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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 길목의 라이딩

금토천-달래내고개-양재천-탄천

by 꿈꾸는 시시포스

투표를 마치고, 초여름의 따사로운 햇살과 가벼운 바람을 어깨에 얹고 페달을 밟아 집 앞 탄천으로 나섰다.

이매동에서 운중천으로 접어들자, 노란 꽃잎을 햇살에 반짝이며 천변에 늘어선 금계국이 황금물결처럼 흐드러졌다. 그 광경은 봄에서 여름으로 향하는 찬란한 이계절의 한 순간을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운중천에서 금토천으로 이어지는 자전거길로 들어섰다. 금토천 상류의 금토동은 지금 한창 보금자리주택지구 건설 공사가 진행 중으로 탄천변과는 사뭇 다른 풍경을 펼쳐 보인다. 마침 공휴일인 선거일을 맞아 인부와 건설장비들로 분주했을 공사장도 고요한 정적에 쌓여 있다.

천림산 봉수지 조형물/순직 장병 위령비/청계산 옛골마을
금토동 주택 건설현장/옛골 경부고속도로 굴다리

자취가 애매한 금토천 발원지 부근의 고가도로 아래를 지나 들어선 달래내길은 경사를 높이며 청계산 줄기를 넘는다. 안장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고 달래내고개 고갯마루에 올라섰다. 경부고속도로가 내려다보이는 고갯마루에 경부고속도로 건설 시 순직한 공병_故 한기영 병장_위령비가 눈에 들어왔다.

1960~70년대, 산업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꽃다운 젊은 그 병사 이름 앞에 잠시 고개를 숙이며, 우리가 편히 지나는 수많은 길 위에는 많은 이들의 땀, 눈물, 피가 서려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고개를 넘어서면 청계산 옛골과 원지동이다. 등산 차림의 산객들이 등산을 마치고 삼삼오오 내려오는 모습은 여유롭고, 점심시간쯤이라 그런지 원지동 느티나무 부근 식당가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여의천/매헌기념관/대한항공 희생자 위령탑/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위령탑/유격 백마부대 충혼탑/우면산 산사태 희생자 위령비

청계산과 인릉산 사이 신원동에서 발원한 여의천(如意川)으로 접어들자, 방천에서 형형색색 야생화가 살랑살랑 춤추며 인사를 건넨다. 개울처럼 그리 넓지 않은 여의천도 천변도로와 자전거길이 잘 정비되어 있다. 징검다리를 건너는 아이들,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연인들, 산책을 하는 사람들,... 임시 공휴일 한때를 보내는 시민들 모습이 느긋해 보인다.


매헌로를 사이에 두고 삼각형 모양으로 자리한 '양재 시민의 공원'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가족이나 연인 등 많은 시민들이 아름드리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운 공원에서 휴식을 하며 오후 한때를 보내고 있다. 나들이객이 지나는 산책로 옆에서 놀고 있는 청설모 가족 서너 마리에게 한참동 눈길을 빼앗겼다. 그 모습을 보는 것 자체로 힐링이 되는 느낌이다.


요즘엔 천변 도로나 공원 등에서 만나는 비둘기, 까치, 청설모 등은 사람이 지나가도 무서워하거나 도망치지 않는다. 동물들도 도심 속에서 사람과 공존하는 법을 배운 것일 게다.


매헌로 남쪽의 공원 숲 사이에는 유격 백마부대 충혼탑, 2011년 7월 우면산 산사태 희생자 위령비, 1987년 11월 미얀마 랑군 상공 대한항공 858편 공중 폭파 희생자 위령탑, 1995년 6월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위령탑 등 아픈 기억을 일깨우는 기념물들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생명의 활력이 넘치는 공원의 무성한 공원의 은 생의 환희와 비극, 삶과 죽음이 혼재하는 공간이다.

양재천과 탄천 자전거길

다시 양재천 하류로 페달을 밟았다.

천변을 따라 흐늘거리는 가지를 길게 드리운 수양버들의 자태가 창포 우려낸 물에 긴 머리카락을 감는 여인네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양재천(良才川)의 이름이 쓸 만한 인재들이 모여 사는 동네라는 양재동(良才洞)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천변에 늘어선 버드나무의 수려한 장관에 '양재천(楊在川)'이라고 불러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탄천과의 합수 지점에 이르러 성남 방면으로 라이딩을 이어갔다. 한층 더 넓어진 길 위로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와 바퀴는 더욱 경쾌하게 나아간다. 탄천 위를 지나는 교량들 아래 조성된 쉼터마다 페달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는 라이더들이 보인다.


아이와 함께 라이딩하러 나온 아빠들, 몸에 꼭 끼는 라이딩 복장으로 근육과 육체미를 자랑하는 남녀 라이더들, 이따금 씽씽 스쳐 지나가는 전기자전거 라이더들, 걷거나 러닝을 하는 남녀노소,... 저마다의 방식대로 걷고 뛰고 라이딩을 하는 사람들 옆에서 탄천은 한강을 향해 소리 없이 흐르고 있다. 자전거길을 따라 조성된 보리밭과 꽃밭을 스쳐 지나며, 부지런히 페달을 밟아 야탑동 동방삭교에 닿으며 원점 회귀 라이딩을 마친다.


6월의 시


/김남조


어쩌면 미소 짓는 물여울처럼

부는 바람일까

보리가 익어가는 보리밭 언저리에

고마운 햇빛은 기름인양 하고

깊은 화평의 숨 쉬면서

저만치 트인 청청한 하늘이

성그런 물줄기 되어

마음에 빗발쳐 온다

보리가 익어가는 보리밭 또 보리밭은

미움이 서로 없는 사랑의 고을이라

바람도 미소하며 부는 것일까

잔 물결 큰 물결의

출렁이는 비단인가도 싶고

은 물결 금 물결의

강물인가도 싶어

보리가 익어가는 푸른 밭 밭머리에서

유월과 바람과 풋보리의 시를 쓰자

맑고 푸르른 노래를 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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