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내 읽는 고전
밀림에서 문명과 인간다움에 대해 묻다
열대의 강, 적도의 숲, 문명과 야만이 뒤엉킨 경계에서 한 사람의 인간이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이곳에 있는가?’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는 알베르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1875-1965)가 1913년부터 아프리카 가봉의 랑바레네의 병원에서 보낸 날들을 기록한 책이다.
그 기록은 단순한 의사의 일지나 선교사의 편지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이자, 문명 비판이요, ‘생명 경외’라는 사상을 행동으로 옮긴 한 지성의 윤리적 실천에 대한 기록이다.
한편, 생명의 원초적 에너지가 살아 있는 공간이자 인간의 무력함이 드러나는 밀림 속에서의 삶을 통해, 자연의 위대함과 위협을 동시에 경험하게 되고, 자연과 공존하는 삶의 방식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아내고 있다.
그는 유럽 최고의 명망을 지닌 신학자이자 철학자였고, 바흐 해석자로도 찬사를 받던 음악가이자 철학자였다. 그가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프리카로 떠났을 때, 사람들은 그를 찬양하기보다 의아해했다. 그 선택은 단순한 봉사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슈바이처가 품은 윤리의 근원에 대한 질문과 그 답에 대한 실천이었음을 이 책은 증명하고 있다.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는 병원 운영의 어려움, 현지인의 삶, 자연의 위력, 그리고 서구 문명에 대한 자조 섞인 반성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슈바이처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일방적인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는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감동하며, 그 안에서 진정한 인간관계를 일궈낸다. 그 모든 일화 속에서 그는 '생명에 대한 경외'라는 자신의 신념을 실행한다. 그것은 종교적 교리도, 정치적 이념도 아닌, 인간 존재에 대한 철저한 존중이다.
그는 병원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구하기 위해 오르간 연주회를 다니며 헌금받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병원 수술실이 사라지고, 의약품이 부족해지는 상황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묵묵히 손으로 환자의 상처를 치료하는 장면은 깊은 울림을 준다.
“진정한 문명은 기술이나 자본이 아니라, 고통받는 타인의 얼굴 앞에서 자신이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에 달려 있다.”
자연을 경외하면서도 인간의 책임을 외면하지 않고, 서구 문명의 오만함을 비판하면서도 서구 지식인의 역할을 저버리지 않는 그의 실천적 삶을 엿볼 수 있다. 지성, 신앙, 예술, 행동으로 이어지는 그의 삶은, “무엇을 아는가”보다 “어떻게 사는가”를 묻는 묵직한 질문이다.
오늘날을 사는 우리들은 타인의 고통을 얼마나 쉽게 외면하는가. 풍요로운 물질을 누리며 무감각한 심장을 달고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슈바이처의 지행합일의 실천적 삶은 애써 외면하고 싶고 어쩌면 불편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생명에 대한 경외'이라는 거창한 명제를 떠나서, 혹여 약자나 고통받는 이들에 대해 걸어둔 마음의 빗장이 있었다면 당장 훌훌 벗어던져버릴 일이다.
문명은 기술이 아니라 윤리로 평가되어야 하며, 타자에 대한 존중이 문명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작금 인간사회의 정글에서는 스스로 책임지지도 못할 온갖 궤변과 억척이 횡행하고, 학식과 지위로 타인을 비하하는 야만이 판치고 있다.
원시림 사이를 조용히 흐르는 시내처럼, 자신의 철학과 신념을 실제 삶으로 소리 없이 실천한 지성인 슈바이처, 20대 초에 읽은 그의 저서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를 문득 다시 들춰보게 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