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내 읽는 고전
자본의 가면을 벗기고 인간의 얼굴을 만나다.
1857년 겨울, 카를 마르크스는 런던의 어느 추운 방 안에서 『정치경제학 비판』의 기초를 다듬고 있었다. 생계는 늘 막막했고, 글은 매번 뜻대로 써지지 않았으며, 미래는 불투명했다. 그 와중에 나온 것이 『경제학 노트』이다. 그의 대표작인 『자본론』에 앞서, 사실상 마르크스의 사상 원초적 사유인 잉여 가치론을 담고 있는 이 노트는 그가 인간과 자본, 그리고 역사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책은 단지 경제 일반의 구조적 설명이나 이론 정리를 넘어,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물음과 마주한 기록이다. 마르크스는 단순히 ‘자본주의는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본주의라는 체계가 인간의 삶을 어떻게 조직하고, 분할하고, 소외시키는지를 냉철하게 추적했다.
그는 이 책에서 인간 삶의 기본 요소—생산, 분배, 교환, 소비—를 분석하여, “인간의 경제적 삶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고 무엇이 중심인가?” 묻고, 그 질문에 '생산'이라고 답한다. 생산이 인간의 관계를 규정하고, 나머지 영역은 생산의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 즉, ‘생산’은 인간이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 곧 존재 방식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가 집요하게 천착한 개념 중 하나는 ‘노동력’이다. 노동이 아니라 노동력—이 말의 차이는 치명적이다. 인간이 자신의 능력을 상품처럼 팔아야 하는 조건,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이자 폭력적 경제구조를 초래한다고 보았다. 노동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자본의 수익을 위한 수단으로 동원되는 현실은, 자신이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통제하고 지배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에 내놓고, 그 대가를 받는다. 마르크스는 이 과정을 통해 자본주의가 인간을 어떻게 ‘물화(物化)’하고 ‘소외’시키는 지를 보여준다.
그가 제시한 ‘자본의 일반공식(M–C–M; 화폐-상품-증가된 화폐)’은 오늘날의 금융 자본주의에 대한 가장 예리한 통찰 중 하나다. 돈은 단순히 상품을 사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더 많은 돈을 만들기 위한 수단–투자이다. 결국 이 순환은 생산이 목적이 아니라, 잉여가치 창출이 목적이 되는 세계를 구성한다. 마르크스는 이미 19세기 중반에 이 모든 흐름을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존엄이 자본에 의해 압도당하는 것을 아파했고, 그 어느 사회주의자보다 더 치열하게 ‘인간’이라는 단어를 지키려 한 사람이다. 『경제학 노트』의 문장들은 철학자처럼 묻고, 시인처럼 방황하며, 혁명가처럼 분노한다. 이 책은 경제학의 탈을 쓴 인간학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완숙되지 않은 날것처럼 문장은 때로 비약하고, 논리는 수정 중이며, 방향은 불확실하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이 책의 진정한 매력이다. 이 책을 읽은 독자는 문득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 번쯤 던져 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우리 삶을 어떻게 생산하고 있는가? 우리의 시간은 누구의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과연 우리 자신을 소유하고 있는가? 자본주의는 단지 경제 체제가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를 구성하는 관계망이다. 마르크스는 이 거대한 껍질을 벗겨 그 안에 숨어 있는 인간의 얼굴을 보여준다.
『경제학 노트』는 미완의 기록이지만, 그 미완 속에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가능성이 살아 있다. 그 가능성 속에서 오늘을 조금 더 진지하게 바라볼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