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길 따라 하천 탐방
한 달 반 전에 자전거 타기를 다시 시작하며, 나름 '리버사이드(river side; 川邊) 라이딩'이라는 콘셉트로 하천을 따라 자전거를 타며 그 주변을 둘러보자는 생각을 했었다.
그동안 집 앞을 흐르는 탄천을 위시해서, 그 지류인 동막천 세곡천 성복천 상적천 운중천 분당천 대장천 야탑천 여수천 창곡천 등을 따라 예닐곱 차례의 라이딩을 했다. 대개 20~30여 킬로미터의 거리를 서너 시간에 걸쳐 달리는 느린 라이딩이었다.
지난번 번천(樊川)에 이어, 이번에도 이웃 동네인 광주시의 직리천과 중대천을 함께 둘러보기로 했다. 직리천(直里川)은 영장산 동쪽 기슭의 직동에서 시작하여 경안천으로 유입되는 연장 6.4km 지방하천이다. 중대천(中垈川)은 영장산 옆 고불산 기슭 삼동에서 발원해서 직리천을 끌어안고 경안천으로 흘러드는 연장 6.31km의 지방하천이다. 두 하천은 아흔아홉 봉 산의 긴 줄기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흐른다.
직리천을 400여 미터 위쪽에서 끌어안은 중대천이 경안천으로 흘러드는 지점 쉼터 옆에 차를 세우고 자전거를 내렸다. 드넓은 하상에 초록의 생기가 충만한 경안천을 뒤로하고 두 하천이 만나는 지점에서 좌측의 직리천으로 페달을 밟았다.
직리천은 태전동의 하천이라 할 만큼 대부분의 물줄기가 태전동 북단을 관통한다. 경강선 전철이 개설되고 수도권으로의 접근성이 나아지자 태전동 등 경기광주역 인근에는 많은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섰다. 직리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천변 좌안 도로는 갖 포장을 마친 아스팔트의 기름 냄새가 코끝에서 진동한다. 인도에서는 보도블록을 까는 작업 등 정비작업이 한창이다. 새로운 주거단지 건설과 인구 유입으로 주민이 증가하자 휴식공간 정비 등 주변환경 개선에 대한 요구가 뒤따랐을 것이다.
여기저기 공사가 진행 중인 직리천 천변 도로 가장자리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목재 표지판이 눈에 띈다. 그중 "왜 맹사성의 묘는 직리천에 있는가?"라는 제목의 표지판을 들여다보았다.
"맹사성의 묘는 직리천 상류에 위치하며, 경기도 기념물 제21호로 지정되었다. 맹사성의 고향도 아닌 이곳에 그의 묘가 있다는 것은 한 번쯤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다.
풍수에 능통했던 맹사성이 스스로 택했던 신후지지(身後之地 생전에 잡아두는 묏자리)로 서울 왕도에서 동지 때 해가 떠오르는 최남단 동쪽에 해당되는 신성한 장소이다.
주변에 조선 성종(1469-1494)의 태(胎)를 묻은 기록 또한 이 일대가 얼마나 성스러운 곳인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또한 맹사성이 새로운 태양처럼 다시 태어나서 많은 사람들을 일깨워 주라는 지혜를 염원하는 뜻으로 맹사성의 무덤을 정한 세종대왕의 큰 배려라는 설도 있다.
묘의 위치는 청빈의 삶을 살았던 맹사성의 삶의 모습과도 일치한다. 또한 직리천 주변에 맹사성의 호가 들어간 고불로(古佛路)라는 도로명칭이 정해졌으며 직리천이라는 하천의 명칭도 곧고 바른 맹사성의 성품에 의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처럼 맹사성의 묘는 단순한 유적으로의 의미를 넘어 지역전반에 사상적, 문화적 영향을 끼친 장소라 할 수 있다. 이곳을 시작으로 하류로 가면서 맹사성의 작품과 일화를 통해 그를 만나고, 그에 대해 알아가고자 한다."
직리천은 그 중간쯤인 태전2동 마을회관 부근에서 목동에서 발원한 목리천을 끌어안는다. 기왕에 직리천 탐방 라이딩을 왔으니, 그 지류인 목리천도 둘러보기로 했다. 따로 자전거길이 없어 목리천 옆으로 나란히 난 광남안로를 따라 약 2.5km를 거슬러 올라가며 페달을 밟았다. 화물차량이 연신 오가는 2차선 도로 좌우로 각종 창고 정비소 소공업사 등이 줄지어 들어서서 도로와 하천을 가로막고 있다.
여느 하천이 발원하는 지점과 마찬가지로 산줄기 사이 계곡으로 치달은 목리천 발원지 부근에는 *늘문교회, **제일교회, 사랑하*는 요양원 등 종교시설과 요양시설 등이 지도 앱에 검색된다. 머리 위로 얼마 전 개통된 세종포천고속도로 '목리천교'가 지나는 목동마을회관에서 핸들을 되돌렸다. 목리천과 직리천으로 안겨드는 곳 부근에 자리한 광남동성당은 중소 공장 등이 어지러이 들어선 혼잡한 지대에 숨 쉴 틈을 제공하는 안식처처럼 느껴졌다.
두 하천의 합수부에서 직리천 상류 쪽으로는 자전거길이 없어, 왕복 2차선 고불로 차도 옆에 선심 쓰듯 내놓은 50~60cm 남짓 좁고 울퉁불퉁한 보도로 바퀴를 굴려 가야 했다. 그 길 좌우에도 수많은 공업사와 정비소 등이 혼재한다.
하류 쪽에서 도로 보수작업이 일부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직리천과 그 주변은 지금껏 둘러본 그 어느 하천보다도 어지럽고 난삽하여 정비와 개선이 시급해 보였다.
중국 고대에는 넓이나 형태 등에 따라 길의 종류를 로(路), 도(道), 도(途), 경(径), 혜(蹊), 천(阡), 항(巷), 가(街), 구(衢), 강(康), 장(庄), 호동(胡同; 후퉁), 농당(弄堂; 농탕) 등으로 구분했다. 고대 중국의 기준에 따르면, 2차선 아스팔트길인 고불로(古佛路)는 두 대의 마차가 동시에 달릴 수 있는 길인 '도(道)'에 해당할 듯하지만, 좁은 인도(人道)를 걷는 보행자의 어깨에 부딪힐 듯 화물차량이 연신해서 스쳐 지나는 도로는 봉건시대적 후진적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하의 도시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차도, 인도와 구분된 자전거 도로를 따라 씽씽 달리던 시민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거기에 차량보다 자전거, 자전거보다 사람을 우선시하는 교통 약자 우선의 미덕과 인본주의적 제도까지 더해져 부러움을 자아냈었다.
직동삼거리 부근에서 자전거를 끌고 인도도 갓길도 없는 고불로를 따라 아흔아홉 봉 산 줄기 위 고개를 올랐다. 해발 160미터쯤의 고개 위에서 안장에 몸을 실으니, 두 바퀴는 중대천이 발원하는 삼동 쪽으로 내리 꽂히듯 달린다.
삼 2통 마을회관 부근 중대천이 시작되는 곳까지 페달을 밟았다. 경강선 삼동역이 지척에 있는 발원지 부근은 빌라가 빽빽이 들어서 있고, 중대천 물줄기가 빌라 빌딩들 사이로 졸졸졸 소리를 내며 작은 개울처럼 흐르고 있다. 삼동역 부근 편의점 점원 아주머니는 전철역이 생기면서 환경이 정비되고 집값이 오르는 등 주변 여러 마을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고불산과 국수봉 사이 좁은 골짜기 높은 교각들에 의지한 채 삼동역이 우주선처럼 자리한다. 그 아래 골짜기를 따라 중대천이 경안천으로 향해 흐른다. 직리천에 비해 중대천 천변 도로에는 보도와 자전거가 다닐 수 있는 공간도 한결 넓게 조성되어 있다. 중대천 중류쯤엔 광주시의 첫 번째 수변공원이라는 '중대물빛공원'이 조성되어 시민들의 훌륭한 휴식처도 자리하고 있다.
예전에 몇 번 찾아온 적이 있는 물빛공원에는 그 둘레를 따라 놓인 보행자 데크를 따라 많은 주민들이 산책을 하고 있다. 국토 곳곳이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와중에도, 많은 하천이 생태하천으로 거듭나서 주민들 품 속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다.
우리나라에는 국가하천, 지방 1급 하천, 지방 2급 하천, 소하천 등 하천법(河川法)에서 정한 하천이 2만 9천여 개에 달한다. 국토 면적의 약 70%를 점하는 산지와 수많은 하천이 어우러진 우리 국토는 실로 천혜의 보고요 말 그대로 '금수강산'이나 다름없다.
물빛공원을 뒤로하고 중대천 자전거길을 따라 강 건너에 자전거생태공원이 조성된 경안천 합수부까지 페달을 지쳐 달렸다.
때마침 합수부 쉼터에서 판촉 홍보를 하러 나온 농협 *마트 젊은 직원이 홍보 팸플릿, 물휴지와 함께 아이스박스에서 꺼낸 생수 한 병을 건네준다. 직리천 목리천 중대천 탐방 라이딩의 엔딩을 축하해 주기라도 하듯.
경안천 너른 하상에는 여전히 초록과 들꽃들이 자전거길을 따라 아스라이 멀리까지 봄의 향연장을 끝없이 펼쳐 놓고 있다. 25-05-08