근에서 먹거리가 가득 든 큰 비닐봉지를 양손에 하나씩 든 키 큰 동남아인 하나가 스쳐 지나고, 자유롭게 배회하는 떠돌이 개 두 마리도 보인다. 그 개들은 짖지도 않고 모습도 유순한 것이 자유로이 떠도는 집시처럼 보였다.

탐방길에서 만난 꽃, 견공, 묘공

국수봉 남단 가장자리 전원주택 뒤로 난 들머리에서 노란 애기똥풀이 반긴다.

곧게 뻗은 아름드리 노송 숲이 오른편으로 돌계단이 놓인 등로를 내놓는다. 지은 지 15년 되었다는 전원주택의 할머니는 바로 집 뒤에 등로까지 있는 이 산을 한 번도 올라보지 않았다니 조금 의아하다.


평산 조 씨 묘역을 지나 300여 미터 남짓 거리의 국수봉 산정으로 치고 올랐다. 참나무와 밤나무가 어우러진 성긴 숲 능선에는 사람이 다닌 등로가 확연히 드러나 있고, 마준짝산에 비해서 쉬어갈 만한 곳도 많아 산의 기운이 넉넉하고 쾌활하다. 다만 지월리의 국수봉과 마찬가지로 이곳 선동리의 국수봉 일대도 돛단배처럼 외따로이 사방으로 고립된 지형이라 군사를 주둔시키기에는 적당해 보이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빌린 하페 케르켈링이 쓴 <산티아고 길에서 나를 만나다>를 읽고 있다. 산티아고 길은 약 800km에 달하는 그 길이만큼이나 장구하고 풍성한 역사와 전설을 간직하고 있고, 그 노정은 산맥과 벌판과 마을을 지나고, 순례자들의 온갖 사연과 깨달음이 점철되어 있다.


케르켈링은 그 길을 걷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를 알아가게 되고, 자기 내면의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모든 길은 나름의 용도와 의미를 갖고 있지만, 지방의 이름 없는 얕은 산의 등로에서는 사람을 만날 일이 거의 없고, 간간이 주민들과 몇 마디 말을 나누는 것이 고작이다. 그나마 나는 어디서든 흔하디 흔하게 볼 수 있을 법한 이 산에 '국수봉(國守峯) 탐방'이라는 테마를 부여하여 나름의 의미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싼티아고 순례길 Alto de Perdón (@photo by Catherine Driver)

해발 200미터 남짓 국수봉 정상에는 정상 표지석 대신에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세운 삼각점 푯말이 지키고 있다. 사방은 숲에 가려 조망이 없고 숲 사이 공간은 산 아래 도로의 차량 소음이 채우고 있다.


길게 이어진 평탄한 능선을 따라 납들기산에 닿았다. 오래되어 낡아빠진 여러 산악회의 리본을 가지에 달고 있는 노송 아래 넓적한 돌 위에 앉아 방울토마토와 참외로 허기를 달랬다. 자리를 잡고 앉은 김에 보온병의 커피도 한 모금 마셨다.


이곳 납들기산을 비롯해서 고목덤불산, 마준짝산 등 지나온 산들의 이름은 하나같이 생소하고 재미있다. 그 이름에는 모두 저마다의 유래가 있을 텐데 찾아내기가 쉽지 않아 아쉽다. 납들기산 북단은 무두리고개를 지나 가는골 배나무골 보리산수골 등을 품은 이름 없는 산군이 능선처럼 이어진다. 강 건너 도평리를 감싸듯 휘도는 곤지암천을 둘러선 그 능선은 어림잡아 3~4km는 됨직하다. 한 번 질러볼까 하는 마음을 다음 기회를 보자고 달래며 억눌렀다.


납들기산이 좌측으로 뻗은 동우리봉 쪽으로 하산 길을 잡는다. 동물이 다닌 길 외에 등로가 없는 동우리봉으로 내려가는 비탈길은 촘촘한 등고선이 말해주듯 가파르다. 비탈이 끝날 즈음 봉분도 없는 무덤? 앞에 아무런 글씨도 새기지 않은 허리 높이 비석 하나가 궁금증만 불러일으킨 채 말없이 서있다.


그냥 주저앉을 듯하던 산줄기는 뽕잎으로 잔뜩 배를 채우고 머리를 쳐든 채 미동도 않는 누에처럼 그 끝을 쳐들며 동우리봉을 솟구어 놓았다. 동우리봉은 깎여 나간 언저리 아래로 용수리의 조립식 건물군과 함께 좌측으로 산 줄기 사이로 햇빛에 반짝이는 곤지암천을 살짝 내보인다. 앞을 가로막는 넝쿨을 제치며 탈출로를 찾아 창고 공장 전원주택 등이 가로막고 있는 산자락 마을 가장자리로 다가갔다. 아니나 다를까 들려오는 견공의 짖는 소리를 멀찍이 피해서 용수리 마을로 내려섰다.

동우리봉 조망(좌)/곤지암천(중)/탐방경로(우)

용수 1리 마을회관 정류장에서 초월역이나 경기광주역으로 가는 버스는 한두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곤지암천을 따라 초월약까지 2km 남짓 거리를 곤지암천을 따라 걸어가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아카시아꽃이 만발한 천변로를 따라 전철역으로 향했다. 좌측으로 지나온 산줄기와 산으로 진입하며 지나쳐 간 전원주택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초월 아파트 숲 옆 빌딩 벽면에 '이제부터 진짜 대한민국'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21대 대통령 후보 기호 N번 사진이 눈에 띈다. 얼마나 부끄럽게 여기고 지워버리고 싶었으면, 지금까지의 대한민국을 가짜라고 치부했을까? 어제는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고, 미우나 고우나 버릴 수 없는 것이 각자의 인생이요 우리의 역사이다. 너는 그르고 나만 옳다는 배타적 사고로는 하나 된 우리, 우리의 밝은 미래를 기대하기는 어려운데 말이다. 다른 후보들의 슬로건은 뭐였더라?


잠시 부질없는 생각에 골몰하다 보니, 하천 건너에 초월역이 나타났다. 건널 길이 없어 지나온 징검다리로 한참을 되돌아갔다. 물줄기가 하얗게 부서지는 하천의 보 위에서 백로들이 아무것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듯 미동도 않고 서있다.

다리는 무겁지만 아카시아 가로수 아래 피어 있는 고운 찔레꽃을 한 번 더 볼 수 있어 좋았다. 생각해 보면 산티아고 길만 순례길인 것은 아니다. 어떤 길이든 자기 내면으로의 순례길이 아닌 길이 있겠는가! 25-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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